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저기 어딘가에 썼던 설정의 부활

이걸로 뭐 하나 쓸 예정


1차대전과 대공황: https://arca.live/b/writingnovel/4126201


* 이 대체역사로 인해 뒤바뀐 나라의 운명/이념/인물 등은 글쓴이의 견해와 상관이 없습니다.

* 이 글은 대체역사로, "만약에" 로 시작하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현실과 혼동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대공황 직후 1930년의 세계


  1923년에서 7년이 흐르는 동안 변화가 여럿 생겨났다.

  관동 대지진은 그대로 일어났다. 또한 일본은 쌀폭동과 대지진으로 얻어낸 중국 식민지와 오세아니아 식민지에 20년대 전반부에는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없었다. 이후 20년대 후반부에 산미증식계획의 시작을 필두로 하여 개발이 시작되나 얻어낸 식민지 자체의 크기와 접근성 문제로 이익을 얻어내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파시즘 정당인 제국당이 세워졌으며 리옹 맥주홀 폭동을 1923년 나폴레옹 3세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나폴레옹 5세가 일으켰다 실패했다.

  혼란스러운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아타튀르크가 수습하여 이집트와 아랍반도의 손실이 일어났으나 1923년 무사히 터키 공화국 체제가 들어서게 만들었다. 공화국이 되었으나 계속해서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한다.

  중국은 군벌들이 일어섰으나, 일단은 중화민국이었다.  

  덴마크는 1925년 계속해서 적자를 내는 덴마크령 카리브제도를 미국에게 매각한다.

  적백내전이 완전히 종결됨에 따라 소련은 중앙아시아 토후국을 완전히 합병한다.

  린드버그는 그대로 대서양을 횡단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날아서 파리가 아닌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한다.

  트로츠키는 소련을 떠났고, 승전국이던 터키는 당당하게 그를 받아들인다.

  알바니아의 대통령은 국왕으로 여전히 즉위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대로 치뤄졌다.

  히틀러의 일기 <참호에서의 1000일>은 베스트셀러로 팔리며,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느낀 각 열강들은 1928년 켈로그 브리앙 조약을 통해 전쟁보다 평화적 수단을 쓰기로 한다. 독일이 승전국 중에서 가장 힘이 셌으며, 미국은 고립주의를 아직까지는 고수하고 있었기에 독일어를 기준으로 하여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때 조약의 내용은 당대의 뛰어난 독일어 문장가였던 괴벨스 박사가 작성했다.


  그러나 이 조약으로 생겨난 낭만적 분위기는 대공황이 시작되며 박살난다.

  얻어낸 식민지로 투자가 늘어난 독일이 세계 경제의 중심을 잡게 되었으며,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원과 토지에 대한 권리를 싼 값에 낙찰받고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은 한정되어있었고, 정부가 주장하는 고립주의와 달리 이 좋은 기회를 미국의 자본가들은 놓치지 않았다. 또한 전쟁으로 성장한 독일 내 신흥세력과 그 외 승전국의 신흥세력, 그리고 각 승전국들이 얻은 식민지에게 투자가 늘어났다. 특히 불가리아는 영토 크기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본토 크기의 배가 되는 식민지를 처음으로 거머쥐었기 때문에 투기성 투자가 심각하게 늘어났다. 또한 독일은 아프리카의 대부분과 곳곳의 도서지역을 획득했기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보였다. 전후복구를 위한 내부 투자보다도 수익성이 과대평가되었으며,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예상 수익금보다 더 높아지기 시작한 해외 식민지 투자금은 서서히 붕괴하다가 콩고의 고무 선물 상품 가격이 1929년 10월 22일 급락한다. 연쇄적으로 식민지 상품 가격이 붕괴하면서 식민지 개발과 관련된 회사 주가가 급락하고 2일 뒤 10월 24일 베를린 증권거래소를 시작으로 11월 4일 뉴욕 증권거래소까지 전세계의 주가가 급락한다. 대공황이 불어닥친 것이다.


