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다. 그것은 특권이고 저주다. 하지만 최근에는, 늘 저주였다.


늘 나타나는것은, 잘려나간 팔다리와 떨어져나간것들중 하나를 들고있는 소녀의 모습이였다. 언제나 그녀는 나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어떠니?. 고립되어 구원받을수 없는 처지가. 스스로 날개를 꺾어서 맺어지는 후회는?. 모든이들에게 외면받는 고독은?. 그 모든것으로 인해 구멍나버린 너의 모습을. 무슨눈으로 지켜보는거니? "


언제나 질문하고, 질문한다. 입을 못여는 난 그것에 답할수 없다. 하지만 답할수 없어도, 답하고싶지 않아도, 내눈앞의 그녀는 멋대로 생각한다.


"나도몰라. "


이번에는 대답한다. 


"시발 나도 모른다고. 내 모습을 어떻게 보라는거야"


생각없이 뱉어낸, 오로지 마음만을 담은 단어. 그 말에는 그 어떤 논리도, 명분도 없다. 하지만


넌 어째서 만족하는걸까?


"의지를 가지렴. 희망을 품으렴. 이번에는 두번째로 주어진 날개를 놓지 마렴"







눈앞에 나타난것은 천장이였다.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된 천장.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체 왜 천장에 스테인글라스를 다는건지 모르겠다. 스테인글라스를 본 유일한 경우는 성당뿐이다. 그래도 거기 신부님은 좋은분이셨다. 아마 내가 이런 이상한곳에서 산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기겁을 하실게 분명하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사는 차원이 다른데. 진짜 말 그대로 말이다.


"일어났군. "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서 앞을 보니, 한 사람을 냄비를 든채로 서있었다.


사이키. 이젠 나의 스승이다.


"거 좀 질문좀 해도 됩니까?. "


"마음대로"


"그거 왜 아직도 끓고있습니까? "


"마법이라네"


"마법이네요"


이젠 이런것도 익숙하다. 처음봤을땐 이 도서관이라는곳이 참으로 기이한곳이라 생각했는데, 익숙해지니깐 별거 아닌것처럼 느껴진다.


"자, 다됐다네. 먹게나"


"이거 막 이상한거 넣은건 아니죠? "


"글로리아 전통음식일세. 이상한건 전혀 없다네. 물론 자네기준은 다르겠지만, 맛은 보장하지"


난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입안에 넣는다. 맛있다. 비몽사몽한 머리가 깨질정도로. 그러고보니 제대로된 식사를 한적이 얼마나 될까. 기억이 나지않음에도, 막상 생각해보면 그랬었던거같다. 먹는거라고는 컵라면밖에 없었던, 하지만 그것에도 만족했었던, 마치 내것이 아닌것만같은 기억이 파편적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이곳에 컵라면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엄청 맛있다고 해도, 아마 난 먹지 않을것이다. 진짜 난 예전에 무슨삶을 살았기에 이러는걸까


"맛있네요. 요리를 잘할줄 몰랐는데"


"마법사 견습생때 배운것이라네. 예리코는 늘 멍때렸고, 매즈는 자주 사라졌어. 남은건 나와 녹스였는데, 녹스는 매우 심각하게 요리를 못해서 그나마 할수있는 내가 자주 요리를 했지. "


표정이 참 좋아보인다. 녹스는 만났고, 예리코,매즈도 친구인건가?


"아, 또 나만 아는 예기를 했군. 예리코,매즈,녹스 모두 나와 같은 동창일세. "


"마법사가 다니는 학교가 따로 있는건가요? "


"물론, 하지만 우리 넷은 학교를 통해 마법사가 된게 아니라네. 그땐 첫번째로 현자들의 제자양성이 이뤄졌거든. "


"네?. 현자? "


"마법사일세. 마법사들중에서는 두번째로 높은 자들이지. 그때 현자들이 제자를 골라서 마법사로 양성하는 일이 이루어졌다네. 요즘도 자주 이루어지지. 예전보다는 많이 이루어지진 않지만, 아마 나때가 가장 활발한 시기였던거같군. "


"마법사도 사교육이 있다니. 참 신기하네요"


"재능있는자들에게는 오히려 사교육이 편했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마법의 현자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


어느새 그릇은 깨끗해졌다. 그리고 그 그릇위로 반짝이들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그릇들은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따라오게나"


지금부터 시작이다.






