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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자.
리퀘스트 있길래 멋대로 써봄.
원래 우리 채널에선 늒비 신고식으로 글 하나 싸지르는 게 예의라서 대충 끼적여 봅니다.
2편은 반응 좋으면 써보겠음.

창작문학채널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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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구나."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친구였던... 아니, 친구인 자를 안은 손에는 그리움이 배여있었다.



"행방불명된 지 오래라 다들 죽은 거로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 모습으론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거든."



여자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자고 일어났더니 여자가 된다는 게 어디 쉽게 믿길 건 아니잖아.

게다가 나이까지 어려졌고.

그래도 이젠..."



그 말을 듣고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전까지의 침착함을 유지하던 표정이 깨지며 울음보가 터졌다.


남자가 안고 있는 상태로 여자를 토닥여주었다.



"나... 나... 가족들한테도 지금까지 한번도 안 맞아봤는데..."


"그래."


"형한테 미친 놈이라고 뺨도 맞고...

아빠는 쫓아내고... 막... 막..."


"그래그래."


"도와줄 사람도 없고... 찜질방은 돈이 떨어지고..."


"우리 집에서 이제 편하게 지내도 되니까."


"흑... 시우야... 고마... 고마워 시우야..."



여자의 작은 몸이 남자의 품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겨울이었다.



*



남자는, '시우' 는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돕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언제부턴가 시우 자신이 도와주던 여자는, '시아' 는

자신을 부려먹는 행세를 하게 되었다.



"아니, 부려먹는다는 표현은 틀리나... 그냥 괴롭히는 샌드백 취급이니까."



시우에게 시아는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자신을 찾아온 존재 같았다.


시우의 귀에 시아가 자신을 괴롭히던 말들이 떠올랐다.


- 또 쪼였다고? 집에서 해야된다고? 너가 그러니까 안된다는 거지. 뭐라도 제대로 좀 해봐. 허접해 가지고.

- 밥 하나 제대로 못해? 군대갔다와서 자취하지 않았었냐? 근데 간도 제대로 못 맞추냐? 허접해 빠져선.

- 더럽게 사네 진짜. 옷도 그지도 아니고 그게 뭐냐? 방에서 냄새난다.


시우는 다시 한번 눈앞을 바라보았다.


굵은 갈색의 밧줄.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방식이다.


시우는 심호흡을 한번 하곤 밧줄을 목에 걸었다.



"시아... 썩을 ㄴ... 벼락이나 맞고 뒤.... 컥! 커헉!"



시우의 눈 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이제 진짜 죽나보다.'


"... 야! 시우!"


'?'



흐릿해진 그의 귀에 시아의 목소리가 닿았다.



"야! 이거 뭐야! 야! 잠깐 장 좀 봐왔더니 야! 야! 내려와! 야!"


'난 죽을 때까지 네 얼굴을 봐야 하는구나.'


"야! 김시우!"


"시아... 야."



이미 피가 머리에 쏠려서, 눈이 충혈된 상태로 그가 말을 토했다.



"가... 가까이..."


"야! 이게 무슨 일이야! 너 나랑 얘기 좀 해! 빨리 내려와서..."


'퉤'


"내려... 와서...?"



시우의 침이 시아의 얼굴을 더럽혔다.


시아의 머릿 속이 침으로 헝클어졌다.


시아가 충격먹은 얼굴로 시우를 올려봤다.



"내가... 누구 때문에... 목을 다는데... 좀 ㄲ지면... 안 되겠냐..."


"누구... 때문이라니...? 아, 설마 부장님 때문에 그래? 그럼 그런 회사는 관두자? 응? 죽을 정도로 괴로운 회사라니, 말도..."



시아의 동공이 무너지고 있었다.


떨려오는 손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 현실은 가혹한 법이다.


시우는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원망을 담아서 시아를 노려보았다.



"너... ㅅㅂ아..."


"... 응?"


"너... 너... 때문... 못 살겠... 다... 고..."


"ㄴ, 나...? 때문...?"


"그래... 개... 새..."



이윽고 시우의 몸이 늘어졌다.


시아는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시우가 침을 뱉었던, 더러워진 얼굴이었다.


"나 때문...? 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시우야... 우리 친구잖아. 아, 회사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래...? 괜찮아, 오늘 너가 좋아하는 꽁치 무조림 해줄테니까 먹고 기분 풀어... 시우야... 시우야...?"


"..."


"왜 대답이 없어 시우야...? 빨리 내려와... 그런 무서운 건 치우고, 응? 시우야?"



시우의 몸을 밧줄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시아.


그러나 방금 전에도 시도해 봤듯, 시아의 작은 키와 가녀린 팔로 시우의 몸은 들 수 없었다.



"시... 시우, 시우야... 시우... 야, 나... 내가... 난..."



시아의 심박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숨도 가빠지고 있었다.



"헉, 시, 시우야 내가... 내가 잘못했어... 끅... 난 그냥... 널... 흑... 흐흑..."