  소련은 실제 역사대로 스탈린이 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지역은 독립해있기에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있지 않기 때문에 소련은 식량문제가 커졌으며, 무리해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개간하려고 시도하다 30년대 초에 중앙아시아 대기근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이후 스탈린은 예전 제정러시아 시절의 영토, 특히 우크라이나를 회복하여 각종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결론짓고, 남은 동유럽 평원과 중앙아시아 평원에 집단농장화를 계속 실시하고 중공업화를 가속한다.

  핀란드, 발트,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의 동맹국이 새로 독립시킨 국가는 러시아 제국 시절에 닦아놓은 기반도 전쟁으로 파괴되며 경제 기반이 잘 마련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대공황으로 피해를 본다. 하지만 이 지역을 소련에 대한 방파제로 쓰길 원했던 독일은 경제 회복을 도와주는 척이라도 하면서 계속해서 동맹국으로 붙잡아두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특히 흑토지대를 기반으로 한 식량 생산으로 가장 빠르게 벗어난다.

  독일은 국외 식민지 투자로 인해 붕괴한 상황을 직시하고 라인란트와 슐레지엔 지역의 공업지대를 추가로 개발하는 등의 국내 개발 노력과 싱가포르 등의 미리 개발된 식민지 도시를 기반으로 대공황 상태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여기 쓰일 원료는 식민지에서 싼 가격으로 수탈해와야 했기 때문에, 식민지 내 지지도는 바닥을 기었고, 군대를 자주 파병하게 된다. 그리하여 독일의 군축은 계속해서 미뤄진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오스트리아 합중국으로 각 민족의 자치를 주려던 계획을 시행하려고 노력하나 대공황 탓에 다시 한번 연기되게 된다. 새로 얻은 식민지를 묶어서 얻을 만한 충분한 경제력과 해군력이 없었기 때문에, 제국 내의 사실상 미개발지역이던 갈리치아와 트란실바니아를 새롭게 개발하고 체코 지역의 공업단지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하나 대공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각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나는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속국으로 두며 대공황 이후 사실상 수탈에 가까운 가격으로 물건을 사들였기에 특히 세르비아인이 다수인 지역의 반란이 잦아 군대를 파견한다.

  이탈리아는 새로 얻어낸 아프리카 식민지와 오세아니아 도서지역을 이용하기로 하며, 위임통치령이던 미얀마를 수탈하나 대공황 극복이 어려웠고, 크로아티아 지역 등을 추가로 얻어내지 못한 것에 따른 국민감정의 격화로 무솔리니가 집권하게 된다.

  터키의 아타튀르크 정권은 아라비아를 다시 점령해 아덴, 무스카트, 쿠웨이트, 카타르 지역 등 해안가 개발로 적은 돈이라도 얻으려 해보나 난항을 겪는다.

  불가리아는 승전국이지만 제일 크기가 작았으며, 얻은 식민지의 양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리아 식민제국이 되고 영토가 2배로 불어났음에도 상태가 좋지 않다. 세르비아인의 계속된 봉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인해 파산 직전의 상태가 된다.

   미국은 루즈벨트가 집권하고 뉴딜정책을 시행한다. 하지만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등 현실과 다른 점 때문에 대공황을 벗어나는 정도는 실제보다 적다.

  그리스와 루마니아는 갚아야 하는 배상금에 더해 그리스는 영토가 축소되었으며 영해가 심각하게 줄어들었고, 루마니아는 유전과 농경지 등을 차압당해 파산 상태에 몰린다.

  영국은 식민지를 대부분 잃었으며, 왕실이 캐나다로 망명가며 공화정으로 바뀐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 상황 탓에 극우, 극좌 정당이 의석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공산주의자나 전체주의자의 폭동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진 않고 불안정한 공화정이 지속된다.

  스페인은 공화국으로 전환되지 않고 계속해서 독일이 왕국을 지지하면서 왕국으로 남아있지만 내부적으로 대혼란이 계속된다. 

  일본은 승전국이며 마카오와 여러 식민지를 추가로 얻었기 때문에 다이쇼 로망이라고 불릴 황금기를 20년대 중후반에 맞이한다. 그러나 더 얻지 못한 식민지에 대한 열망과 대공황 이후 경제의 몰락의 이유로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1933년 열하사변을 일으키며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이후는 아시아편에서 자세히 다룬다.

