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결투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성장한 레온이 두 검을 물려받고 그의 우호세력과 함께

나선 첫 싸움에 대해서 말이지요. 상대는 연합국의 온건파. 나라의 형태가 이대로 굳기를 바랬던 평화주의자

들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맞닥들인 상대의 검. 그것은 직선으로 곧게 뻣던 선의 연속 속에서 끝에 다다라서야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린 곡선이 었니다. 오른쪽 검병에서 시작된 선 또한 곧게 뻗다가 똑같이 그 끝에 이르러선 스르륵 휘게 

된 형상이었지요 아름다운 직선의 미는 물론이고 끄트머리 쯤에서 살짝 변형한 곡선의 미 또한 뒤섞여 있어

 참 보는 맛이 있는 곡도입니다. 


 후기에는 이런 형태의 검을 펄션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딱히 그것을 뭐라 칭하지는 않았고 뭉둥

그려 곡도라 칭했습니다만. 뭐 여하튼 듣는이의 시점에서 현대의 기준으로 설명을 들여야지 조금 더 듣기 

편하시다 말씀 드릴 수 있겠지요?


 곡도의 끝에는 서슬퍼런 영성이 한가득 걸려 있습니다. 채색은 보라색. 보라색 기운이 감도는 펄션이 휘둘러집

니다. 마른 몸에 비해, 기형적으로 큰 키와 긴 손을 가진 남자, 셀로스의 손에서요. 


 칼 끝이 부딧칩니다. 정확히는 두개의 칼과 하나의 칼이 부딧치는 것이지요. 레온은 어미에게서 물려 받은 흑

색과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백색의 중간지점인 회색의 영성으로서 물려받은 두검을 감싼채로 셀로스의 펄션

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스파크가 튀며 바람을 찢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수선한 주변머리에도 다 들릴정도로 큰 소리였지요. 두 사람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영성을 잔뜩 담은 칼을 상대편에게 밀어넣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지척에 닿을 거리에서

말이지요. 


 많은 매체에선  흔히 뭐 이런 상황에서 상대편에 대한 말 한마디나, 상대편에 관한 이야기 몇 마디를 주고 받는 

장면을 넣곤 합니다.  하지만, 이게 정신이 없거든요. 그런 말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특히나, 가상의 칼싸움이야

칼을 서로 튕기고 주고 받고 그러지만 현실에선 여기서 밀리면 그대로, 다음 자세를 가다듬기 전에 도륙나기

일수인지라. 더더욱 깊은 숨을 몰아 쉬고 상대를 몰아 붙이는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레온는 두 자루의 칼을 힘주어서 밀어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인체 공학적으로 하나의 칼을 두 손으로 쥐는

것이 두개의 칼을 각각 한 손으로 쥐는 것보다 훨씬 많은 힘을 전달 할 수 있거든요. 그나마 선천적으로 물려

받은 풍체의 힘으로서 간신히 막고 있는 것이지 원래는 불가능합니다. 성한 몸으로도 그럴진데, 성벽을 뛰어

넘고 이 앞에, 도착하기까지 맞닥들였던 싸움으로 인해 몸은 만신창이인 상태인데 이만큼 버틴것도 기적인 것

이고 더 오래 버티거나 힘으로 압도하기엔 불가능하죠.


 물론 쌍검의 장점이 없는것만은 아닙니다. 보통은 이론상이긴 하지만. 완력이 규격외인 저런 케이스에서 서로의 

검날을 부딧쳐 힘적으로 완전히 밀리지 않는다면 그 이론상의 장점을 확실히 살릴 수 있습니다. 서서히, 힘의 

중심에서 한 칼을 밀어내다가, 바로 떼어 내어 상대편이 밀고 있는 힘의 중심점을 무너뜨리는 부분에선 말이지요.


 펄션이 자신의 몸 쪽으로 밀려온다는 것을 확신한 레온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쌍검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칼 끝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잡던 칼, 데이라이트를 천천히 빼다 밑으로

쑥, 내립니다. 


 내림과 함께 힘의 균형은 완벽히 셀로스 쪽으로 향했으나 오른손쪽에 잡힌 칼이 무방비인 상대의 상체쪽을 향해

남게 되었지요. 보통은 이 지점에서, 승부가 갈리곤 합니다.  


 방어 균형이 무너진 쪽과 한손의 칼이 남는 쪽. 두 사람이 서로의 목줄기를 최우선으로 여기게 되면 보통 거기서

누가 더 빠른가가 승부의 갈림길이 되곤 하거든요. 


