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은 칠천원이었다. 남자는 그것에서 몸소 오른 물가를 체감했다. 불과 3년 4년 전 까지만 가도 사 오천원 선이었는데.


 김밥이 삼천 오백원, 소고기 국밥은 구천원이었다. 전날 술과 함께 마신 시뻘건 국물 탓에 소고기 국밥은 딱히 끌리지 않았다. 조금 덜 기름지고 맑은 국물을 먹고 싶었던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어 키오스크 앞에 선다. 


 예전에는 이런 음식 주문에도 점원이 따로 있었다. 사십줄을 먹은 아주머니 하나가 계산대 앞에서 길게 선 사람들의 주문을 하나씩 받았다. 바쁜 와중에는 가끔씩 튀김우동이 어묵우동이 되기도 하고, 해장 라면이 떡라면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엇을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면 살짝 인상을 찡그리거나, 환히 웃으며 무슨 음식을 먹는게 좋을지 추천 해주는 인간미도 있었는데. 그 자리를 기계가 대체했다는 사실에 깊은 유감을 느꼈다.  


 튀김우동을 터치하여 카드를 긁는다. 핸드폰에선 카드가 긁혔다는 확인 문자가 오고, 키오스크 기계에선 영수증이 뽑혀나왔다. 남자는 영수증을 들고 우동 코너 앞으로 가  근처에  있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할 일이 없어진 그는 오른손 검지로 식탁을 툭툭 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평일 오전의 휴게소는 한산했다. 놀러가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지만 대부분은 그와 같은 장거리 트럭 운전수였다. 칼칼한 국물에 술은 포기 할 수 없다는 듯 해장 라면을 시켜놓고 술을 반병 쯤 비운 사람. 아침부터 든든히 먹을 샘인지 돈가스며 쫄면이며 상 위를 분식으로 가득 채운 퉁퉁한 남자. 감기에 걸린듯 코를 훌쩍거리며 우동 면빨을 빨아 삼키는 여자, 비빔밥의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입을 쓰윽 닦은 후 반납대에 식기를 반납하러 가는 여자 등이 보였다. 그렇게 찬찬히 주변의 광경들을 눈 속에 담아가며 있던 와중에 그의 번호가 우동 코너 위에 있던 낡은 전광판에 적혀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인삿말이었다. 어눌한 말투와 낮선 억양에서 그는 가판대에서 자신을 부르던 여자가 한국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아마도 중국서 밀항을 해서 왔겠지? 영화에서 보니까 밀항해서 오는거 굉장히 힘든 일인거 같던데 꽤나 고생 하지 않았으려나. 멀리 떠나온 타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힘겹게 번 돈을 송금하며 고단한 매일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을것이다. 정신을 차리고보면 아무튼 하루는 지나가고 다시 눈을 뜨면 아침이, 저녁이, 주말이 되어있는 나날. 힘들겠다.


  우동을 받아 테이블쪽으로 걸어 오는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리에 앉자 그 생각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한 젓가락 후루룩 입에 넣는다. 포슬포슬한 면발의 식감과, 뜨거운 온기가 입안 한가득 퍼진다.처음엔 너무 뜨거워 잠깐 입 밖으로 내 뱉을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지저분한거 같아 차가운 물과 함께 후루룩, 넘기기로 한다. 뜨끈하고 진한 육수와, 차갑고 맹맹한 냉수 사이로 오동통한 우동의 면발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남자는 다음 젓가락부턴 좀 많이 불고 먹어야겠다 싶어서 후후,  면을 젓가락으로 집은 후에 한참을 불었다. 면에서 나는 김이 모락모락 주변을 감쌋고, 햇빛이 서린 김은 뿌옇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마지막 국물까지 그릇을 들어 다 마신 후, 남자는 입가를 손 등으로 쓰윽 닦는다. 뜨끈한 음식을 채우니까, 울렁거리던 빈 속이 어느정도 진정이 된듯 싶었다. 졸릴듯, 말듯한 기운이 몸에 퍼지고 남자는 그 나른한 기분으로 상에 멍하니 잠시 앉아 있다가, 시계를 확인 한 후에 식기 반납함에 쟁반을 들고 반납한다.


 식당 안 입구의 문은 분명 열려 있었지만, 바깥은 안보다 훨씬 추웠다. 휴게소가 으레 그러하듯 이 휴게소 또한 주변 산기슭 근처 도로에 세워진 것인지라, 찬 바람이 싸늘하게 부는 것은 산과 다름 없었다. 남자는 으슬으슬 불어오는 바람에 웃 옷 자크를 끝까지 잠궈  바람을 막고,  오줌을 싸러 터덜터덜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 앞, 호두과자와 버터구이 오징어의 고소한 냄새를 지나고나자, 지린내를 감추기 위한 진한 복숭아 향의 향수 냄새가 남자의 콧깃을 스쳤다.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오자, 이름모를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왔고, 남자는 적당한 소변기를 찾아 청바지 자크를 내렸다.  


 오줌이 자동으로 켜져 내려가는 소변기의 물소리와 겹치며 소리가났고, 남자는 그 사이에 핸드폰을 바라본다. 수십개의 스팸문자와 하나도 와있지 않은 카카오톡. 남자는 대충 문자로 온 내용들을 내리며 kb에서 날아 온 잔액이 얼마가 있는지 확인한다. 


