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없다.


그저 잘못 골랐다는 그 생각 뿐이었다.

인생을 말이다.


그래도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다.

나는 마법소녀가 아닌가.

사람을 지키는 마법소녀가 아닌가.


눈 앞의 적에게 집중하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집중하자.


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슬라임? 문어? 중간 단계 쯤으로 보이는 적이 있다.


적은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적은, 괴수의 공격 목표는 현재 내가 아니라 시민들이다.



"빛의... 커헉!"



영창을 뚫고 나온 건 마법이 아니라 핏방울.


기절로 인한 마취가 끝나서인가. 전신에서 고통이 밀려온다.



"으... 아으... 아아아아악!"



괴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급하게 입을 틀어 막았다.


왼 팔이 허전하다. 있어야 할 곳에 없다.


오른 눈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배와 명치가 욱신거린다. 젠장 오늘 저녁 비싼 거 먹었는데.


나중에 회복되는 상처라고 하지만 고통은 생생하다.



"으아아앙!"



그리고 눈 앞에서, 100m쯤 전방일까, 나 이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린 아이다.


예닐곱 살 쯤의 어린 아이다.



"크아아아!"



그렇다. 나는 전투 불능 상태여도 저기 괴물은 아니다.


몸을 일으킨다.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그게 내 존재의의다.


나보다 강한 마법소녀들은 얼마든지 있어도 이 구역에 상주하는 건 나 뿐이다.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한다.


이런 것마저 못하면 뭘 위해서 마법소녀가 되었던가.


일어나. 그러니까.


일어나는 거다.


일어나.


일어나!



'우득'



다리에서 엄청난 소리가 난다.


... 아니, 엄청나지 않다.


그래, 이 소리는 다리가 부러진 소리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그냥... 어... 관절염 비슷한 거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까 분명히 그런 소리이다.


그렇다고 해두자.

아니, 그런 걸 거다. 대단치 않은 것일 거다.


그러니 앞을 본다.



"빛... 비, 빛의 정령..."



구한다. 구해야 한다.



"강림하시어..."



무엇을 위해서 이 마을에 상주하기로 했던가.


전국구, 세계구급은 어차피 내 수준에서 못하니까 그저 집 근처라도.

시우와 내가 사는 이 조그만 마을이라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것 하나 못해서 어디다 써먹어.



"잔악한 무리를..."



그러니까 진정하고 가자. 나를 의식도 못한 지금 이 틈이라면 할 수 있다.


침착하게 계산하면 된다.


이 마법이라면 끝낼 수 있다.


이런 때를 위해 개발한 마법이니까. 아무리 마력이 모자란 나라도 파괴력 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마법이니까.



"성스러운 빛으로 부정한 이들을..."


"파고메노, 크시포스."



어디선가 짧은 주문이 들려왔다.


그 말과 함께 하늘에서 얼음의 대검이 날아왔다.


대검은 그대로 괴수의 몸에 박혔다.



"쿠헤에엑!"



괴수는 칼이 박힌 부분부터 몸이 얼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한 덩이 얼음조각이 되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리고 눈 앞에는 위아래를 하늘색 옷으로 맞춰 입은 소녀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휴우."


"어... 뭐야, 끝난 거야?"



공포에 떨던 시민들이 하나둘 눈치를 살핀다.


하늘에서 내려온 소녀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이제 다 끝난 거 맞아요! 얼음은 해동해도 피부가 괴사했기 때문에 죽습니다! 안심하셔도 돼요!"


"그럼... 끝난 거라고?"


"끝난 거야 드디어?"

"와아아!"



이렇게 끝난다고? 이렇게 어이없이 끝난다고?


내가 무슨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어이없게...


아니야, 사람들이 무사했잖아. 괜찮아. 좋은 게 좋은 거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오랜만이네요 얼음의..."


"이야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얼음의 마녀] 의 힘이군요!"



멀리서 건네려던 말이 누군가에게 끊겼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


"말로야 많이 들었는데 설마 진짜로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네!"


"고마우이 아가씨 안 왔으면 죽을 뻔 했어!"


"진짜 다 끝난 줄 알았거든요!"



어...?



"아이고 아가씨 여기 이 손 좀 봐. 이거 이 다친 거 아니여?"


"정말이네? 이거 뭐야 괜찮아요?"


"아니 이 양반들이... 애 손 좀 그만 만져요! 엉큼하게시리..."



나... 비쳐지지 않고 있나...?


겨우 100m인데? 비치지 않고 있... 다고?



"그냥 보내기도 그런데, 저희 가게로 안 오실래요? 떡볶이 정도는 내드릴 수 있는데..."


"그런 거면 우리 가게로 와야지. 날도 추운데 뜨뜬한 국밥이 낫지 않겄냐?"


"사람이 술을 먹고 살아야지. 아가씨 술 먹을 수 있나?"


"그런 말 하는 건 세상에 형님 밖에 없을 게요..."



비치지 않는다.


방금까지의 전투도 내가 흘린 피나 각오도.


전부 없던 것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누구의 눈에도 비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배경과 같이

조명과 같이

병풍과 같이...


걱정도, 감사도, 심지어는 서운함조차 느낄 수 없는.


나는 그저 하나의 배경....



"이런... 이런 법이..."


- 그 정돈 해줄 수 있으니까.



눈물이 맺히던 와중에 시우의 말이 떠올랐다.



- 왜 또 안기려그래. 힘들어?

- 요새 힘들어 시우야.

- 뭐가?

- 후배들 교육하고 있는데 다들 너무 강해.

- 그럼 좋은 거 아니야?

- 아니 너무 훌쩍훌쩍 자라. 이미 나보다 강한 애도 있어.

- 음...

- 걔들만 있으면 솔직히 난 필요 없을 것 같아. 요즘엔 그런 생각도 들어.

- 그럼 지금처럼 와서 나한테 안겨 있으면 되겠네.

- 응?

- 전투는 은퇴하고 나랑 지내는 거지.

- 그건 좀... 사명감이란 게 있는데...

- 그럼 열심히 하고.

- ... 너무 대충 말하는 거 아냐?

- 그럼 절충해서 열심히 하고, 힘들면 또 와서 앵겨. 안아주는 것 정돈 해줄 수 있으니까.



... 돌아가자. 시우한테 돌아가자.


가서 오늘은 하루 종일 앵겨있자.


무릎에 앉아서 같이 영화 보자고 하자.


입이 심심하니까 과자라도 뜯고서.


힘든 날이었으니까 달달한 로맨스 영화로 보자.


키스신이 나오면 분위기에 타는 척 하면서 시우한테 작업이나 걸어보자.


그리고 영화보다가 졸려서 자는 거야.


그러자.


그래, 그러자.



*



"스승님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하늘색 드레스의 소녀가 흐느끼며 애원하고 있었다.

소녀의 시야 끝에는 또 다른 소녀가 있었다.

"스승" 이라 불린 그 소녀는 기분 나쁜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얼음의 마녀]. 스승질 관둔지 몇년 됐습니다."


"스승님은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셨잖아요..."


"그랬던가요?"


"상냥하셨잖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저한테는 사람의 마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안타깝게도 전 이미 사람이 아니라서요."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지팡이를 잡은 하늘색 소녀의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https://arca.live/b/tsfiction/44414973
왜 이 군침 떨어지는 소재를 아무도 안 잡는 데샤아앗
아쉬운 대로 내가 끼적여 봄.

ㅇㅇ...
보고 반응 좋으면 2편 쓸까 생각 중.

틋챈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