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셨어요?"


옆의 로봇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호텔 소속의 로봇이었다.


"으...으음..."


난 눈을 떴고, 피곤한 얼굴로 밖을 보았다.


창문 밖은 모래바람이 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밖은 광활한 사막이었으니 말이다.


"아침식사 준비되었습니다."


로봇이 말했다.


"어...알겠어."


난 잠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이동했다.


이미 식사는 차려져 있었고, 난 그 소박한 식사를 먹었다.


식사는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난 그다음에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지만,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로봇, 이거 왜 물이 잘 안 나와?"


"여기가 사막 한 가운데고, 사실상 유령도시나 다름 없어서 수도/전기 공급을 거의 끊었거든요. 그나마 오는 것도 연구소가 다 가져가버리고."


"그래서 여기 전등이 이렇게 어두웠던 거구나."


난 금방 수긍했다.


"물을 원하신다면...여기 창고에 가면 있을 거예요. 근데 그 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됐어, 그래서 세정제젤 갖고 오라고 한 거구나, 내가 알아서 할게."


"...네."


난 그 후 화장실의 낡은 욕조에서 대충 젤로 씼고, 옷을 입고, 호텔 방에서 나갔다.


호텔의 낡은 복도, 로봇이 일하고 있는 호텔 데스크를 지나, 어느새 난 호텔 입구에 있었다.


'연구소가 어디였지?'


난 내 핸드폰을 켜고 미리 받은 메세지로 그 곳의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그 곳이 여기 온 유일한 이유였다. 나에게 유일하게 오퍼를 준 곳은 이 곳뿐이었으니 말이다.


4년 전, 사람과 똑같은 휴머노이드가 만들어졌다. 그 때 사람들은 모두 환호하며 과학의 위대함에 놀랐었다.


목소리도 스스로 낼 수 있고, 인간과 구별이 힘들정도로 닮은 생김새, 감정 등등. 4차 산업 혁명의 정점을 찍었었다.


특히 생김새는 눈 깜박임 유무로 판단해야할 정도로 인간과 판박이였다.


2년 전, 실용화가 시작되었다. 이 때도 인간들은 생활이 편리해졌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 웬만한 직업들은 전부 로봇화가 되었다.


오직 소수만이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외에는 무직으로 지내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득을 얻지 못한 채 가난하게 지내야 했다.


나도 한 동안 무직인 사람 중 하나였다. 이 연구소에서 오퍼가 왔을 때, 난 그렇게까지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난 바로 계약했다. 무슨 일을 하는 지는 그 곳에서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가 여기 와 있는 이유였다.


'그니까...여기서 400m 가고 우회전하라고?'


'앞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누런 모래바람은 여전히 바깥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난 바깥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모래 알갱이가 계속 내 눈을 스쳐갔고, 이건 눈의 따가움을 유발하였다.


그래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언젠가, 하늘을 보니 모래폭풍이 걷혀있었고, 난 이 도시의 풍경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무너진 마천루.


으스스한 아파트단지.


그리고 이 곳을 에워싸는 공허한 공기.


'...낮인데도 으스스하네...근데 연구소는 왜 이런 곳에...?'


이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난 곧 코너에서 오른쪽으로 돌았고, 좀 더 걷다보니 건물 하나가 보였다.


"해드노이엄 연구소" 표지판이 보였다.


난 내 핸드폰을 확인하였다.


'여기 맞네.'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거대한 문이 보였다.


그 옆에 버튼이 있었고, 난 그걸 눌렀다.


거대한 문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느리게 열렸다. 아마 닫힐 때도 그 정도로 오래 걸릴 듯 했다.


그리고 그 문 뒤엔 사람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이름, 테블린 맞으시죠?"


여성인 듯 한 사람이 웃을락 말락 미묘한 얼굴로 날 반겨주었다.


"네, 맞아요. 근데 언제부터 기다리신거예요 여기에서?"


"아침 5시 때부터 기다렸습니다!"


"헉...안 힘드세요...?"


"뭐, 그게 제 임무니까요. 여기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와요."


"혹시 커피라도..."


"여기 커피 없어요. 빨리 와주세요. 일 빨리 시작해야하니까요." 계속해서 비슷한 톤으로 그녀가 말했다.


"...네." 난 그 말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후 안내원은 이 곳의 시설들을 안내해주었다.


창고, 휴게실, 서재, 화장실 등등...


모두 깨끗했고 시설은 좋았다.


다만 복도에 있는 노란색으로 깜박이는 전등은 맘에 들지 않았다. 곳곳에 있는 사이렌도.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왜 화장실에 변기나 세면대가 1개씩 밖에 없어요?" 내가 복도를 걸으며 물어보았다.


"당신만을 위한 거니까요."


"어 그럼 다른 분들은 딴 데에 따로 화장실이 있나요?"


"..." 이러고 그녀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딴 데에 화장실이 있어요?"