 하지만, 셀로스는 나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위대한 네 발 짐승들, 후기에는 드래곤이라 구전되는 존재들과 푸른

별의 주권을 두고 싸우던 용사들 중 하나였지요.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몇번의 칼밥을 주고 받는 입장서도 이미

자기와 상대에 대한 객관화가 확실히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기본기에 있어서 만큼은 상대가 여러모로 자신에 비해 뛰어나다. 역시나 누구누구들의 아들이 아니랄까봐. 상대

가 걸어오는 기본의 싸움에서 자신이 승부를 거는것은 상대의 페이스에 완전히 밀리는 것이다. 페이스에서 밀리

는 것은, 상대와의 승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오랜 경험으로, 상대편이 자신하는 방법으로 싸우면 필패라는 것을 알고 있던 셀로스는 상대의 목줄기가 아닌 

레온의 오른손에서 날아오는 한손 검, 데이라이트의 끝자리를 검날로 받아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힘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것과 반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손에서 날아오는 칼을 받아치고 뒤로 거리를 벌리려

합니다.


 레온은 입가에 미소를 씨익, 띄웁니다. 승부를 보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전황이 자신에게 유리해 질 것 같기에.


 명심해야 할 것이 쌍검의 칼은 두자루 입니다. 오른손의 검날을 치고 힘의 중심의 역방향으로 회전하여 받아치는

시점에서는 이미 왼손에 들려 있는 밤그림자, 나이트 쉐도우가 남아 있었죠. 몸을 놀려, 피하고자 하지만 회전한 

쪽의 반대편의 칼은 피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방향에 무너진 자세쪽에 잡고 있던 왼 칼날은 어쩔 수 없이 맞아

야 하니까. 


 오른칼을 받아치고, 왼칼또한 영성의 힘을 이용하여 회전의 방향을 역으로 돌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래봐야, 검상은 피할 수 없는 부분. 치고 들어 온 밤그림자에 복부쪽으로 검상이 들어갑니다. 깊다고 하긴 그랬

으나, 생체기라 불리기엔 조금 깊은 상처. 


 불에 데인듯한 뜨거움을 느낀 셀로스는 거리를 벌리고 피가  흐르는 배를 손으로 쓰윽 문질러봅니다. 흥건한

왼손, 본인의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는지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동등하게 싸울 수 있겠군."


"......."



 거리를 벌리고 숨을 돌리는 셀로스에게 레온은 말했습니다. 이미 온 몸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임에도 레온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쳐 흘렀습니다. 상처를 입고 시작했음에도 몸이 온전할때도 꽤나 힘든 싸움이었는데 

꽤나 큰 자상을 입은 이 시점에서 장기전을 노려본다면 더욱 힘들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지요.


 호흡이 어느정도 고르게 펴지자, 다시한번 자세를 다잡고 셀로스는 영성을 끌어 올립니다. 쌍검의 일반적인

단점에 대해 생각하며 근접에 붙어서 칼날 겨루기를 한 행동을 짧게 후회 한 후.  단번에 승부를 보겠다 생각

하며 승리의 패턴을 머릿속으로 구축해 갔습니다.


".....간다."


 생각이 섯는지 셀로스는 칼을 양손으로 잡고 잡은 양손을 이마쪽으로 올리며 앞을 향해 나아 갔습니다. 

기본기 싸움으로 나간다면, 필패. 이런 경우를 대비해 숨겨둔 부무장을 꺼낼때가 온 거같다 생각한 그는 

최후의 싸움을 위해 왼쪽 가슴팍쪽에 숨겨 둔 날붙이의 차가움을 느끼며 앞으로 몸을 내딛었습니다. 


 호선이 길게 그려지는 횡베기. 너무도 당연히 레온의 두 칼에 막혀 몸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아까와 같이

몸을 붙인 싸움을 유도하려 하지만 부딧친 칼날을 고의적으로 내린 후 몸을 회전하여 최대한 가까이, 붙습니다.


 늘러붙는 셀로스를 베어내기 위해 칼을 역수로 다시 잡고 찌르지만 하나의 칼은 칼을 위로 올려 쳐 내고, 나머지

하나의 칼은 경로쪽으로 비스듬히 던져 막아 낸 후 기어코 파고드는데 성공한 셀로스. 왼쪽 가슴팍에 숨겨 둔 비

수를 꺼내어 듭니다. 


 반짝거리는 비수의 칼 끝. 그리고 이어지는 군더더기 없는 짧은 동작. 


 빠른 반응으로 칼을 던진 후 왼손으로 더욱깊히 파고드려 한 칼은 막았지만, 어느정도 비수는 유의미한 거리까지

레온의 가슴팍을 파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일격이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한 성과. 칼을 버리면서까지 파고 든 일격이었지만 상대는 주춤했

으나 치명적인 상처까지는 피한 상황. 승부는 여기서 이미 끝이 난 것이었지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셀로스의 목줄기를 오른손에 쥔 칼로 쓱, 베어버리는 레온. 잠시 후, 

셀로스는 목 줄기 끝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곧 이어 숨을 거두게 됩니다.  


