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은 노인을 업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쏟아져 내린 동전 때문에, 그리고 동전을 줍는 과정에서 생긴 환자들이 응급실에 가득했다. 이현은 노인의 피를 닦아주고, 입 안을 게워주고, 어깨를 내주고 손을 주물러주면서 끈기 있게 기다렸다. 민식은 의자에 앉아있다가 쏟아지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자는 도중에 배가 꾸루룩거려서 화장실에 한 번 다녀왔다. 똥은 여전히 묽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화장실에 있는 동안 몸이 덜덜 떨렸다. 다녀와서는 다시 잠에 들었다. 이현은 노인을 응급실에 맡기고, 자신의 연락처를 남긴 뒤 치료가 끝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일반 병실이 가득 차 있어서, 이현은 웃돈을 주고 특실에 노인을 입실 시켰다. 이현은 대기실에서 자고 있는 민식의 팔다리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발라주었다. 응급실에서 돈을 주고 얻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반창고를 붙이고, 붕대를 덧 대주었다. 민식은 그 쓰라림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현은 민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민식의 어깨를 두드려서 잠에서 깨웠다. 이현은 잠에서 깨어난 민식에게 말했다.
“인나야. 집에 가서 자 드라고.”
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민식은 자기 팔다리에 둘러진 붕대를 보았다.
“…엄마가 해준 거야?”
“좀 서툴제? 느가 푹 잠들어서 다행이었어야. 맨정신이었으믄 견디기 힘들었을 겨.”
이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민식은 그 웃음을 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워, 엄마. …고마워.”
민식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집어삼키느라 끅끅거렸다. 이현은 민식을 안아주었다. 팔을 뻗어 뒷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다독여주었다. 끝내 삼키지 못한 울음이 민식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민식을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이 이현의 어깨로 스며들었다.
“괜찮여, 괜찮여… 그럴 수도 있는 거여…”
이현은 민식의 눈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민식을 안아주었다.
민식과 이현은 병원 밖으로 나왔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둘은 민식의 자취방을 향해 걸었다. 민식은 조용히 이현의 뒤를 따라 걷다가, 이현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이건 왜 들고 온 거야?”
“나무 판자 말여?”
“응. 결국 쓰지도 않았잖아.”
“아니여, 그거 곧 필요할 겨. 두고 보드라고, 허벌나게 쏟아질텡게.”
“뭐가 쏟아지는데? 비? 그러면 우산을 들고 왔음 되잖아.”
“누굴 바보로 아는 겨? 우산으로 막었으면 우산을 들고 왔겄제.”
“그럼 비가 쏟아진다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럴 겨. 아까 전이랑 똑같이 동전이 쏟아질 거여… 아까 전에 내린 건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어마어마하게 말여. 느 찾는 동안 내려뿌면 어쩌나 해서 고거 챙겨 들고 빨빨 거렸구만.”
“또 쏟아진다고? 어떻게 알아? 누가 말이라도 해줬어?”
“아녀. 고런 것은 아니고… 그냥 감이여, 감. 엄마의 감. 그런 거 정확하잖여.”
민식은 자신이 끌어안은 나무판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 들라면 들어야지. 그 때 나뭇잎 위로 무언가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빗방울이라고 하기엔 소리가 묵직했다. 민식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소리는 나무와 풀들이 있는 쪽에서, 민식과 이현이 걸어가는 인도 쪽으로 점차 다가왔다. 팅, 팅, 티디디딩… 민식은 그 소리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민식은 나무 판자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엄마, 빨리!”