'째깍'


"?"


'째깍째깍째깍째깍쨲짞쨲쨰까ㅉㄲ깧쨸'

'삑삑ㅃ끼ㅃㄲㅃㄲ비비가'

'댕댕댕대앧애ㅐㅇ대'


"시... 시계소리...?"



시우의 죽음에 절망하던 시아의 귀에 돌연 수백개의 시곗바늘소리가 꽂혔다.


종소리와 알람소리도 울렸다.


점을 이으면 선이 되듯, 시곗바늘소리와 종소리, 알람소리는 서로 어우러져 전혀 다른 소리가 돼갔고,


그 불협화음은, 잘못 만든 꿀꿀이죽처럼 기분나쁘게 뒤섞인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아악! 머리! 머리가!"



시아가 두통에 몸부림쳤다.


머리를 싸매고 버텨보던 것도 잠시, 시아는 정신을 잃어갔다.


시끄러운 시계바늘의 소리의 휩싸여서.


그 불쾌한 합주곡에 휩싸여서.



*



"꺄악!"


"뭐야 왜 그래?"



눈을 떠보니 낯익은 천장이다.



"괜찮아? 너 방금 갑자기 쓰러졌어."



시우다. 내 사랑 시우다.


시우는 방금 전에 죽었을 텐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꿈? 그건 꿈이었나?



"뭐야... 이건?"


"몰라. 네가 방금 들고 있던 건데."



손에는 낯선 천쪼가리가...


잠깐, 이거 낯설지가 않다. 이건 시우의 바짓가랑이 같은데?


이거 방금 전에 시우가 목을 달았을 때 당겼던 거 아니야?


그럼 아까 건 꿈이 아니고...


뭐지? 미래?


난... 지금 여긴...



"시우야, 오늘이 몇 월 며칠이야?"


"어? 괜찮아. 아직 하루 안 지났어."



시우가 핸드폰으로 날짜를 보여주었다.


확실하다. 난 과거로 돌아온 거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시... 시우야..."


"아, 뭐야? 왜 갑자기 그래?"


"시우야... 내가 잘못했어 시우야... 흐윽... 나 앞으로... 앞으로 잘할께...! 내가, 나... 흐윽."



시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토닥여주었다.


시우 품 안은 따뜻했다.



*



"시우야 맛있어?"



앞치마를 두른 시아가 턱을 괴고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아의 행복한 얼굴에는 애정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시우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밥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시아야."


"왜애~?"


"그러지 마."


"뭐가아~?"



시우가 시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아의 눈에 비친 시우는 당황스러움과 께름칙함에 절어있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래? 며칠 전부터 너 이상해."


"무슨 바람이라니?"


"몰라서 물어? 요즘에 너가 날 대하는 거 보면!

... 아니면, 이거 또 새로운 방법으로 괴롭히는 거야 설마?"


"뭐...? 무슨 말이야 시우야..."


"네가 나한테 해온 게 있잖아. 솔직히 당황스러워 시아야."


"내, 내가 뭐, 뭘 했다고 그래 시우야..."



시아의 숨이 또 가빠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꼭지가 돈 시우의 눈에 그런 것은 비치지 않았다.



"뭘 했냐니!

너 내가 회사에서 짤릴 뻔 했을 때, 잔업을 집까지 가져왔을 때 뭐라고 했냐? 평소에 제대로 좀 하라고 하지 않았냐?"


"그건, 나도 뭐라도, 도, 도와주려..."


"독감 걸렸을 때, 아픈 몸 이끌고 네 밥 해서 주니까 뭐라고 했냐? 간도 못 맞추는 아다쉒이라고 안 했냐?"


"그... 그건 밥은 그냥 내가 해줄 테니까 편히 쉬고 있으라고..."


"며칠 야근하다 온 거 보곤 뭐라 했냐? 냄새난다고 안 했냐?"


"그건... 물 데워놨으니까 빨리 들어가라고 한... 건데..."


"야! 이시아!"


'움찔'



시아의 작은 몸이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시우는 잠시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하... 시아야, 그냥 편히 대하란 거야."


"그... 그치만... 나..."


"네가 그럴 수록 더 부담된다고. 낯설고. 알아?"


"시우야 그치만..."


"그냥 하던 대로 편히 해. 무슨 모르는 사람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긴장되니까."



모르는 사람.


조금 따뜻하게 해주는 정도로

시우의 머릿속에서 시아는 '모르는 사람' 이 되어버렸다.


하던 대로.


하던 대로 차갑게 굴지 않는다고

시우의 머릿속에서 시아는 '모르는 사람' 이 되어버렸다.


그 의미를 깨달은 시아가

문득 두 손에 얼굴을 감추었다.



"흑... 흐윽... 흐어어앙!"



감춰진 얼굴은 비명을 질렀다.


가슴의 상처에 대한 비명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바로 방금 전에 입은 상처에 대한 비명.


시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