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주의/ 야함주의/ 스압주의)


 ◇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기도를 정말로 신인지 악마인지 하는 놈이 들어준 건지, 아니면 치유의 기적이 뒤늦게 발휘된 건지 알 수 없다. 후자라면 나는 괜히 그 기적을 준 놈에게 빚을 져버린 셈이었지만 그 행동이 후회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눈물을 흘리며 또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내 얼굴에 가녀린 손가락이 닿았다.


 고개를 들자 인어는 쾌락의 잔향이 남아있는 듯 뺨을 붉히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벌거벗은 인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달려들자 그녀는 다시 때리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내가 맞닿은 맨가슴이 꽉 눌리도록 끌어안은 채,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뿐이라는 걸 알자 기분좋게 살랑살랑 꼬리를 쳤다.

 인어가 잘린 상처가 남아있는 자신의 부드러운 팔을 뻗어 내 등을 끌어안고 쓸어내렸다.


 따뜻한 눈물이 내 눈에서 떨어지고 계속 인어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분홍빛깔의 머리칼을 가진 인어는 나를 소중하게 끌어안고서 자신의 따뜻한 뺨을, 울고 있는 내게 마주댔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지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마치 평범한 인간 사이의 연인처럼, 나와 인어는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의 작은 관 속에서 조그만 시간이 흘렀다. 내 인생 속에서 처음으로 만나본 악의 없이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와 인어의 이야기는 조금, 아주 조금 더 이어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어떤 기적을 겪은 인간이 한순간에 변화하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았다. 뭘 기대했는가? 나는 괴물이다.


 작은 창고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인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 속에 내 정액을 사정하면서, 다시 여러번 그녀의 몸을 해치기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몸을 떨면서, 두려워하면서 ...기대하면서 나의 일방적인 행위를 받아들여줬다.


 어떤 날에는 그녀의 양 팔이 쇠갈고리에 뚫린 채 걸려있었다. 나는 그녀의 얇은 허리를 감싸쥐고서 내 성기를 쑤셔박았다.


 어떤 날에는 그녀의 혀를 반쯤 잘라낸 채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 입맞춤을 나눴다. 한숨과 입을 맞댄 채 그 입술 사이로 뚜렷한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어떤 날은 서로 섹스를 하지 않고 수조에 기댄 채 밥을 먹기도 했다. 인어는 언제나 분홍색 마카롱을 가장 좋아하는 듯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리고 또 어떤 날은. 그리고 또 다른 날은...


 내 흥분에 따라 우리의 행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듯이 과격해졌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그 날처럼 과격한 행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나와 인어 사이의 행위는 점차 연인 사이의 거친 장난처럼 변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계를 나누거나, 굳이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알몸을 꼭 끌어안은 채 꽤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나날을 반복하게 되면서 소년인 내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그늘과 동시에 평온이 감돌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여교사가 나를 따로 불러내어 묻기도 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니? 피곤해 보이는 걸." 대답하지 않자, 여교사는 내 얼굴을 주시하며 살짝 입술을 물었다.


 아이답지 않은, 언젠가 탐하기 직전까지 그녀의 몸을 훑어본 적이 있는 내 눈을 조심스레 봤다. 가만히 보고 있자, 그녀는 재빠르게 자신의 입술을 핥은 후에, 짐짓 다정한 척 내 손을 덮어 쥐고서 말했다.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렴. 혹시 ...알고 있지 않니?"


 나는 그녀의 손을 잠시 내려다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양손을 빼 등 뒤로 숨겼다.


 "아니예요, 선생님. 아무 일 없이 다 괜찮아요. 헤헤헤." 내가 말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인어가 나의 폭력적인 행위를 받아들여줄 뿐 그렇게 즐기지만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잔혹한 행위는 조금씩 줄어들 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내 안에는 조그만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지 견디고 있을 뿐이라면, 그녀도 다른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였을텐데. 어째서 나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이 인어를 원했던 것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내가 더럽혔기 때문에? 단지 견뎌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내 모든 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 새하얀 팔로 끌어안아줬기 때문에? 단지 그런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문득 그녀에게 나 같은 괴물이 끌렸다는 사실에는 무언가가 더 남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를테면 함께 살을 겹치며 땀에 젖은 서로의 몸을 끌어 안을 때. 인어의 왼팔에 튼살처럼 박힌 수많은 창백한 상처자국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이별이 다다랐을 즈음에 나는 그 예감을 온 몸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인어를 아끼게 된 후에도 가끔씩 나누게 되는 격렬한 행위가 끝난 후였다.


