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나도 설마 몰랐지."

퀘스트에 지친 내 앞에 근육질의 떡대 아저씨가 오늘도 우람한 목소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벌써 몇잔째 맥주를 들이키면서 취하지도 않았다.
좀 취해라 듣기 싫은데.
드워프도 아닌데 뭐 이렇게 술이 세.
아 그리고 팔 좀 치워 더워죽겠어.

"뭐를요?"

높낮이 패치가 반영되지 않은 목소리.
이 정도면 지루하단 걸 알아주겠지 싶었다.
이 정도면 그만 들어가 자고 싶단 걸 알아주겠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동생이 술이 약하다는 거를."
"하, 하하. 그러게요. '동생' 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러고 보니 신기하네. 동생은 지구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예. 지구에서 여기로 전이해 왔어요."
"지구에 그... 어디 나라 출신이라고 했지? 대...화?"
"대한민국이요. 작은 반도국이에요."
"맞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무슨 중요한 진리라도 깨달았다는 듯, 아저씨가 박수를 쳤다.
나는 얼른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욕망을 꾹 참은 채로 적당히 호응을 해줬다.
... 무시하고 가면 또 내일 아침에 삐쳐서 꼽 준단 말이야.

"그런데 왜요? 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도 다시 열렸나요?"
"어허, 무슨 말이야. 이세계 간 이동통로는 3년에 한번씩만 열리잖아. 동생은 1년 전 게이트 사건 때 온 거 아니야?"
"아직 2년 기다려야 하죠."
"그래그래. 기다려야 하잖아. 내가 물어본 건 그것 때문이 아니고..."

벌컥벌컥벌컥.
맥주에 절어 있을 아저씨의 목구멍 속으로 또 다시 알코올이 다이빙.
슬슬 불안해지는데.
저거 취해서 드러누우면 내가 들고 가게 되는 거 아니야?

"그것 때문이 아니고 이미지 때문에 그렇지."
"이미지요?"
"그래 내 안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거든."
"아... 아저씨는 다른 전이자들도 많이 만났다고 하셨죠?"
"그래. 젊었을 때는 나도 이름 난 팔라딘이었으니까. 일본인이며 미국인이며 어디며 많이도 만났지."

아저씨는 실력만큼은 누구나 인정하는 강자였다.
하물며 전성기라면 더 강했을 터.
어쩌면 뭇 전이자들 중 최강이라는 [용사] 의 동료였다는 소문도 진실일지 모른다.

"많이 만났는데 만나다보니 공통된 이미지라는 게 생기더라고."
"이미지요?"
"예를 들어 일본인은 대화 방식이 독특해. 츳코미... 라고 하던가? 스스로의 말에 그런 걸 거는 경향이 한번씩 있다고."
"그거 그냥 아저씨가 만난 애들만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럴 지도 모르지. 하튼 내가 본 애들은 그랬어."
"미국인은요?"
"미국인은 리액션이 컸어. "호오오올리 쉐에엣!" 을 기본적으로 끼고 시작했으니까."
"그건 아저씨가 사고를 하도 쳐서 그런 거 같..."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아저씨가 잠시 말을 끊었다.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무언가를 떠올릴 때의 아저씨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이 아재가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아 맞아. 기억났어!"
"뭔가요?"
"그, 노래도 있잖아 한국인은."

아저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반주.
익숙한 멜로디.
어디서 들어봤는데.
... 아.








"쭉쭉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쭉쭉쭉쭉쭉."

"하..."
"한국인은 술을 잘 마시는 이미지였거든. 윗 사람이 주는 거면 특히나."
"아저씨 그건 술이 아니라..."
"몇번 못 먹는다는 애들도 내가 먹으라고 계속 권하니까 들이키더라고. 어울림을 잘하는 친구들이야! 아주 마음에 들더구먼!"

술이 아니라... 갑...

뭐라고 할까.
아저씨를 거쳐간 다른 한국 전이자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 눈에 그려졌다.
고생하셨군요 선배님들.
고생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