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많은 문학 작품이나 전설에선, 사후세계와 현재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강'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이곳 사후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단강, 삼도천, 스틱스, 이름만 쓸데없이 많지만 모두 똑같은 이 강을 건너면 죽은 영혼들은 저승문에 도달한다.


그럼 여기서 질문. 이 강은 어떻게 건널까. 수영해서? 당연히 아니다. 그럼 다리를 건너서? 반대편까지 잇는 다리가 없다. 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배를 타고 건너는것이다. 


나는 어렸을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자주 본 적 있었고, 그래서 저승으로 가는 배의 뱃사공의 이름이 카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가 카론 맞지? 그 신화에 나오는."


그리고 내 눈 앞에 서있는 이번 퀘스트 의뢰자 카론의 모습은 만화에서 나오는 모습과는 현저히 달랐다.


"그럼 도대체 뭘 기대하신 건가요?"


우선, 카론의 모습은 만화나 삽화같은데 나오는 웃통을 까고있는 몸 좋은 아저씨, 혹은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음침한 사람이 아니라 새하얀 정모와 검정색 제복, 선글라스를 끼고 쿨해 보이는 자세와 함께 입에 시가를 물고있는 노인이었다. 


심지어 저 선글라스 평범한 선글라스도 아니라 인터넷에서 주문해야 살 수 있는 8비트 선글라스다. 도대체 저승에서 저런거는 어떻게 구한걸까.


"그리고 저게 저승으로 가는 배라고?"


카론의 뒤에는 신화 속에서 나오는 노를 저어 가는 나룻배가 아닌 웬 커다란 페리 한대가 서있었다. 카론은 당황하는 내 옆에 서 어깨를 몇차례 두들기며 말했다.


"설마 내가 그 많은 영혼들을 일일히 나룻배로 실어나를거라고 생각했나? 시간이 없어. 그만 꾸물거리고 어서 타게나."


나와 타테냐는 카론을 따라 저승으로 가는 페리에 올라탔다. 페리의 입구는 제일 먼저 식당과 이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식당은 먼저 페리에 타있던 영혼들로 꽉 차있었고 그 위에서 천장에 놓인 샹들리에가 흔들리며 빛나고 있었다. 도대체 저승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길래 식당칸 까지 있는걸까.


"7시간. 참고로 배가 느려서 7시간이 걸리는건 아니야."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가는 배편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따라서 삼도천의 강폭은 100km가 넘는다는 소리다.


"아니 잠깐만, 그럼 어떻게 저승문에서 강 너머가 보이는거야? 내가 직접 봤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강이 100km나 될 리가 없다. 사실 현실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특이점 같은 저승에서 이런걸 따지는게 그리 큰 의미가 없긴 하다.


"사실 강 자체는 한강보다 더 좁네. 그래서 배차간격은 10분도 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이 강을 건너게 된다면 강의 강폭이 10배로 늘어나게 된다네."


카론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새 나와 타테냐는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 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퀘스트 내용은 이미 알고 있겠지. 그냥 홀 서빙좀 도와주고 심부름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야. 자네도 돈 벌어봐서 알거 아닌가? 하루 일해서 200 받는거 쉽지 않아."


그래. 이번 일도 단순한 알바다. 그리고 저번 퀘스트 또한 단순한 알바였다. 근데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 왠 싸이코 하나가 폭탄을 차고 쳐들어와 깽판을 쳤었지. 게다가 이번에 일하는 공간이 하필이면 또 배야. 나 배에 트라우마 있다고.


"타테냐. 우리 또 무슨 일 생기는거 아니겠지?"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들어 옆에 있던 타테냐에게 괜히 말을 걸었다. 


"그런 말을 하니까 일이 생기는 거에요. 이제 빨리 내려가서 일이나 하시죠?"


나는 타테냐의 말에 수긍해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퀘스트를 끝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다."


나는 난장판이 되어가는 주방을 바라보며 한숨쉬었다.


"야 거기 너! 멍때리지 말고 빨리 이거 14번 테이블로 서빙이나 해!"


주방 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바로 '거기 멍때리고있는 놈' 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 예!"


나는 급히 접시를 들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수없이 많은 인파를 뚫고 몇번이나 넘어질뻔한 위기를 겪은 후 나는 만신창이가 된 채로 음식을 서빙했다. 이런 퀘스트가 별 한개 짜리라고?


