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주의/ 야함주의/ 스압주의)



 ◇


 아침에도 창고 문을 열어보지 않은 채 그대로 학교로 나왔다. 등교길에는 유치한 가방을 매고 있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길을 따라 자라 있는 나무에는 붉은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초등학생이 모두 붉은색 널직한 스냅백을 쓰고 등교를 해서, 언제나 큰 성냥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미하엘!"


 걸어가는데 옆 자리의 여자아이가 내 이름을 붙으며 달라붙었다. 이 세계에선 드물게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반 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키도 크고 성숙한 아이였다. 남자애인 나보다도 좀 더 키가 크고 일찍부터 여자티가 났다. 그래봤자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어리숙해 보일 뿐이었다.


 여자애는 내 옆을 빙글빙글 맴돌며 이것저것 얘기를 걸었다. 어제 집에서 만든 오무라이스가 어땠으며, 새로 태어난 동생이 젖병을 가지고 어쨌으며, 요즘 새로 배우는 수학이 어떻거나 하는 아이다운 터무니없는 얘기들이었다. 이전 세계에서 여자의 끊임없는 뒷담화와 명품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도 무료했지만 이 정도 수준까지 내려와서야 대해줄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 나름의 연기력을 발휘해 여태까지 잘 지내곤 했다. 성적도 마법이나 운동도 언제나 1등. 모두에게 이쁨받는 우등생 연기를 나름대로 잘 수행해둔 셈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자란 후에 최대한 높은 지위를 얻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엔데 군! 오늘 이상해!"


 그런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검은 머리의 여자 애가 뿌루퉁한 얼굴을 해보였다. 어느새 학교의 세번째 쉬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옆자리의 여자애는 내게로 몸을 붙이고 뭔가 더 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표정을 바꿀 기분도 들지 않았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여자애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예쁘고 덜 자란 여자의 얼굴이었다. 소녀는 내가 빤히 바라보자 잠시 얼굴을 돌려 딴청을 피우더니, 조금 뺨을 붉힌 채 내 눈치를 보며 훔쳐보기 시작헀다. 결국 당황했는지 다시 의미없는 얘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있지.... 나, 어제는-"


 "너는." 내가 무료한 눈을 한채 물었다. "내가 좋니?" 


 여자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겨웠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묵직한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나에 대해서 어떤 걸 아는데?"


 "아, 알아...!


 "뭘?"


 내가 묻자 검은 머리의 소녀가 더듬거리면서 조곤조곤 말했다.


 "에, 엔데 군은. 친절하고, 가끔씩 얘기가 없어져... 하지만 다시 금방 잘 웃어주고 뭐든지 잘하고, 가끔씩 무섭지만... 엄청 착해... 어른들도 친구들도 다들 좋아하니까..."


 "너도 좋은거냐?"


 내가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목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든지 할 수 있니?"


 "응?"


 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할 수 있냐고."


 "응..." 여자애가 고개를 돌린 채 끄덕였다. "엔데 군이 좋아하는 거면..."


 나는 그 어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손을 들어 그녀의 턱에 손 끝을 대고 내 쪽을 향해 보도록 옮겼다. 수줍은 듯이 순진하게 내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그 애의 뺨을 쳐 올렸다.


 "웃어봐."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이 얼어붙은 그 애에게 말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뺨을 쳤다.


 "내가 좋으면 어디 웃어보라고."


 철썩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함께 교실 안엔 정적이 감돌았고, 여자애가 한 발 늦게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렸다. 종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울음소리를 들은 여담임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뺨이 발개진 채 울고 있는 소녀와 그녀를 어르고 달래는 여교사를 조금 지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닌데.'


 나는 어느새 가만히 머릿속에 인어와 나눈 그녀의 혈액이 섞인 입맞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여자애와 함께 선생에게 불려 나갔지만, 더 귀찮아지기 전에 원래의 나이대에 맞는 연기를 시작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차린 듯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훌쩍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교사가 질문을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양손을 눈에 대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 둘일 뿐이었다.


 나는 그 여자애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어찌 할 바를 몰라 손을 휘둘렀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나를 싫어하지 않는 여자애가 훌쩍이며 내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 여교사는 오히려 여지껏 성적이 너무 높고 묘하게 어른스러웠던 애 같은 일을 저지르자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서로 화해의 의미로 손가락을 거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 상황은 그걸로 종료되었다.



 ◇


 질리지도 않는지 재잘거리는 검은 머리의 여자애와 등굣길을 함께했다. 여자애는 뺨을 맞은 건 잊어버렸는지 내게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아 웃으면서 또 적당히 말도 안 되는 내 생활을 지어내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줬다.

 소녀가 손을 흔들면서 다른 길로 떠나가자 나도 화해한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한 손을 흔들어줬다.