“니미… 허필 또 지금 쏟아질 건 뭐다냐…”
이현은 나무 판자 아래로 재빨리 뛰어들었다. 이현이 뛰어들기 무섭게, 나무 판자 위로 동전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나무 판자를 쥐고 있는 민식의 손마디 위로 동전들이 부딪쳐왔다. 민식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민식과 이현은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내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밖을 쏘다니던 사람들은 그저 그 자리에 얼어 붙어서,머리 위로 쏟아지는 동전들을 지켜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공포심이 온 몸을 마비시켰고, 동전들은 아가리를 벌리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 외의 사람들은, 동전들이 다시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제 동전이 떨어지는 것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기대, 환호, 즐거움… 온갖 희망들이 사람들의 눈동자 안에서 번득거렸다.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동전을 쓸어 담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더 많이 쓸어 담을 수 있게, 더 빨리 쓸어 담을 수 있게, 남들보다 더 많이 쓸어 담을 수 있게 생각을 짜내었다. 사람들은 동전이 그치는 순간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치기만 하면, 그치기만 하면… 하지만 오 분이 지나도, 십 분이 지나도, 삼십 분이 지나도 동전은 여전히 쏟아졌다. 오 분 동안 쏟아진 동전들은 바닥을 살짝 덮었을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동전들은 바닥에서 차올라 오기 시작했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밖에서 쏟아지는 동전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까와 다르게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동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들은 점차 이런 생각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서, 공포는 조용히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전이 계속해서 내릴 수록, 동전이 점차 바닥에 쌓여갈 수록, 공포는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공포는 욕심만큼이나 빠르게 사람들을 집어삼켜 나갔다. 동전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더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창문을 다 닫아도, 문을 다 틀어 막아도, 귀를 틀어 막아도,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멈출 수 없었다. 그 어떤 누구도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민식와 이현은 간신히 빌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민식과 이현은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이현이 챙겨온 나무판자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민식은 나무판자를 내려놓고, 동전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쌓인 동전들은 바닥을 넘어 빌라 현관까지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현이 민식의 손을 보더니 자기의 눈앞으로 가져다 대었다. 검지부터 새끼 손가락까지, 민식의 손톱은 떨어지는 동전에 부딪혀서 모조리 깨져 나가있었다. 깨진 손톱 틈 사이에서, 피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이고 세상에…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할 것이지 이걸 왜 참아 싼 겨! 이놈 자슥이 증말…”
“그렇다고 엄마가 들게 할 순 없잖아.”
“말이라도 하라 이거여! 집에 약도 없을텐디… 으쨔면 좋다냐…”
“참으면 되지. 살았으니까 됐어.”
“지랄… 말이야 청산유수지…”
민식의 손을 들여다보던 이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현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민식은 손을 뻗어서, 그나마 멀쩡한 엄지로 이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현은 홱 돌아서서 반지하로 내려갔다. 민식도 이현의 뒤를 따랐다. 이현이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당겨 열었다. 자취방 바닥에는 민식이 쏟아놓은 동전들로 가득했다. 동전들을 즈려 밟으면서, 민식과 이현은 매트리스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란히 창문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동전들을 지켜보았다. 동전들은 모든 공간을 메꿔버리겠다는 듯이 쏟아졌다. 동전 위로 동전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시끄럽게 뒤흔들었다.
“이 정도 쏟아져 내리면 주워 담아 봤자 쓸 수도 없겄다잉, 너무 흔해 빠져가꼬.”
“그러게.”
이현은 바닥에 쏟아진 동전들을 한 구석으로 쓸어 모았다. 에구 허리야… 이현은 허리를 두드리고 민식이 먹을 저녁 약들을 찾았다. 집안이 난잡 하고,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워서 찾기 어려웠지만, 이현은 그 틈 사이에서 잘만 민식의 약들을 찾아냈다. 이현은 약들을 분리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의 전기는 끊겨 있었다. 불도 안 들어오겠구만. 이현은 생수를 꺼내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컵에 생수를 따라서, 민식이 먹을 약과 함께 민식 앞으로 가져갔다.
“뭐라도 먹고 먹어야 하는디, 먹일 게 없네. 약이라두 먹어야. 안 먹는 거 보다야 도움 되니께.”