"타테냐... 여기는 좀 쉬운 퀘스트가 있긴 한거야? 별 한개 짜리들이 이렇게 어려울 수 있..."


너무 힘들었던 나는 근처에서 가만히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타테냐를 붙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하소연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다시 한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돈 버는게 어디 쉬운줄 알아요? 하긴 맨날 남들 돈 빼앗고만 살았으니 이런것도 어렵겠죠."


바쁘게 주방으로 뛰어가느라 타테냐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마지막에 말투를 보아하니 얼추 예상이 된다. 진실이라서 반박 못하는게 더욱 억울하다.


주방으로 달려가던 와중 비어버린 테이블을 발견한 나는 더러운 접시들을 모은 뒤 테이블을 깨끗이 비웠다. 


"9번 테이블에 맥주 한병. 차가운걸로 가져온다 실시!"


일단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접시들을 대충 주방 안으로 던져넣은 뒤 냉장고에서 하○네켄 한병을 꺼내 9번 테이블로 달려갔다.


뒤에서 설거지거리를 이따구로 던져대면 어떡하냐며 욕설과 함께 후라이팬을 날라왔지만 나는 가볍게 피한 뒤 9번 테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9번 테이블이 여기였지?"


만약 이게 현실에서 하는 알바였다면 나는 10분만에 짤리고 접시값을 물어내야 했겠지만 여긴 저승이다. 저승표 접시는 잘 안깨지는데다 어차피 나 여기서 하루 일할꺼라서 옆에서 지랄을 하든 말든 상관 안할꺼다.


참고로, 여기서 일하는 승조원들은 전부 강 근처에서 집짓고 살던 판자촌 영혼들이다. 이들은 생전에 그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고 기회주의적으로 살아 그 죄업으로 천국, 저승, 지옥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신세였다. 마침 승조원이 필요했던 카론이 이들을 승조원으로 쓰기 시작한것이다.


"주문하신 맥주 나왔습니다!"


나는 재빨리 새하얀 테이블보가 놓여진 테이블 위에 맥주를 놓고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려 했다.


"잠깐."


그러나 테이블에서 단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내가 원했던것은 기○스였어. 하○네켄 말고! 지금 당장 10초 안에 바꿔와! 바꿔오라고오!"


19번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저승사자 같은데 대체 왜 이런식으로 깽판을 쳐대는걸까. 무슨 애도 아니고 바닥에 누워서 징징대고 있다고!


"씨발... 바꿔오겠습니다. 손님."


나는 저 얼굴에 맥주병을 던져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며 냉장고로 향했다. 진짜 저거 죽일까.


"죽은 사람만 저승사자 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못죽여요. 알바 하다 보면 저런 놈들보다 더 높은 경지의 진상짓을 볼 수 있거든요? 저 정도는 매우 정상적인 축에 속해요."


그 와중에 타테냐가 내 생각에 토를 달았다. 옷으로 아주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데 저 꼬라지가 정상이야???


"그래. 원하신다면, 해줘야지."


나는 한숨과 함께 하○네켄을 도로 집어넣고 기○스를 꺼내들었다. 처음에 브랜드를 물어보지 않은 내가 잘못한거겠지.


"주문하신 기○스 나왔..." 


내가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놓자 마자 저승사자가 1초동안 손등을 대보더니 맥주를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차갑지 않아... 차갑지 않다고! 내게 이런 뜨뜻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게 할 샘이었나? 다시 가져와. 더 차가운걸로, 다시 가져오란 말이야!"


꼭 저런식으로 두번씩 말해야 하는걸까. 솔직히 계속해서 오바를 떨어대니 웃기기는 하다.


"이거 냉장고에 적어도 1시간은 있었거든요? 그럼 아주 꽝꽝 올려놓은걸 드릴까?"


사람마다 차갑다의 기준은 다르니까 아주 차갑게 줘야겠다. 그래야 지랄 못하지.


"아니야... 아니야...! 정확히 1시간 46분 25.3 초 동안 냉장고 두번째 칸에서 차갑게 만들어온 맥주를 가져와. 그것만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어. 빨리!"


아무래도 내가 만난건 저승사자가 아니라 정신병자인 모양이다. 저런건 진짜 광기라고.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그때, 느닷없이 페리 내부에 진동과 함께 쇠가 끌리는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무슨 일이야!", "으아 내 귀!"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자, 사방에서 비명과 놀람이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그때, 머릿속에서 베드로의 음성이 울려퍼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기훈. 또 네놈이냐. 넌 안 끼는곳이 없군.'


