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arca.live/b/writingnovel/46977907


1화: https://arca.live/b/writingnovel/47162833

===================================================================================

하얗고 끝이 없는 공간에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익숙한 듯 경계선을 찾으려고 하는데 남자의 등 뒤로 목소리만 들어도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아가는 이가 있었어.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언제나 영웅처럼 살아가던 이였는데....”

 

남자는 여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경계선을 찾고 있었다.

 

“‘커스트 알 베르엘로’ 널 말하는 건데 너는 애써 나를 무시하는구나.”

 

커스트 알 베르엘로라고 불린 남자는 반응도 하지 않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떨면서 그의 뒤에서 그를 안으며 말했다.

 

“커스트 알 베르엘로! 커스트 가의 장남이자 끝없는 도전자이며 바알을 잡은 너와 아르시테제 가의 차녀이자 최연소 마법사이며 중앙 뷔에 경기장에서 최초로 우승한 나 ‘아르시테제 뷔에 레이샤’가 함께 모험을 하고 그랬잖아. 왜.... 왜 나를 모르는 척하는 거야.... 너 나 알잖아....”

 

커스트는 지금 자신을 뒤에서 안은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가 아님을 알기에 얼굴을 찌푸리며 격한 몸부림을 쳤다.

 

“닥쳐라! 레비아탄! 너는 그녀의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단 말이다! 하물며 나는 이제 모험가도 아니면서 너의 낙인은 그날 이후로 지웠는데 왜 아직도 날 괴롭히는가. 이만 사라져라!”

 

커스트가 격한 몸부림을 치자 여인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벗어났다.

여인의 비열한 웃음은 계속해서 그의 귓가를 맴돌며 그를 괴롭혔다.

 

“그만! 그만하란 말이다!”

 

여인은 계속해서 웃었고 그 웃음은 점점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푸하하하!! 커스트! 왜 나를 부정하는 거야. 내 낙인은 네 안에 있다고! 뭐.... 나를 깨워준 것에 감사인사를 할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하는 인사지만 어때? 오늘은 좀 색다르게 느껴지는 거 같아?”

 

“그 더러운 입 다물어... 그녀의 모습으로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지 말라고!!!”

 

여인은 커스트가 하는 행동에 잠시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다 다시 날카로운 눈매로 바뀌며 박수를 쳤다.

 

“이야.... 감동이야. 드디어 그렇게 행동하는 구나. 날 그날 이후로 무시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반응을 해주는 구나.... 보답으로 네가 바라는 대로 겁먹어줄게. 무서워~ 살려줘요~ 커스트 아저씨~ 아! 그래 너를 아저씨라고 부르니까 그 소녀가 생각나네.”

 

커스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여인이 말하는 그 아이를 물어봤다.

 

“그 소녀라면 카즈리마를 얘기하는 거냐.”

 

 “그래~ 그 소녀가 인어들의 공격으로 죽는 것도 혼수상태로 끝나고 오랫동안 그랬는데도 어떻게 두 달 만에 활발히 움직일 수 있었을까? 마치 차세대 영웅을 가리키는 것 같아. 후후후.... 커스트! 바알을 잡은 영웅이여! 그리고 파트너인 아르시테제를 죽인 질투여! 너는 그 소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제 네 마음을 밝혀라! 이 지독하고 사악한 마음을 가진 악마같은 사람이여!”

 

커스트는 눈을 꽉 감았다.

 

“그 아이는 나와 태생부터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르다! 비교를 할 수 없는 아이란 말이다! 왜 나의 마음을 갉아먹는가. 아무리 나의 마음을 갉아먹어도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으니 이만 사라져라!”

 

“아저씨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커스트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눈을 번쩍 뜨는데 그가 있던 곳은 하얀 세상이 아닌 자신이 운영 중이던 가게 안이었다.


그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고 거친 숨을 수시로 내쉬고 있었다.

소녀는 커스트의 상태를 보고 과거 그가 모험가였을 때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하여 조심스레 그에게 말했다.

 

“아저씨 괜찮으신 거 맞죠?”

 

“그래... 괜찮다. 미안하구나. 이 아저씨가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네.”

 

커스트는 카운터 위에 있던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그래서 카즈리마 오늘도 일하러 온 거니?”

 

커스트의 질문에 카즈리마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내일 여행 갈 준비를 하려고 왔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퍼즈라의 눈물샘’ 15개랑 인어용 간식 5묶음 주세요.”

 

“오냐! 금방 꺼내줄게.”

 

커스트는 일어나 기지개를 피고 그의 뒤에 있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은 여러 가지 물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거도 슬슬 정리를 해야 하는데...’

 

커스트는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대충 치우며 길을 틔웠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던 푸른 색 음료인 ‘퍼즈라의 눈물샘’과 인어용 간식을 찾다 찬장위에 있던 보라색 병을 떨어트렸다.


'어이쿠... 떨어지면 못 팔잖아...' 


커스트는 떨어지기 직전에 잡아 병이 괜찮은지 확인하는데 병에 붙어 있던 라벨을 보고 놀랐다.