 그 애가 돌아서자마자 표정을 무표정하게 지우고 팔을 내렸다. 그리고 인어가 들어있는 창고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른 오후, 길게 바닷가가 이어진 길이었다. 철썩이면서 돌로 쌓인 방파제로 높지 않은 파도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갈 뿐이었지만, 어느샌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걸음이 빨라졌다. 가방끈을 쥐고서 처음에는 조금 빨리 걸어갈 뿐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헐떡거리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악, 하악." 


 파도가 치는 바닷길을 나는 온힘을 다해 달려갔다. 아직 아이에 불과한 심장이 터질 것까지 뛰며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바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서 나의 무덤으로, 나의 관棺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나의 것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야 다시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눈으로 파란 지붕의 창고가 보이기 시작하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느리게 할 수 있었다. 너무 숨이 차올라 잠시 무릎을 쥐고 진정한 후에 걸어가기 시작했다. 갈림길에 들어서기 전 편의점에 들러 인어가 먹을 것들을 구매했다. 경험에 따르면 회복의 기적은 허기마저도 해결해 주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먹을만한 것들을 몇 개 용돈으로 구매했다.


 창고의 무거운 철문을 힘을 들여 열었다.


 끼기긱, 하는 소리가 나고 창고 안에 빛이 들어왔다.


 연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인어는 커다랗지만 좁다면 좁은 수조에서 혼자 헤엄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마치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오히려 어제 일을 통해 훨씬 더 가까워진 것처럼 인간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로 친근하게 웃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철문을 닫고 봉투를 쥔 채 걸어갔다.


 물 속에서 양 손을 떼고 그녀는 기분 좋은 듯 지느러미를 찰팍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딘가 가슴 속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걸어갔다. 그리고 수조 앞에서 봉투를 떨어 트린 채 웃고있는 인어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퍽, 퍽 하는 소리가 나며 그녀가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나는 속에서 몽글거리는 알 수 없는 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를 때렸다. 나는 얼굴을 가리려는 그녀의 팔을 쥐고 똑바로 말했다.


 "치워."


 인어는 팔은 커녕 온 몸을 벌벌 떨고 있었지만 내 뜻은 전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 자신의 맨가슴과 양 팔을 감싸 안았다.


 퍽, 퍽. 인어의 예쁘장한 얼굴을 후려쳤다.


 소년의 악력이지만 온 힘을 다해서 때렸다. 인어는 그러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목을 꼿꼿이 들고 있었다. 온 몸을 떨면서도 내가 

내미는 폭력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다. 거기에는 공포도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한 비겁함도 없다. 퍽, 퍽 철퍽, 철퍽. 살을 때리는 메마른 소리는 이내 터져나온 피와 맞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지느러미 때문에 철퍽거리는 소리로 변해간다.


 후려치던 주먹이 눈에 맞았는지 인어는 비명을 지르며 눈가를 감싸 쥐고 내려앉았다.


 "허억, 허억."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행태를 지켜봤다.


 인어는 잠시 얼굴을 숙이고 헐떡거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혈관이 터졌는지 반이 넘게 감긴 한쪽 눈에서 걸쭉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호흡을 진정하고 다가가 소년의 손으로 여지껏 본 적 없이 멍이들고 엉망이 된 뺨을 만졌다. 그러자 인어가 주저 앉은 뺨과 터진 입술로 미소지으면서, 자신의 물의 젖은 양 손으로 내 피 묻은 손을 감싸쥐었다.


 하아, 하아. 인어는 작게 헐떡이면서 나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다음의 행동이 뭔지, 다음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이대로 인어를 죽여버리고도 싶었고 오는 동안 그렇게 보고 싶어졌으면서도, 보자마자 저지른 내 폭력이 후회되기도 했다. 


 ...후회?


 나는 망가진 인간이었다. 이 인어를 다루기 위해 생각했던 행위들은 아직 대부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내겐 그녀의 생명을 끊임없이 이어 붙일 수 있는 회복의 기적이 있었다. 고장난 내가 다시 태어나면서 신에게 받은 새로운 저주였다. 아니 그건 악마였을까? 어느 쪽이든 내가 사용할 방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쾌락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했다.


 나는 그저 무표정하게 해야 할 작업을 하는 것처럼 인어의 얼굴에 마법을 걸어 되돌렸다. 이런 얼굴으로는 앞으로의 행위들에 흥분과 쾌락이 덜 하니까.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인어는 자신의 얼굴에 고통이 사라지는 걸 느끼는 지 가만히 두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의 불빛들이 모두 사라지자, 자신의 새하얀 얼굴을 만져보더니 기뻐서 내게로 튀어올랐다.


 물에 젖은 팔과 손으로 내 몸을 있는 힘껏 끌어 안았다. 옷 너머로 젖은 맨가슴과 살갗의 매끄러운 감촉들이 느껴졌다. 인어는 재회의 기쁨까지 더한 듯 연분홍빛 젖은  머리칼을 내 귓가에 비벼댔다.


 나는 팔을 들어 벌거벗은 그녀의 등을 안으려다가 그러지 않고 다시 내렸다.