"에이씨...!" 


나는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무작정 윗층 조타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진짜 무슨 일 나는거 아니겠지?


"아니 야... 야! 내 맥주는!"


뒤에서 아까 그 저승사자가 황급히 검을 뽑아들고 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저놈은 또 왜 온거야?


"니가 알아서 쳐먹어!"


나는 저승사자에게 일갈한 뒤 겨우 선장실 앞까지 도달했다. 급하게 달려온 내가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타테냐가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아무래도 이거, 배가 어딘가 부딪히거나 한것 같아요. 일단 카론님께 자초지정을 설명듣죠."


타테냐의 말을 들은 나는 문을 열고 조타실 내부로 들어갔다. 왜 인지는 몰라도 잠겨있지는 않았다.


"선장님! 도대체 이게 뭔 일이에요?"


조타실 내부는 커다란 유리가 둘러싸고 있었으며 수십대의 컴퓨터가 여러가지 정보를 띄우고 있었다. 또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타륜과 그 앞에 서있는 조타수가 보였다. 내가 배는 많이 타봤지만 이런곳에 들어오는건 처음이다.


"맞아! 이거 때문에 내 맥주를 못먹게 됐다고!"


어느새 따라온 저승사자가 나와 같이 조타실로 들어오며 항의했다. 그 와중에도 맥주를 찾는거 보면 정전도 신경쓰지 않을 만큼 어지간히 맥주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수천년이 넘는 엄청난 세월 동안 이 강에서 배를 몰아왔네. 그렇기에 이 배는 나와 한몸과도 같지."


선글라스를 벗은, 애꾸눈의 카론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입에는 여전히 시가 한대가 물려있었다

 

"아무래도 배의 키에 무언가 들이받힌 모양이야. 그 덕에 배의 키가 이상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버렸지. 지금 이 상황에선 우리는 그저 앉은뱅이일 뿐이야."


그의 말을 입증하듯 타륜을 잡은 조타수가 그의 옆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카론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방법이 있네. 하나는 물 속에 들어가 직접 키를 수리하는 방법, 또 하나는 시동을 전부 끄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걸세."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시가를 툭툭 털었다. 새빨간 불똥이 바닥에 튀어 점차 검은색으로 식어갔다.


"두 방법에는 장단점이 따로 있지. 첫번째 방법은 제일 빠르지만 물 속이 너무 위험한데다 잘못 건드리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네."


그는 펼친 V자 손가락 중 하나를 접었다. 참고로 중지를 접은거다. 검지가 아니라.


"두번째 방법은 물 속에 들어가는것 보다 전원이 구조될 확률이 더 커. 하지만 시간이 오래걸리는건 둘째치고 물 속에 있는 괴물들이 배를 공격할 수도 있네."


물 속에 괴물이 있다고? 무슨 메갈로돈 이라도 튀어나오나?


"당연히 물 안으로 들어가야죠! 위험을 배 안으로 들여놓을 순 없어요!"


그때 옆에서 저승사자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저 망할...!


"미쳤어? 괴물이 산다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라고? 난 못해!"


애초에 나 여기 홀 서빙 알바 하려고 온거다. 삼도천 입수가 아니라.


"그럼 내가 저기 들어가서 키 고치고 올게. 끝나고 올 테니까 너는 내가 말한 맥주나 준비해 와!"


그놈의 맥주는 진짜.


"미치겠네 이거. 어떡해요 선장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카론에게 애원하듯 물었고, 카론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신규 퀘스트! 배 고치기: 보수 800만원>


"아니 잠깐만 선장님!"


뭐야 저 신규 퀘스트. 아니 미친 이게 뭐냐고!


"자, 이제 저 친구와 함께 키 좀 수리해주게나. 아마 그리 어렵지는 않을거야."


이거 협박하는거 맞지? 나보고 삼도천에 입수하라고?



"야! 알바! 빨리 들어갈 준비나 해!"


눈을 떠보니 나는 어느새 저승사자와 함께 갑판 끄트머리에 서 입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허허허허허... 옘병.


"나도 사기훈 이라는 멀쩡한 이름 있거든? 그럼 니 이름은 사자냐? 어흐응 하는 사자?"


이거 조금 유치했나?


"정답이다. 나는 저승사자 김사자라고 한다. 생전 어머니께서 서울대공원 사자를 보고 지어주신 이름이지."


