"어디보자... 109876543210번 영혼? 아, 이쪽으로 오세요."

"아닌데요? 저 저승사잔데요?"

"예? 그럴리가 없는데? 잠시만요?"

천사가 신규 사망자 명단을 넘기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 갑자기 저승사자가 나타난다고? 예상치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이러기도 하는 거였는지 신입이었던 이 천사는 알지 못했다.

"저승사자일 리가 없는데..."

"아니, 저 저승사자라니까요? 저 일 늦었으니까 빨리 좀 갑시다. 앞장서요."

"그, 그게..."

돌발상황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더듬고 있는 천사를 보며 그는 의기양양해졌다. 아무리 봐도 어리숙한 여자 신입 티가 팍팍 났다. 이에 그는 자신감을 얻고 더욱더 공세를 몰아붙였다.

"지금 저 못 믿으세요? 아, 이거 안 되겠네. 요즘 아랫것들 기강 한 번 잡아놔야... 아 잠깐 그건 뭐에요? 아앍 잠깐만."

천사가 어리버리해하며 가방에서 포스기같은 걸 꺼냈다. 그러더니 포스기에서 빛이 나와 그를 찍더니 삐빅거리며 안내음성이 흘렀다. 포스기의 빛은 생각보다 아팠다.

"[거짓.]"

"하?"

방금까지만 해도 잘 구워삶을 수 있을 것 같던 천사의 얼굴이 한순간에 싸해졌다.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듯 했다.

"아, 아까웠다. 그러니까 제 말은..."

"군말 말고 따라와."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져서 순간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그니까 나는..."

"그리고 왜 반말이냐?"

"네, 넹."

갑자기 싸늘해져서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뀐 천사가 무서운 오오라를 내뿜자 109876543210번 영혼이 깨갱하고 움츠러들었다. 그냥 순순히 항복하고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천사의 말대로 따라가자 큰 건물이 하나 보였다. 건물의 외형은 대충 법원같아보였다. 아니, 진짜 법원이었다. 영혼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ㅈ됐음을 감지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내부는 투박한 외형과는 다르게 엄청 화려했다. 사방이 반짝거리며 빛났고 장식물도 엄청 고급져보였다.

영혼이 감탄하고 있을 그 쯤, 천사가 검문소 앞에서 멈춰서 관등성명을 댔다.

"신입 하급천사 타테냐입니다. 영혼 '사기훈'의 재판을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리로 와주시겠어요?"

타테냐가 검문소를 빠르게 통과했다. 그러나 왠지 영혼 사기훈은 우물쭈물하며 오려하지 않았다.

이에 눈치 빠른 검문소 직원이 바로 포스기 비슷한 걸 꺼내들었다. 아까 타테냐가 쓴 거짓말 탐지기와는 다른 거였다.

"[삐빅. 영혼 소지 금지 품목 발견.]"

"아앍. 그 포스기 아프다고!"

타테냐가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싸해졌다.

"사기훈씨?"

"아, 이건 그러니까... 아, 이 천사가 줬어요! 얘가 저랑 좀 많이 친하거ㄷ..."

"내 신분증이 거기서 왜 나와?"

사기훈이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타테냐가 흑화 직전이었다. 여기서 더 나대면 잡아먹힐 것 같았다.

그래서 사기훈이 다시 신분증을 돌려주자 타테냐가 원래의 그 신입 티 철철 내는 어리버리한 천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럼 가시죠."

"네, 넹."



얼마 후 재판장. 천사 타테냐가 영혼의 재판을 진행했다. 타테냐는 검사 역이었다.

"피청구인 사기훈은 만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 전과 14범이었습니다. 특히 이 중 사기전과가 4회, 절도 전과가..."

영혼 사기훈의 재판이 진행되며 판사의 얼굴도 점점 썩어갔다. 사기훈은 도저히 갱생시킬 수 없는 쓰레기였다.

그때 사기훈이 한 마디 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저 영혼 사기훈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동료 사기꾼의 말에 휘말려 전혀 관련이 없던 저를 사건의 주범으로 만들어..."

그 말에 타테냐가 그냥 바로 거짓말탐지기용 포스기를 들어 사기훈에게 쐈다.

"아앍"

"[삐빅. 거짓.]"

타테냐의 검사석을 중심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기훈이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말을 돌렸다.

"아, 그니까 제 말은 사건의 말단이던 저를 주범으로 만들었다는 거ㅈ... 아앍."

"[삐빅. 거짓.]"

"아니, 그 포스기 아프다고!"

반성의 기미가 없자 타테냐가 흑화해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오오라가 피청구인석까지 느껴졌다. 사기훈이 ㅈ됐음을 감지하고 발언을 철회했다.

"네... 제가 주범 맞아요..."

"[삐빅. 진실.]"

타테냐의 얼굴이 원래대로 편안해졌다.


그렇게 재판이 진행됐다. 사기전과가 4범이라고 했으나 사실 실제 사기 성공 회수는 잡히지 않은 것까지 19회였다. 사기훈은 사기를 저지른 후 자산을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려 은닉한 후 파산신청을 해 피해자가 재판에서 승소했는대도 돈도 못 받게 했다. 그러면서 출소하자마자 그 돈을 다시 찾아 전부 다 성매매와 도박에 탕진했다. 그렇게 피해자에게 뜯은 돈은 총 69억원. 사기훈은 그렇게 호의호식했다.

