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GM : Theme of Mitsuha - RADWIMPS.

 

 

 

 

*

 

 

 

 

"당신의 사망 시각을 알려드립니다."

 

 

 

 

그런 내용의 어플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 즈음이었다. 사망하기 정확히 일주일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알려준다는 신박한 컨셉의 어플. 그 신선함에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어플을 설치해봤지만, 이상하게도 어플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렇다 할 기능 하나 없는, 그저 검은색 화면만이 액정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역시 장난 어플이었다며 해당 어플을 삭제했고, 그렇게 유행은 빠르게 식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은 다시 부활했다. 자신은 제대로 어플이 작동된다고 SNS에 글을 올렸던 한 유저가, 카운트다운이 지나자마자 돌연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비슷한 인증글을 올렸던 유명 연예인마저 카운트다운에 맞춰 심장마비로 사망해버렸고, 그러자 그 어플은 순식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카운트다운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글들이 인터넷 곳곳에서 올라왔고 몇몇은 이 어플이 단순 장난이라는 걸 인증해보겠다며 영상까지 올렸지만, 그들 중 인증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올 여름의 첫 장맛비가 내리는 순간, 바라지 않았던 내 카운트다운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6일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전혀 달갑지 않은 어플의 알림과, 창문 너머로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줄기들.

 

 

내 열아홉 번째 장마는, 그렇게 시작을 알렸다.

 

 

 

 

*

 

 

 

 

 

"김민성, 나와서 31번 문제 풀어봐."

 

 

 

 

무뚝뚝하게 내리꽂히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무기력하게 일어나 칠판으로 걸어갔다.

 

 

참고로 덧붙여 말하자면, 학교는 계속해서 다니는 중이다. 안 그래도 시한부 판정으로 마음이 심란한데, 일상에서 하던 일까지 모두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로 멘탈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때문에 내 이야기도 일단은 가족들에게만 말한 상태다. 함부로 알려줬다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면 그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을 거다.

 

 

 

 

"오케이, 잘 풀었다. 민성이 너 이번 모의고사 기대해봐도 되겠는데?"

 

 

 

 

칠판에 끄적인 내 풀이를 보며, 선생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 수 없는 회의감이 들었다.

 

 

어차피 남은 건 일주일 뿐인데, 이렇게 문제를 푼다고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제아무리 모의고사가 일주일 안에 있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모의고사일 뿐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무력감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도피감에서 비롯된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ㅡ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미래의 계획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ㅡ

 

 

 

 

"선배!"

 

 

 

 

일순간, 아무 생각없이 복도를 서성거리던 내 손을 누군가 잡아챘다.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며칠 전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한다연이다.

 

 

 

 

"점심 시간인데 밥 안 드세요?"

 

 

"......"

 

 

"어제도 그러더니만, 뭐라도 좀 먹어야죠! 따라와봐요."

 

 

 

 

잔뜩 잔소리하는 말투로 꾸짖더니만, 다연이는 내 손을 잡아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

 

 

 

 

"선배...?"

 

 

"미안, 딱히 배고프지가 않아서."

 

 

"......"

 

 

"그리고, 이제 내 반까지 찾아오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미안해."

 

 

"..., 알았어요."

 

 

 

 

불만족스럽게 수긍하는 다연이의 목소리에, 나는 교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다연이의 표정까지 볼 겨를은 없었지만, 아마도 평소의 다연이라면 잔뜩 뾰루퉁한 표정으로 두 볼을 함빡 부풀리고 있을 거다.

 

 

피식ㅡ

 

 

그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시간이 지나자 내 감정은 다시 끝없는 회의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보지도 못하는 사람과 친해져서 무슨 소용이겠는가. 차라리 혼자 앉아 고독을 즐기는 편이 나을 거다.

 

 

 

 

 

*

 

 

 

 

"선배!"

 

 

 

 

국어 문제를 풀던 도중, 문득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창 밖을 쳐다본다.

 

 

다연이었다. 그녀가 복도에서 나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짓을 무시했다. 무심코 정을 줘버렸다가는, 나중에 내가 죽었을 때 그녀의 상실감만 더욱 커질 테니까.

 

 

그걸 일 년 전에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온 나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국어 문제에 집중했다. 어차피 잠깐 저러다가 제 풀에 꺾여 돌아갈 게 분명했다.

 

 

"♬♪"

 

 

일순간, 핸드폰에서 울려퍼진 알람에 무심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망할 어플 녀석의 알림이다.

 

 

남은 시간, 5일 23시간 59.

 

 

 

 

*

 

 

 

 

"선배!"

