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직후에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속이 메스꺼워지더니 곧 트림이 나왔고 결국에는 입 밖으로 멀건 토사물이 쏟아졌다. 남자는 쉴 장소를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곳에는 빛이 하나도 없어서 어둡기만 했고 사물의 흐릿한 형태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슴팍의 전술 전등으로 주변을 비춰보니 수 세기 동안 방치된 먼지들이 사막의 모래 산처럼 쌓여있었고 천장은 빛이 닿지 않을 만큼 높았으며 지면으로 떨어진 샹들리에는 녹아내린 듯이 문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힘들게 발견한 반타원형 책상이 있는 접수대위에도 울퉁불퉁한 먼지가 가득 쌓였고 그 아래에는 흔적만이 남은 옷을 걸친 해골이 누워있었다.


버려진 듯이 폐허에서 흔하게 느끼는 시선이나 기시감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먼지의 퀴퀴한 냄새와 수 세기 동안 잠들어있는 콘크리트의 답답한 향을 맡을 수도 있었다. 그가 무거워진 아랫배를 문지르며 발걸음을 옮기자 지면에서 피어오른 뽀얀 먼지가 그의 곁에 눌러앉아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그곳에는 작은 복도가 여러 개 있었고 몇 개는 무너져서 입구가 막혀있었다. 남자는 그중에서 비상 대피소로 향하는 길을 희망했지만, 안내판이나 표지판이나 모두 페인트가 떨어지고 없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결국에는 운을 길잡이로 삼아야 했다.


가장 가까운 복도를 선택한 그는 어둠 속에서 걸음을 옮겼지만 당장 주저앉아서 속에서 부글거리는 걸 내뱉고 싶었다. 남자는 속에서 꿈틀거리는 내장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참고 있었던 고통을 더는 길게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여유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몇 번 입을 열 때마다 밖으로 뜨거운 물이 쏟아지며, 때로는 내장이 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결국 무릎을 꿇고 한참을 토해냈다. 일반적으로 느끼는 토한 후에 개운함이나 편안함은 없었고 그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걸음마다 무거웠고 속에서는 물이 출렁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감기에 걸린 듯이 목은 따가웠다. 아랫배를 눌러보니 배에 힘이 들어가서 손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방을 찾을 무렵에 그의 얼굴은 노랗게 변했고 다리와 팔에도 힘이 빠졌으며 머리에는 열이 있었다. 심한 몸살에 걸린 듯이 근육통도 그를 찾아왔다. 그가 몸을 선택한 장소는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비품 창고였다. 아무것도 없었고 바닥에는 추위가 감돌았다. 철제 수납장 위에는 먼지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메케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남자는 의도치 않게 먼지를 마시곤 격렬하게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먼지 위에다가 심하게 토했다. 머리가 빙빙 돌았고 오른쪽 귀에선 이음이 들렸다. 조금만 시간을 더 들인다면 이곳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더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가 원한 만큼 이곳은 편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기대한 것 중에 태반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자는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몸 상태가 나빠서 더 그랬다. 복도를 걸으면서 빛의 흔적도 사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깨진 유리와 균열어린 벽의 파편만이 가득했다. 그보다 더 많이 먼지의 바다가 복도를 채웠다. 걸음마다 진흙을 밟는 것 같았다. 더 심각한 건 몸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남자는 의술을 배운 적도 없었고 고통을 줄여줄 약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통을 감내하고 견뎌낼 수밖에 없었지만, 몸은 예고도 없이 나빠졌고 지금도 더 나빠지고 있었다. 물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입 밖으로 계속 뱉어내고 있어서 탈수증세가 느껴졌고 이러다간 현기증으로 기절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구토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이 지나자 차가움이 찾아왔다. 오한에 몸이 떨리고 그는 잠들었다가 깨어나길 반복했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어쩌다가 몸이 나빠졌는지 생각했다. 그는 어제 먹은 통조림을 떠올렸다. 상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한 경우는 잘 없었지만, 드물게 있었다. 그럴 때면 항상 고통스러웠고 설사와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웠던적은 없었다. 남자는 편하게 누우려다 구토와 먼지가 뒤섞인 질척한 바닥에 눕고 말았다. 불쾌했지만 별수 없었다. 속은 찢어지는 것 같았고 누운 덕에 무언가 목으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어서 그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물건에 대한 생각이나 약이나 치료에 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남자는 셔츠만 걸치고 침낭 안에 들어가 있었다. 옷이랑 가방은 머리맡에 사려놓아 정리되어 있었다. 꿈인가 싶었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꿈은 없었고 몸은 여전히 뜨거웠으며 속은 여전히 복잡해서 꿈이라는 생각은 곧 머리에서 사라졌다. 남자는 몸을 들어서 앉았는데 바로 옆에다가 토를 하고 말았다. 붉은빛이 도는 시큼한 물이었다. 한바탕 고통이 지나가자 주변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넓이가 4미터쯤 되지 않는 작은 방이었고 천장과 벽 그리고 방 중앙에는 작은 전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벽 한편에는 수납장이 있었고 도구나 음식 같은 것들이 가득해서 알록달록한 포스터 같은 모양을 띠었다. 그의 발치에는 커다란 철제문이 있었는데 잠금장치만 4개가 넘었고 하나같이 투박하고 무거워 보였다. 이곳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미약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는 머리를 들어서 벽 한편에 남은 것을 다 토해내곤 몸을 바로 해서 앉았다. 굶주림의 고통과 윗배의 불쾌한 고통이 속에서 공존하고 있어서 내장을 통째로 도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앉아있으면 고통이 조금은 덜 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로 이런 방에 있자니 살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정말 이게 꿈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본래 달콤한 꿈은 고통스러울 때 자주 꾸는 법이라 남자는 도통 의문을 풀 수가 없었다. 만약 현실이라면 애초에 자신을 구해줄 인간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였고 얼굴은 핼쑥했다. 남자는 그녀를 눈으로 쫓았다. 입을 열려고 했는데 바로 속에서 물이 올라왔다. 그는 약간의 트림과 함께 옷에 실례하고 말았고 여자는 그를 보더니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면서 헝겊으로 남자의 턱을 닦아주었다. 그 행동이 끝나자 남자는 그녀를 향해서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빙그레 웃으며 남자를 향해서 자신을 박사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게 이름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 대답을 듣기 전에 다시 물을 뱉었다. 목이 따갑고 시큼한 맛이 입에 감돌았다. 남자는 욕을 내뱉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자신을 왜 구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집에 들어온 손님을 맞이한 거라 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거주자냐? 라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에매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던 거주자는 다 죽었어요." 