 

“이건...”

 

그때 레비아탄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독성 맨드레이크의 즙이네.... 무색무취 무미의 독.... 그걸 가게 안에 있는 아이가 살 ‘퍼즈라의 눈물샘’에 넣어.... 그 아이는 언젠가 너를 위협할 녀석이니까. 좋은 생각이지?” 

 

그 속삭임은 지독하게 끈적이며 침울하게 들러오는 것 같았다.

 

커스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찬장 위에 두려는데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레이아탄은 그 모습을 보고 그를 비웃는 것처럼 귓가에서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꺄하하하! 커스트! 그래 그게 너의 본능이야! 너는 그 아이를 질투하고 있어! 저번에 인어들을 죽일 때 나를 받아드린 것처럼.... 이번에도 날 받아드리면 되는 거야! 그날의 너는 행복했지. 난 아직 너의 그 미소가 떠오르는 걸? 커~스~트~ 그냥 저질러! 저지르고 몰랐다고 하면 돼!”

 

커스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며 그를 부추겼다.

 

“자~자~ 커스트~ 나의 대단하고 아름다운 레비제아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질투여 증오여~ 네가 아무리 의지를 지킨다고 하여도 그 의지는 이미 썩어버렸어! 썩었는데 상관없잖아! 그냥 저지르는 거야!”

 

커스트는 그 병을 꽉 쥐며 보다 문득 머릿속에서 이르시테제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모든 선택은 너를 원망하지 않아. 나도 너를 원망하지 않아. 모두가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러니까...”

 

커스트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르시테제를 떠올리며 허공에 말했다.

 

“내 잘못을 왜 그 아이에게 넘겨야하지?”

 

커스트는 그 병을 다시 찬장 위에 올렸다.

 

레비아탄은 당황해 더듬거렸다.

 

“아, 아니.... 커스트! 질투가 나잖아! 질투하잖아 그.... 그 애를!”

 

커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임에게 대답했다.

 

“질투야 나지. 증오를 하고 미워하며 그 아이를 증오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런 걸 내가 발전하는 길에 써야 영웅 아니겠어. 그리고 그 길은 언젠가 빛을 보겠지.”

 

커스트는 소녀가 바라던 물품들을 챙겼다.

그리고 창고 문을 잡고 나가기 전 뒤를 돌아 허공에 말을 했다.

 

“아르시테제도 내가 이런 길을 가는 걸 바랄 테니까.”

 

커스트는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창고 밖으로 나왔다.

 

“자, 카즈리마 여기 있단다. 오늘은 특별히 무료로 해줄 테니 그냥 가져가렴.”

 

소녀는 그냥 가져가라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커스트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전부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정말로요?”

 

커스트는 옛날의 자신과 소녀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아서 살짝 웃었다.

 

“그럼, 대신 여정에 대한 일들을 말해주는 걸로 하자. 내가 한 모험보다 더 즐겁게 하고 와.”

 

소녀는 물품들을 전부 끌어안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네! 물론 그럴게요! 감사해요 커스트 아저씨~”

 

소녀는 해맑게 밖으로 나갔다.

조용해진 상점 안에서 커스트는 오랜만에 자신의 검을 꺼냈다.

많이 녹슬고 커다란 검은 커스트를 반겼고 커스트는 웃으며 녹을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했다.

 

‘검이 커진 걸 보니 확실히 내가 저 아이를 질투하는 구나. 나도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볼까. 마차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커스트는 살짝 미소를 띄우며 계속 자신의 검에 있던 녹을 제거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던 녹도 같이 지웠다.

 

.

.

.

 

커스트가 운영하는 상점의 지붕 위에서 금발의 여인이 소녀를 보고 있었다.

 

“저 아이.... 베히모스에게 축복 받은 몸이라 그랬던 거였네. 뭐, 축복 받아도 힘을 깨우는 법을 모르면 나한테 안 되지.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인간의 몸으로 왔으니 돌아다녀볼까. 여기 맛집이 어디에 있더라~”

 

여인은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3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진 여인은 가뿐히 착지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커스트의 가게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 미소 안에는 지독하게 끈적이며 사악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커스트, 넌 어차피 나에게 지게 되어있어. 오늘만 봐주는 거야. 네가 사랑하는 아르시테제가 남쪽에서 너를 기다리며 울고 있으니까. 아.... 난 역시 레비아탄인데도 마음씨가 넓어....”

 

레비아탄은 반짝이는 은색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


1.5화라고 한 이유는 메인 스토리라고 하기에 애매한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계획 상 몇 번 엮일 등장인물인데 지금 아니면 넣을 타이밍이 없을 거 같아서 약간 외전으로 넣었는데 괜찮았는지 모르겠네요.


피드백 받습니다.

오타, 어색한 문장, 개연성, 설정오류, 맞춤법 등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고쳐나가겠습니다.


이건 크게 바라진 않지만 그냥 댓글 하나라도 써주세요. 아니면 점 하나라도 써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