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야기를 써보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거쳐가는 정해진 생각의 과정이 있나요? 계획적 글쓰기를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써내려가는 편인가요?


저는 계획적 글쓰기 반, 즉흥적 글쓰기 반인 것 같아요.

아래의 내용은 제가 글을 쓸 때 거치는 생각의 과정을 한번 정리해본 것입니다.

근데 저 단편을 아직 안읽어보신 분들은 스포가 될 수도 있겠네요 ㅋㅋㅋ


아무튼 어제 '종말의 파이프' 를 쓸 때 거쳐간 생각의 흐름은 대충 이랬습니다:


릴레이/멸망? 멸망이 주제인가 보네

-> 뭔가 진짜로 세상이 멸망해버리는 거 말고 다르게 한번 써보고 싶다.


(이때 노트를 꺼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적는다. 내가 어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는 건 어디 적어놨기 때문. 아래가 노트 내용.)


-> [주제에 대한 영감] 세상의 끝이라... 붉게 타는 노을이 생각이 난다. 이건 멸망과 해가 지는 모습의 관계는 클리셰지.

-> 그렇다면 클리셰에 충실하게 멸망과 노을의 개념을 연결시키면서 해가 지는 배경으로 끝을 맺으면 여운을 남길 수 있으려나

->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인물이 있어야겠지. 왠지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을 것만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


-> [주제에 대한 고민] 세상의 멸망과 불타는 노을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관지을 수 있을까?

     -> 방법 1. 주인공이 자신의 앞에 어떠한 작은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본 후 노을이 지는 것으로 끝맺기

          -> 작은 세계? 뭔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그런 거? 뭐가 있지? 불이 붙은 종이? 녹아내리는 눈꽃? 아니야 생각이 나지 않아. 이건 잘 쓸 자신이 없어.

     -> 이때 갑자기 든 생각. 멸망... 원주민 토착 신앙 중에 멸망이나 세계의 종말을 예견하는 전설 또는 그런 이야기가 드물지 않지.

          -> 음? 원주민 토착 문화와 담배라... 수공예로 제작한 나무 파이프가 생각이 나. 분위기 연출에 쓰일 담배가 꼭 연초일 필요가 있을까?

          -> 식민지 개척 시대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빠른 근대화를 겪으면서 문화와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학교에서 배웠어.

          -> 방법 2. (채택) 한 시대가 저무는 과정, 노을이 지는 풍경을 한꺼번에 멸망이라는 주제로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 파이프담배를 사용해야겠어!


(이때 컴퓨터를 켜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써가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잡기 시작. 그래서 이 아래 내용은 노트에 적지는 않은 내용임.)


-> [배경에 대한 고민] 원주민이 등장해야 되잖아.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 폴리네시아 쪽에 사는 원주민 부족 정도가 생각이 나네.

     -> 이들이 후보로 생각이 된 이유는 세상의 종말과 관련된 고대 문화 자체는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기독교나 이슬람 같은 메이저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곳이나 부족정치에서 보다 발전된 정치 체제를 거쳐간 곳은 이미 오래 전에 고대의 문화가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종말에 관련된 설화가 현대 관점에서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지기 때문. 반면 후보로 생각하고 있던 문화권은 근대화가 비교적 늦었고 현대에도

          고대부터 이어져온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잘 남아있음.

     -> 문화적인 배경의 후보로 몇가지가 정해졌으니 분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리적인 배경 등을 고려해서 점점 설정을 좁혀 봄.

          -> 아메리카 원주민... 뭔가 모피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식민지 개척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 현대에 들어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상황                이 생각이 났음.

          -> 원주민...?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한 원주민 거주 구역이라... 현대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식민지 개척 시대에 백인들과 그들이 공존하

               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니 갑자기 영화 <윈드 리버>, <레버넌트>에 나오는 눈에 뒤덮인 지역의 풍경이 생각이 났음.

          -> 최종 결정. 아메리카 어딘가의 원주민 거주 구역, 계절은 이른 겨울, 눈에 뒤덮인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분위기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 [인물에 대한 고민] 외부인의 시선으로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전개한다면 주제를 신선하고 객관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  주인공에 대해: 이런 지역에 외부인이라면 근처를 지나는 관광객이라거나 그렇겠네.

          ->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아주 뜻밖에 벌어진 사건' 이었으면 좋겠어.

          -> 처음부터 이곳에 일부러 여행을 하러 온 거라면 우연히 신선한 경험을 하기가 어려웠을거야.

          -> 원래는 그냥 대륙을 가로질러서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가자.

          -> 주인공이 겪는 신선한 경험을 적절하게 묘사하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적합하겠다.

     -> 주인공이 낯선 곳에서 '파이프담배' 나 그곳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 기념품 가게. 우연히 들어가 본 기념품 가게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설정이 자연스러워. 그렇다면...

     -> 기념품 가게 주인이 있어야겠지.

          ->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면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자신은 이미 경험한 세대일테지.

          -> 그렇다면 자신이 겪은 '시대의 멸망'에 대한 메시지를 젊은 주인공에게 전달할 수 있을거야.



이렇게 주제, 배경, 인물을 생각하고 나니 그 다음은 글이 저절로 써졌습니다. 머릿속에서 그냥 이야기가 진행이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