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찬란한 벚꽃

 

-본 소설은 실제 역사와 다르며, 특정 종교, 단체, 인물과 관련이 없고, 작가의 상상 속에서 쓰여진 허구의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


 

 

그들은 신사로 향했다. 하얀 기둥과 갈색 구조물들로 이루어진 신사는 깔끔한 분위기를 풍겼다.

500년 된 벚나무가 심어진 신사의 정원에서. 무녀들은 벚나무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기도를 방해하면 블같이 화를 내서 말이죠”

“기다리는 것쯤이야 상관없어”

카미자와는 기도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알아봤다. 나카이오 일가의 특징인 짙은 갈색 머리와 손목에 찬 빨간 팔찌를 한 사람, 열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책략가, 나카이오 레이를 그녀는 알아봤다.

한참이 지나고 바람이 불며 벚꽃잎이 눈처럼 휘날림과 동시에 사람들은 기도를 멈추었다.

“쇼군님께서 오셨다. 아무도 들이지마”

레이가 주변의 무녀들한테 말했다. 무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레이가 다가와 쇼군에게 허리 숙여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괜찮아”

“들어가시죠. 여긴 듣는 귀가 많습니다. 무이, 너도 들어오고”

 

 

 

 

“열도의 재앙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니 세계의 재앙이라 해야 맞을까요”

“열도의 소식이 벌써 외국에 퍼졌습니다. 옆나라 대한제국은 이 일로 난리가 났다더군요”

무이가 밀했다. 

“그리고 네가 한 말을 토대로 했을 때”

레이가 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봐”

그녀가 금장이 수놓인 하얀 상자를 내밀었다. 푸른 빛이 일렁이는 상자를 보고 그는 놀라며 레이를 쳐다보았다.

“어디서 났어..?”

“우리 선조께서 물려주긴 가보야.”

그는 이러한 형식의 상자를 딱 한번 본적이 있었다.

 

 

그가 아버지로 부터 카타나를 물려받은 그날, 카타나는 그 상자에 담겨 있었었다. 그때 아버지는 카타나가 담긴 상자와 벚꽃무늬로 조각된 푸른 석영을 무이에게 물려주면서 가주가 되면 열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날 아버지는 사망했다. 사고나 살인은 아니었다. 편안하게 잠에 드신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신 것 뿐이었다. 가주가 되고 난 뒤 무이는 석영 조각을 상자의 벚꽃무늬 구멍에 끼워 넣었다. 석영이 푸른 빛을 내뿜으면서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붉은 안감 위에 날카로운 하얀 날을 드러낸 카타나와 벚꽃모양 금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카타나의 칼날에는  월륜도(月掄刀, 달을 가리는 검)라고 한자가 작게 쓰여져 있었다.

 

 

“네가 받은 석영으로 열수 있을거야,”

레이가 그에게 말했다. 무이는 카타나 끝에 묶어놨던 석영 조각을 당겨 뜯고는 상자에 가져다 댔다.

밝은 빛과 함께 상자는 활짝열리면서 내용물을 내비쳤다.

하얀 종이 한장이 백지상태로 올려져 있었다. 아니다. 서서히 무이의 눈에는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는 검은 색 줄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면서 글자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백지…잖아?”

시노부가 옆에서 기웃거리며 말했다. 굉장한 보물이라도 될 줄 알았는지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여력했다.

“누나는 보여?”

무이가 종이를 들고 물었다. 레이는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는 대답을 전했다.

“음? 아무 글자도 없는데?”

쇼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이와 심각한 표정을 지은 가주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잊혀진 문명의 유물… 이랄까요”

그가 중얼거렸다. 

“태양의 자손들이 우리를 위협할때, 우리는 드디어 월석을 채취하는 기술을 발견했다. 찬란한 벚나무 아래 위대한 신전에서, 보름달이 비칠때 소량의 월석 원석을 채취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월석을 이용하여 태양을 막을 지어니, 이 찬란한 문명의 지도자에게 월륜도를 바치고 그의 충직한 신하들에게 6개의 무기와 장비를 쥐어주노니, 태양의 독재를 막을 지어다. “

“그게 전부야?”

쇼군이 물었다.

“아마 그게 전부일 거예요. 아버지께서 그러셨으니까요”

레이가 무이 대신 답했다.