 그러든 그러지 않든 인어는 벌거벗은 몸으로 나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서 이 어리석은 생물을 어떤 식으로 소모해야 할 지, 어떤 식으로 고통을 줘야 할 지. 어떻게 해야... 익숙한 절망을 줄 수 있는 것인지. 나의 의미를 조용히 되뇌이고 있었다.


 그 날의 행위는 그녀가 슈크림빵을 먹고, 늘 좋아하던 마카롱을 먹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수조에 기댄 채로 도시락을 챙겨 먹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먹고 있던 분홍색 마카롱을 들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나는 그녀가 반쯤 먹은 마카롱을 손으로 가져왔다.


 인어의 입가에는 머리색과 구분되지 않는 작은 빵조각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붙잡고 거칠게 수조에서 끄집어냈다.


 아앗, 아아. 아무래도 아픈 건지 인어는 신음성을 흘리며 물 속에서 끌려나왔다. 철퍽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열대어처럼 애처롭게 퍼덕이고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고 들어서 인어의 얼굴을 쳐다봤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약하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엔, 여전히 공포가 없었다. 어지간한 폭력에는 완전히 무감각해진 건가. 나는 그녀를 따라 미소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순종적인 여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푸는 건 싫었다.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인어의 머리를 질질 끌고 작업대 쪽으로 걸어갔다. 인어는 내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물에 젖어서 자꾸 미끄러졌다. 나는 작업대 옆 조그만 탁상 위에 있는 도구들 중 대바늘만한 송곳을 쥐고서 그녀의 안구에다 찔러넣었다.


 아아아앗ㅡ 인어 특유의 운율이 있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송곳으로 찍힌 자신의 눈가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온 몸을 비틀어댔다. 벌거벗은 채 꿈틀거리면서 튀고 있었다. 고통으로 가득 차 비틀거렸다.


 나아아, 나아아- 머리칼을 쥐고 들어올리자 인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눈가에 대고 있었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은 엉망이었다. 그녀가 떨면서 푸른색 한 쪽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 봤다.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송곳을 뽑아내고, 곧장 다른 쪽 눈을 찔렀다.


 내 손을 거칠게 쳐낸 인어가 바닥에 떨어져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처럼 몸을 비틀어댔다. 한 쪽 눈에는 송곳이 박힌 채 자신의 양쪽 눈을 부여잡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고서, 고통으로 가득 찬 그 몸부림을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인어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헐떡이면서 허리를 말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댔다.


 찰싹, 하고 인어가 자신의 손으로 내 손을 쳐냈다. 으아아아, 하고 울면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 손목을 꽉 쥐고서 얼굴에서 떼어냈다. 눈에서 송곳을 뽑아낸 후 손을 눈가에 갖다댔다. 출혈이 멈출 정도로만 아주 약한 치유마법을 걸었다.


 연약한 빛이 비췄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극적인 회복 효과는 없었다. 인어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애매한 치유의 빛은 상처를 느리게 회복하면서 상처부위를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간지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하얀 뺨을 긁어댔다.


 어설픈 치료가 끝나고 하아, 하아. 인어는 이제 지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치유 마법으로 혈색은 돌아왔지만 정신적 피로는 낫게 하지 않는다. 두 눈은 피가 멎었을 뿐 흉한 살점으로 덮여 있었다. 바늘로 눈꺼풀을 대충 기워놓은 꼴이었다.


 나는 고통의 잔향에 빠져있는 벌거벗은 인어의 몸에 손을 갖다댔다. 그녀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닿은 손길에 하얀 몸을 의미없이 떨었다.


 아ㅡ 아ㅡ 그런 와중에서도 무서운지, 나를 껴안기 위해 벌려오는 팔을 쳐내고서, 얼굴에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쉿. 조용히 해."


 말을 알아들었는지, 입을 다물고는 훌쩍거리는 걸 내버려둔 채로 다시 인어의 몸을 훑었다.


 벌거벗은 몸은 처음엔 자극보다는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긴장 때문에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흠칫 흠칫 떨었다. 나는 그저 연약한 배를 거처 쓸어 가며 인어의 아랫구멍으로 손을 내렸다.


 조금 전까지 물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인어의 가랑이는 차갑고 축축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음핵과 구멍 근처를 만졌다. 인어는 날카로운 자극 때문에 추운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비웃으며 그녀의 성기 근처와 벌거벗은 가슴을 계속해서 더듬었다.


 조금씩 호흡이 고요해졌다. 


 인어의 몸은 금세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몸인지 성적인 쾌락 앞에선 고통 마저도 뒷전인 것인 모양이었다. 잠시동안 유두를 잡아당긴 것 만으로 젖가슴은 따뜻해졌다. 한 손으로 만지고 있는 진홍색 성기가 새로 젖어가는 걸 느끼며 양팔로 그녀의 몸을 일으켰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지 축 쳐져 있었지만 인어는 얌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바닥을 짚은 채 앉았다. 그렇게 매끄러운 하반신을 늘어뜨린 모습은 언젠가 본 일이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검은 바위 위에서 진주빗으로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연분홍빛 머리칼을 잡고 내 성기를 인어의 입속에다 밀어붙였다. 그녀의 눈을 뚫을 때부터 잔뜩 추하게 발기한 상태였다.