 인어는 아직 부들부들 경련하면서 자신의 기쁨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서 그녀의 가슴을 따뜻하게 빨아주고 있었다. 다친 세밀한 상처들은 모두 마법으로 나은 후였다. 그 때 나는 이미, 그 정도의 상처라도 내 기쁨을 위해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낸다는 생각에 조금씩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 정도로 교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죄책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인어가 내게 달려들었을 때는 드디어 복수를 하는 거라고 꼼짝없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인어가 양 팔을 뻗고 달려드는 바람에 나는 짓눌려 쓰러졌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갑자기 어깨에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으읏!"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내 어깨를 짓누르는 인어의 팔은 이미 사냥감을 덮치는 무엇처럼 변해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만나는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하얀 이빨로 내 목을 물어 뜯었다. 


 "아아!"


 나는 머리를 찌르는 격통 속에서 생각했다. 이게 너의 복수구나.


 어째서 지금 이런 결정을 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목숨을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지금도 마법을 써서 내 상처를 치유하고, 그녀를 구속하는 일쯤은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목숨을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나는 이제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내어주고 싶었다.


 따뜻한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의 살점을 조금씩 뜯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죽여버리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도 좋았다.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죽기 전에 그녀의 얼굴을... 그리고 푸른색 눈동자를 조금 더 보고 싶었다.


 내 목의 근육을 크게 베어 물려고 그녀가 고개를 처들었을 때, 나는 상냥하지만 확실한 움직임으로 부드러운 몸을 밀쳐냈다. 다시 달려드는 그녀를 왼팔로 밀어낸다. 그녀는 달려들어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나는 그동안 죽어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지켜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어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녀는 명백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속에 갑작스레 자라난 충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 차가운 충동에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 목숨과 살점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나는 감탄했다.


 인어는 내 왼팔을 허겁지겁 뜯어 삼키면서도, 그 하늘빛 두 눈동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슬픈 눈동자로 고개를 저으면서, 내게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도망가라고. 나는 지금 이러고 싶은 게 아니라고.


 ...이전에 내가 송곳으로 가차없게 꿰뚫은 적 있는 눈동자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눈으로 내 상처를 슬퍼하며 엉엉 울고 있었다.

 탐욕스레 핏물이 터져나오고 내 살을 뜯어먹는다. 그런데도 인어의 아름다운 표정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 충동과 탐욕은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녀 쪽이 훨씬 더 아름답다. 언제까지나 어디까지나 그랬다.


 비로소 나는 내가 그녀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오른팔을 들어 인어의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목에 난 상처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와 의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피투성이가 된 인어의 입가는 더욱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인어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내 얼굴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인어는 아무래도 내가 죽는 건 바라지 않는 듯 했다.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인어의 표정을 보며 지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안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참지 않아도 돼."


 인어는 곧장 한 번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어서 내 눈동자를 통해 내 말의 의미를 전달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귀여운 그녀의 뺨을 살짝 두드려 준 후, 그 손을 옮겨 내 목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되감기를 한 것처럼 상처는 회복되었다. 나는 마법을 유지한 채로 양 팔을 놓아버렸다.


 연분홍색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인어는 내 몸에 달려들어 뜯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뇌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회복 마법을 유지하느라 꽤 고생을 해야했다. 내 몸에서 나는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들으며 인어 역시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던 것인지.


 그러자 어쩐지 조금 눈물이 흘렀다. 나는 고통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며 그녀를 끌어 안고서, 내 몸 위로 회복의 기적을 밝혔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인어들에게는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잡아먹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뱃속에 있는 생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상대방의 피와 살점... 아무튼 그 모든 것을 씹어 삼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어는 자신의 충동에 사로잡힌채 영문도 모르고 사랑했던 상대를 죽이고 삼키고 씹어먹고 마는 것이다.


 남자 인어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처음에 들었던


 '인어에게 가까이 간 사람은 좋은 꼴을 못 본다' '남자는 조심해야 한다'


 같은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저주받고, 아름다운 생명이란 말인가.



 중간에 눈 앞이 까매져 의식을 잃고 깨어나자, 인어는 정신없이 울면서     나를 자신의 지느러미 위에 끌어안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것도 모르고 엉엉 울고 있길래 뺨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나 살아있어."


 으아아앙ㅡ 어린애처럼 울면서 그녀가 내 몸을 끌어 안았다. 회복마법을 쓰다 말았기 때문에 온 몸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목숨을 잃지 않았다. 모두가, 그녀가 허락해 준 까닭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숨막히게 끌어안는 그녀의 맨가슴의 온기와 심장소리를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인어의 몸을 물이 담긴 수레에 싣고 바다로 향해 걷고 있었다.


