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끝마쳤다. 이쯤되면 나의 마지막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게 느껴질꺼 같기도 하다. 일처리 용으로 잔뜩 뭉쳐진 휴지는 전부 바깥으로 버리고, 방 안에 꽁쳐둔 청소기로 간만에 쓰윽 먼지를 빨고 혹시나 이후에 방문할 사람들이 내 컴퓨터를 쓸 수도 있으니 하드는 깔끔하게 날리고. 방구석 폐인이라고 지저분한 사람취급은 당하기 싫었기에 문을 활짝열어 이불까지 아주 그냥 탈탈 털었다. 


 열린 문에서는 햇볕이 눈이 부시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 얽기고 섥힌 빌라촌에 혹여나 살아있는 사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문을 열면 나를 보고 나의 이 마지막을 막아주진 않을까 하는 짧은 상념이 저 찬란한 빛무더기 속에서 잠깐 떠올랐지만, 곧바로 

사라졌다.  청소기를 꽤나 시끄럽게 돌렸는데도 누구하나 들어오는 대답이 없었는데. 또 햇빛이 이렇게 창창한데도 새소리 하나 

안들리며 적막한데,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던 이 동네 사람들이 한명이라도 남아났을까?


 뭐,들렸어도 또 나에게 말을 걸어 왔었어도 사실 큰 의미가 없긴 하다. 잘못된 선택의 반복으로 얼룩진 내 인생. 이젠 누구 하나 끼어든다 할 지라도 더 이상 나아가기는 내가 싫었으니까. 자물쇠를 하나씩 하나씩, 푼다. 


 끼이익, 경첩이 내는 불협화음. 식사를 하기 위해 살짝 살짝 열던게 아닌, 아예 완전히 문을 열어 젖힌다. 참 웃긴게, 여긴 바깥도 아니고 여전히 집 안인데도 불구하고 여는 그 문의 각도가 조금 달라졌다는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열리는 문. 완전히 다 열린 문의 끝에는 티비와 시계, 그 위로는 어린시절 나와 모친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진한 화장을 한 채 부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모친과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잔뜩 불린채 옆에 기대어 서 있는

어린시절의 나. 


 가슴이 아려왔다. 다 정리했다 생각 했는데.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만 하기로 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까 또 아프고 안타

까웠다. 티비 위에 있던 사진과 열린 내 방 문을 번갈아 가면서 보았다.  이거, 정말로 별 게 아니었는데. 열고나니까 진짜로 아무

것도 아닌걸 나는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서 한 발짝 내딧는걸 걱정했었나.  다리를 질질 끌고 와, 안간힘을 쓰며 문을 두들

이던 모친의 울림을 왜 나는 그리 매몰차게 거절 했던가. 나와서 보니 이  신발장과 내 방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데.


 그날 저녁의 기억이 새록 새록 다시 돋아났다.


 저는듯한 발소리는 힘겹게 현관문을 지나치고 신발장을 기어나와 마침내 나의 방 문 앞에 도달했었다.  떨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 앉는듯한 큰 소리가 났고, 그와 함께 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문을 긁는듯한 작은 손톱소리. 그보다도 더욱 미약한 모친의 쉰 목소리.


"진....영.....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할 까?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 한심한게 그 상황에서도 나는 티비 채널에서 지나가며 본 수많은

좀비영화들을 떠올렸다. 이름 모를 광증이라면 영화에서 봤던 좀비 같은게 아닐까? 물리게 되면, 나도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게 아닌가. 바깥에서 들리던 그 무서운 소리들을 뚫고 들어 왔다면 어머니는 이미 늦은 것일지도 몰라. 쉰 목소리는 이미 변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일텐데 괜시리 문을 열었다가 나 또한 위험할꺼야. 

 

 어머니는 분명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식이 이런 위험한 광증에 노출되기를 바랄까? 그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딱히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것도 아닌듯 싶었고, 그냥 피곤에 절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일수도 있는게 아닌가?  간단하게 또, 혹시 모르니까 119에 전화만 한통 해 두면 되는거 아닐까? 