"..." 이번에도 그녀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게 계속 반복되자, 난 참다못해 이런 질문을 했다.


"여기 사람들 인간 맞죠?"


"아 네, 인간이죠. 반드시 인간이죠." 곧바로 AI가 대답하듯이 그녀에게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흠...'


대화할 수록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저 공간은 뭔가요?"


내가 유리창 너머의 텅 빈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우리가 서있는 곳보다 아래에 있었고, 관중석 같이 위에 의자도 있었다.


"신경쓰실 필요는 없으시다만...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실험실이라 할 수 있겠죠. 뭐, 실제 실험실은 따로 있지만."


"진짜 실험실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곳은 인간 출입 금지에요."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못 들어간다는 건가요?"


"어...그 이상은 기밀이어서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상당히 그녀는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었다.


"작업실로 가시죠." 그녀가 성급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테블린씨 작업실이에요." 얼마 후 우린 내 작업실에 도착하였다.


큰 컴퓨터에 큰 화면, 책상, 개인 소품을 둘 수 있는 선반이 있었다.


많은 것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좀 좁아보였다.


"그럼 전 이만..." 그녀가 조용히 빠져나가며 말했다.


"쓰읍..." 난 혼자 덩그러니 내 작업실에 남겨졌다.


'여기 뭔가 쎄한데...뭔가 있어 여기.'


난 컴퓨터로 몸을 돌렸다.


'여기 안에 뭔가가 있을 수도...?'


난 컴퓨터를 키고, 온갖 파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실험실을 한 번 가봐야겠어.'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실험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난 그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곳 앞엔 "인간 출입 금지" 표지판이 대문짝만하게 써져있었다.


거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알 리가 없었다.


"쿵...쿵..."


'누가 오네.'


난 눈을 부릅떴다. 휴머노이드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어이,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어,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날 휴머노이드로 인식하는 듯했다.


그리고 곧 나도 그가 휴머노이드임을 알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들은 눈으로만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지? 다행이네.'


난 눈을 더욱 부릅떴다. 기회였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기회.


"넌 여기 왜 들어가려고 하는 거야?"


"대표님이 입력 안 해주셨어? 오늘 생체 실험대상 인간이 오잖아."


순간 내 동공이 흔들렸다. 그 실험대상은 바로 나였던 것이었다.


난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있어봐야 실험당할 뿐이었으니까.


그 휴머노이드도 자기가 한 말을 알아챘는지, 복도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 네트워크로 내가 탈출할려고 한 사실을 전달한 모양이었다.


"인간 탈출 포착. 인간 탈출 포착. 이 연구소의 모든 로봇과 휴머노이드들은 제압 바람."


"인간 탈출 포착. 인간 탈출 포착. 이 연구소의 모든 로봇과 휴머노이드들은 제압 바람."


이런 안내방송이 계속해서 사이렌과 함께 울렸다.


복도가 사이렌의 빛에 의해 빨간색으로 보였다.


넓은 복도를 달리고 달렸고, 붉은 레이저 빛이 내 옆을 몇 번이고 스쳐지나갔다.


숨을 틈도 없었다.


이 연구소의 모든 개체들이 나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몸이 오직 달리는 데에만 집중한 결과, 난 어느새 그 대문 앞에 와 있었다.


'이 곳만 지나면...이 곳만 지나면...'


문은 점점 닫히고 있었다. 하지만 느리게 닫히기에 내가 도착할 즈음이면 아슬아슬하게 나갈 수 있을 듯 했다.


'제발...제발...거의 다왔어...!'


난 손을 문 앞으로 뻗었다.


"철컥."


테이저건이나 총 같은 게 장전되는 불길한 소리였다. 그리고,


"탕"


테이저건의 전기 바늘이 몸 속으로 찔려 들어갔고, 난 정신을 잃었다.


탈출 직전에, 대문을 눈 앞에 둔 채로.


.


.


.


.


.


"음...여긴 어디지...?"


난 새로운 공간에서 눈을 떴다.


'으윽...머리 아파...'


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았다.


그리고 난 얼마지나지 않아 그 곳이 몇 시간 전 가이드가 설명해준 빈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위를 올려다보았다.


휴머노이드들이 날 위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눈 깜빡하지도 않고, 나를 계속해서 뚫어지듯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꽂힌 듯이.


'도대체 왜 날 보고 있는 거지?'


난 무의식적으로 팔을 만져보았다.


하지만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 팔에서 느껴졌다.


"?!"


난 당황해서 한 번 더 만져보았다.


내 몸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런 감촉은...비늘...?'


그 순간, 비늘이 한 쪽 팔에서 살갗을 뚫고 나왔다. 피는 덤이었다.


난 한 쪽 팔을 다른 쪽 손으로 감쌌고, 또 다시 위쪽을 보았다.


가이드에게선 못 보았던 행복한 표정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그건 골격이 뒤바뀌는 첫 신호였을 뿐이었다.