 으, 으읍! 인어는 처음엔 앞이 안 보이는 와중에 갑자기 뭔가가 입속에 들어오자, 한 손으로 내 몸을 밀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무시한채로 입술에 비벼대자 이내 저항없이 양 팔을 내렸다. 그녀도 점차 자신의 입에 들어온 게 어떤 건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아랫구멍을 처음으로 쑤셔댔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상처 부위의 간지러운 고통 속에서, 입으로 남성의 것을 받아들였다.


 색이 짙고 붉은 입술 속으로, 소년의 것이지만 여전히 천박하기 그지없는 남성의 성기가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인어의 입술은 속살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담담히 찔걱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인어는 아무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씩 이빨이 귀두에 닿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코를 손가락으로 세게 튕겼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그녀는 금세 학습하고서 턱을 벌린 채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세로 내 물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찔꺽, 찔꺽, 단정한 턱을 따라 젖은 침이 흘러 내렸다. 인어는 내 물건을 목구멍까지 받아들였다. 치아가 닿지 않게 하기 위해 하얀 뺨은 추하게 일그러진다. 앞머리를 쥔 채 나는 잠시동안 잔잔한 쾌락을 느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목을 움직일 줄은 몰랐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저 이가 닿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벌린 입구멍에다 내 성기를 박아넣았다.


 입에서 뽑아내자 애액인지 침인지 알 수 없는 걸쭉하고 투명한 액체가 귀두 끝에서 인어의 입술까지 길게 이어졌다. 인어는 입술을 내민 채 숨을 몰아 쉬면서 입가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너도, 이게 좋은 거냐?"


 나는 손을 들어 인어의 눈구멍 가까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인어는 흠칫 몸을 떨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여전히 침으로 번들번들한 입가로 가만히 내 손길을 느끼고 있다.


 녀석의 구멍은 이미 흘러나온 애액으로 질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손으로 위로하는 일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 구멍에 스스로의 손을 갖다 댄적은 없을 것이다. 자위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것이다. 경험해 본 성적인 행위는 모두 내가 내려 준 고통 뿐이었다.


 "...넌 음란하기 짝이 없는 년이야."


 아무리 치료한다고 해도 그 고통과 두려움은 그대로일 터였다. 나는 그게 즐거우면서도 어딘가 끊임없이 불쾌하기도 했었다. 처음 관계를 나눈 이후로 이 여자는 계속 나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여자가 나를 줄곧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을 느끼는 것 같은 조바심.


 "....웃기지 마."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일어나 질질 끌고 작업대로 끌어 올렸다.


 눈 먼 표본처럼 널브러진 인어의 양 팔을 묶었다. 라텍스처럼 매끄러운 꼬리도 튀어오르지 못하게 새로 묶었다. 인어의 표정은 멍해 보였지만 어딘지 무언가를 기대하기 시작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아래쪽의 구멍은 이미 애액으로 번들번들했다. 조명을 비추면 기대로 차 일렁거리는 것까지 볼 수 있을 법 했다. 두 눈에 구멍까지 뚫리고서도 쾌락을, 내가 줄 고통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어디까지 합을 맞출 수 있는 지 보자."


 실수로 죽여버리더라도 나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나는 남은 빛이 그녀의 뚫린 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끔 검은색 부드러운 천을 꺼내 그녀의 두 눈을 가려 묶었다. 젖은 연분홍색 머리칼을 흐트린 채 묶여있는 인어는 정말로 무언가의 표본처럼 보였다.


 끄트머리가 밝게 짙은 하얀 가슴도, 정말로 부러질 듯 가는 허리도 인간의 것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고개를 기울인 채로, 이 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육체를 갖고 있는지를 새삼스레 느꼈다. 그러나 그런 건 어디까지나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인어의 입술은 불안으로 낮게 벌어져 있다. 아래쪽의 입술도 그랬다. 나는 거기에 순순히 응해줄 생각은 없었다.


 작업대에 놓여있는 것 중 가장 투박한 물건으로, 스테인리스제 손도끼가 있다. 손바닥 만한 크기에 매끄럽게 윤이 났다. 너무나 탐이 났기 때문에, 몇 년 전에 어딘가에서 훔쳐온 것이었다.


 나는 검은 손잡이를 쥐어들고 그대로 인어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앗, 아아아ㅡ


 이 창고에선 처음으로, 두껍고 날카로운 핏줄기가 옆쪽으로 흩뿌려졌다. 그 색은 여태껏 봐왔던 가는 핏줄기와는 다르게 비현실적으로 붉은색이 짙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인어는 온 몸을 비틀어댔다. 이번에는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비로소 그녀의 온전한 공포가 전해지는 듯 했다.