 머릿속으로 또, 마음속으로 문을 열지 말아야 할 수천가지의 이유들을 생각하고 문지방을 긁는 모친의 손길을 나는, 나는.....매몰차게 거절하고 침대에 누웠다. 119에 전화 한 통 넣어보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할 일을 다 했다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며 문을 조금 더 쌔게 걸어 잠구고 내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몸을 뉘였다. 


 문이라도 열어 보았으면 좋았으련만,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았으면 나았으련만..... 기어코 침대로 기어들어간 나는 평소와 깉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튼다. 


 깜깜한 밤이되니  집 밖에선 무서운 소리들이 여기 저기서 막 들려왔다.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 무언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무언가 썰리고 잘리고 씹는 소리. 나는 억지로나마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볼륨을 최대로 했다. 귀청이 터질것같이 시끄러웠지만 오히려 그래서 바깥의 끔찍한 소리를 차단하기엔 충분했다. 한참을 누워 노래를 듣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스스르 잠이 몰려왔고 나는 거기서 그렇게 잠에 빠졌다.


 꿈속의 나, 교복을 입었다.  2학년 4반의 팻말이 교실 앞에 걸려져 있었고, 나는 교실의 구석탱이에 쳐박혀 있었다. 마댓자루의 

오래된 왁스 냄새와 대걸레에서 풍겨오는 악취가 인상적인 청소도구함. 그곳에서 나는 모르는 아이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몸을 웅크

리며 맞고 있었다. 왜 때리는 것인가, 왜 맞는 것인가, 하염없이 묻지만서도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날아 오는 것은 그저 왁자

지껄한 폭소와 기가 찬 비웃음 뿐.


 교복을 벗어 던지고, 사복을 입었다. 대학 교정. 백팩에 바람막이를 입은 나는 맨 발의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간다.

누구하나 말 걸어주지 않는 강의실. 홀로 끝자락에 앉아 머리를 쳐박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그런 나의 모습을 힐끔 힐끔 바라보며 험담하고 떠든다.  


 군복을 입은 나, 흡연실 끄트머리에는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가득했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담배냄새가 강렬하게 머리를 타고 올라왔다. 보라색 생활복을 입고 다 해진 생활화를 신은 남자 여럿이 쓰러진 나를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마냥 짓밟았다.  


 명치를 가격당해 숨을 헐떡거리며 좌 우로 몸을 흔들고 있는 나. 선임 한명,  나의 움직임이 거칠어 질 수록 더 신이 난 모양인지 발길질은 좀 더 거세진다.  주뼛쭈뼛, 선임 주변을 맴돌던 다른 사람들.....손가락질 한번에 발길질이 이어진다. 한참을 시원하게 팬 이들은 땀을 닦으며 흡연실을 나가고 나는 배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나는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날아오는 서류 뭉치. 난감한듯 이마를 긁쩍거리는 남과 여. 안경을 고쳐쓰고 

왼손에는 인스턴트 커피를 들고 침이 튀기도록 거친 말을 건내는 중년의 남성. 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바라보며 수근거리는 사람들.

회식자리에는 나 혼자만이 구석자리에서 지글지글 불판위의 고기가 타오르는걸 보고 있었다.   


 비난과 거친 욕설들을 건내오는 화난 얼굴들. 어느날, 도착한 내 자리에는 커다란 pt박스와 나의 사무용품들만이. 들고 바깥으로

나서려는 그 순간에도 누구하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한달, 두달, 세달.....여섯달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돈. 홧김에,

다시 찾은 회사에서는 안경을 쓴 중년의 남성, 실실 웃으며 나에게 말한다. 씩씩 화를 내며 들어왔던 것이 무색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걸어나간다. 


 도착한 집.  잠에서 깬 나는 살짝 열린 문 틈이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다. 위험한 바깥에 비해 너무도 평온한 나의 침대 안. 나는 벌어진 문틈이 문득 너무도 겁이나고 무서워져 황급히 달려나가 문을 ,닫는다. 비집고 들어오는 모친의 얼굴을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밀어내는 나. 모친, 억지로나마, 문을 열기 위해 문꼬리를 잡고 채중을 실어 열어보려 안간임을 쓰지만 150남짓한 키에서 나오는 힘으로는 20cm나 올려보는 아들의 몸을 밀 수 없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일년......