 

 

 

 

분명 제 풀에 꺾여 돌아갈 줄 알았는데, 용케도 그녀는 다시 돌아와 창 너머로 손을 힘껏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부름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남은 시간, 4일 23시간 59.

 

 

 

 

*

 

 

 

 

"선배!"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알림소리.

 

 

'2일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대로 다연이를 무시해봤자, 앞으로 남은 사흘 동안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 분명히 말하는데 내일도 그러면은ㅡ"

 

 

"선배, 죄송하지만 잠깐만 따라와보실래요?"

 

 

"...?"

 

 

"이런 데서 이야기하기에는 선배도 껄끄러워 할 것 같아서요. 진짜 잠깐이니까 따라와주시면 안 될까요?"

 

 

 

 

평소와는 사뭇 다른, 애원에 가까운 그녀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원래는 제발 반까지 찾아오지 말라면서 경고를 하고 사라질 계획이었지만, 장난기라고는 조금만큼도 보이지 않는 다연이의 표정에 그런 계획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래, . 잠깐 뿐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아...알았어. 어디로 갈 건데?"

 

 

"따라와주세요."

 

 

 

 

한 마디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어디론가 떠나는 다연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그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활기가 넘치는 교실 앞 복도,

 

 

발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1층 복도.

 

 

그리고, 빗소리만이 들려오는 학교 뒷골목까지 이동하고 나서야 다연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선배,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릴 게 있는데요. 네 아니면 아니오로만 답해주시겠어요?"

 

 

"무슨 질문인데?"

 

 

"...선배, 이제 며칠 안 남았죠?"

 

 

"...?"

 

 

"그 어플 말이에요. 카운트다운."

 

 

 

 

확신에 찬 것 같은 말투로 내게 질문하는 다연이의 모습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 걸까. 가족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그녀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말을 해버린 걸까.

 

 

 

 

"어떻게 알았는지, 그런 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단지, 비슷한 일을 겪다 보니 눈치가 생겼을 뿐이니까."

 

 

"......"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희가 그녀의 하나 뿐인 언니였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도 과거형이지만.

 

 

 

 

"선배, 제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조곤조곤 말을 읊어내던 그녀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여 나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부탁 따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부탁이래봤자 남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달라 같은 뻔한 이야기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못 들어줘."

 

 

"...?"

 

 

"내가 시한부라는 것까지 잘 알면서 왜 그래? 너도 잘 알잖아.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내 시간일 뿐이야."

 

 

"......"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결국 말해버렸다.

 

 

제발 신경 좀 끄고 나를 내버려두라는 그 말을 결국에는 말해버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내 말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선배, 아무리 그래도ㅡ"

 

 

"...안 될 거야."

 

 

"...?"

 

 

"나는 네 언니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열심히 일주일을 보내지도 않을 거고, 미뤄왔던 꿈들을 이뤄보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네 언니처럼 마지막까지 추잡하게 삶을 이어가보려다 죽는 일도 없겠지."

 

 

 

 

얼떨결에 본심까지 말해버렸다.

 

 

......

 

 

그래, 모든 건 한다희 때문이었다.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이유도, 죽음을 앞에 마주하고도 평소와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이유도ㅡ

 

 

모두, 다희가 일 년 전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 같은 모습대로 죽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순간.

 

 

 

 

"...거짓말하지 마요, 선배."

 

 

 

 

등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다연이의 목소리에, 무심코 발길을 멈춰버렸다.

 

 

 

 

"지금 선배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잖아요. 평소에 해오던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남은 일주일을 의미있게 보내고 있지도 않아요."

 

 

"......"

 

 

"정말 그걸로 괜찮아요?!"

 

 

"......"

 

 

"우리 언니가 뭐 때문에 선배를 좋아했었는데!"

 

 

", 그 얘기는..."

 

 

 

 

적어도 다희의 얘기만큼은 하지 말라고 말하려다가, 말문이 그만 턱 막히고 말았다.

 

 

분명 그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애석하게도, 지금 내 모습은ㅡ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냥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이야."

 

 

 

 

그때의 다희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공부를 하든 어딘가를 놀러나가든 아무런 상관 안 할게요. 대신에, 제대로 시간을 써봐요. 정말로 제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으시다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도록 시간을 써야 할 테니까."

 

 

"......"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괜한 시간 뺏어서 미안해요, 선배."

 

 

 

 

그 말을 끝으로, 다연이는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멍하니 앞을 쳐다보았다.

 

 

후회.

 

 

그것은 마지막에 다희가 무너져버린 가장 큰 원인이었다.

 

 

카운트 다운이 채 1분도 안 남은 순간,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남았다며 다희는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뒤늦게나마 다희의 뒤를 쫓아간 순간, 차에 치인 그녀는 바닥에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허무함.