  프랑스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철과 석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을 빼앗겼으며, 브르타뉴 지역이 떨어져 나가고 대부분의 식민지를 빼앗긴 탓에 국가적 자존심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막대한 배상금 지불도 어려운 시점에 동맹국은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한다. 대공황이 닥쳐오자 겨우 회복되던 경제 상태는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전체주의 세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중국은 중화민국 주도로 대강 통합이 되었으나, 공산주의자를 토벌하기 위해 계속해서 작전이 수행된다.


  나폴레옹 5세는 마침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1933년 프랑스 제 3제국을 선포하며 1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겨우 이어지던 제 3공화국이 붕괴된다. 자신이 나폴레옹의 후예라고 주장하나 실제 여부는 불분명한 나폴레옹 5세가 황제자리에 앉으며 정권을 잡게 된다.

  프랑스 제 3제국은 이에 이어 1936년 3월,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2차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무장을 시작한다. 실제로는 만일을 대비해 파리 내 비무장지대에만 군대가 들어갔으나 승전국 측이 어떠한 움직임도 없자 1주일 후 완전히 비무장지대에 군대가 배치된다.


  1936년 7월 17일, 아프리카 지역에서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며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3일 뒤, 공산주의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어 공화주의 세력도 8월 1일에 공화정을 선포하고 들고 일어선다. 대공황 탓에 부유한 지역에서 세금을 높게 매기며 다른 지역을 개발시키는 것에 불만을 품으며 독립을 요구했던 바스크 지역과 카탈루냐 지역도 독립을 선언한다. 스페인 내전이 일대일의 상황이 아니라 세력이 6개가 되는 복잡한 세력구조 탓에 한 쪽이 공세를 진행하면 나머지 접경지역에서 빈틈을 타고 공세가 들어오는 방식으로 전쟁은 1939년 9월까지 끝나지 않는다. 정부군은 너무나 많은 전선에서 방어를 해야 했기에 행정력을 유지하는 지역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1935년에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남수단부터 에리트리아, 지부티, 소말리아까지 에티오피아 국경 대부분을 둘러싼 공격은 순식간에 전쟁을 종결지었다.


  1936년이 세 왕의 해라고 불리는 것은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되었다.



1937년 가을의 스페인. 회색이 프랑코, 적색이 공산주의자, 노란색이 스페인 정부, 푸른색이 공화주의자, 초록색이 바스크, 주황색이 카탈루냐.

남부 모로코 식민지와 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 왕국 정부가 명목상 통치하나 행정력의 약화로 사실상 지방 독립 상태가 되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동맹 관계가 된다. 또한 프랑코와의 밀약을 통해 스페인이 프랑코 주도로 통일되기 위해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왕정(정부), 공화주의자, 공산주의자, 프랑코를 각각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국, 영국과 포르투갈, 소련,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면서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게 된다.

  프랑스는 1938년 3월, 브르타뉴를 병합하기로 한다. 이때 프랑스군은 브라타뉴로 진격하면서 브르타뉴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브르타뉴 공작은 겨우 독일로 망명갈 수 있게 된다. 형식적인 국민투표에서 Oui가 크게, Non이 작게 써진 투표용지를 나눠주고 높은 찬성률로 합병에 성공한다. 독일 내부에서는 전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세력과 전쟁은 안된다는 세력이 다투게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가 주류였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고 버틴다. 

  이어 1938년 10월, 리옹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벨기에를 합병하려한다. 사유는 프랑스계가 대다수인 벨기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였으나 벨기에의 남은 부분은 네덜란드계가 다수인 지역이었다. 동맹국측은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보호국화로 타협을 보고 더 이상의 확장을 막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문의 독일어 부분 또한 괴벨스 박사가 작성했다. 그러나 1939년 3월, 벨기에는 프랑스에게 합병된다. 프랑스는 벨기에의 상업 능력과 공업 능력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1939년 4월,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침공해 속국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리스 침공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시작한다. 이후 이듬해 1월,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합병한다.


