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더 오래 하늘 위를 움직이고, 점점 도시를 찾는 외부인이 많아질 무렵. 나폴리의 산 도미니코 마조레 성당에서는 성대한 장례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건강했던 젊은 사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생전 그에게 친부모 이상의 은혜를 받은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미사 내내 흐느꼈으며, 오래전 그와 해어졌던 그의 친모는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어져 버렸다. 이 죽은 사내는 일반적인 위치의 사내는 아니었다. 브루노 부차라티, 나폴리의 갱단 파시오네의 간부이자 현재 파시오네의 지배자 죠르노 죠바나를 이끈 남자. 그리고 나폴리의 거리를 방황하던 이들의 인도자이자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던 그는 이제 한 줌의 재가 되어 신의 앞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중간중간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외에는 신부의 말 소리 밖에 들리지 않던 때, 신부가 엄숙하게 부차라티의 유골함을 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죄인 부르노 부차라티와 마지막 작별을 하게 됩니다…”


고별식을 끝으로, 미사는 막을 내렸다. 부차라티의 유골은 그의 아버지가 묻힌 나폴리의 공동묘지로 가게 될 것이다. 그의 동료들이 부차라티의 유골함 앞에 엎드려 울고, 죠르노는 그런 그들과 유골함을 보며 침묵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기… 당신이 ‘죠르노 죠바나’라는 사람인가요?”


죠르노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부차라티의 어머니 이자벨라였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자벨라 씨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50도 채 되지 않았을 나이였으나 그녀의 머리는 아들을 잃었다는 슬픔에 하얗게 세어 버렸다. 하지만 슬픔에 빠진 그 눈은, 그 눈 만은 죽은 그녀의 아들을 쏙 빼 닮아 있었다. 이자벨라는 울먹이며 물었다.


“잠시 저와 얘기가 가능할까요?”


죠르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당 밖 구석으로 향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내 이자벨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들은… 브루노는 역시 ‘마피아’가 맞죠…?”


죠르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자벨라는 또다시 흐느끼며 마를 틈이 없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브루노는… 사실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젊은 녀석이 어디서 얻었는지는 몰라도 항상 돈과 선물을 한가득 사서 저를 찾아왔지요. 그리고 브루노에게는 묘한 ‘기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군인이나 경찰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요… 아들이 마피아라는 것을. 저는 브루노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말렸더라면… 브루노를 두고 떠난 못난 어미라도 그때 잡았더라면…!”


이자벨라는 또다시 흐느꼈다. 죠르노는 씁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이자벨리 씨의 아드님은… 저와 다른 이들에게 마치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리를 떠돌던 밑바닥 인생의 저희를 이끈 사람이었죠. 아드님은 항상 자기만의 ‘길’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 어머님께서 말렸더라도 듣지 않았을 겁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이자벨라는 한참을 흐느끼다 물었다.


“브루노는… 어디에 잠드는 건가요?”


“나폴리의 공동묘지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무덤 옆에…”


“죠바나 씨, 실례지만 부탁을 해도 될까요?”


그녀의 부탁을 들은 죠르노는 며칠 후 그녀의 부탁을 그대로 들어주었다. 나폴리 외곽의 어촌, 유명 휴양지의 해변처럼 멋진 바다는 아니어도 경치는 좋은 그 어촌은 야트막한 산을 끼고 있었다. 그 산 중턱,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낡은 별장 앞마당에 부차라티는 영면하게 되었다. 죠르노조차 몰랐던 이곳은 부차라티가 어릴 적에 가족이 살았던 집이자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이후로도 부차라티가 계속 가지고 있던 장소였다. 적당하게 구덩이가 파이자 이자벨라는 아들의 유골함을 구덩이에 놓으며 또다시 쓰러져 크게 울었다. 죠르노가 그녀를 달래는 동안 유골함의 위로 흙이 천천히 뿌려지며 마침내 자그마한 무덤이 완성되었을 때, 묘비에는 죠르노가 푸고와 함께 밤새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묘비명이 적혀 있었다.


The righteous man leads a blameless life blessed are his children after him 

Bruno Bucciarati(1980.09.27 ~ 2001.04.06)


그리고, 그 옆에는 그의 아버지 파울로 부차라티의 묘가 같이 옮겨와 있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e father of a righteous man has great joy, he who has a wise son delights in him

Paolo Bucciarati(1958.02.28 ~ 1994.11.05)


이자벨라가 무덤가에서 흐느끼는 동안, 죠르노와 동료들은 그들의 무덤과 약간 떨어진 다른 무덤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모는 오래전 죽고, 이들 말고는 다른 동료조차 없었던 외로운 사내의 장례는 그들끼리 간소하게, 하지만 너무나 애절하게 치러진 뒤 그가 유일하게 신뢰하고 믿고 따른 사내의 근처에 묻히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네 아바키오였다.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Leone Abbacchio(1980.03.25 ~ 2001.04.06)


죠르노는 부차라티와 아비키오의 무덤과 그곳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이들도 이 자리가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아들의 무덤가에서 심히 애통해 하는 이자벨라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졌다. 죠르노에게도 친모가 있었으니 말이다. 죠르노는 그들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그의 어머니, 시오바나 마리아가 전화를 받았다.