민식은 잠자코 이현이 건네주는 약을 받아 삼켰다. 얄약을 삼키고, 물을 마시고, 지사제를 짜 넣고, 물을 마시고, 한방약을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민식은 몸이 나른해졌다. 민식은 매트리스 위에 드러누웠다. 이현은 휴지를 뜯어와, 민식의 손가락에 감아주었다. 동전은 더욱 더 거세게 쏟아졌다. 이현은 민식의 머리를 조용히 쓸어 넘겼다.
동전들이 차 올라서 반지하방 창문을 가득 메꿨다. 원래도 어두웠지만,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 방 안을 채워나갔다. 느 집에 촛불 없제. 응, 없어... 이현과 민식이 말을 주고 받았다. 창문에 금이 갔다. 창문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유리 조각과 함께 동전들이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현은 민식의 몸을 흔들었다. 일어나 보드라고, 안으로 옮기는 게 좋겄어. 알았어. 민식과 이현은 일어나서 창문에서 최대한 멀리 매트리스를 옮겼다. 동전들은 계속해서 방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현은 자리에 앉기 전에, 자취방 문을 밀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 밖에도 동전들이 가득 차 있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갇혀 버렸고만. 이현은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민식에게 말을 걸었다.
“민식아.”
“응.”
“이런 날이 있을 줄 알았으면 아끼지 말걸 그랬어야.”
“쓸 돈도 없었잖아.”
“쓰려고 하면 쓸 수 있었어야. 그냥 빚 밀려 들어오는 거 막아 볼라고 급급했던 것이여. 시집 들어서 남 좋은 일만 하다가 가는 구만. 팔자 좀 고치고 이제야 좀 살만해 졌다 싶었는디…”
“그칠 수도 있잖아.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죽는 소리를 하고 그래.”
“아녀. 여기서 죽을 거 같여. 원래 사람이 나이가 쌓이면 여기가 죽을 장소다 싶은 걸 안다고 하잖여? 고게 지금 여기여. 여기가 끝이여.”
“어떻게 아는데?”
“감인 거지 뭘…”
“그 놈의 감…”
“민식아.”
“왜.”
“미안허다.”
“뭐가.”
“미안혀, 전부 다… 먹고 싶은 거 멕이고 입고 싶은 거 입히고 부를 땐 보러도 가고 그랬어야 혔는디… 내가 너무 모질랐어야. 너무 급했어야. 뭐가 중헌지도 모르고… 어미가 되어 아들을 만나는 것도 다 복이고 인연인디… 내 챙기기 바빠가꼬, 그것이 옳은 줄로만 알고… 미안혀, 미안혀…”
이현은 조용히 흐느꼈다. 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흔들리는 이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이현을 끌어안아주었다. 이현은 여태껏 쌓였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오랫동안 쌓여서, 이현의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현이 우는 소리는 동전이 방 안으로 쏟아 들어오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이현이 마지막 눈물을 짜낼 때까지도 동전은 그치지 않았다. 이현은 매트리스 위로 드러누웠다. 민식도 그 옆으로 드러누웠다. 밀려들어온 동전들은 어느새 매트리스 앞까지 와 있었다. 이현이 손을 뻗어 민식을 어루만졌다. 민식은 이현이 누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현을 끌어 안았다. 이현도 민식을 끌어 안았다. 민식과 이현은 강하게, 온 몸의 힘을 끌어 모아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둘은 오롯이 서로를 끌어안는 것에만 집중했다. 동전들이 더 밀려들어와서 민식의 등에 닿았다. 그러나 민식은 조금의 차가움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따스함이, 이보다 더한 것을 떠올릴 수 없는 따스함이 민식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식은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아기로 되돌아간 것처럼, 끌어 안은 이현의 등을 더듬으면서.
이게 따스함이구나, 이게… 따스함이구나…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는 점차 희미해져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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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여기서 끝입니다.
길이가 좀 있고, 분할이 많이 되어서 웹에서 읽기에는 부적절하지 않았나 싶네요.
게시판을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