아니 잠깐만 이름이 진짜 사자라고? 이름 이런 식으로 지어도 되는거야? 그리고 그런 이름을 가진 놈이 저승사자라고?


"아, 그리고 저 기훈씨가 입수해있는 동안에는 안나올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그럼 ㅃㅇ~"


그 와중에 허공에서 떠있던 타테냐가 마치 날 약올리듯 말하며 사라졌다. 저 망할 천사!


"어쨌든, 빨리 들어가자고."


저승사자 김사자 (라임 지리네)가 먼저 물보라를 내며 물속에 뛰어들었다. 나도 잠시 주춤하다 엉겹결에 그를 따라 물 속으로 들어갔다.


'뭐야 이 사람들! 무슨 좀비 같아!'


물 속에 들어가자 마자 처음으로 보이는건 물고기가 아니라 회색빛 창백한 피부에 삐쩍 마른 사람이 허공을 휘저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아까 카론이 말한 괴물이 이 자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나?


'죄인들이야. 저승에서 추방 당하거나 배에서 낙오된 죄인들이지.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을꺼야.'


그때 어디선가에서 김사자의 목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분명히 내 눈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김사자는 분명 입을 굳게 닫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뚜렸하고 맑았다.


'몰랐어? 이곳에선 입을 열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말 할 수 있어. 꾸물대지 말고 얼른 움직이자고.'


김사자가 그의 검에서 나는 빛을 이용해 앞을 비추며 물길을 헤쳐나갔다. 저 검의 용도는 아마 후레시인 모양이다.


'그리고 숨 참을 필요도 없어. 숨 편하게 쉬어.'


역시 저승이라서 그런지 강 마저도 신기하다. 아무튼 그렇게 키를 향해 헤엄치던 나와 김사자는 마침내 배의 커다란 두 키를 발견했다. 


'이거 좀 처참하군.'


하지만 키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우선 키 두개중 하나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고 하나는 그 박살난 파편에 연결부가 맞아 완전히 꺾여버린 상태였다. 저게 왜 저 꼬라지가 난걸까.


'아무래도 저거 같은데?'


김사자가 내 의문에 손가락으로 가리켜 대신 답해주었다. 


'뭐야 저 괴물은!'


박살난 키 근처에는 온 몸이 검은 오오라로 뒤덮인 사람 형태의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근데 나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원귀야. 일단 원귀 상태에서 물에 빠진것 같거든? 물 속에서는 영혼이 원귀가 되지 못해.'


그렇다. 지난 퀘스트 때 폭탄을 두르고 온 남자가 미카엘에게 썰리기 전에 저런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원귀가 저 커다란 키를 박살낼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면 미카엘이 원귀가 되기 전에 처치한게 이해가 된다.


'저걸 먼저 처치해야 하는것 같은데.'


일단 키 근처에서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저 원귀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 저걸 무슨 수로 없앤담.


'내게 좋은 수가 하나 있거든? 잠깐 기다려봐.'


그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세게 붙잡았다. 그러자 그가 쥔 검에 새겨진 한자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순간 김사자가 사라져있었다.


'뭐야?'


김사자는 어느새 원귀 근처에 도달해 원귀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저승사자라 그런지 물 속에서도 잘만 싸운다.


나는 잠시 김사자와 원귀의 싸움을 넠놓고 바라보다 물 위에 떠다니는 죄인들에게 붙잡힐 뻔 했다. 대충 떨쳐낸 뒤 나는 다시한번 전투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저게 아까 하○네켄 들고왔다고 떼쓰던 그 저승사자랑 동일인물이 맞는거지?


'일부러 막기만 하고 있어. 대체 뭘 하려는 생각이야?'


김사자는 원귀를 상대로 열심히 방어와 회피만 반복하며 제대로 갖고 놀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던 그때, 김사자가 순간 박살난 키가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두번째 키 근처로 이동했다.


'설마...!'


김사자에게 계속 농락당한 원귀가 제대로 빡쳤던 모양인지 풀 파워로 김사자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김사자가 가볍게 피하자 박살난 키 조각 원귀에게 맞아 빠져버리며 키가 다시 돌아갔다.


'야! 빨리 위로 올라와!'


순간 김사자가 어느새 내 앞에서 내 손을 붙잡았다. 아니 이 저승사자는 무슨 텔레포트라도 쓰는건가?


'알았...'


김사자는 내 팔을 잡아끌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밑에서 검은 원귀가 나와 김사자를 추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으어어어!"