 팔은 아직 절반도 썰리지 않았다. 인간의 팔은 가는 여자의 팔이어도 쉽게 잘리지 않는다. 소년의 힘으로라면 더욱 그랬다.


 덜 썰린 오른 어깨에다가 다시 무기질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식기처럼 밝은 은빛 도끼날이 살갗을 파고 내려간다. 그 아래에는 새빨간 살점이 들어차있었다. 배를 깔고 앉은 나로선, 해체하는 사람만을 위한 고기의 비밀상자 같았다.


 덜컹, 덜컹. 인어가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푸슈슉, 하고 아랫쪽에선 패닉에 빠진 채 오줌을 뿜어대고 있었다. 나는 얼굴에 튄 핏줄기를 손등으로 닦고서 다시 두 세번 더 도끼날을 내려쳤다.


 날 끝에서 단단한 뼈를 부수는 감각이 걸리더니 투툭하고 남은 근섬유도 뜯겨져 나갔다.


 이제 핏줄기는 콸콸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인어는 몸을 부들거리면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의 여성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쇼크와 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도끼를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기력을 북돋우는 마법과 중급 치유마법을 걸었다.


 강도를 조절한 회복의 기적들은, 그저 상처만을 봉합하고 고통을 가져가주진 않는다. 인어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둘 뿐이다. 

 인어는 눈물이 맺힌 채 고개를 바닥을 향해 돌린 채 경련하고 있었다. 혀도 내민 채로 침과 분비액을 질질 흘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처가 벌어졌는지 눈가에선 새로 피가 섞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바들거리는 그녀의 뺨을 쓸다가 다시 도끼를 왼팔에 내리찍었다.


 하악, 하악! 새로운 통증에 인어가 튕겨오르는 듯 몸을 떨었다. 내가 배를 깔고 앉는데도 젖가슴을 덜렁거리며 내 몸을 싣고 튀어올랐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붙잡은 채로 다시 여러번 도끼를 내리찍었다.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녀석의 아랫쪽에서 추한 분비물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어는 고통에 진저리치며 고개를 흔들며 발광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새하얀 악어처럼 꿈틀거리는 인어를 향해 중얼거렸다. "이젠 공포를 내놔."


 도끼로 곧 다른 한쪽 팔의 뼈와 근육도 마저 끊어냈다.


 내 벌거벗은 사타구니 아래로 고통으로 인해 모든 내장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팔의 잘린 단면으로 퓨슉, 퓨슉 소리를 내며 핏줄기가 튀어오르고 있었다. 인어는 이렇게 많은 피를 뿜고도 살아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닥에 혈액을 뿜으면서 온몸을 비틀었다. 소리를 지르다 못해 목이 쉬는 바람에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 운율따윈 없다.


 하지만 이곳은 동떨어진 관棺이었다.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나는 어디까지나 그 비명을 들으며 정욕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나는 소년의 얼굴로 미소지었다. 내 성기는 여지껏 보지 못한 강도와 크기로 추하게 발기해 있었다. 끄트머리에서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가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터질 듯한 내 것을 잡고 잠시동안 경련하는 인어의 몸을 내려다봤다.


 인어가 흘린 피는 이제 작업대 아래에서 질척이다못해 찰랑거리고 있다. 도끼를 집어던지자 마찬가지로 바닥에선 철벅 하는 질척한 소리가 났다. 집중해서 치유마법을 걸고 나자 대부분의 고통은 사라졌는지, 인어는 간헐적인 떨림 외에는 경련하는 걸 멈췄다.


 그러나 모든 기력을 잃어버렸는지 축 늘어져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양 팔이 잘린 채로 엉겨붙은 상처가 붙은 인어의 알몸을 조립하다만 구체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눈 아래에는 피가 섞인 눈물자국과 거뭇한 흔적이 생겨서 퇴폐적인 화장처럼 보였다. 그녀의 하얀 알몸과 벌거벗은 내 몸 모두 질척한 핏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연분홍빛 머리칼은 고통에 의해 흘린 땀으로 질척거리고 있다.


 인어는 끊어질 듯 호흡을 내쉬더니 한 차례 몸을 떨었다.


 핏기가 사라져 가는 마른 입술이 움직여 무언가 전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비웃었다. 어차피 인간의 말도 하지 못하잖아, 그러면서도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자 인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내 뺨에다 입을 맞췄다.


 나는 잠시 얼어붙은 채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인어는 이제 다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옆을 바라보며, 힘겹게 헐떡이고 있을 뿐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혀를 꺼내어 땀에 젖은 하얀 알몸을 혀로 핥아내기 시작했다.


 어디든 인어의 몸에선 상처에서 튄 피냄새가 났다. 목에서부터 혀끝을 세우고 끈적한 궤적을 남기며 인어의 가슴골을 따라내려갔다. 아래쪽에 가까워질수록 짠맛이 강해졌다. 그렇게 많은 피를 쏟았음에도 인어의 몸은 따뜻하게 맥동하고 있다. 살갗 아래를 흐르는 혈액을 느낄 수 있었다.