 

 

그리고, 쓸쓸함.

 

 

그때의 감정을, 사랑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그 감정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는 순간에 후회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그 질문에 나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공부를 하든 어딘가를 놀러나가든, 제대로 시간을..."

 

 

 

 

떨어지는 빗소리 가운데 가만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솔직히 말해서 어딘가를 놀러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내일 있는 모의고사 뿐이다.

 

 

 

 

"......"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우산을 접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다연이의 말이 맞았다.

 

 

만약 이대로 현실에서 도망쳐버린다면, 그 자취에 남는 건 후회 뿐일 거다.

 

 

그래, 그러니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

 

 

 

 

'1일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모의고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핸드폰은 어김없이 알람을 울려댔다. 차라리 빗소리 속에 묻혀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울리면 좋으련만, 재수없게도 그 어플은 내 뇌리에 박히도록 또박또박 알림을 읊어주었다.

 

 

 

 

"선배!"

 

 

 

 

어떻게 내 위치를 찾은 건지 귓가에 다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곧장 내 옆에 들러붙었고, 바람에 그만 우산이 망가져버렸다며 머리 위에 지고 있는 가방을 손으로 톡톡 가리켰다. 제발 우산 좀 같이 쓰자는 간절한 신호였다.

 

 

 

 

"모의고사, 잘 봤어요?"

 

 

", 그럭저럭."

 

 

"후회 안 할 정도로?"

 

 

"후회는 무슨 후회야, 다시 본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데."

 

 

"다행이네요."

 

 

 

 

마지막 말과 함께 킥킥대는 다연이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이런 때를 보면 꼭 제 언니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비 진짜 많이 오네요. 작년에도 딱 이만큼 왔었던 것 같은데."

 

 

"그러게."

 

 

 

 

우산을 뚫을 듯이 맹렬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들과, 서늘한 바람을 타고 우산 안 쪽으로 들어오는 몇 개의 물방울들.

 

 

가만히 걸어가며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다연이의 말대로 작년 여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예년보다도 유난히 비가 많이 오던 내 인생 열여덟 번째의 장마.

 

 

그 여름날, 나는 내 첫사랑에게서 고백을 받았다.

 

 

 

 

*

 

 

 

 

"좋아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리꽂힌 그녀의 고백에, 나는 당황하여 두 눈만을 깜빡깜빡 움직였다. 아직 데이트는 커녕 제대로 말 한 번 못 나눠본 사이에 고백이라니. 비록 첫사랑한테서 받은 고백이었지만, 그 고백을 받은 순간 처음 든 생각은 '무슨 내기에서 졌나 보다.'라는 어설픈 생각 뿐이었다.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ㅡ"

 

 

"미안해, 내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꼭 말하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다희는 내게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요즘 한창 SNS에서 재유행을 타고 있는, 사망 시간을 알려준다는 정체불명의 어플.

 

 

지금 그녀가 내밀고 있는 그 어플 화면에, 남은 시간은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상태였다.

 

 

 

 

", 이러면 믿지?"

 

 

"그렇기는 한데...왜 저같은 사람을..."

 

 

"몰라서 물어? 너 잘생겼거든?!"

 

 

"...?"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도 멋있고..."

 

 

"......"

 

 

"아무튼! 고백 받을 거야 말 거야?"

 

 

", 아니, 그게..."

 

 

"그게 뭐?"

 

 

"내가 먼저...고백할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잠시동안 멍하니 서있던 다희는 이내 해맑게 웃으면서 나를 껴안았다. 정말로 천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나까지 행복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 동안, 끝까지 다희의 미소를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었다

 

 

하지만ㅡ

 

 

 

", 나 몇 분 남았지?"

 

 

"1분 15초 정도 남았을 거야, 언니."

 

 

"..., 진짜로 죽는 거야?"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말해보지만, 다희의 말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고개만을 숙인 채 가만히 앉아있을 뿐,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는 못 죽어. 밖으로 나갈 거야."

 

 

"언니...? 지금 밖에 비가ㅡ"

 

 

"금방 돌아올게. 잠깐,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언니! 잠깐만!"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다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가 유유히 사라졌다.

 

 

미소는 커녕 바닥에까지 뚝뚝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뒷모습.

 

 

그것이 내가 본 다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선배, 우리 모의고사도 끝났는데 내일 하루만 학교 빼고 놀러나가면 안 돼요?"

 

 

 

 

갑작스러운 다연이의 요청에, 나는 사뭇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

 

 

적어도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ㅡ

 

 

 

 

"놀러나간다면 모레가 낫지 않아? 내일까지는 장마일 텐데."