또한 절도전과도 화려했다. 경찰에 기록된 절도 회수는 4회지만, 실제 총 절도 회수는 74회였다. 초등학교 때 동급생의 지갑에서 1만원을 훔친 후 점점 규모가 커지다가 경찰에 여러번 덜미가 잡혀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사기 69회, 절도 74회,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수많은 범죄들을 합하면...


"주문. 피청구인 사기훈을 2급 죄수로 분류한다. 이에 따라 피고인에게 강제고문형 혹은 강제노역형을 선택하게 한다."

2급 죄수. 1급 죄수는 살인자들이 포함되는 곳인데, 사기훈은 현란한 말솜씨와 손기술로만 범죄를 저질렀지, 실제 사람을 보면 바로 쫄아들어서 사람을 패진 못한 철저한 강약약강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2급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피청구인 사기훈의 죄질을 고려했을 때, 강제고문 200년형 혹은 강제노역 74억원형이 적당하다. 따라서 피청구인 사기훈은 이 둘 중에서 선택하라."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 이에 타테냐는 사기훈을 강제고문형으로 보내려고 사기훈을 설득하려 했다.

"피청구인 사기훈에 대해 강제고문형을 요청합니다. 피청구인 사기훈은 반성의 기미가 없어 노역에 적당하지 않으며..."

그때 사기훈의 표정이 음흉하게 바뀌었다. 그러고는 타테냐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싫은데요."

"네?"

"아까 신분증 훔치면서 봤어요. 강제고문형 받으면 고문시키고 끝이지만, 강제노역형 받으면 여기서 발생한 실수는 모두 담당천사가 관리해야 된다면서요? 신분증 뒤에 써있던데요."

"아니 그게..."

"정했습니다. 강제노역형 갑시다!!!!"

강제노역형 선택. 그 말은 하급천사들에게 있어 고난이었다. 강제노역하는 죄수들이 사고치면 고스란히 천사들의 인사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죄수를 괜히 하급천사가 맡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이런 희대의 범죄자들은 형량이 길기 때문에 어떻게든 고문으로 보내야했다.

"아 잠깐만 이건 아니지!"

"크하하, 이렇게 된 이상 같이 공멸이다!"

사기훈이 타테냐에게 중지를 치켜들었다.

"아니 미친놈아!!!!"

"크핳핳핳핳핳핳핳핳핳핳핳핳!! 꼴좋다!"

"이런 쓰레기 새끼가!!!"

"피청구인 사기훈, 설명을 다 안 들으셨습니다. 그래도 강제노역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판사가 진중하게 말했다. 사기훈은 당연히 강제노역형을 골랐다.

"당연합니다! 아주 거기서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다녀서 타테냐인지 뭔지를 아주 그냥 박살을 내겠습니다!"

그러자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기훈이 공중으로 띄워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천사 타테냐까지 공중으로 날아올려졌다. 타테냐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정숙하시고, 피청구인 사기훈에게 강제노역 74억원형을 선고합니다. 땅땅땅."

"아니야! 이건 아니야!!!!!"

판사가 판사봉을 내려치며 사기훈의 빅엿을 확정지었다. 그러면서 절규하는 타테냐를 향해 신나서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 사기훈에게 판사가 한마디 했다.

"아, 그리고 피청구인 사기훈이 안 듣고 골라서 첨언하자면, 대한민국 직장인 중위소득이 234만원인 점을 고려할 때, 강제노역 74억원형을 모두 이수하기 위해서는 평균 약 3162개월이 소모됩니다. 즉, 난이도 중급 정도의 어중간한 노역만 고른다는 가정하에 263년 6개월을 노역해야 합니다.

퀘스트는 피청구인이 직접 선택하여 진행되며, 난이도에 따라 지급되는 금액이 달라짐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퀘스트 지역은 주로 천계와 지구이나, 원하면 다른 행성에서도 노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원활한 통제를 위해 담당천사의 피청구인에 대한 고문이 무제한으로 허용됩니다."

"아 잠깐만 무제한 고문 허용???"

사기훈이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ㅈ됐음을 감지했다. 담당천사의 고문이 허용되는 263년 반짜리 강제노역일 줄 알았으면 그냥 강제고문 200년을 골랐지 이걸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타테냐라면 건드릴 때마다 흑화해서 참혹한 고문을 자행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 잠깐만 취소! 취소!! 취ㅅ..."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죄수 사기훈과 하급천사 타테냐는 공멸의 길로 빠져들었다.




ㅡㅡㅡㅡ

임시제목: 사기꾼 죄수와 이중인격 하급천사

줄거리: 죄수 '사기훈'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과 그 옆에서 같이 곶통받는 하급천사 타테냐


설정

사기훈: 경찰에 기록된 것만 전과 14범인 희대의 쓰레기. 주로 사기와 절도를 행했다.

타테냐: 하급천사. 여자. 평소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지만, 제대로 빡치면 흑화해서 통제가 불가능.

포스기: 거짓말탐지기, 소지품 검문 등 여러 역할을 맡음. 포스기 빔을 맞으면 좀 아픔.

퀘스트: 퀘스트를 하나 진행할 때마다 돈을 받으며, 난이도에 따라 성공보수가 달라진다. 중급 난이도는 대한민국 직장인 중위소득 월급인 234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퀘스트 내용은 의뢰인 맘대로다. 퀘스트 과정에서 사고치면 하급천사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며, 따라서 원활한 통제를 위해 고문을 무제한 허용한다.


나머지는 다음 주자 맘대로 설정 뜯어고쳐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