"그럼 당신은?"


"박사에요."


"무슨 박사 말이요."


"난 그냥 박사에요. 당신이 그저 손님인 것처럼."


"당신은 약탈자군요." 


"맙소사 아니에요."


"그럼 식인종이나 노예상이군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미친거군요."


그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뜻깊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을 박사라고 칭하고 또 별 이유 없이 침입자를 구한 사람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선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렇게 구는 사람들은 대체로 미쳤거나 의도가 불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무례한 말을 하시는군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곤 남자의 오른쪽 아랫배를 눌렀다. 그러자 고통을 느낀 남자는 목으로 넘어온 약간의 토사물을 삼키며 그녀의 행동을 막으려고 했지만, 반쯤 누워있는 상태인데다 몸살로 기운도 없어서 저항은커녕 힘들게 숨을 삼키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남자의 상태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맹장염일 수도 있겠네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맹장염이 뭔지 몰랐지만, 걸리면 수술을 하거나 잘못하면 죽는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는 맹장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아랫배를 계속해서 누르며 남자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아파하면 배가 갈라질까 싶어서 고통을 참았지만 그런데도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손발이 떨리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몸 상태를 들키고 말았고 그녀는 남자를 향해서 일단은 푹 쉬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하더니 손등을 행주로 닦고는 바늘과 길게 이어진 고무줄에 메달린 수엑을 박아 넣었다.


남자는 그녀를 향해서 자신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남자의 이마 위에 손등을 올리며 당신을 구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남자는 그러면 일단 진통제랑 보급품만 가방에 넣어주고 자신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로서 아픈 환자를 그냥 보낼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환자 자신의 의지로서 나가는 것이니 보내 달라고 했지만, 이후에도 둘 사이의 대화에 진전은 없었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치료는 계속되었고 여자는 남자가 말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한번 뒹굴어서 바닥에 구토했고 몸살에 들떠서 한참을 괴로워했다. 남자는 자신이 맹장염에 걸렸다는 걸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몸이 아프다는 걸 부정하진 않았다. 약 때문인지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고 생각은 꿈의 경계에 섰다. 그는 의식을 또렷하게 붙잡기 위해서 끝없이 입을 놀리고 입술을 깨물며 이성을 유지했지만,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그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많은 순간을 꿈속에서 보냈다.


꿈속에서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한 사람 때문에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꺼내지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그러다가 여자가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피에 젖은 세상은 반짝이는 붉은빛을 띠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터널 형상의 검은 구름이 눈앞에 끼었다. 그림자가 고인 눈을 뒤로하면 뼈가 부러지는 소리, 질척한 것에 무언가 들어가는 소리와 속 안에 내장과 부패 물이 아닌 무언가 들어오는 감촉이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정맥이, 뒷쪽에서 느껴지는 높은 혈압의 두근거림이 들렸다.


조금 시간이 흘러서 의식이 또렷해졌다. 섬세한 가위질 소리와 투박한 톱 소리가 들렸다. 다음에는 조용해졌지만, 빛이 없어졌고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이 짙어지는 와중에 꺼져가는 촛농이 머리맡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배는 불타오르듯 뜨거웠고 옷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칼날을 삼킨 듯이 목이 따가웠다. 뜨거운 열기 덕택에 이성 또한 생각에 녹아들어 있었다. 부드러운 솜덩이 속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배를 만지려고 할 무렵, 그는 자신의 오른손이 텅 비어버렸음을 깨달았고 붕대로 감긴 뭉툭한 단면을 보면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시야가 어두워졌고 다음에는 높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막혔다. 그는 배가 열려있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여자의 목을 붙잡고 조르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피를 흘렸다. 출혈은 멈추지 않았고 남자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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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인데, 내가 원해서 쓰는건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