 삼십 육만 팔천원.  왜 이것밖에 남지 않았나? 하며 내역을 쭉 읽어 보는데, 생각보다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돈이 많이 세어 나갔다. 아무 생각없이 한 소액 결제. 소일거리로 중간 중간 배달 다니면서 할 게 없어 질렀던 저질의 모바일게임의 것이었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당일날 나가는 금액도 아니고, 인게임에서의 재화라는게 실제 돈보다숫자 단위가  낮아서 별 개 아닌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매달 30만원씩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 잠만자는 고시원값이 매 달 30만원인데,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돈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모르겠나 싶었는데  이녀석이었나 싶어 이제는 그만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줌을 다 싸고 나서도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쓰던 그는 오줌이 나온 성기를 털어 잔여뇨를 변기에 지린다. 그러다가, 왼손에 살짝 튄 오줌방울에 인상을 팍 쓰며 세면대로 걸어가 물을 켜 손을 행군다. 왼손으론 핸드폰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손을 행군 다음에 옆에 있는  건조기에 손을 넣어 말리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 나와보니 오면서 보았던 호두과자, 버터구이 오징어 외에도 꽤 많은 것들이 있었다. 커피 콩 볶는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는 카페부터, 들를 때 마다 대체 누가 사는건지 모르는 이름 모를 가수들의 트로트 메들리 테잎.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가, 처음듣는 남자, 여자의 목소리로 나와 주변을 시끄럽게 했다. 


 남자는 기지개를 켜며 남은 거리를 졸지 않고 운송 해 가려면 잠에서 깨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 앞의 커피집으로 향한다. 비좁은 카운터에는 식당 아주머니보단 조금 젊은 처녀가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 속을 뒤적거려 지갑을 찾은 후 주문했다. 


"그. 아이스 커피 하나 주세요." 


"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씀하시는건가요?"


"아 뭐 그거요. 그 조금 시럽좀 타서 달달하게."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긋나긋한 종업원의 목소리. 커피콩이 담긴 머신에서 커피콩 가는 소리가나고, 뽑아낸 커피콩 가루를 담아 누른 후 에스프레소 머신에 끼운다. 위이잉 기계 소리를 내며 밑으로 흘러 나오는 검은 물. 밑에는 아담한 쇠종지로 그 검은 물을 받아놓았다. 종업원은 그 사이에 

자그만한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옆에 있던 맹물과 결합하고, 시럽을 듬뿍 뿌린다. 투명한 얼음물에 점도 높은 시럽이 섞인다.  


 이윽고 종업원은 머신에서 나온 검은 물을 뒤섞고, 원형 플라스틱 컵을 결합 시킨후에 컵 홀더를 낀 다음 검정색 빨때를 꼽아 남자에게 건내며  말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


"아 예. 여기"


"3800원 입니다. 결제 도와드릴게요. 아, 여기! 맛있게 드세요."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예 여기 두고 가시면 됩니다."


"수고하세요."


 인사하고, 뒤돌아 걸어 나오는 남자. 컵 안쪽으로 걸린 빨때를 통해 커피를 한 입 가득 빨아 마신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지는지라 잠깐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삿으면 어떗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뜨거워서 홀짝 홀짝 거리면서 

마시는건 취향이 아닌지라 역시 커피는 아이스지 라는 생각을 하며 빨때로 호로록, 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주차 해놓은 차를 찾기 위해  남자는 주자창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 들어 차 있는 승용차와 듬성 듬성 있는 관광 버스들. 사이로 빼곡히 들어 선 대형 덤프 트럭. 개 중에는 가장 멀쩡해 보이는 흰색 덤프트럭을 찾은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버튼을 누른다. 버져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리고, 그는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트럭에 오른다. 


 트럭에 있는 컵 홀더에 아메리카노를 고정시켜넣으려 했는데, 저번에 먹었던 컵들이 이미 자리에 있었다. 재떨이로 활용한 덕택에 담배도 한움쿰 들어 있었기 때문에 남자는 그 재떨이 대용으로 쓰던 컵을 들어 창문 밖 좌 우를 살핀 후 쓰윽 밖으로 던저버렸다.  남은 자리에는 방금 사 온 아메리카노를 얹져 넣고, 대충 보조석 주변에 나뒹굴던 쓰레기들을 치운 후에 차 키를 넣고 클러치를 밟으며 시동을 건다.


 덜덜덜덜. 하는 소리와 함께 걸린 시동. 주차를 편하게 하기 위해 후진으로 들어왔기에 나갈때는 그냥 나가면 된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추가로 주차가 된 차량이 없었기에 남자는 밟은 클러치를 능숙하게 때며 앞으로 나아간다. 


 커다란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주차장을 빠져 나갔고, 이윽고 기어를 변속하여빠른 시속으로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트럭이 나아가는 쪽으로 눈부신 햇빛이 떠오르고 있었고,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네 시간. 네시간 동안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하며 트럭을 몰아 저 햇빛이 비치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길게 난 도로를 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