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https://arca.live/b/writingnovel/37667258?target=all&keyword=%ED%99%98%EC%83%81%ED%86%B5&p=1





 

 차창 밖으로의 풍경이 유난스러웠다. 하늘도, 건물도, 사람들도. 아마 그 중 가장 유난스러웠던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푸른 하늘만큼이나 먹먹해진 내 마음이 스스로를 옥죄여 왔다. 행복도, 슬픔도 없는 무심한 인생이었구나. 이 미련도 없는 삶을, 굳이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내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어왔다. 그럼에도 내가 바로 죽지 않는 것은, 겁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주저하는 순간, 어떻게라도 살고 싶은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아, 이 모든게 부질없다. 어차피 1년 쯤 뒤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텐데.

   

 이마를 타고 전해오는 은은한 냉기가 나를 간지럽혔다. 내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까.

   

 “기사님. 기사님도 죽고싶은 만큼 힘들던 때가 있으셨나요?…”

 “하이고 쎄고 쎘죠. 세상살이 쉬운 게 어디 있습니까? 학생, 아무리 힘들어도 사는 게 결국 훨씬 낫더라구요. 괜히 안좋은 생각 말고, 피곤하면 좀 자요.”

   

 택시기사님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조수석 등받이에는 이번 달 모범기사라는 내용과 함께 기사님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또 차안에 은은하게 퍼져오는 민트 향 껌 냄새도, 푹신하게 날 감싸안는 뒷자석의 등받이도. 모두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살아도, 결국 죽을 텐데요 뭘...”

 “네?”

   

 나는 곧 기사님에게 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나는, 생전 보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날때부터 부모님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알아듣기도 어려운 이름의 난치병에 걸렸다는 것. 그리고 방금 막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오는 길이라는 것.

 아마 저것들 중 하나만 있어도 비극적인 7부작 드라마를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것들 모두를 겪고 있는 나는, 얼마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기사님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택시가 정부에서 지원받은 내 집 앞에 도착하기 까지. 결국 그 이후로 기사님과 내가 말을 나누었던 때는, 택시요금을 계산할 때 뿐이었다.

   

   

 -“너와 내가 만난 것도 꽤 오래됐다 그치? 처음 만났을 때는 주사 맞기 싫다고 칭얼대던 꼬마애였는데… 언제 이렇게 큰 거야.”

   

 2년에 한번씩 받는 주기적인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으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러 갔을 때, 선생님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로 나를 맞이하셨고, 그날의 공기도, 햇볕도, 바람도 모두 평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고 웃으셨다. 그러나 곧 얼굴을 감싸고,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하셨다.

   

 -“...미안하다. 1년쯤 남은 것 같다. 지금은 통증 자체는 없겠지만, 세포가 이미 많이 죽었어. 오늘이 11월 21일이니까, 내년이 마지막일 것 같다...”

 

 처음에는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죽는다니. 난치병 때문에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은 있었지만, 확정적으로 내가 죽는다니. 인터넷에서 본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단계는 순차적이었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 다음은 화가 났다. 내가 대체 뭘 잘못해서? 왜 나만 이런 나락 같은 삶을 살다못해 죽어야만 하는 것이냐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화낼 힘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자극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즉, 나는 시간을 죽인 것이다. 나 혼자 죽으면 너무 쓸쓸할테니까, 내게 남은 시간을 찬찬히 죽이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증상 완화를 위해, 그리고 혹시 모를 남은 한가닥의 희망을 위해, 입원 수속을 밟기 전 짐을 챙기려 집에 왔지만, 딱히 챙길 것이 없었다. 그냥 검은 터틀넥을 입고, 그 위에 흰 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코트를 걸쳤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마지막 식사라던가, 마지막 일탈이란 것은 없었다. 설령 그런 것을 한다고 해도, 내가 세상에 남아있지는 않을테니까.

   

 “뭐야. 아직 집 안 갔어요?”

 내가 병원 로비에 들어서고, 곧 입원수속을 하러 발걸음을 옮길 때, 피로에 찌든 한 남자가 저 너머 자판기 앞에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 입원하는 거라도 좀 보려고...”

 그날 주치의 선생님은 당직도 아니셨고, 또 외래진료도 끝난 지 오래였지만, 꽤 오랜 시간까지 병원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계셨었다. 내가 입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내 입원을 도우기 위해. 이전에도 몇 번 병원에 입원한 적은 있었지만, 주치의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나를 신경써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괜시리 불편한 공기가 서로를 감쌌다. 오랫동안의 병원생활로 선생님과 나는 친구와도 같은 편안한 사이었지만, 그 사이가 가까운 만큼 불편한 감각도 커져만 갔다. 선생님은 명백히 내 죽음을 선고한 의사였고, 나는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였으니까.

   

 “우리 병원은 1인실은 다 VIP병실로 이용 중이라서 2인실로 갈건데, 그... 네가 들어갈 병실에 네 또래 남자애가 하나 있어.”

 내가 데스크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건네준 서류에 한창 개인정보를 적고 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은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셨다.

 “저 그런거 별로 신경 안써요. 남자가 있든, 여자가 있든...”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남자애가 실은 좀 오래 입원한 하지 절단상 환자인데, 교통사고 때문에 부모님도 모두 잃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애가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어 해...”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우스운 생각이 났었다. 나는 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고, 심지어 이제는 죽어버리기까지 한다는데 그깟 다리 하나쯤이 별 대수일까. 살 수만 있다면 다리는 물론이고 한쪽 눈까지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억울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렇게 못난 모습으로 비극을 가름질했다.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병실에 들어갔을 때, 침대에 누워 미동도 않고 눈끝으로 나를 쳐다보는 너를 보고는 깨달았다. 너의 비극은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구나. 죽음을 비관하는 그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있었다.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단지 나와 달랐던 것은, 도저히 겁을 먹지 않고 진심으로 죽기를 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맨 처음 너의 눈을 보고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주저 앉을 뻔 했었다. 고작 나와 또래인 너가, 대체 어떤 아픔을 겪었길래 그런 눈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갈무리 할 수 없는 비극을 살아온 나도, 너와 같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살려달라는, 또 동시에 진심으로는 죽고싶어 하는 그런 양자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내 안에 있는 씨앗이 꿈틀거렸다. 너에게로 옮겨가고 싶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저 비극에 뿌리를 틀어박고 양분을 먹고 자라,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봄을 피워내고야 말겠노라. 씨앗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씨앗을 손으로 덮었다. 그 씨앗이 마침내 너의 비극으로 하여금 봄을 피워내고, 네가 세상을 힘껏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면, 나도 그 속에서 작은 껍질로 양분이 되어 너의 세상에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어쩌면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너에게 내 남은 생을 바치겠노라 다짐했던 것이었다. 분명 누군가는 마치 뭐라도 되는 양, 누구를 살리겠냐고 흉을 보겠지마는, 그따위 것은 상관없었다. 

 그랬기에 그날 밤 동안 너에게 계속 시덥잖은 말을 걸었다. 비록 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내 안에서 일으키는 꿈틀거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11월 21일, 차갑고, 모든 것이 죽어있는 계절. 나조차도 죽어버린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