문을 열고 나온것은 온통 새햐안 공간이였다. 말그대로 백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였다.


"여긴 어디에요? "


"백색공간이라네. 이 도서관을 만든 위대한 마법사. 대현자 판타지가 발견한 세계지"


이름이 판타지라니. 참 우스꽝스럽다. 사람이름이 그래도 되는건가?. 어디가서 놀림받진 않겠지?


"저 근데 대현자도 있어요? "


"물론이라네.이 넓은 우주에서 자신을 대현자라 자칭하는이들이 있겠지만, 우리들에게는 대현자는 오로지 세명뿐이라네. 그중 두명은 각각 사망과 실종상태였으나 최근에 다시 나타났고. 한분이 이 도서관에 자주 들르시니 만날순 있겠군"


거 만날수 있다면 참 좋겠네. 이왕 올거면 그 판타지인지 뭔지하는 사람이 오면 좋을거같은데.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도서관을 세울정도면 평범하진 않을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연습을 시작하지. "


손에 무언가가 집혔다. 손을 바라보니


"총? "


"자네는 싸우는법을 모르고, 아직 마법도 배우지 않았다네. 그러니 일단 호신용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게 좋겠지. 총기는 예나 지금이나 쓸모있는 무기야. 마법사의 검법은 장갑을 가르지만, 총은 무술을 배울필요없이 무력을 투사하는게 가능하지. 

하지만 결국 방법을 익히고 사용할줄 알아야하는 무기인건 변함없다네. 자세를 잡아줄테니 한번 목표를 향해 쏴보게나"


눈앞에 사람형태의 인형이 나타났다.


"저거, 사람 아닌가요? "


"영혼과 정신빼고는 지적생명체와 거의 똑같은 마네킹일세. 왜그런가, 역시 좀 부담이 있겠지? "


"..아니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총을 잡은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방아쇠를 한번 당기자, 총성과 함께 마네킹이 복부에서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나쁘지 않군. 반동도 잘잡고, 솔직히 말해서 자주 해봤던거같군. 자네 진짜로 여기오기전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건가? "


자주 해봤다고?. 내가 총을 쏠 일이 있었나?. 이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내가 뭘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뭔질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잘 모르겠어요. 뭐 그래도 천천히 생각해보면 되겠죠. "


"좋아. 이제 마법을 익힐 차롁군. 이 장갑을 쓰게나"


그가 나한테 건네준건 가죽장갑이였다. 손바닥에 마법진 비스무리한게 그려저있는것빼고는 영락없는 가죽장갑.


"자네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몸에 마력계통이 완전히 형성되었네. 이제 그 마력계통의 마력을 조절하고 조작하는법을 배워야지. 여기서부터는 정신적,영적 영역이라네. 아직 마법을 써본적없는 자들은 마력을 원하는형태로 방출하고 조작하는것에도 어려움을 느끼지. "


"그리고 이게 그걸 도와주는 물건이고요? "


"그래. 보통 마법은 수많은 분파와 속성들로 나뉘어져있지. 예를들어 불속성이라고 해도 그 안에 있는 방계 분파들은 셀수도없이 많아. 하지만 아직 기초인 자네한테는 일단 마력을 조작하는 방법부터 배워야해"


사이키는 두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선 마력계통에 접속할줄 알아야하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게나"


"잠깐만요. 머리를 비우라고요? "


"마력계통은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네. 마치 자각몽처럼 작동되지. 머리를 비우고, 문을 생각해보게. 일단 한번 접속을 한다면 더 수월하게 접속할수있을걸세"


그말에 난 머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놀라운것은 이게 의외로 잘됐다는것이다. 머리비우는게 쉬운일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된다고?. 


"문이 보이네요"


"이제 그 문을 열게나"


난 머릿속에 나타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너머로 푸른색 빛이 새어나왔다.


"승우. 이제 너의 손을 보게"


난 눈을 뜨고 내 손을 바라봤다. 내 손에는 푸른색 스파크가 튀고있었다.