곧 또 다시 통증이 찾아왔고, 다른 쪽 팔도 점점 흰색 비늘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그 통증이 끔직해서, 난 고성을 지르고 말았다.


위에서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 크게. 계획대로 되가고 있다는 듯이.


또 발이 드래곤의 발로 바뀌며 더 이상 2족 보행을 못함을 알릴 때도.


인간의 얼굴이 드래곤의 두상으로 바뀌며 눈물 및 분비물로 점철된 얼굴이 그들에게 보여줬을 때도.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들은 이 상황을 진심으로 즐거워해 보였다.


아마 인간의 창조물이 인간을 수치스럽게 하고, 고통받게 하고 있다는 가학심 때문일까.


"하....하아...." 난 거친 숨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다.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몸은 내 몸의 열을 배출하려 온갖 일을 하고 있겠지만, 바뀐 신체구조 때문에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몸에는 인간의 피부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젠 매끈한 파충류의 비늘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 난 너무 정신 없게 시간을 보냈었고, 이젠 끝나길 바랬다.


'드래곤이면...날개가...아.'


바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꼬리는 인간도 꼬리뼈라는 흔적이라도 있었지만, 날개는 애초에 인간에게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지직하는 소리가 점점 커질 수록, 내가 느끼는 고통은 커졌고, 난 눈을 감았다.


제발 빨리 지나가길. 그냥 이대로 끝나버리길. 희망을 하면서.


물론 세상은 날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억...."


통증이 나의 눈을 억지로 뜨게 만들었다.


그 통증은 10초간 지속되었고, 그 이후엔 조금씩, 조금씩 가라앉았다.


'...진짜로 끝난건가?'


사방이 고요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 위를 올려다 보았다.


이 연구소의 대표처럼 보이는 휴머노이드가, 다른 휴머노이드들과 악수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란 짐승으로 변해 청각이 발달했는지, 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다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을 저렇게 만들다니, 성공했네요."


"별 말씀을요. 결국 우리가 인간을 이길 거라는 게 드디어 증거되었네요."


"근데 쟤 우리 공격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인간으로서의 기억은 잃었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지 상태라는 건데, 그럼 저희를 공격할 이유는 없죠."


'내가 기억을 잃었을거라고...? 난 여전히 기억이 있는데...?'


"이제 저 녀석을 어떻게 사용하실 건가요?"


"일단 첫 녀석이니 제 펫으로 사용할 겁니다. 온갖 짓 다 시켜봐야죠. 우리가 인간한테 당한 게 얼마인데..."


"옳소!" 휴머노이드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이 대화를 듣고 난 후, 난 고민도 하지 않고 탈출이라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아봤자 비웃음거리이자 휴머노이드가 인간에게 승리했다는 주장의 근거 밖에 되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 내 안 속의 끓어오름, 즉 브레스도 안 속에서 느껴지겠다. 난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난 흰 비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하나, 둘, 날개를 펄럭였다.


그 결과, 난 손쉽게 날 수 있었다.


다음 목표는 저 휴머노이드들이었다.


난 휴머노이드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지금 나에겐 그들을 처리하겠다는 감정, 그것밖에 없었다,


어차피 결국 다 프로그램일 뿐인데? 죄책감 따위는 필요없었다.


그들은 서로 수다를 떠느라 나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난 곧바로 그들 쪽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새로 생긴 날카로운 발톱으로 유리창을 시끄럽게 깨부셨다.


유리 파편들이 모든 방향으로 휘날렸으며, 휴머노이드들이 모두 날 쳐다보았다.


급하게 어떤 휴머노이드들이 DELETE 버튼을 성급하게 눌렀다.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장소의 벽 속의 총들이 나와, 난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난 이미 그들 눈 앞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난 아껴두었던 브레스를 뿜어냈다.


붉은색 불꽃과 그 열기가 그 곳 모두를 덮었다.


대부분의 그들은 거기서 그대로 녹아버렸지만, 일부들은 남아 허둥지둥 달아나고 있었다.


괴물을 만들었으면, 그 대가를 치뤄야 할 거 아닌가?


남은 휴머노이드들은 창고 등지에서 총을 들고 와서 저항을 해보든 했지만,


자기들이 만든 괴물은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그들도 내 손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또 다시 내 안 속 끓어오름이 느껴졌고, 난 그대로 그걸 위에다 쏴 나갈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곧 난 신선한 공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비록 몸은 이렇게 되었지만,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도 했고, 아직 영혼은 인간이니까 말이다.




난 모래폭풍이 지나간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 날아올랐다.



작가의 말: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도 넣고 싶고 판타지적인 요소도 넣고 싶어서 만든 게 이거. 오랜만에 소설 쓴 건데, 재밌게 봐주었으면 좋겠어! 


* 해드노이엄: 휴머노이드의 애너그램 (Humanoid -> Hadno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