 나무로 된 문 앞에는 하나씩 자물쇠가 채워진다. 말끔했던 방 구석 구석 먹다 남은 컵라면과 과자 부스러기들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유리창문 사이로는 길다란 커튼이 상시 쳐져있었다. 불꺼진 방안에는 모니터의 형광불빛만 가득했고 나는 그 속에서 졸린 눈으로

일어났다 다시 자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 끝에 돌연 부서지는 나무의 문.  흰자와 검은자가 뒤바뀐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린 모친의 모습.

나의 목을 가뿐히 든 후, 날카롭게 난 이빨로 나를 물어 뜯는다. 가차 없이 물어뜯긴 나는 자리에서 쓰러지고, 나의 몸을 모친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마지막 뼈다귀까지 씹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에서 깻다.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듯 변해버린 모친이 저 나무문을 박살내고 내 방안으로 들어오면 큰일 아닌가?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잠궈 두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막기위한 것. 괴물이 돌연듯 괴력을 발휘 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영화를 보면, 아무리 가족이라 할 지라도 이런 긴급 비상 사태에서는 살아 남기위해 피치못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살아 남기위한 인간으로서의 본능인 샘이다. 


 그런 생각이 든 나는 나의 방에서 어디 뭐 몽둥이 같은거 하나 없나 생각하며 방을 뒤졋다. 생각해보니, 한참 바깥에 나 돌아다닐때

되도 않는 회사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샀던  골프채가 내 방 어딘가에 있음을 떠올렸다. 쓰레기 더미를 뒤진 끝에 발견한 쇠로된 골프채.  살짝 녹이 슬었지만 이정도 무게의 뭉툭한 쇠붙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다.


 알아 본 결과 낮에는 이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은 잠을 잔다. 쥐죽은듯이 고요한 적막은 그런 의미였다.  햇볕이 몰려오면 피곤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듯 잠에 빠져들고 이 해가 떠있는 낮은 오로지 사람의 것이었는데 나는 그 기회를 노려 지금 바로, 이 쇠붙이로 혹여 모를 일을 대비하기위해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끝낼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나를 위해서 몇십년간이나 희생했고 걱정했으며 보살펴준 존재인데. 내가 아무리 괴물이

변했다 할 지라도 그 모친의 정겨운 얼굴을 마주보고서 이 뭉툭하고 무거운 골프채를 휘두룰 수 있을까? 그게 맞는것일까?  

설사 휘둘러 살아 남았다 할 지라도 그 시점부턴 나 또한 괴물이 된 게 아닐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무언가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근데, 근데. 그런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문을 간신히 열어서 살짝 바깥으로 바라본 후 거실로 발을 내딧으려 하는 나는 거기서 내 눈앞에 보인 그 물건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문 앞에 있는 것, 문 꼬리 앞에 걸려 있던 어떤 것. 문 앞에서 축 늘어져있던 그것은, 검은색  비닐 봉지였다.


 봉지안에는 먹을것이 가득했다. 한움쿰. 유통기한이 되도록이면 긴 것들로만 골라서 잡아 온듯한 물건들. 생활에 필요한 물이며, 

혹여나 사태가 생겻을 시 챙길 비상 약까지. 


 그렇다. 모친이 나를 불렀던 것, 모친이 문을 긁어가면서 이쪽을 보라 했던 것은 문을 열어달라는것이 아니라, 이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무겁게 내 손에 올려진 그 쇳덩이가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거기서 더더욱 부끄러운 것은 

눈물이 핑 돌고, 콧잔등이 시린 와중에서도  겁이 나 검은색 비닐 봉다리만 방 안으로 넣고 다시 문을 닫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참, 구제 할 수 없는 쓰레기였다는걸 거기서 한번 다시 새삼스럽게, 깨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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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까 막 뇌절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네. 마지막으로 3탄 쓰고 내일 완결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