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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던전 4: 함정 바닥 2



 「여기, 한 번 묶이면 풀리지 않고, 자를 수 없고, 태울 수 없는 매듭 있으라.」


 마녀가 말했다. "사실 제가 올라가서 마법 해제를 걸면 간단하긴 한데요. 으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문 낭비라는 점에서 똑같다.


 일행은 천장에 매달린 다크엘프를 물끄러미 올려다 봤다.


 "그러니까, 저 문장에 해당되지 않는 방식으로 풀면 되는 거지? 저 밧줄."


 "네."


 마녀는 좀 더 설명했다.


밧줄에 담긴 저주의 문장은 이렇게 나눌 수 있었다.


 여기ㅣ 처음 저주를 건 장소를 떠나면 해당되지 않는다. 이 방이나 천장에서 떨어지면 평범한 밧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묶이면 풀리지 않고ㅣ 마법적인 게 아닌, 손기술로는 풀 수가 없다.

 자를 수 없고ㅣ날붙이로는 자를 수 없고

 태울 수 없는 매듭 있으라ㅣ 불 속성이나 횃불로 태울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뒷부분은 자신의 해석이니 더 있을 수 있다고, 마녀는 덧붙였다.


 그러자 잠시 생각해 보던 수인 검사가 말했다.


 "간단하네."


 모두가 돌아보자 그가 말했다.


 "자르지 않고 「베어내면」 돼."


 "....뭐가 다르죠?"


 정령사가 묻자, 그는 자세를 바로하더니 카타나를 가로로 세워 든 채 얘기를 시작했다.


 정신과, 념과, 물건을 자르는 것, 베는 것. 죽이지 않고 해치우는 일의 차이점.


 맑고 노란 눈동자로 설명하는 그의 모든 얘기를 옮겨적진 않겠다. 이야기를 뿌듯한 표정으로 정리한 그가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칼을 검집에 집어넣자 마자 정령사가 돌아서서 외쳤다.


 "들었어ㅡ? 자르지 말고 베어 봐ㅡ!"


 "외치지 마! 어차피 다 들린다구!"


 그렇게 말한 다크엘프는 허리를 굽혀 검은 단도를 밧줄로 몇 차례 때리며 말했다.


 "벌써 얘기하는 중에 해봤어! 그렇게 생각해도 안 잘린다구..."


 어떻게 자르지 않고 벤다는 거야? 말하며 약간 히스테릭하게 밧줄을 치기 시작한 도적을 무시한 채 정령사가 말했다.


 "안 된다는데요?"


 "으음..." 수인 검사는 턱을 쓸며 도적 쪽으로 걸어가 무언가 더 진지한 태도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자르지 않고 베어낸다」는 마음가짐은 도적에겐 수수께끼 같은 저주의 주문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마녀가 곰곰히 생각하다 지팡이를 흔들며 말했다. 점액질이 조금 튀었다.


 "아, 저기 풀지 않고 뜯어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더니 돌아서 도적을 향해 외쳤다.


 "도적 씨ㅡ! 밧줄에 매달린 천장 부분을 뜯어버리면 어때요?!"


 '귀 아파..." 도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꾸로 매달린 채 발을 천장에 붙였다. 양 손으로 밧줄을 잡고 힘껏 끌어당겨 봤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늑대 수인도, 힘 센 전사도 아니었다. 꽤 두꺼운 밧줄을 힘으로 끊어내는 것 역시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영하자니까..." 정령사가 중얼거렸다.


 "그래두요..." 마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도적을 올려다 봤다.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수인 검사가 검의 날밑을 엄지로 쳐 발도 자세를 잡았다.


 "좋아. 내가 뛰어올라가 한 번 베어보겠어."


 나는 슬라임에 더러워지는 것 쯤 괜찮으니까, 하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자르지 않고 「베어내면」 된다는 걸 증명하는 일에 마음이 꽂힌 것 같았다.


 "아, 그건 위험해." 도적이 매달린 채 외쳤다. 슬라임이 가득한 바닥을 가리킨다.


 "약한 슬라임은 눈속임이고 무게가 더 늘어나면 바닥이 꺼지게 되어있어. 아마 당신처럼 한 번에 점프할 수 있는 무거운 종족을 노린 거겠지. 파티를 한 번에 전멸시킬 수 있다면 더 좋은 거고."


 검사가 결국 칼을 닫자, 토의가 다시 이어졌다.