“왜, 하루노.”


전화기에서는 그 누구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무미건조한 어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요… 그냥 전화 한번 드릴까 해서요…”


“용돈 필요해?”


전화기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귀찮음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죠르노의 말투는 점점 더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요… 돈은 필요 없어요. 그냥…”


죠르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벼락 같이 큰 소리가 울렸다.


“그럼 왜 전화했어! 귀찮게! 돈 필요하면 그때나 전화해!”


하지만 죠르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전화를 끊은 줄 알았지만 사실 전화는 계속 연결되어 있었고, 죠르노는 곧이어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말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귀찮은 놈, 왜 내가 저런 걸 낳아서… 나도 내 삶이 있는데 저놈만 아니었어도…!”


죠르노는 더 이상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호흡이 계속해서 거칠어지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 듯 계속 흔들렸다. 끝내 자세가 흐트러지며 죠르노가 비틀거리자 미스타가 다가와 죠르노를 부축했다.


“왜 그래, 죠르노? 문제 있어?”


죠르노는 간신히 감정을 다스리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푸고, 이자벨라 씨가 진정이 되시면 차로 댁까지 모셔드리세요. 미스타, 저흰 갑시다…”


파시오네 저택 자신의 방에 돌아온 죠르노는 그날 밤 구슬프게 울었다. 부차라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아니었다. 비록 못난 어머니라도 자식은 사랑해 줄 거라는 자그마한 기대, 죠르노는 그 자그마한 기대 조차도 오늘 잃고 말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야밤에 자신을 홀로 두고 놀러 가버렸을 때도 죠르노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친모가 자신에게 주는 사랑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늘 죠르노는 밖으로 목소리가 세어 나가지 않게 이불을 이로 꽉 물며 처절하게 울었다.


다음날, 죠르노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스타가 문을 두들기며 나오라고 해도 죠르노는 그저 기다려 달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그날로부터 2주가량 지나 파시오네의 총괄적인 재무와 법무를 맡던 푸고가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에야 죠르노는 자신의 방 밖으로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 나왔다.


“미스타, 푸고… 개인적인 부탁이 있으니 조금만 따라 주세요.”


미스타는 그런 죠르노를 보며 코를 막았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씻고 말해!”


잠시 후, 다시 완벽하게 몸을 단장한 죠르노는 미스타와 푸고, 나란차에게 자신이 계획한 것을 설명했다. 세 사람, 특히 미스타는 눈이 대포알만큼 커질 정도로 놀라 물었다.


“죠르노, 너… 재정신이지? 이 두 사람에 대한 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죠르노는 미소까지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7월 중순, 대규모 휴가철의 나폴리 국제공항. 죠르노를 위시로 미스타, 나란차, 푸고가 두 사람을 환영했다. 그 둘은 다름 아닌 죠르노의 양부와 친모였다. 죠르노가 두 사람에게 차례차례 포옹하며 말했다.


“두 분에게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두 분만 타는 전용기와 터키 관광. 전부 제 돈으로 말이죠.”


미스타는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찬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불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죠르노의 친모, 마리아가 말했다.


“어머나, 하루노. 언제 이렇게 ‘돈’을 모은 거니?”


푸고는 그녀의 말투는 아들에 대한 칭찬이었으나 실상은 그 돈을 가져갈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허나 죠르노는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두 분 덕에 제가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겁니다. 빨리 타시죠, 시간이 다 됐으니.”


죠르노의 양부는 죠르노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크게 웃었다.


“이 녀석, 키운 보람이 있다니까! 하하하하!”


나란차는 죠르노에게 어렴풋이 들어 그의 양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음식물쓰레기를 본 양 인상을 찌푸렸다. 곧이어 두 사람이 비행기에 타자 죠르노는 예의 바르게 고개까지 숙이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떠나자 그제야 세 사람은 항의하듯 앞다투어 죠르노에게 따졌다.


“죠르노! 당신이 저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 건데 어째서!”


“그래, 죠르노! 저놈들을 그렇게 대접하다니?!”


“죠르노, 너 분명 우리한테 얘기 했잖아… 두 사람을 용서한 거야?!”


미스타의 물음에 죠르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저 ‘죠르노 죠바나’는 두 분을 용서했습니다. 다만…”


그 순간, 두 사람이 탄 비행기가 공중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죠르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경악에 빠져 있을 때, 잔해는 산산이 부서져 불꽃을 휘날리며 지중해로 떨어졌다. 죠르노는 그들을 두고 천천히 자동차로 걸어가며 말했다.


“’시오바나 하루노’는 아니지만요.”


셋은 죠르노의 행동에 묘한 공포를 느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업보라고도 생각했다. 곧이어 충격에서 가신 셋은 천천히 죠르노를 뒤따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