   1939년 9월 1일, 프랑코가 6개 세력 중 처음으로 패배할 위기에 처하자 프랑스 제 3제국은 스페인을 침공한다. 또한 길목에 있던 안도라도 침공했으며, 안도라는 12시간만에 무너진다. 6개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고 프랑코가 프랑스와 함께 공세를 감행했기 때문에 스페인은 10월 6일 무너졌다. 독일은 스페인의 적법한 정부는 스페인 왕국이라며 동맹국 전체가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실제로 침공을 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이후 스페인은 프랑코 정권이 다스리게 되었으며, 카탈루냐 지역은 프랑스령으로 넘어간다. 이후 스페인은 사실상 프랑스의 속국으로 기능한다. 남모로코는 침공과 동시에 공세가 시작되어 무너지며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나 카나리아 제도는 스페인 침공 이후 독일 함대가 방어하러 가며 스페인 왕국의 망명정부가 들어선다.


1939년 11월의 스페인 침공이 끝난 직후의 유럽지도. 붉은색은 추축국, 푸른색은 연합국, 녹색은 이탈리아이다. 연한 색은 속국을 의미한다.


  1939년 12월 1일,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침공한다. 하지만 이탈리아군의 삽질로 인해 그리스의 절반까지 진격했으나 금방 패퇴하고 알바니아 상실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후 해당 전선에서 지루한 공방전이 1940년 3월까지 이어지다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군의 모든 군사를 사용한 공세가 시작되자 4월 5일 그리스의 영토 중 꽤 많은 정도를 얻어내는 정도로 전쟁을 끝낸다. 

  1940년 4월 12일, 프랑스는 포르투갈이 독일 측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다며 포르투갈에게 예방전쟁을 선포하고 2달만에 점령한다. 이후 포르투갈에 전체주의 정권을 세워 통치하게 된다. 이후 발견된 문건에서 포르투갈의 전체주의 정당이 포르투갈을 전체주의로 만든다면 전쟁에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 밝혀진다. 독일은 프랑스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프랑스는 식민지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게 되며, 모로코를 점령하게 된다. 이어 프랑스는 7월 4일, 영국의 채널 제도를 프랑스의 고유 영토라는 명목으로 점령하며 영국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영국은 독일과 전쟁동안 동맹을 맺을 것을 합의한다. 프랑스는 이후 영국 선박을 나포하거나 격침하기 시작한다.

  이후 1941년 4월 5일, 프랑스는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 방어선을 돌아가 독일을 침공한다. 다음날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를 침공한다.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날 밤부터 터키는 그리스와 함께 자국 근처에 있던 이탈리아령 섬들을 점령한다. 4월 8일에는 프랑스의 원조를 받은 세르비아계 반란군이 베오그라드 지역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오스트리아는 반란군 진압도 동시에 해야하기에 일시적으로 전선에서 밀리게 된다. 또한 불가리아는 전 병력을 반란군 진압에 쓰며 사실상 이탈한다. 4월 1일에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 2세가 죽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약간 혼란스러웠으며, 어느 정도 침입을 허용하고 만다.

  또한 4월 12일부터는 이탈리아가 독단적으로 이집트 침공을 개시한다. 이집트는 당시 오스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바다를 제외한 사방에서(맨 위 지도 참고) 몰려오는 이탈리아군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 이후 상당히 후퇴한 지점에서 반터키 감정을 누르고 연합국, 특히 터키의 지원을 받으며 방어한다. 4월 15일에는 그리스가 상실한 영토의 수복을 위해 이탈리아에 선전포고하며 연합국에 합류한다.

  이후 연합국은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징병한 병력을 최대한 서쪽으로 보낸다.


1941년 6월 21일 유럽의 전황. 붉은색은 프랑스, 푸른색은 독일측, 녹색은 세르비아계 반군이다. 옅은색은 속국, 좀 더 옅은 색은 점령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새벽 1시,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모든 소련과의 연합국 국경에서 소련군의 전면적인 공세가 시작된다. 이는 선전포고 없는 기습침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