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https://arca.live/b/writingnovel/46596901?p=1

2장:https://arca.live/b/writingnovel/46598509?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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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겨울

백호는 자신의 털빛과 같은 눈밭을 헤치며 삼각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백호의 병마는 점차 호전되었으며 강추를 먹은 직후부터 끊이지 않던 바늘을 삼키는 고통도 어느새 줄어져 있었다.


눈 내리는 삼각산에 도착하여 잠시 동굴 안에 어딘가에서 몸을 피했다.

"이제는 어느샌가 눈이 내리는 계절로 돌아왔구나."


"그러게다, 어느샌가 눈이 내리는 계절이 왔구나."

백호가 동굴 안을 보니 삿갓을 쓴 사내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혹시 삼각산의 산신이 됩니까?"


"아니다. 나는 인간을 다스리는 칠사, 그중에서 길을 담당하는 신인 국행이라고 한다."


"국행께서는 어째서 여기에...?"


"당연히 너를 만나러 온 것이다. 너가 가야 할 곳은 보통의 길이 아니기에."


"제가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충분히 쉬었느냐? 앞으로 네가 갈 길은 쉴 곳이 그리 마땅치 아니할 것이다."


국행과 백호는 어느 동굴의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저승과 이승을 잇는 공간이다."


"국행이시여, 어찌 저를 저승으로 인도하십니까?"


"네가 그동안 모은 삿된 것들의 혼은 하늘로 돌아갔으며, 망가진 몸은 되돌릴 수 있다. 허나, 백(魄)은 땅(地). 다른 이의 백은 너의 백을 어지럽힌다. 안타깝게도 백을 벗겨내는 것은 오직 지옥에서만 가능하다."


"국행 어른, 제가 지옥에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너의 길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모든 길이 그러하듯 고난이 가득하겠지만 하늘은 너를 언제나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백호는 국행에게 인사를 하고 동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연 동굴을 지나니 역한 황 냄새가 백호의 코를 찔렀다.

지옥은 말 그대로 땅 아래의 길로 천지와 금강산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백호가 정처 없이 지옥의 길을 거닐자 저 멀리서 무사와 장수들이 다가왔다.

"네 이놈! 네놈이 어째서 지옥에 들어온 것이냐?! 썩 물러가라!"


"물러갈 수 없소이다! 나는 내 몸에 있는 백을 벗겨내야겠소!"


"이 상스러운 호랑이가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장수로 보이는 자가 이끌고 온 군사에게 명령하자 일제히 백호에게 달려들었다.


백호는 그 군사들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나 수가 매우 많아 백호는 이리저리 뚫리고 베어지며 그의 몸에 수천 개의 칼과 창이 박힌 이후에야 공격을 멈추었다.

"백호야, 이곳을 떠나거라. 함부로 네가 발을 디딜 곳이 아니다."


"물러날 수 없습니다. 기어코 죽이겠다면 차라리 죽겠습니다."


"너의 뜻이 그러하다면."

장군으로 보이는 자가 군사들을 시켜 백호의 다리를 묶고는 어떤 것으로 향하였다.


장군이 백호를 끌고 온 곳은 잎이 검처럼 날카로운 데다가 바람이 세게 불어 바람에 흔들린 잎이 몸을 찢어버린다는 검수림(劍樹林)이었다.


"들어가라! 원하는 대로 너는 이곳을 돌아다니다가 잎에 찢어져 죽게 될 것이다."

백호는 고통스러웠지만, 여정을 어떻게든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검수림의 날카로운 잎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검수림의 끝에는 다시 처음에 보았던 장군이 보였다.

"목숨이 질기구나, 백호야. 네가 죽기를 각오하였으니 그 말에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군은 군사를 시켜 다시 백호를 포박하였다.


백호를 끌고 간 곳은 커다란 끓는 물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백호야, 이곳은 쇠마저도 녹이는 곳이다. 이곳은 너가 여기에서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지금이라도 포기하여라."


"포기할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길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오."

그러자 장군은 창으로 백호를 찌르며 끓는 물에 넣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과 열기가 느껴졌으나 백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끝없이 참았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백호는 끓는 물에서 꺼내지게 되었다.

백호는 고통에 지쳐 축 늘어져서 끌어져 가는 형태였다.


"어디로 가는 거요?"


"가보면 알 것이다."


백호를 끌고 간 곳은 상당히 큰 궁궐이었다.

지옥의 풍경과는 매우 이질적으로 마치 천상에나 있을 법한 궁궐이었다.


백호를 끌고 온 군사들이 누군가에게 예를 차렸다.


"큰 어른, 말씀하신 자를 끌고 왔습니다."


"고맙다, 가서 일을 보아라."