 깜깜한 밤이었다. 저 멀리 밝혀져 있는 편의점 불빛 외에는 하늘에 뜬 조그만 달빛만이 검은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인어가 떠나길 원한다고, 내게 무언가를 주장한 건 아니었다. 함께 나누는 입맞춤과 그 모든 관계는 어디까지나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본능적으로 바다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저 깊숙한 바다 어딘가에 일종의 육아소 같은 게 있는 거겠지. 인어는 배가 불러오기 전에 그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는 내가 막는다면 절대로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인어와 그녀 뱃속의 생명을 키울 수도 없을 뿐더러, 그야말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나 역시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수레의 바퀴가 천천히 굴러갔다. 인어는 이게 이별이라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물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양 팔로 물을 첨벙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젖은 손을 뻗어 내게 입술을 내밀었기 때문에, 나는 입술을 맞춰 주었다.


 나아아ㅡ 나아아ㅡ


 방파제 너머로 철썩이는 해변이 보이자 그녀가 기쁜 듯이 지느러미를 첨벙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네 집으로 가는 길이야."


 그녀를 고작 마카롱 따위로 유혹해서 건져 온 바로 그 해변이었다.


 그 후로 아직 계절이 지나지도 않았고, 지금 인어와 거기에 담긴 수레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정말로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밤바다엔 조용히 파도가 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인간의 불빛은 하나도 닿지 않는 동떨어진 해변에 도착해 있었다. 인어는 찰박거리며 바다를 지켜보고는 양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


 "읏."


 나는 아직도 허약하기 그지 없는 소년의 몸으로 끙끙거리며 그녀의 몸을 안아 들어 바닷가로 옮겼다.


 찰박, 하는 물소리를 내며 인어가 얕은 바닷물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물 속으로 완전히 몸을 담궜다가 금세 머리를 털며 올라왔다. 젖은 연분홍색의 머리칼이 하얀 맨가슴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멀리서 그녀를 처음 발견했을 때 나를 폭력적인 충동에 휩싸이게 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잔잔하게 아름답게 느껴질 뿐이었다.


 인어는 익숙한 바다에 도착해 기쁨에 찬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쭈그려 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안녕."


 내가 말했다.


 인어는 달빛에 비친 새파란 눈동자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 속에 빠져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건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인어는 검고 넓은 바다를 돌아보다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벌거벗은 가슴을 펴고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으으응."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칼을 정리했다. "안녕."


 잠시 인어가 그대로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그녀의 젖은 뺨을 손끝으로 쓸었다. 처음 그녀를 발견했을 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막힌 목을 살짝 풀고서 말했다. "내가 근처에 오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잖니."


 인어는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내 말의 의미도, 내 거짓말의 의미까지도 모두 간파할 것 같은 그런 맑은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사랑스러우면서도 끝없이 순수하게, 그렇기에 잔혹하게까지 느껴지던 바로 그 미소였다.


 나는 이 미소를 본 순간 완전히 반해버렸던 거구나, 하고 나는 순순하게 생각했다.


 그만 일어나려고 하자 인어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내게 입술을 맞췄다. 내가 처음으로 가르쳐 준, 격렬하고 혀를 섞는 바로 그 입맞춤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채로 혀를 내맡겼다.


 인어는 숨이 차올라 입술을 떼고서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 입가에 입맞춤을 남겼다. 나는 축축하고 간지러워서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서로를 끌어 안은 채로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내 젖은 옷 위로 맨가슴이 닿아왔다. 나는 그저 몇 번이고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밤은 충분히 깊어갔다.


 인어는 마지막으로 불타는 것 같은 입맞춤을 내 입술에 남기고서,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까만 바다 위에는 아름다운 달빛 만이 남아 느리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미 머나먼 곳에서 인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생각했다.


 모든 게 기나긴, 아름다운 악몽이었던 것 같다고. 그 자신의 전생도 인어와의 잔혹하고 아름다운 추억들 마저도.


 하지만 손을 뻗어 만져보자 소년의 왼팔에는 새하얀 상처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인어가 밤새 충동을 억누르며 소년의 몸을 뜯어먹던 흔적이었다.


 치유의 기적으로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오로지 그 상처만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실 이러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자기는 이러기 위해서 다시 태어난 게 아니었냐고.



 나 자신을 용서받기 위해, 나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그는 치유의 기적을 받은 건지도 몰랐다.


 신에게? 아니면 악마에게?


 하지만 지금이라면 소년도 그게 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빈 바닷물만이 찰랑거리는 수레를 끌고 돌아가면서 소년은 방파제 너머 숨겨진 해안과 까만 밤바다를 내려다봤다.


 멀리서 바다 위에 떠오른 동그란 달은 조그맣지만 무척이나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끝없이 이어지는 잔잔한 밤 바다 위에 달무리 만이 떨어져 아름답게 일렁거렸다.

 

 


 /끝




 여기까지 긴 글 읽어준 사람한테 감사하구만

 열심히 썼긴 했는데... 모처럼 휴일이 하얗게 날아가버렷다,,

 내일부턴 다시 쓰던 거 쓰러 돌아가야지

 다들 건필하길여


 (근데 바뀐 그림 내용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