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수수 쏟아진다.
피부가 시릴 정도로 찬 기운을 내뿜으면서
비릿한 냄새로 코 끝을 푹 찌른다.
그래, 마치 예전의 그날처럼.
내가 너에게 처음 고백했었던, 비가 잔뜩 쏟아졌던 그날처럼.
그리고, 지금.
비가 쏟아지는 이 순간,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부끄럽다며 눈빛 한 번을 제대로 못 맞췄던 예전과 달리,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빗물을 함빡 머금은 앞머리는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그대로 주욱 늘어져 내 눈 앞까지 내려왔다.
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머리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두 눈에서 내려버린 빗물이 두 뺨 사이로 흐르고 있는, 그런 네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리.
물웅덩이를 세차게 두들기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네 목소리도 들려온다.
한 글자씩. 천천히.
내 마음을 두들기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툭.
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네 목소리와 함께 쏟아진다.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쏟아진다.
참으로도 유감이지만, 나는 네 소리를 듣지 못했다.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다.
나는 네 말을 들었다.
들리지 않기를 바랐던 그 말을.
헤어지자는 그 말을.
잠깐을 멍하니 서있었다.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를 두 뺨 사이로 펑펑 흘려대면서.
싫었다.
네 말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듣지 못했다고.
빗소리가 네 말을 파묻었다고.
스스로에게 했던 거짓말을, 나는 이제 너에게 뱉어냈다.
빗줄기를 너무 많이 맞은 탓일까.
축축하게 젖은 옷자락이 힘없이 아래로 쳐진다.
지금 네 모습도 그렇다.
여지껏 그래왔듯, 너는 내 목과 가슴 사이 어딘가에 시선을 두었다.
더이상 내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비.
수많은 멜로영화들 속에서, 비는 곧 중요한 순간을 의미했다.
내가 너와 처음 사귀었을 때도 비가 왔고,
조촐하게 방을 빌려 하룻밤을 보낼 때도 비가 왔다.
그래, 내 비는 수많은 멜로영화와 다르게 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가리켰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쳐다본다.
새까만 구름들이 우리 두 사람에게 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 수많은 멜로영화 속 장면들처럼 비를 쏟아붓고 있다.
피식.
무엇이 우스운지 웃음이 튀어나온다.
그래.
비가 내려서 다행이었다.
*
그저껜가 비가 내렸을 때 올려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네요...ㅠ
해석은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