나와 김사자는 물에서 튀어올라 마침내 물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문제는 너무 높이 올라온 모양인지 공중에 떠있다는거고.


"야 잠ㄲ...!"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착지했지만 결코 스무스한 착지는 아니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다잡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 쟤내들이 대체 왜 배에 올라타 있는거야?"


충격적이게도, 방금 전 까지 물 속에서 떠다니던 죄인들이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배에 올라타 영혼들을 위협하고 있는것 같아. 좀 위험한 상황인데?"


다행히 이번에는 맥주 얘기는 안꺼낸다.


"물론 내 맥주도 위험하지. 그 놈들이 냉장고는 안 건드렸기를 바래야겠는데."


아까 했던 말 취소. 또 맥주야? 도대체 그 맥주가 뭐라고.


"그럼 빨리 들어가서 소탕해야 하는거 아냐?"


그렇게 말하는 내 손에는 중전차를 부수고 외계인 골통을 박살내는 전설의 무기, 빠루가 들려있었다. 이것만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글쎄. 이 배에는 나 말고도 다른 저승사자들이 타고 있어. 아마 영혼들을 윗층으로 대피시키고 죄인들과 싸우고 있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검을 꽉 쥐었다.


"사기훈. 너는 카론에게 키 다 고쳐졌으니 빨리 출항하라고 알려."


그때 등 뒤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굉음을 내며 착지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걸 잊고 있었다.


"물속에서는 치명타를 내기가 어려워. 그래서 여기서 잡아야 하거든? 나 저것 좀 처리하고 올게."


김사자는 말이 끝나자 마자 원귀를 향해 돌진했고 원귀의 포효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일단 빨리 가야 해!"


나는 고개를 휘젓고 식당 구역으로 들어섰다. 내가 열심히 서빙하던 식당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사방 팔방의 창문이 다 깨져있는걸 보아 죄인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빨리, 빨리!"


나는 두 계단씩 건너 뛰어가며 급히 계단을 올랐다. 


"잠깐! 거기 누구야!"


그리고 3층 입구 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저승사자들이 이미 뜯어져있는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조잡한 무기를 들고있는 영혼들이 보였다.


"그... 저기 김사자랑 같이 배 고치러 간 사람인데요 지금 김사자가 원귀랑 싸우고 있어요. 도와줄 사람 없어요?"


저승사자의 주 업무중 하나가 원귀나 요물, 요괴 퇴치이기는 하나 그걸 혼자서 수행하는건 필시 힘들 것이다. 지원군이 필요하다.


"원귀라고? 그 놈이 여기까지 오면 저승으로 갈 영혼들이 위험해지는건 불보듯 뻔해. 일단 내가 도와주러 갈께."


다행히도 권총을 든 여성 저승사자가 도와주겠다며 뛰쳐나갔다. 나는 저승사자들을 지나쳐 조타실로 향했다.


"선장... 선장님!"


나는 괴성을 지르며 조타실로 들어와 쓰러졌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숨이 턱턱 막힌다.


"키... 수리했어요. 지금 출발해야해요."


쓰러져 헐떡대고있는 나를 카론이 부축했다. 이 양반 은근 힘 좋네.


"모두 시동 키고 준비 해! 다시 출항한다!"


그의 말을 기점으로 승조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배의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조타수가 기뻐하며 외쳤다.


"키 다시 움직여요!"


나는 잠시 카론의 부축을 받으며 쉬다가 불현듯 김사자가 떠올라 다시한번 조타실에서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기훈 씨! 지금 어디 가시는거죠?"


급히 계단을 내려가던 와중 타테냐가 다시 나타나 말했다.


"그 저승사자 도와주러!"


나는 그렇게 외치며 식당으로 내려왔다. 위험하다며 말리던 저승사자들도 뿌리치며 무작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갑판으로 향했다.


"어차피 지금 그쪽으로 가 봤자 못 도와줘요!"


내가 갑판에 도착 할 즈음 전투는 슬슬 막바지로 가는 듯 했다. 원귀의 모습은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김사자 또한 상처를 많이 입은 모양이었다. 얼른 도와야 한다.


"젠장! 김사ㅈ...!"


내가 갑판으로 달려가려던 그때, 옆에서 다가온 죄인이 날 덮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런... 미친!"


나는 팔을 물어뜯으려 드는 죄인을 걷어찬 뒤 있는 힘껏 빠루를 휘둘렀다. 부서지는 죄인의 머리. 나는 다시 한번 갑판으로 향했다.