 승리하였지만, 레온또한 마냥 좋게 볼 수는 없는 상황. 간신히 이기긴 했지만서도, 본인또한 꽤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승자가 된 레온을 호위하기위해 다가 오는 그의 무리들. 레온은 무거운 눈꺼풀과 느릿

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제는 시간이 제법 지난 첫 싸움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이랑 꽤, 비슷했던거 같거

든요.




 그의 기억속의 첫 싸움은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협곡을 주름잡던 거대한 곰을 쓰러뜨린 이후 였지요.  

곰은 꽤나 강했습니다만, 생각보다 강하진 않았습니다. 상처를 입긴 했지만서도, 위험한 수준까지는 분명 

아니었으니까요. 곰을 잡았다는 징표로 그의 머리를 잘라 들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레온의 눈에 밤눈이 

반짝였습니다.



 늑대입니다. 늑대가 울고있었습니다. 해가 다 지고난 절벽 곳곳에서 번뜩이는 눈동자 몇개가 어른 어른 어둠

속에 비춰졌지요. 레온의 손마디만한 거대한 송곧니가 번뜩입니다.


 늑대는 집단 사냥을 합니다. 한마리가 등장해 운다는 것은 곧, 최소 네마리 이상이 주변에서 소리를 

듣고 포위 할 것임을 이야기 하지요. 둘러쌓이게 되면 이 평야에 도망 칠 곳은 없습니다. 


 레온은 그것을 깨닫고 제빨리 손에 든 창을 던집니다.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불곰과의 싸움도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돌연 등장한 늑대 한 마리에도 날선 감각은 즉시 반응하여, 시커먼 어둠 속을 향해

날이 바짝 선 창 끝을 내던집니다.  회전하며 날아간 창살. 자리에 울던 늑대는 낌새를 채고 피하려 몸을 

틀었지만 기어코, 창살은 늑대의 기도를 꿰뚫어 냅니다.


 울음 소리에 묻어 나오는 핏기. 곧이어 가래가 끓는듯한 소리가 나며 늑대는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하지만, 첫 음이 이미 저 골짜기 사이로 넘어간지 오래. 소리를 들은 늑대들은 목에 꼽힌 창살을 힘주

어 뽑아 낼 쯔음에 어슬렁 어슬렁 그의 주변에 이미 와 있었지요.


"......."


 레온은 좌 우를 두리번 두리번 살핍니다. 나설 길을 찾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늑대는 꽤 영리합니다. 

비좁은 공간에 다다른다면 불리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도망갈만한 곳은 영리

하게 틀어 막아두었지요. 총 넷의 회색 늑대들. 


"후......."


 한숨을 푹, 쉽니다. 힘든 싸움이 될 꺼 같아서요. 이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곤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좌우로 두리번, 다시금 상대륻 바라봅니다. 포위망의 타겟 중 가장 약한 녀석을 고르기 위함이죠. 네 갈

래로 퍼지는 길 중 가장 넓은쪽을 맡고 있는 녀석이 레온의 눈에 들어옵니다.


 벌린 입 사이 왼쪽에 보이는 송곳니 끝이 부러져있음을 확인한 레온은 곧이어 창대를 힘주어 잡습니다.

몰아쉬었던 한숨의 바람은 발 뒤꿈치와 허벅지 근육으로 전달되어 순간적으로, 폭발합니다.  


  쇄도하며 나선 그의 창살. 늑대가 뒷걸음질 치며 피해보려 하지만 창끝은 미간을 정확히 관통합니다.

꿰뚫리고 자리에  쓰러진 늑대. 창살이 박히자, 뽑아 낼 타이밍에 공격을 잇기위해 사방에  서 있던 늑대

들이 레온에게 달려듭니다.  


 손 마디만한 이빨들을 옆으로 구르고 피해내며 날을 뽑음과 동시에 뒤로 한바퀴 회전하고 베어내며 맨 앞

에있는 녀석을 베어내는 레온. 뛰달리던 늑대의 턱밑을 베어냅니다. 쓰러진 후 몸을 웅크려 마는 늑대. 

이제 남은 것은 두 마리.   


 성급히 달려들다 죽은 한마리를 보고 영리한 늑대들은 이 짧은 싸움에서도 배운 것이 있는듯, 더 이상 쉽

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웅크려들며 천천히. 낮게 으르렁 거리며. 창살을 예의 주시하고 피해 나가며 교차

할 때 마다 조그만한 상처들을 하나씩 만든다 생각하고 가벼히 몸을 날렸습니다. 


"헉.....헉....헉...."


