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검사 결과는 나왔어?" 


시신경척수염이래.


"그렇게 말해도 뭔지는 모르고..

.. 심각한 거야? 갑자기 한 쪽 눈이 안 보인다며. 치료할 수는 있는거래?"


치료제가 있긴 한데..


"왜 데로 끝나. 왜, 비싸대? 됐어.. 뭐 내가 좀 고생하면 되는거지.

괜찮아. 그래도 이제 직장에서 자리 좀 잡았으니까 어떻게든.."


많이 비싸.


"얼마나 하길래?"


그건 둘째 치고.


이건 너 책임이 아니잖아, 왜 너가 책임 질려 해.


....


너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고


나는 죽어갈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지금 그러면 약혼까지 한 사람 죽게 내버려두라고?

그게 지금 할 말이야? 항상 혼자 짊어지는 습관 좀 버리.."


3억이래.


"....... 그래. 비싸긴 하네.. 근데 한 번에 필요한 건 아닐 거 아니야.

천천히 모아가면 되는 거지. 좀 힘들긴 하겠지만.."


아니, 1년에 3억이야.  2주마다 와서 치료 받아야 하고

당장 수술비도 있어야 해.


"... 의료보험 들은 거 있잖아. 그거는.."


보험사에 물어봤는데 희귀질환은 포함 안 된대.


"......" .......


야. 


".. 왜 그래."


지금 볼 수 있을까.


"..... 어디로?"


맨날 가던 거기, 있잖아.


오늘 밤이면 꽃이 활짝 폈을거야.


"그래. 지금 나갈게."


-


"안대 꼈네?"


그래, 조금 보기 흉하기도 하고. 그냥, 하하. 보여주기 싫더라고.


"....."


말이 없네. 조금 걸을까?


"그래."


여기는, 응.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야.


"내가 알려줬잖아.."


그러니까 좋아하는 곳이라고, 인마.


여기서는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하늘에도 별이랑 달이 떠 있어서 환하고

바닥에는 풀들이랑 붉은색 꽃들이 화사하게 펴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

누가 다리 위에 이런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몰라, 모르겠어.."


..... 왜 죽상이야. 응? 아픈 나보다 너가 더 그러네.
으이? 나 오늘 마음먹고 나온건데 좀 잘 봐봐.

아끼던 옷이라고, 예쁘지?


"응. 이뻐. 정말.. 정말로."


히. 그래. 

.... 밤이 참 밝다. 꽃도 있고, 너도 있고.

바람은 조금 춥지만. 하하.


".... 어떻게든."


어?


"내가 어떻게든.. 낫게.."


.. 말하지 마.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해서 후회하지 마.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말했잖아, 네가 책임 질 필요 없다고.
그냥 항상 고마워, 너한테는.


"... 지금 무슨 말을.."


쉿. 그냥 들어줘.


있잖아. 중학교에서 처음 말 걸어준 것도 너고.


처음 사귀자고 한 것도 너고.


첫 데이트도 청혼도 너가 신청해줬네?


하하. 첫 키스는 내가 먼저 했지만.


"....."


.... 그래서 있잖아.

 내 인생을 함께해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마지막에도 참, 분수에 맞지 않는 마음을 받아버릴 뻔 했네.


하하, 그럴 염치는 없지.


"....."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막상 여기 오니까 별로 생각이 안 나네.

.. 슬슬 가야겠다. 


".... 어디 가?"


이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


".........?
 청아. 청아? 야! 심청!!"


아으, 눈도 멀었는데 귀도 멀게 생겼네.


....


"어디 가는 거야."

이거 놔.


"지금 죽으러 가는 거야?"


......


"..너 지금..."


....... 에이씨.. 그래! 죽으러 간다!

근데 어떡해, 내가 살아있으면 민폐만 끼칠텐데..


나도 무서워, 나도 죽기 싫고,, 오래 살고 싶어..

못 해본 것도 많고 너랑 결혼식도 해보고 싶었어, 근데.


근데..!


어떻게 그래..


나 하나 행복하자고 너를 어떻게 끌여들여..


그리고 너를 끌어들여서 어떻게 내가 행복하겠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야.


....


너를 사랑해서 이러는거니까.


나를 사랑한다면 붙잡지 말아줘..


"......"


에이씨.. 진짜..


멋지게 갈려고 마음준비 다 하고 온건데..


...... 야.

"....?"


야! 어깨 펴! 임마. 웃고 어?

마지막인데 그렇게 울상으로 보낼거야?


"......"


그래, 어떻게든 웃어.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음에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그렇게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

그때는 내가 먼저 말 걸어줄테니까. 응. 하하, 나처럼 튕기면 안 된다?


".... 그래."


하아. 씨팔, 마음 준비를 그렇게 했는데 아직도 떨리네.


... 몽룡아.


"응."


사랑해.


"그래, 나도 정말 사랑해."


히. 병신. 항상 웃는게 귀엽단 말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