 마녀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있었다. 도적은 이제 꿈틀거리며 다시 매듭을 풀어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양팔을 쭉 뻗은 채 맥이 풀렸다. 밧줄이 다시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 어딘가 명상을 위한 기구 같기도 했다. 마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거꾸로 양 팔을 뻗은 다크엘프 도적이 아무래도 답답한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이딴 매듭, 마법만 아니면 몇 번이든 풀 수 있는데."


 "아!"


 그 말을 들은 마녀가 순간 하늘색 눈을 번뜩이며 손가락을 튀겼다. 점액 때문에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튀겼다. 그걸 본 정령사는 알고 있었다. 그 제스쳐는 마녀가 정답을 찾았을 때 하는 행동이다.


 "오, 뭐야?"


 정령사가 묻자 마녀는 싱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도적 씨는 원래라면 저런 매듭 몇 번이나 묶여도 풀 수 있었죠?"


 "응? 뭐, 그야..." 정령사는 중얼거렸다. 도적의 발에 묶인 매듭은 그녀가 보기에도 평범해 보였다. 한 번 꼬아서 고리로 집어넣은 것. 인정하기 싫지만 여지껏 다크엘프가 풀지 못한 게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마녀가 천장을 향해 외쳤다. "알았어요! 지금 바로 풀 수 있어요! 도적 씨 라면요!"


 도적은 큰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지만 금세 안색을 바꿨다. 헛기침을 하고서 물었다.


 "어떻게?"


 "헤헤." 마녀는 한 손가락을 들고 외쳤다. "그 매듭은 「한 번 묶이면」 풀리지 않는거예요."


 물론 도적은 곧장 알아차리진 못했다. 옆에서 고민해 보던 수인 검사도 마찬가지. 그래도 함정에 관해선 두뇌회전이 빠른 도적은, 핑크 머리 마녀의 장난끼 어린 미소를(외모 확정X) 곰곰히 바라보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아아." 도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


 "그죠? 도적 씨는 얼마든지 단번에 풀 수 있죠? 몇 번이나 묶여도 말이예요!"


 도적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의 정령사의 얼굴을 보란듯이 한 번 힐끔 쳐다봐준 후, 몸을 비틀어 밧줄을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밧줄은 커다란 진자운동을 시작한다.


 그는 그대로 밧줄이 묶이지 않은 발로 벽을 박차올랐다. 한 차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끝에, 도적은 밧줄을 붙잡고 바르게 섰다. 그러더니 여전히 밧줄이 묶여있는 발목을 휘휘 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매듭을 푼다기 보다는 마치...


 "아!" 정령사가 탄성을 질렀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하지만 도적은 씨익 웃고서 스스로 매듭을 더 해, 이젠 「두 세번 묶인」 매듭을 한 번에 풀어냈다. 겉보기엔 마술 같지만 도적들에겐 전형적인 기술이었다.


 "그렇군." 수인 검사가 어금니를 내보이며 웃었다. "풀리지 않는 건 「한 번 묶였을 때」 뿐인 거야."


 도적은 발에서 풀어낸 밧줄을 손으로 붙잡고서 기울어진 벽을 달려나갔다. 날랜 다크엘프가 반대편 문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두꺼운 구리문을 양 손으로 당겨 열자, 함정 바닥은 한꺼번에 꺼지더니 슬라임들이 떨어졌다. 아래에 있는 날카로운 창칼에 박혀 푸슉, 푸슉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돌바닥으로 돌아왔다.


 도적이 열린 문을 붙잡고 시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안전해. 이런 함정들은 반대편 문을 열면 사라져. ...전형적이지."


 "칫." 정령사 엘프는 툴툴거리며 걸어갔다. "그래봤자, 실수한 건 변함 없는 걸."


 문가에서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마녀는 서로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다 결국 또 하나 수수께끼를 깨우쳤다 싶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수인 검사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두드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마녀가 올려다 보며 묻자, 검사는 두드리던 손을 내리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반대편 문을 열면 함정이 풀리는 거였다면, 처음부터 우리가 문을 열면 되지 않았나 싶어서."


 "......"


 마녀는 미소 지은 얼굴인 채로 잠시 동안 살짝 굳었다. 


그녀가 여전히 투닥거리는 두 엘프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검사를 향해 검지를 올리고 말했다.


 "비밀로 하죠."


 "음?"


 "비밀로 하죠." 마녀가 당부하며 말하고 걸어갔다.


 수인 검사는 딱히 그래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마녀의 뒤를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크엘프는 아주 귀가 밝은 종족이다.


 도적은 못 들은 척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