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던전 1,2



 오늘도 던전 3 : 바닥 함정1



 "엘레나, 우에에엥"


 뭔가 질척거리는 액체에 둘러싸인 마녀가 양 팔을 들고 걸어오자, 정령사는 재빠르게 수인 검사의 등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여전히 안색이 안 좋아보이는 그녀는 검사의 등에 업혀있다. 검사가 돌아보자 그녀는 어서 피해달라는 뜻으로 손을 휘저었다.


 수인 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령사를 등에서 내려줬다.


 "우애엥... 엘레나... 함정의 방애... 걸려버렸어."


 철퍽, 하는 소리를 내며 마녀가 정령사의 몸을 끌어안았다. 종족을 떠나서 겉보기 만으로도 마녀가 좀 더 어려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의 키는 비슷하게 작았다. 마녀가 목에 대고 뺨을 부비적거리자 정령사의 몸도 질척거리며 젖어들어갔다. 그녀의 안색은 한층 더 창백하게 굳어졌다.


 수인 검사가 한 쪽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치젝(이름 확정x)은?"


 "저기... 저기 매달려 있어." 마녀는 여전히 정령사의 몸에 매달린 채 뒤쪽의 문을 가리켰다. 거기엔 척 보기에도 함정 있는 방처럼 생긴 구리문이 있었다.


 코볼트들을 무찌른 후 다른 일행의 냄새를 포착한 수인 검사는 정령사를 등에 업고 이동했다. 당분간 몬스터의 위협은 없을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그건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행 중 한 사람, 도적이 함정에 희생된 후였다.


 "저기, 저기 있어."


 "...누가 죽은 것처럼 울지 마."


  마녀가 훌쩍거리며 가리킨 천장엔 불평하는 표정의 다크엘프가 한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점액에 둘러 싸여 있진 않았지만, 그 광경은 온몸이 질척거려 침울해진 정령사의 기분을 풀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꺄하하하! 그게 뭔 꼴이야! 도적, 도적이라며! 꺄하하!"


 "시끄러!"


 다크엘프가 지지 않으려는 듯 매달린 채 무언가 외쳤다. 하지만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현재의 수모를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어보였다. 그럴 법도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일행과 갈라진 마녀와 도적이 이 방에 도착한 건 다른 두 사람이 코볼트와 싸우고 있을 즈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건 전형적인 함정 방이었다. 반대쪽에 똑같이 생긴 문이 있고 방 안은 텅 비어있다. 왼쪽 벽 끝에 달려있는 나무 손잡이 하나. 귀가 밝은 다크엘프 도적이 몸을 굽혀 바닥을 두드리자 빈 공간이 느껴졌다. 교본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바닥 함정이었다, 라고 도적은 생각했다.


 마녀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후 그는 멋들어진 움직임으로 뛰어올라 벽을 타고 달렸다. 마치 마법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나무 손잡이를 킥!


 그와 동시에 떨어져 나온 밧줄에 다리 한 쪽이 붙잡혔던 것이다. 얼얼할 정도로 꽉 매여있었다.


 저주가 담긴 물건, 단검으로도 썰리지 않는다. 그래서 "덫에 걸린 박쥐"처럼 되었다는 게 마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벽에 새로 열린 구멍에서 청녹색 슬라임들이 꿈틀꿈틀 가득 기어나왔다.


 "구해보려고 해봤는데 실패했어요."


 프로텍션(방어막)이 먹히지 않았다고 마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윈드 워커(바람 걸음)은?"


 "허공을 걷는 마법은 후반부 진입할 때 썼어."


 검사의 말에 정령사가 수긍했다.