 숫자가 절반이나 줄었음에도, 장기전으로 흐르자 싸움은 힘이 들었습니다. 상처는 하나 둘 생겨가며 이젠

거동이 제법 불편할 정도로 늘었습니다. 열넛 다섯짜리 아이의 체력은 협곡을 뛰어 다니던 회색늑대들보다

좋다 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더이상 지체된다면 자신은 지처 쓰러질 것이고 자신의 목줄기가 저

날카로운 송곳니에 박히게 될 것이 눈에 선했습니다. 


 자리에 서서 레온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습니다. 승부를 한번에 보야아 할 것이라는 생각 했습니다.

엇갈리는 자리에 선 두 놈. 찌르려 나아갈 것이면 뒤로 물러 설 것이고 창살이 헛친것을 알면 달려 들 것

이니 그것을 이용해야겠다. 생각하며 한쪽을 향해 처음 봤던 것과 같이 몸을 내던져 찌릅니다. 


 예상이라도 한 것인지 늑대는 너무도 쉽게 레온의 창살을 피합니다. 그와 함께, 큰 동작을 마저 추스리기

이전에 뒤에 서 있던 또다른 늑대가 가볍게 스치듯 레온을 훑고 지나가려 다가왔습니다. 이때다, 싶은 생

각에 레온은 가죽을 잘라내기 위해 품안에 숨겨 두었던 칼로  가벼운 마음으로 뛰쳐드는 늑대를 잡고 

찔렀습니다.  


 품 안에서, 한동안 몸부림 치던 늑대. 남은 한 늑대는 그런 몸부림 치는 늑대를 보며 기회라 여겼는지 

달려듭니다. 목줄기를 틀어쥘 기세로 달려드는 늑대의 거대한 송곳니. 허나 레온은 품안에서 몸부림치는

늑대의 목숨을 거둠과 함께 앞으로 손을 내질러 벌리고 들어오는 늑대의 아가리에 쳐 넣습니다. 


 "....!"


 엄청난 격통이 손을 타고 오릅니다. 늑대는 들어간 팔을 씹어 삼킬듯이 거칠게 자신의 입 안에 들어온 

손을 물고 뜯습니다.  정신마져 혼미할정도로 강렬한 통증이 팔 끝에서 밀려옵니다. 허나, 이대로 가다간

팔을 끝내고 목까지 빈틈없이 밀고 들어와 수급을 취할것이 분명했기에, 끝마친 늑대에게 박아 둔 비수를

간신히 뽑아내어, 손을 물고 뜯느라 정신이 없는 늑대의 정수리에 그대로, 박아 넣습니다. 



 두개골이 꿰뚫리는 소리와 함께, 늑대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목숨을 다 하였습니다. 


"......"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자신 위에 덮여진 두 마리의 늑대와 함께. 움직임을 멈춘 늑대에서 손을 천천히 

뽑아 봅니다. 여기저기 늑대의 송곳니 자국이 자욱해 넝마조각처럼 변한 자신의 손.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릅니다.


 이기긴 하였으나, 싸우는 도중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린 레온. 누워있는 자리에서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주변 환경이 뿌옇게 보입니다. 천천히, 의식을 잃어가려던 찰나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니 누워있던 

레온의 눈 앞에. 덮수룩한 수염의 남자, 미하일이 얼굴을 들이밉니다.  얼굴을 확인한 레온은 입가에

미소가 씨익 떠집니다.



"예상치 못한 늑대 무리였구나. 그것도 꽤, 강했어."


늑대들의 시신을 확인하며 그리 말하는 미하일. 생각보다도 늑대의 덩치가 큰 것 같긴 한가봅니다.


"하지만 싸움이란 것이 예상대로만 흘러 갈 수는 없는 법이야. 손의 상처는 경험이었다 생각하자."


 그리 말하며 넝마조각처럼 너덜너덜한 팔에 자신의 영성을 불어 넣습니다. 빛과 함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무는듯한 모습.  


"피 많이 흘렸으니까 피곤할텐데, 좀 쉬어라.  걱정하지 말고."


 서서히 소실되어가는 의식 속. 레오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눈을 완전히 감고, 의식이 꺼져갈때

쯔음 들리는 미하일의 한 마디.


"수고했다. 잘했어."



"....."


 그와 함께 완전히 의식이 꺼지고 그날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첫 사냥 이후 꽤 지난 후에

처음으로 겪는 생사의 기로. 레온에겐 꽤 중요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일이었지요. 상처는 아물었지만

의도 한 것이었는지 길게 난 오른 어깨의 이빨자국은 죽을때까지 그와 함께 하기도 했구요. 오늘의

상처 또한 이날의 상처와 같이 그를 상징하는 흉터로서 그가 눈 감는 그 날까지 남아있게 됩니다. 


 처음이라는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니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다음 이야기는 또, 다음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