 

 

"그냥, 제 마음이에요. 왜요, 싫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ㅡ"

 

 

"그럼 내일 아침까지 이 종이 꽉꽉 채워오기!"

 

 

 

 

내 쪽으로 고개를 확 돌리면서, 그녀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버킷 리스트'라는 글자와 줄 여러 개가 그어져있는 A4 용지였다.

 

 

 

 

"내일까지 써올 수 있죠? 간단한 거라도 몇 개 적어보면 금방 채울 수 있잖아요."

 

 

"...그게ㅡ"

 

 

"그럼 내일 봐요 선배!"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작별인사를 건네더니, 그녀는 가방에서 우산 하나를 꺼내들었다.

 

 

 

", 잠깐만. 너 아까 우산 망가졌다고..."

 

 

"당연히 거짓말이죠! 저 원래 거짓말 잘 하잖아요, 몰랐어요?"

 

 

"......"

 

 

"아무튼, 진짜로 내일까지 써오기예요!"

 

 

 

 

이번에도 역시 자기 할 말만 실컷 말하더니만, 그녀는 그대로 우산을 펼쳐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녀가 건네준 종이를 바라보았다.

 

 

버킷 리스트. 솔직히 말해서 그닥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후회할 뻔한 일들을 줄였으니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거창하게 어딘가를 놀러나가기보다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로.

 

 

그렇게 내 버킷리스트는 천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

 

 

 

 

"오늘 정말로 즐거웠어요, 선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다연이는 내게 즐거웠다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버킷리스트에는 다연이가 하고 싶어했던 일들도 들어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녀가 무심코 툭툭 내뱉었던 말들,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 말은 그랬다지만 솔직히 선배가 버킷리스트 써올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거든요."

 

 

", 나를 지금 뭘로 보고ㅡ"

 

 

"23시간 59분 남았습니다."

 

 

 

 

일순간, 어김없이 핸드폰에서 울려오는 알람에 내 말은 멈추고 말았다.

 

 

하루.

 

 

이제는 정말로 끝이 다가오는 구나.

 

 

 

 

"뭐야, 선배 그거 알람 안 꺼놓으셨어요?"

 

 

"...? 이거 끌 수 있었어?"

 

 

", 가능하던데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젠장, 그런 줄 알았다면 진작에 꺼놓을걸.

 

 

 

 

"...그러고보니, 앞으로 남은 하루 동안 뭐하실 계획이에요?"

 

 

"글쎄, 아마도 다시 학교로 가지 않을까."

 

 

", 선배답네요."

 

 

", 그래도. 덕분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

 

 

 

고맙다는 의미를 담아,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연이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다연이 역시 내게 밝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지난 번 빗속에서 킥킥 웃어댈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미소였다.

 

 

 

 

"그럼, 내일 학교에서 봐요 선배!"

 

 

 

 

횡단보도의 불이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길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제, 정말로 후회하는 것 없이 마지막을 맺을 수 있겠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였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아있었다.

 

 

다희와 무척이나 닮았지만, 다희보다도 훨씬 강하고 밝은 그녀에게.

 

 

내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아름답게 찍게 해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연아!"

 

 

"......"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직접 불러봤지만, 그녀는 평소와 달리 밝은 모습으로 내게 돌아서지 않았다. 단지, 횡단보도의 한가운데에 멈춰선 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미안해요, 선배."

 

 

 

 

빗속에서 울려퍼진 한 마디 말과 함께, 그녀는 나를 향해 돌아섰다. 의미를 모르겠는 한 마디 말과 함께, 방금 전에 지어보였던 미소를 다시금 지어보이면서ㅡ

 

 

그녀는, 나를 향해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까만색 화면 가운데에서, 천천히 줄어드는 흰색의 카운트다운.

 

 

5.

 

 

4.

 

 

 

 

"정말로 미안해요."

 

 

 

 

3.

 

 

 

 

"내일 다시 보자고ㅡ"

 

 

 

 

2.

 

 

 

 

"마지막까지 그렇게 거짓말을 해버려서ㅡ"

 

 

 

 

1.

 

 

 

 

 

"미안해요, 선배."

 

 

 

 

0.

 

 

 

 

"빠아앙ㅡㅡ!"

 

 

 

 

일순간, 길게 이어지는 경적 소리와 함께 그녀가 들고 있던 우산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그녀의 마지막 미소를 안고서 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산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비구름 사이로 천천히 떠오르는 한낮의 햇살을 맞으면서.

 

 

빙그르르 돌아가며 내려오는 빨간색 우산과 함께,

 

 

내 열아홉 번째 장마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

 

 

 

저번 글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씹덕향 살짝 첨가해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