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보자, 나는 현재 젊은 시절의 퀘스트 의뢰자가 된 상태이고 3개월 후에 사기가 일어날거라는거지? 나는 그 사기꾼을 잡으면 되고."


일단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막막한건 사실이었다. 내가 가진 단서라고는 3개월 후에 사기가 일어날것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고 무슨 사기가, 어떻게 발생할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거 정보가 너무 부족한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이러고 보니 지금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의뢰인 이름조차도 모르는데, 그 사기꾼을 찾을수는 있으려나.


"도,도도도도련님? 저... 식사..."


그때, 한쪽에서 병풍같이 서 있던 하인 중 한명이 덜덜 떨면서 나에게 식사 시간이라는걸 알렸다.


"알겠어. 먼저 가 있어."


아니 이 의뢰자라는 인간은 도대체 뭘 하고 다녔기에 고용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걸까.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지금부터 모으면 돼요. 농땡이를 피우면서 시간만 끌지 않는다면, 그 사기꾼이 올 때까지 충분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거에요."


그리고 나의 공포의 대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언을 건넷다. 표정과 말투가 매치가 되질 않으니 영 어색하다.


"오케이. 그렇다면 당분간은 이 사람인 척 하면서 정보를 모아야겠어. 가장 먼저 모아야 할 정보라면... 집안 사정이겠지."


사기라는것도 치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사기 칠 대상의 집안 사정 같은것은 잘 알아두면 사기치는게 쉬워지는데, 집안 사정을 이용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대상에게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안 사정이 안좋은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 집안에 대해 더 잘 알아보려면 일단 가족이 전부 다 모이는 식사시간에 참석하는게 좋겠지?"


나는 방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내 앞을 가로지르는 넓은 복도와 벽에 걸린채로 빛나는 고급스러운 양초들이 죽 늘어서있는 풍경이 보였다. 


"이거, 길 잃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집은 상당히 비싼 저택으로 보인다. 이런 거대한 저택에 산다는 것은 이 가문이 돈이 꽤 있다는 소리다. 


"나와 같은 웃음...?"


나는 식당으로 내려가며 의뢰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일단 사기꾼은 친근하고 믿음직해보여야 하기에 보통은 웃으면서 접근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웃음은 또 뭐란 말인가.


"뭐, 사기꾼들이 짓는 그런 전형적인 웃음을 말하는거겠지."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분주히 음식이 차려지고 있는 식당에 도착한 생태였다.


"어? 나 여기 어떻게 왔지?"


나는 이 집을 처음 보았다. 당연히 이 집의 구조같은것도 모르고.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 집의 구조와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타테냐가 뒤에서 부가 설명을 해주었다.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천사라서 나 이외의 사람은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당신의 영혼이 뒤집어씌워진 상태이긴 하나, 육체는 의뢰자의 것이에요. 당연히 머릿속에는 집의 구조가 남아있죠."


그런건가. 아무튼 나는 잘 정돈된 긴 테이블 앞에 앉았다. 내 앞에는 상당히 엄해 보이는 중년 남성과 푸른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앉아있었고 내 양 옆으로는 갓 20대가 된듯한 여성과 남성, 그리고 10대로 보이는 소년이 앉아있었다. 아마 의뢰자의 동생들인것 같다.


스테이크, 캐비아, 트러플과 치즈를 뿌린 파스타 등 고급 호텔 에서나 나올법한 음식들이 상 위에 차려졌다. 


"먹자꾸나."


그 말을 기점으로 포크와 나이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식당에 울려퍼졌다. 나도 일단 주변 사람들을 보고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눈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사기를 칠 때 상류층 처럼 보이려고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연습을 한게 이럴 때 쓸모 있을줄은 몰랐다.


식당은 가족간의 말 한마디도 없이 그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말 한마디도 없이 식사만 하는게 식사 예절이라면 모를까, 왜 이렇게 한 마디도 안 하는 걸까.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계속 이어지고, 내가 스테이크를 반쯤 먹어갈 때 내 앞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하인리히. 내 너에게 할 말이 있다."


하인리히가 누구야? 라고 생각하던 나는 가족 구성원 전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넷!"


아하, 의뢰자의 이름이 하인리히였군. 


"이전에도 몇번 했던 이야기이지만, 다시 한번 말해주마."


중년 남성은 헛기침을 몇번 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고있다시피, 이제 나는 더 이상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말해 너가 곧 가족들을 책임지고 가문을 이끌 가주가 된다는 소리다. 알겠느냐?"


하인리히라는 이름과 가주 어쩌고 저쩌고 하는걸 보면 여기는 확실히 외국이다.


"그러니 제발 철좀 들거라. 망나니같이 하인들에게 장난치는 짓은 이제 그만 두고. 장남인 네가 이제 이 뤼브레 가문을 이끌어야 하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고만 치고 다니니... 네 약혼녀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거 새로운 정보다. 의뢰자 하인리히는 뤼브레 가문의 장남이자 차기 가주이고 약혼녀가 있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네, 네! 듣고 있습니다!"