 인어의 몸을 따라 자연스레 가랑이 사이로 내려갔다. 인어는 축 처져 지친 몸이었지만  혓바닥이 클리토리스에 닿자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는 눈동자만으로 그녀의 맨가슴을 올려다보며, 한 손을 뻗어 회복 마법을 걸었다. 그것으로 조금 기력을 되돌려 줄 생각이었다.


 마법을 거는 동시에 꾸준히 혓바닥 아래쪽으로 그녀의 음핵을 핥아주자, 실제로 조금씩 반응이 달라져 왔다.


 선홍빛 보기 좋은 여자의 구멍이 새롭게 따스해졌다. 이전에 맡은 적이 있는 신선한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팔이 잘린 인어는 어느새 아까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무척이나 민감할 것이다. 누군가 이 부분에 손을 댄 것은 어제가 처음, 혀가 닿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미 성관계는 나눴지만 타인의 뜨거운 숨이 직접 사타구니에 닿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오줌과는 성질이 다른 액체가 흐르기 시작한 날개를 꼼꼼하게 혀 끝으로 핥았다. 구멍 속으로는 집어넣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은 아니었다.


 회복의 기적으로 인해 기력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인어가 묶인 채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유영하는 것처럼 아랫도리를 천천히 내맡겼다. 어른 여성만한 육체가 내 조그마한 혀끝에 지배당해간다. 부드러운 조바심에 몸을 맡기듯 소리를 질렀다.


 아앗, 아아-


 눈을 들자 검은 안대를 쓴 인어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안을 혀로 끄집어 내듯이 휘감았다. 안쪽에서 끊임없이 따뜻한 액이 수도를 튼 것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읏, 으으윽


 인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물고 허리를 비틀었다. 쾌락이 쌓이고 쌓여서 내 하반신 역시 마비된 것처럼 얼얼해졌다. 그래도 나는 그녀 쪽이 더 고통스럽도록 고집스럽게, 상냥하게 여자의 안쪽을 핥고 또 입술로 깨물었다.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인어는 고개를 위쪽으로 바싹 젖힌 채 새로 경련을 일으키듯 지친 몸을 꿈틀거렸다. 마침내 나 역시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까지 호흡이 차올라서, 오른손으로 그녀의 음핵을 쥐어뜯으며 허리를 일으켰다.


 인어의 몸이 튕겨 올랐다. 나는 튀어오른 허리를 그대로 손으로 붙잡고 발기한 성기를 몸 속에다 쑤셔넣었다.


 아아아아ㅡ 인어는 흐느끼면서 하얀 등을 펼쳤다. 그 몸을 억지로 힘으로 찍어 누르면서, 허리를 당겨 반복해서 내 물건을 쑤셔넣는다.


 안쪽의 선홍빛 살점들이 성기에 부드럽게 얽혀들어왔다. 살로 꽉 찬 공간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얼얼한 감각. 미지의 물체를 밀어내듯한 저항감. 쾌락에 마비되는 것처럼 아랫도리의 감각이 사라졌다. 나는 집중해서 동작을 반복했다. 템포를 잃지 않기 위해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아아, 아아아. 팔이 잘린 채 꿈틀거리는 여자의 몸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상반신에 튀었던 핏자국은 내 타액과 그녀의 땀에 뒤섞여 대부분 씻겨 나갔다. 새하얀 피부가 불빛에 비쳐 음란하게 번들거렸다.


 하지만 모자랐다. 다른 인간은 몰라도 나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아. 더 많은 고통을, 절망을 내게 줘.


 나는 꾹 참고 허리를 흔들면서 옆에 있는 탁자를 빠르게 더듬었다. 보지 않고 뒤졌기 때문에 날카로운 도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관없었다. 나는 있는대로 손에 잡히는 것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단단해진 물건을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에 박아넣으며 눈 먼 여자의 얼굴을 본다. 인어는, 하나의 아름다운 벌레처럼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한 손으로 연약한 배를 문지르며 움켜쥐었다. 군살이 하나도 없는 여린 여자의 피부였다. 간단하게 뚫릴 수 있는 인간과도 같은 급소였다. 치켜든 흉기를 아래로 내리쳤다.


 크헤엑,


 찌르고 보니 내 손에 들려있는 건 카람빗 나이프였다. 갈고리처럼 생긴 칼날을 지닌 반달모양의 작은 나이프. 포획한 사냥감의 뱃가죽을 찢고 벗겨내기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물건이다.


 명치를 찢는 고통에 인어는 들썩이며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음부를 쑤셔박히는 쾌감과 구분되지 않는지 스스로 아랫도리를 바싹 붙여왔다. 아니면 나의 착각일 뿐인가? 그 동작으로 인해 스스로가 빠르게 추악한 절정을 향해 기어오르는 걸 느끼면서, 나는 그대로 허리를 치켜 들었다.


 동시에 인어의 젖가슴을 꽉 붙잡는다.


