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악몽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근 일주일 새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있다. 악몽의 내용은 언제나 같다. 종염의 기사가 태어난 날. 영예로운 첫 작품을 만들어낸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날인 동시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업을 뒤집어쓴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화창했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말라붙은 나뭇잎 사이를 흐르며 내 젊은 몸뚱이를 부드럽게 간질였다. 생애 첫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흥분에 취해,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힌 칼날을 임시 탁상 옆에 기대어 둔 채로, 공방 뒤편의 물가로 놀러 나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렸을 때처럼 물을 첨벙거리며 물고기를 잡다가, 저 멀리 강변에 무언가 검은 물체가 물을 따라 떠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그 물체를 향해 다가갔고,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그것이 찌그러지고 검게 타버린 갑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갑옷 안의 사내는, 오줌보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끔찍한 몰골을 보고 동정심이 든 나는 그를 갑옷째로 짊어지고 공방으로 돌아왔다. 그를 공방 안쪽의 임시 탁상에 잠시 눕혀두고, 스승님께 그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스승님은 심각한 표정을 하시더니, 그가 수많은 왕국과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미래가 보였다며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아 들고, 여기서 그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죄 없는 생명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 조금 꺼림칙했지만, 스승님의 예언은 언제나 정확했으니, 그저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애써 설득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죽어가던 기사의 갑옷 틈새로 단검을 찔러넣으려던 찰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져 인형처럼 덜렁거리던 그의 오른팔이 움직여, 탁상 옆에 기대어두었던 내 검을 쥐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칼날은 마치 주인을 선택했다는 듯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채 이글거렸다. 번쩍, 번쩍. 검을 쥔 손이 몇 번 허공을 가르자, 순식간에 스승님은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승님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나는 투구 틈새로 번뜩이는 그의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겁에 질려 공방에서 도망쳤다. 뒤를 돌아볼 용기조차 없었다. 그저 달리고 또 달렸을 뿐.
내가 만든 검을 쥔 채로, 기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었다.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조국에 대한 증오와 너무나도 강력한 생존본능이 뒤엉켜, 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스승님의 예언대로 자신의 고향을 비롯한 수많은 왕국을 함락시키고, 수많은 사람과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처절한 사투 끝에 당대의 가장 뛰어난 용사와 현자들이 엘프의 숲에서 그를 저지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불사의 몸이 된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의 처분을 둘러싼 오랜 논의 끝에, 현자들은 힘의 원천이 되는 심장을 뽑아 엘프의 숲 가장 깊숙한 제사장에 봉인하고, 용사들은 그의 껍데기 육신을 시타델 변방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대대로 그 주위를 지켰다.
그가 대부분의 힘을 잃고 갇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과거 스승님이 맡고 계시던 자리를 이어받았다. 좋든 싫든, 과거의 사건은 점차 세월의 풍파에 밀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고, 이걸로 나도 조금이나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다시 악몽을 꾸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는 지금쯤 감옥에서 탈출해 봉인을 도왔던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해하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가 속죄할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