남자는 내 모습을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뭐?


"오늘따라 너 답지 않구나. 평소 약혼자 이야기만 나오면 날뛰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한것인지 원."


남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식사를 이어갔고, 다른 구성원들도 다시 접시를 바라보며 식사했다.


"이정도면 가족에 대한 정보는 충분해."


나는 혼잣말과 함께 스테이크를 씹어삼켰다. 생각을 정리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보는 얻으셨나요?"


방으로 돌아오니 타테냐가 다시 나타나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알아낸 정보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일단 의뢰자의 이름은 하인리히. 곧 뤼브레 가문의 가주가 될 예정이고 약혼자가 있는것 같에. 가족 구성원간 관계는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어."


식사 한번에 이정도 정보라면 걱정한것에 비해 꽤 괜찮다. 3개월 이내에 그 사기꾼을 잡는건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잠깐, 나 좋은 생각이 났어."


그렇게 계속해서 머릿속을 정리하던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뇌를 스쳤다.


"아니, 사기만 안 당하면 되는거잖아. 그럼 3개월 동안 집 안에서 안나가고 아무도 안 만나면 되는거 아니야? 그럼 이거 개 꿀이네?"


그럼 괜히 복잡하게 머리쓰고 단서 모을 필요도 없어진다. 이거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것 같다.


"..."


그러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좋아라 날뛰던 내 옆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찾아들었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타테냐는 포스기를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


"끄아아아앙!"


번쩍, 포스기가 빛을 뿜어내자 온 몸에서 고통이 일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채로 악마보다 더한 천사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왜!"


그러나 타테냐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듯 다시한번 포스기를 들어 발사했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해요. 우리의 목적은 사기꾼을 찾는거지 히키코모리가 되는게 아니라고요. 꼼수 부릴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떻게 잡을지나 생각해요."


포스기가 주는 상쾌한 짜릿함을 느끼며 바닥에서 기쁨의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는 나를 타테냐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아오... 알겠어, 알겠다고. 그 놈 찾아낼테니까, 그 망할 포스기좀 치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저 포스기는 몇번을 쳐맞아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일단....부유한 가문이 재산 전체를 홀라당 날려먹을 정도의 사기라면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건데, 그 의뢰자는 사기꾼이 한명인것처럼 말했잖아?"


이정도 규모의 사기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나라도 치기 힘들다. 보통 이런 경우는 사기꾼이 일종의 조직 같은걸 만들어서 조직 사기를 치거나 아니면 이 하인리히라는 인간이 엄청나게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인리히가 멍청해서 사기를 당한건 아닐것 같다. 일단 적어도 본인이 사기를 당한걸 알고 있고 무엇보다 새로 가주가 되었다는 소리는 적어도 그 재산을 일부나마 되돌렸다는 소리이다. 그래서 후자는 제외하자.


"근데 만약에 사기꾼이 한명이라면, 이 사기꾼 한명이 가문 재산 전체를 훔쳐갈정도의 사기를 쳤다는건데. 한명이 가문 전체를 대상으로 할 만한 사기라면..."


뒤에 조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사람 한명이 가문 전체의 돈을 뺏을정도의 사기를 친다면 아마 그것은 부동산 사기 아니면 투자 사기일것이다.


특히 부동산 같은건 다른 사기와는 다르게 가볍게는 몇천만원, 진짜 운 없으면 몇십억원 정도가 한방에 날라가버리는 압도적인 피해를 자랑한다.


좀 나이 든 사람이라면 풍수니~ 지리니~ 어쩌구 저쩌구 말좀 붙이면 농사도 안되는 면적당 200원 짜리 땅이 200만원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담당 공무원에게 몇백쯤 쥐어주고 찌라시좀 퍼뜨리면, 투기꾼들이 불나방마냥 날아들어 저절로 돈을 불려준다.


그리고 투자 사기도 고려해볼만하다. 종이 한장으로 회사를 만들고 화려한 언변과 조작된 서류 등으로 피해자에게 대규모의 투자를 시킨 뒤 돈 들고 그대로 해외로 나르면 끝이다. 다만 이건 준비가 오래 걸리니 생각좀 해봐야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기에 아직 확신하긴 이르다. 그렇기에 정보가 더 필요한데 특히 하인리히가 가문 전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주가 되는 사건이 중요해 보인다. 3개월 이내에 일어나겠지?


"역시, 사기꾼이여서 그런지 사기 수법에 대해 잘 아시네요. 오랑캐를 오랑캐로 잡는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죠."


정리된 나의 추측을 들은 타테냐는 살짝 감탄하며 말했다. 오랑캐라는 말이 나와서 그런것인지 왠지 기분이 나쁘다.


"저기... 안에 있니?"


내가 계속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누군가 방 문을 노크하더니 내가 안에 있는지를 물었다.


"어. 안에 있으니까 들어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