 그리고 동시에 손잡이를 꽉 쥐고 운전대를 당기듯 나이프를 아래로 당겼다.


 앗, 아앗 아아아ㅡ!


 인어의 몸은 말 그대로 몸을 비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새하얀 여자의 배가 열리며 안에 있는 것들이 붉은 꽃처럼 벌어졌다. 색이 구분되지 않은 채 오로지 빨간색이었다.


 빨간색, 빨간색. 갈고리처럼 된 작은 칼날이 그 안의 내장이 상하지 않을만큼 정확하게 뱃가죽을 찢어 놓은 럿 같았다. 마치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처럼.


 본래라면 음모가 자라있어야 할 곳까지 강제로 벌려진 인어는 고개를 거칠게 내저었다.


 패닉으로 기절하거나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고통이었지만, 치유의 마법이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여전히 모든 걸 같은 온도로 느끼고 있었다. 벌어진 틈새로 나온 비릿한 액체가 흘러내리는데도 더 힘껏 거칠게 밀어붙이는 내 물건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저주받은, 주먹 하나만한 크기의 살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우에에엑, 히끅, 히끅ㅡ 인어는 입으로 하얀 분비물을 토해내더니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검은 천으로 가려놓았지만, 안구가 남아있었다면 분명 어딘가로 돌아가 있겠지. 나는 배를 가른 손을 그녀의 뱃속으로 집어넣어서 마음대로 헤집어 놓았다. 그녀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인어의 몸 속은 손이 아플 정도로 뜨거웠다. 어떤 것이 어떤 건지 구분할 수 없는 내부기관들과 살점들이, 쾌락에 섞여 미쳐 날뛰고 있었다. 나는 뭔지 모를 매끈한 것을 손으로 붙잡고서 힘껏 내 몸을 움직여 댔다.


 너무 격렬해서 무감각해졌던 쾌락은 이제 임계점을 뛰어넘은 듯 뇌를 녹이는 것처럼 물들여갔다.


 "읏, 으읏."


 조절하지도 못한 채 여자아이 같은 신음을 흘리면서 내 몸은 격렬하게 사정했다. 내 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모두 강제로 뽑아내는 것처럼 무서울 정도로 인어의 안 속에 사정했다. 숙인 내 입에서 조절할 수 없는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쾌락은 그만큼 강렬해서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뇌신경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한 번의 사정이 끊임없이 길게, 길게 이어졌다. 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힘이 풀리는 바람에, 그만 인어의 몸 위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벌거벗은 젖가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만큼 부드럽고 아름답다.


 나는 미쳐버린 쾌락 속에서 그녀의 유두를 이빨로 물어 뜯었다. 여자의 몸은 허리를 젖힌 채로 경련했다. 나는 어느새 알 수 없는 서러운 감정에 빠져 조금 눈물을 흘렸다.


 유두를 뜯어버리고, 그 끝을 혀로 감싸고 또 핥으면서 나는 진저리치듯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쾌락과 온갖 감정들로 뒤섞여 제대로 동작하질 않았다. 고장 나 버린 것 같았다.


 문득 고개를 들자 인어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검은 안대를 감은 그 얼굴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핏기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선홍빛이었던 입술도 보라색으로 변해 떨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 두 눈으로 내 얼굴을 찾으려 꿈틀거리며 애쓰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보일 리 없는 그녀의 눈과 마주친 것 같았다.


 인어는 아이처럼 한심하게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입가에는 토사물이 묻어있었고 지치고 메말랐지만 동시에 몹시도 자애롭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양 팔이 남아 있었다면 필사적으로 나를 꼭 끌어 안았을 바로 그런 미소였다.


 그리고는 실이 끊어진 것처럼 인어의 머리는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시 창고에 남아있는 건 내 혼자만의 거친 호흡 뿐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내려다 보자 인어의 배는 열려있고 원색적인 피와 살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나는 그 검고 붉은 색채를 보며 갑자기 끔찍한 피로감을 느꼈다. 흐트러진 연분홍색 머리칼을 보며 무심코, 그녀에게 안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사정으로 뇌가 이상해져 버린 모양이라고,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치료의 마법을 시작했다.


 이 기적이라면 앞으로도 몇 번이든 쾌락을 재생할 수 있었다. 인어의 미소가 남겨놓은 따뜻하고 외로운 기분을 떨쳐내려고 나는 몇 번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깨어나면 지금 당장이라도, 몇 번이나 죽여주겠어." 나는 중얼거렸다.



 치유의 기적은 언제나 그랬듯 이 세계에서 봐 온 어떤 마법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잘린 살점도, 헝클어진 내장도, 잘려나갔던 팔도 전부 되감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손쉽게 되돌려졌다. 나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보며 호흡을 다듬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인어에게만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오직 공포만을 주겠다고. ...나를 저주하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이제 원래대로 돌아온 여체를 내려다봤다.


 내 추하게 쭈그러든 사타구니 아래에서, 벌거벗은 채 되돌아 온 인어의 몸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안대를 벗기고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인어의 얼굴을 바라봤다.