군사가 예를 차린 이는 주위에 은은한 별가루의 기운을 내었으며 파란 도복에 놓여진 금실이 마치 별빛처럼 수놓아져 있는 것을 보아 매우 높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듣기에는 상당히 하얗다고 들었지만, 유황에 끓여져서 그런지 황호(黃虎)처럼 보이는구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호랑이는 일어서며 말했다.


"짐은 하늘의 중전이신 마고의 아들이자, 환인의 우두머리, 그리고 지옥의 큰 어른인 '대별왕'이라고 칭하느니라."


"대... 대별왕 어른...!"

그 높은 이름을 듣자 자연히 자세를 넙죽 엎드렸다.


"예를 차릴 것은 없다. 허나, 내 아이들이 너에게 해를 가한 것은 필요한 것이었다. 이해해 줄 수 있겠는가?"


"미물이 큰어른의 뜻을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다는 말이십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백호가 두려워 떨고 있자 대별왕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제 너에게 있던 삿된 백기(魄氣)는 네가 받은 고난으로 전부 씻겨 내려갔다. 앞으로 내가 너에게 내릴 시련은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별왕은 백호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어찌하여 인간이 되고자 하였느냐?"


"... 천하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너는 이제 천하를 돌아다녔고 지옥까지 오게 되었다.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 세상의 대부분은 본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될 수 없을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냐?"


"하늘과의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이제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습니다."


"약속을 저버렸다라..."


대별왕은 차를 잠깐 마시고는 말했다.

"내가 누구이더냐?"


"하늘의 중전 마고의 아들이십니다."


"또?"


"...환인의 우두머리이십니다."


"그렇다."

대별왕은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영혼을 하늘로 돌려보내고, 체를 갈고 닦았으며, 지옥에서 고난을 이겨 내었다. 이 과정은 생명이라면 모두가 겪는 것이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 혼(魂), 백(魄), 체(體). 이 삼원(三原)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다 흩어지고 다시 뭉친다."


"대별왕 어른..."


"환인의 우두머리로서 고한다. 너의 깨어진 약조는 이제 잊혔다. 그리고 그동안의 고난을 치하하기 위하여 너에게 새로운 약조를 하고자 한다. 백호여. 어떠한가?"


"그저 망극할 따름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천명(天名)으로 '천호(天虎)'를 부여하고자 한다. 인간이 되고자 동물의 몸으로 능히 고난을 이겨내었으며  또한 마땅히 받을 것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길 잃은 영혼을 구휼하고 구제하는 신이 될 것이며, 살아있는 자를 괴롭히는 역도(逆道)의 무리를 정도(正道)에 맞게 조정하라. 그대여, 하늘과 새로운 약조이자 사명을 받들겠는가?"


"어른의 뜻이 그러하다면 받들겠나이다."


"방금, 서천의 꽃밭에서 너의 이름을 딴 꽃이 피었느니라."


대별왕이 말을 마치자 호랑이의 몸에 깃들었던 오색의 빛깔이 떠올라 호랑이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오색의 빛깔은 짐승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 바꾸니 머리가 하얗고 눈이 파란 남자로 변하였다.


"몸에 털이 사라지다니, 이것이 인간의 몸이로구나..."


"내 돌려보내기 전에 하나 더 물건을 주고자 한다."


"무엇입니까?"


"이 책은 삼원육십사도(三原六十四度)라고 한다. 영혼을 구제는 하는 것은 만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술과 자세가 들어있으니 너의 사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른. 반드시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대별왕은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밖에 누가 있는가?"


"여기, 좌장수가 대기하고 있나이다."


"이 자는 지옥의 귀빈이니 나가는 길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라!"


"받들겠습니다. 큰 어른!"


그렇게 천호가 된 호랑이는 어느새 봄이 온 세상을 보며 다시 평양성으로 돌아왔고,


환웅에게서 주청성신검을 하사받아 세상의 삿된 것이 구휼되고 구제되니 가히 천호라고 불릴만한 명성을 쌓아나갔으며, 이내 초아라는 여인을 만나서 가정도 꾸리게 된다.



"네, 뭐 아무튼 호랑이는 잘 살았었네요."


"끝나지 않았다, 이놈아."


"아직도요? 뭐가 더 남은 건데요?"

창밖을 바라보자. 이제는 하늘에 노을이 져 있었다. 


"그런데요, 외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냐?"


"그렇다면 저희는 왜 이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거죠?"


외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창밖의 노을 진 하늘을 바라봤다.

"잊힌 거지,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처럼."


"그리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믿는다고 생각하세요?"


"이야기는 믿는 것이 아니야, 기억하는 거지."

외할아버지는 식어버린 차를 들고 목을 축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