 정령술과 마법은 시전자의 마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선 같지만 그 효율성과 융통성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정령술이 마력 소모가 큰 대신 규모와 형태에 제약이 적다면, 마법은 마력 소모가 적은 대신 쓰기 위한 횟수와 형태가 정해져 있다. 마녀 뿐만 아니라 마법사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대개 매일 미리 사용할 분량을 정해두어야 했다. 모험중엔 소위 영창이라고 불리는 의식을 치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늘 문제가 되는 건 공격 마법과 보조마법의 분배. 지금 상황에서 마녀가 쓰기 좋은 카드는 일행이 썩은 강을 넘어갈 때 사용했다.


 "저 녀석들 세지는 않은데 보호막을 넘어 흘러들어와요. ...엉망진창이예요..."


 '나까지 그렇게 될 건 없었는데.' 정령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건 됐고, 엘프가 왔으면 됐잖아."


 도적이 거꾸로 매달려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바람을 불러."


 "하! 어디서 명령이예요? 잔기술말고는 제대로 쓸 것도 없는 무능한 종족이."


 "뭐?! 지난 번엔 네가ㅡ!"


 "웃기시네! 그 지난 번에는 네가ㅡ!"


 클래식, 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엘프와 다크엘프 간의 익숙한 말다툼은 내버려 둔 채 수인검사가 마녀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아까 전에 코볼트들과 전투를 치렀거든. 대규모 원소술을 써서 마나가 바닥이야."


 "아, 그럼 조금 불안정한 상태겠네요."


 무리해서 한 명을 띄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가 불안정할 때 사용하는 마술은 언제 출력이 끊어질 지 모르는 위험이 있다. 잘못하면 슬라임탕에 거꾸로 처박힐 수도 있었다.


 "역시... 일단 폭발을 써야 할까요?"


 "으음." 수인검사는 이빨이 조금 드러난 턱을 쓸며 고민했다.


 이제 곧 던전의 보스다. 공격 주문들은 되도록 아껴두는 게 좋았다.


 "그냥 앞에서 야영하지? 마나 회복하게." 한바탕 벌이고 온 정령사가 여전히 조금 씩씩대며 말했다. "저건 저대로 두고."


 "흥! 그러시던가!" 다크엘프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을 따라 밧줄은 느리고 천천히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말은 저래도 거꾸로 매달린 채 하룻밤을 보내는 건 힘들다. 이젠 남겨진 식량도 거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는 전투를 앞두고 전력을 잃는다는 건 모두에게 위험하다.


 "하긴, 그렇긴 하죠." 정령사가 동의했다.


 수인 검사는 고개를 돌려 잠시 도도한 표정의 그녀를 내려다봤다.


 "어라? 혹시 저 얼굴에도 뭐 묻었어요?"


 "아니."


 마녀는 점액이 묻은 망토를 계속 뒤척이다가 이제 조금 체념이 됐는지 작게 한숨을 쉬고 생각을 시작했다.


 다크엘프 도적에겐 아무리 겹겹이 묶인 매듭도 풀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 기술로도 풀지 못했다면 밧줄에 걸려있는 건 명백히 저주였다. 마법적인 물건. 하지만 당장 다른 능력을 쓸 수 없다면, 스스로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법 했다.


 저주는 문장으로 된 마법(원망). 아무리 함정에 쓰였다고 해도 도구라면, 어떤 식으로든 사용방법이 있을 법 했다. 마녀가 새로 외쳤다.


 "도적 씨! 도구 감정 기술은 남아있나요?"


 "어? 응. 세 차례 남아있는데."


 그걸 밧줄에 써보세요! 하고 외치는 마녀의 말에, 도적은 허리를 굽혀 곧장 시키는 대로 했다. 마법적인 지식은 오래 산 자신이나 무능한 엘프보다도 그녀를 신뢰하고 있었다.


 "음." 이내 그의 머릿속에 밧줄에 둘러진 문장이 떠올랐다.


 도적은 허리를 펴고 매달린 채로 그 문장을 소리 내 외쳤다.



 「여기, 한 번 묶이면 풀리지 않고, 자를 수 없고, 태울 수 없는 매듭 있으라.」







다크엘프 남도적의 이름이라..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