"아니 방해 좀 하지 말라고!"


하지만 죄인이 내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더 이상 가지 못했다. 진짜 마지막까지 방해하겠다 이거야?


"안돼...!"


그리고 전투는 어느새 끝나기 직전이었다. 김사자는 절뚝거리면서도 검을 치켜들었고, 원귀도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간, 번쩍하는 빛과 함께 김사자의 검이 원귀의 몸통을 꿰뚫었다. 김사자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다.


"젠장..."


그러나 원귀의 팔도 그의 심장을 쥐고 있었다. 나는 빠루를 후려쳐 죄인의 팔을 박살내고 갑판으로 달려갔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권총을 든 여성 저승사자가 크게 뜬 눈으로 김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꽤나 격하게 싸운 모양인지 보이는 상처가 상당히 많았다.


"야!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빨리 응급처치 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외치며 급히 김사자의 몸을 살폈지만 김사자의 몸을 꿰뚫은 원귀의 팔은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여성 저승사자의 말이 끝나자 마자 기괴한 소리를 내던 원귀가 점차 소멸하더니 먼지로 흩어저버렸다. 김사자의 몸을 꿰뚫은 팔 또한 없어젔지만 그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저승사자가... 또... 죽게되다니."


원귀의 팔이 사라지자 그의 입에서 힘겹게 몇마디가 새어나왔다. 아까 소멸한 원귀 처럼 몸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맥주도 못 마셔보고..."


진짜 죽어가면서도 맥주 타령을 하는걸 보면 어지간히 좋아하는게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야 김사자! 너 괜찮아?"


어느새 계단을 지키던 저승사자들이 전부 몰려나왔다. 김사자는 그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사기훈? 너... 카론님께 말했지? 그리고... 다들 왜 여기까지 왔어... 사람 부끄럽게."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김사자가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 한마디를 남겼다.


"그럼... 됐어. 나 이만 가야해. 안녕."


김사자가 말을 끝내자 그의 신체가 점차 소멸해 먼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 끝 부터 시작해 그의 팔, 다리, 몸통, 마지막으로 검을 쥔 그의 손이 먼지로 변해 흩날렸다.


"상황 종료."


여성 저승사자가 슬픈 음색으로 나직이 읊었다. 한동안 갑판에 모인 모든 이가 아무 말도 없었다.



"<홀 서빙 임무 완료. 보상 200만원이 벌금에서 공제됨.> <배 고치기 임무 완료. 보상 800만원이 벌금에서 공제됨.>"


페리에서 내려 저승 땅을 밟자 마자 허공에 글씨가 띄워졌다. 이번 퀘스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추가로 800만원 까지 받았다.


 "별로 기뻐보이는 표정이 아니네요. 하긴 그 저승사자가 죽은것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겠죠."


글씨가 사라지며 타테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주변에는 영혼들이 저승 입국심사를 하러 검문소로 향하고 있었고 내 손에는 김사자의 검이 들려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김사자의 검을 보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내가 잠시 잊고있었던 무언가.


"잠깐만. 나 저 배에 좀 가야겠어."


나는 방향을 돌려 배를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그러자 타테냐가 당황하며 날아와 따라붙었다.


"잠깐만요. 대체 뭐 하려는..."


순식간에 계단을 올라 배 위에 올라탄 나는 다시 갑판으로 향했다. 아직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갑판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대체 뭘 잊었다는 거에요?"


타테냐가 내게 따지듯 물었으나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검을 갑판 위에 놔두었다.


"맥주."


나는 난장판이 되어 승조원들이 치우고 있는 식당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여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난장판이다.


"..."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승조원들이 이곳은 청소하기 전이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맥주를 든 나는 다시 갑판으로 돌아와 김사자의 검 앞에서 맥주를 땄다. 차가운 맥주에서 나오는 김이 마치 향 연기 마냥 피어올랐다.


"그 저승사자에게 주실 생각인가요?"


나는 대답 대신 무릎을 꿇고 검 앞에 맥주를 놓았다. 그리고 내가 아직 끝내지 못한 퀘스트 하나를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퀘스트 의뢰자에게 보고했다. 목소리가 괜스레 떨려왔다.


"여기, 주문하신 맥주 나왔습니다."


사기타테 17화 END



분량조절 실패로 에피소드 하나가 1만자가 넘어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