"이거 원래 이렇게 쉬운거였나요? "


"아 그게... 사실은 처음 마력계통에 접속했을때 그 장갑이 많이 도와줬다네. 잡생각을 없에주는 기능이 있거든. 물론 이젠 상관없지. 갓난아기라고 할지라도 한번 마력계통에 접속하면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접속할수있으니까"


"어, 이제 뭘하면 되는거죠? "


사이키는 손짓을 하여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만들었다.


"마력을 조립해야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복도에서 울린다. 그리고 복도 너머에는 비명소리, 총소리, 그리고 알수없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온다. 중무장한 병사들이 복도 너머로 달려가고 그 너머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복도너머에 나타난건, 사람 여러명을 뒤엉킨듯한 형상이였다. 아, 방금전에 매우 끔찍한 생각을 한것같다. 아마 그것의 모습은 팔,다리,머리가 달린 미트볼처럼 생겼을것이다. 미트볼이라니


이상황에서도 미트볼이나 생각하고 있다니. 진짜 사람은 맞는걸까?. 제네바는 생각한다. 이곳에는 저런 괴물들이 수도없이 널려있는데, 왜 아직도 적응할수 없는걸까


"아이야. 거기 가만히 서서 뭘 하고있는거니? "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 상황에서, 이 난장판인 복도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는 제네바와는 다르게, 늘 언제나 꺼림칙한 인자함을 보이는 사람. 그 얼굴은 마치 어렸을때 동화책에서 봐온, 그래. 부기맨의 모습과도 같았다. 창백한 얼굴이였다.


"dr.veritas, 여기서 뭐하시는거죠? "


"경어는 사용하지 말려무나. 너가 서있는곳이 내가 서있는곳보다 더 위란다. 하지만 청소부야. 부디 너를 한명의 아이 대하듯이 부르게 해주렴"


늘 그렇듯이, 이해못할 말만 한다. 제네바에게는 간단하다. 일단 나의 일을 하는것. 녀석의 크기는 복도를 틀어막을정도로 크다.


"뒤로 물러서 특전부. 이 괴물은 제네바가 상대한다. 알고있는건 모두 말해줘"


"허, 보안부 요원이 왔군. 저 괴물새끼한테는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아. 재생력이 터무니없어서 총알을 맞아도 곧장 회복하더군. "


그는, 특전부의 요원은 팔 한쪽이 없는상태다. 녀석이 먹어치운건가?. 그러고보니 녀석한테 죽은 시체들도 모두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재생능력을 가지고있어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 괴물한테는 그 어떤 이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은 내구성은 높되, 생체물질을 흡수해서 재생력으로 전환한다. 제네바는 그렇게 가설을 내린다. "


"..흥미롭구나. 다른이들을 먹어치워야지 유지되는 영속성이라니. "


"컼.. 닥터 베리타스... 어서 대피하십시오. 저 괴물은 보안부 요원이 맞을겁니다"


"잘 모르겠구나. 난 이 상황이 너무 흥미롭단다. "


베리타스는 손을 하늘높이 들었다. 손가락에서 은색 선들이 뻗어나왔다.


"아이야. 저것을 '연구'하는것을 도와줄수 있겠니? "


"지원군이 오기전까지. 대신 제네바의 명령을 따를것"


"너가 하려는것을 행하려무나"







"좋아. 훈련은 여기까지다. 잠시 쉬는게 좋겠군"


백색 공간 주변이 크게 일그러졌다. 불안정한 마력 조합으로 인해 생겨난 피해들이였다.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죠. 정신이니 어쩌니, 거기다가 감정도 고조시켜야된다니. 원래 이렇게 어려운거였나요? "


"그래도 빨리 익히는거라네. 마법인이 아닌 종족이라면 너보다는 늦게 걸렸을텐데. 마력계통내에 마력이 많아서인가... "


그때, 갑자기 통화음이 들렸다. 소리의 근원은 사이키의 로브 주머니에 있었다.


"뭐야. 전화기도 있어요!? "


"대체 우릴 뭘로 보는건가?. 우린 원시인이 아니라네. 잠깐만 기다려주게"


사이키는 전화기를 귀에 대며 구석으로 걸어갔다.


"네. 대마법사 사이키. 현재 차원도서관에 있습니다. 호라이즌 연구소에서는 무슨일로 전화를.. "


그리고


"..뭐라고요? "


그 전화가 내 첫 실전의 원인이 될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