 연분홍빛 머리카락은 이제 정갈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입술의 혈색도 어느정도 되돌아온 것 같았다. 마른 피가 조금 굳어 있을 뿐 인어의 몸에 있던 모든 외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금방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인어의 뺨을 몇 차례 때리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기다려보다 문득 불안한 예감이 스쳐 가슴에다 귀를 갖다 대보았다.


 거기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소리도, 피가 도는 소리도 없다.


 말도 안 돼. 나는 멍하니 되뇌였다.


 "...이럴 리가 없어." 내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처음부터 영창했다.


 "안타까운 신의 자녀여, 상처를 치유하고 온전하게 내 종에게로 오라!" 


 나는 치유의 기적을 그녀의 몸에 욱여 넣었다. 분명히, 분명히 어떤 상처라도. 확실한 죽음에 일어났더라도 금방이라면 되살릴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죽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인어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나는 중얼거리면서 다시금 마법 영창을 시작했다.


 가장 높은 기적 뿐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치유의 주문을 쏟아붓는다. 그러면서 벌거벗은 그녀의 젖가슴과 얼굴을 때렸다.


 분명 살아있는 몸처럼 보였다. 분명 피가 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맞은 부분은 빨갛게 변했다. 나는 새로 몇 번이나 주문을 외운 후 치유의 빛을 띄우며 인어의 빨개진 가슴에다 귀를 가져다 댔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씨발, 이럴 리가 없다고...!"


 나는 몇 번이나 똑같은 행동들을 반복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호흡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두려워서 작업대에서 내려와 뒷걸음쳤다. 인어는 그저 평온하게 늘어져 있었다. 얼굴에는 안락함이 가득했다.


 "......하하하, 금방 고장났잖아."


 나는 다가가 소년의 손등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쳤다.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감은 두 눈은 평온할 뿐이었다.


 잠시 얼어붙은 것처럼 서있다가 생각했다.


 ...또 다른 인어라거나, 인간 여자의 몸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이틀이면 충분히 즐긴 셈이었다. 다음엔 여자애의 몸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제는 시체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갑자기 머릿속에 인어가 남긴 메마른 미소가 가득 찼다. 왜 이 년은 마지막까지 그런 식으로 웃었던 거지?


 "이 병신 새끼가!" 나는 인어의 몸을 발로 찼다. 차가워진 몸은 정말로 죽은 생선을 차는 것처럼 느껴졌다.


 "씨발년아, 씨발 야한 년이 좆대로 처 죽고 앉아있어, 씨발년이. 일어나, 일어나라고!"


 완전히 식어버린 하얀 허리를 뼈를 부러트릴 기세로 계속해서 발로 찼다. 그러다가 인어가 바닥에 흘린 피에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철퍽,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헐떡거리며 손을 들어 내 손바닥에 가득 묻은 핏자국을 봤다. 선혈은 이미 엉겨붙기 시작해 두꺼운 페인트를 바른 것 같았다.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처음부터 상관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나의 쾌락 뿐이었다. 분명히, 선명한, 오직 나의 쾌락 뿐이었다.


 ...갑자기 감정이 쏟아져 나와 나는 울면서 인어의 죽은 몸으로 달려들었다.


 "아, 아아앗 안돼! 이대로는 안돼! 제발 가지마! 잠깐만!"


 나를 이 창백한 관 속에 혼자 남겨놓고 가지마! 제발!


 내 목에서 내 목소리 같지 않은 여리고 한심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번 터져나온 울음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신성한 기적은 소용이 없었다. 머리속이 패닉으로 가득 차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새하얀 인어의 손을 겹쳐 잡았다. 하지만 인어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다.


 "앗, 아아아..." 다시금 모든 기억들이, 인어가 내게 줬던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쾌락은 밀려 떠나가고, 머릿속에 메마른 미소와 만신창이가 된 채 내 등을 더듬던 가녀린 팔만이 가득하게 떠올랐다. 그 팔로 나를 다시 안아줬으면 좋겠다! 내 본모습을 보여주고서도 그렇게 안아준 건 이 여자가 처음이었다. 여지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손은 차갑기만 했다.


 "우아아아앙"


 한낱 소년인 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서러운 감정 때문에 내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떨지 않기 위해서 나는 양 손으로 인어의 차가운 손을 꽉 부여잡았다. 그대로 힘이 풀려 무릎을 꿇자 늘 역겹게 생각했던, 마치 기도하는 자세처럼 되었다.


 나는 엉망으로 울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씨발, 신이든 뭐든 상관없어. 제발 나한테 기적을 준 누가 내 말을 듣고 있다면, 제발 한 번만 봐줘. 한 번만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전부 잘못했어! 나는 어차피 지옥행이니까 대신 이 여자를 용서해줘. 제발 씨발 이 여자를 용서해달라고. 제발 이 여자를 살려달라고. 제발 그럼 뭐라도 할테니까, 제발.'


 나는 그 관 속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