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또 새로운 의뢰를 전하러 온 심부름꾼이겠지. 젠장.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쉴 시간도 안 주는 건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귀여운 꼬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난 아직도 좀 자고 싶거든

 

“......!?”

 

눈을 감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철컥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둑이라도 든 건가 싶어, 조용히 배게 밑에 넣어둔 단검을 꺼내 든다. 거실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로 미루어 보아, 침입자는 그리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되려 종종걸음에 가까운, 그런 소리였다

 

“...계세요?”

 

난간에서 뛰어내려 급습하려던 차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야, 너 어떻게 들어왔어?”

 

그게, 조합장님께서 이번에도 분명히 자는 척하고 있을 거라고 하셔서. 열쇠를 주셨거든요.”

 

. 좋아. 지금 내려갈 테니까, 잠깐 거기서 비켜줄래?”

 

심부름꾼이 뒤로 물러나자, 난간을 훌쩍 뛰어넘어 거실 정중앙에 가뿐히 착지한다. 그가 들고 있던 불 꺼진 등을 건네받아 불을 붙인 뒤, 탁자에 올려둔다. 환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동시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뭐야? 우편 배달은 분명 다른 애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저희 지부를 포함한 다수의 지부에 이런 편지가 도착했어요. 보낸 사람은 적혀있지 않고, 모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해요. 이 편지를 전달한 우편부들을 심문해보기도 했는데, 별다른 수확은 없었어요.”

 

그래서, 나보고 그 편지가 어디서 왔는지 조사해서, 사례금이나 내고 의뢰하라고 경고하라는 거지? 진절머리 나는군.”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이 편지와 함께 사례금이 도착했거든요.“

 

그가 편지 봉투를 이쪽으로 건네주자, 진한 향이 풍겨온다. 과일 향처럼 달콤하지만, 어딘가 짐승에게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이 봉투가 사례금이라고?“

 

그럼요. 이 봉투는 순수 에테르에 담가서 물을 먹인 종이에요. 아시다시피, 에테르는 아주 높은 온도에서 가공하지 않으면 고유한 마법 저항력을 잃는지라, 3년에 한 번 찾아오는 불의 제전에서만 소량 가공해서 시장에 내보내거든요. 순수 에테르로 처리한 제품은 엄청나게 희귀해서, 이 봉투 하나만 팔아도 케이크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을 수 있을걸요.“

 

역시 어린아이답게 유치한 비유구나. 싶어 코웃음 치며 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다. 사락거리는 머리칼이 거친 손에 와 닿는 감촉과 어린아이 취급할 때마다 부끄러움에 뺨을 붉히며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볼만했다.

 

그나저나, 그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있었는데?“

 

아침 해가 고개를 드는 곳으로. 영원한 겨울이 감싸 안은 대지로 향해라. 그대에게 툴라의 영광이 따르니, 눈보라와 서리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여왕을 죽이고, 겨울의 종지부를 찍어라. 그러면 헤아릴 수 없는 부와 영예를 손에 얻을지니.“

 

뭐야, 그럼 그냥 선전포고잖아?“

 

그런. 셈이죠. 그래도 일단 의뢰인데다 사례금까지 받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적대하는 신을 죽일 용병을 저렇게 요란하게 구하는 것도 그렇고, 신을 죽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를 리 없는 양반들이 빌어먹을 종이 쪼가리 하나 받았다고 승낙해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다고 지금 저 의뢰를 거절해서 밉보였다간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몇 푼 안 되는 지원금마저 끊어버리려고 벼를 테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그러니까.“

 

평소였다면, 또 바보같이 웃으면서 해야지 뭐,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뭔가 달랐다. 지난 원정에서 쌓인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받기로 한 지원금이 두 달째 체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글쎄. 어쩌면 둘 다일지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내 목숨값은 그 작은 종이 쪼가리 하나만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울컥하는 마음이 목구멍을 타고 입을 쏟아져나왔다.

 

또 내가 해야지. 그래, 다른 귀하신 집 자제들은 혹시라도 죽어버리면 위약금을 왕창 물어줘야 해서 이런 터무니없는 의뢰에 보내지 못하시겠으니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빚쟁이 고아년이 다 해야지, 안 그래?“

 

. 그런 게 아니라.“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저 제 위치를 다시 확인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려오는 걸까.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된 머리와는 다르게, 입술과 혓바닥은 불이 붙은 듯 신나게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다. 흘러넘치는 울분에 비해 내 그릇이 너무 작았던 탓일까, 싸구려 술을 쌓아놓고 마음껏 먹었던 날처럼, , 눈앞이 깜깜해졌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꼬맹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마 이 일을 조합에 보고하러 간 거겠지. 그럼 이제. 조합에서 쫓겨나고 길바닥에 나앉아 얼어 죽는 수밖에 없는 건가.

 

젠장.. 난 아직 죽기 싫은데..“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큰 주먹으로 두드리는 둔중한 소리로 미루어 보아, 심부름꾼 꼬맹이는 절대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는 주먹 소리는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가겠다는 듯,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마음 속 응어리를 다 토해버린 탓일까,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버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