“찬란한 벚나무라…”

무이가 턱을 괴고는 월륜도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무녀 한명이 문지방 너머애서 말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레이가 문지방 너머의 무녀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게…”

“성함이 어떻개 되시지?”

무이가 우물쭈물 거리는 무녀를 향해 물었다.

“이세진이라 하시던데요… 대한제국 대사…”

“대사께서?”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러곤 쇼군과 레이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손짓을 한뒤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쇼군님께서는 짐작가시는게 있으신지요”

“크게 없어, 다만…”

“무이가 잊혀진 문명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아직 확실한건 아니지 않습니까. 걱정은 접어두시지요. “

 

 

“대사님이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무이가 달려나가 대사를 맞이했다. 이세진, 대한제국 대사이자 제국의 황태자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가주의 술친구 이기도 하다. 검은 흑발과 갈색 눈동자는 무언가 많은 뜻을 담은것 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민간인들을 태운 첫 배는 떠나서 말이야. 나도 이제 떠나야지. 아버지께서 돌아오라 하셔서 말이지…”

세진이 담담하게 무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느 부모가 이런 상황이 펼쳐진 곳에 자식을 두고 싶겠습니까”

“그러시겠지…”

그가 벚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갓의 끈이 휘날렸다.

“세경이는 안왔습니까?”

“곧있으면 올거야. 그러고보니 이제 곧 둘이 결혼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서 어쩌나…”

“결혼이야 미루어도 할 수 있지요. 급한 불을 먼저 끄는게 맞지 않습니까.”

나카이오가 중얼거렸다. 

“근데 안에 누가 계시는 건가? 아까 누가 와있다고 하던데”

세진이 방금 이곳애 왔을때를 떠올렸다.

“아 그게…”

“내가 있었지”

쇼군이 어느새 저택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세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귀신같이 나타나시네’ 

무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쇼군님께서 왜 이곳에..?”

“여기가 비교적 안전하니까. 성안도 지금 엉망이야”

시노부가 답했다. 

“아! 여기 다 있었네요!”

저멀리 신사 입구에서부터 한 여자가 깡총깡총 달려오며 말했다. 

“으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바닥에 넘어졌다.

“으이그”

세진이 냅다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이래 뵈어도 멀쩡하다고! 읏…”

그녀가 투덜거리며 바닥을 짚어 일어났다. 손이 다친걸까, 괜한 신음소리를 냈다.

“손 다친 것 같은데?”

어느새 내려온 레이가 그녀의 손을 보더니 말했다.

“이거라도 하고 있어”

레이는 무녀가 가져온 연고를 상처에 바르고 붕대로 손을 감았다.

“그만 좀 촐싹거릴 것이지”

세진이 여자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세진의 동생, 세경이었다. 특이하게 하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국의 이방인이라고 오해를 받았다. 그녀는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이유로 세계 여행을 했는데, 마지막 종착지인 일본에서 나카이오를 만나 사람에 빠지는 바람에 지난 몇 년 동안 이곳에 눌러 살고 있었다.

“여기도 이제 당분간은 못보겠네요”

그녀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해는 점점 서쪽을 향해 기울고, 동쪽 하늘에는 초승달이 희미하게 떠 있었다.

“그리고 너도”

세경이 무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 말이죠.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못 만날 것 같네요” 

무이가 신사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외부적인 수습은 거의 끝나간데”

무녀한명이 레이에게 속삭이자 그녀가 무이를 향해 말했다.

“아직은 모르지. 언제 이런 일이 다시 올지도 모르고”

무이가 중얼거렸다.

“대사님, 본국에서 보낸 배가 곧 도착한답니다.”

검은 제복을 입은 군인이 달려와 세진에게 소식을 전했다.

“배가 왔데. 이제 갈 때가 됐나 봐.”

“마중 나가도록 하죠”

무이가 말했다. 쓸쓸한 표정과 함께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그의 하카마는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줄게 있어요”

“에?”

그가 저택으로 들어가 원목으로 이루어진 작은 상자를 가지고 나와 세경에게 건냈다.

“이건?”

“다음을 기약하는 선물입니다. 항구에 가서 조국으로 돌아가시는 배에 탄 뒤에 열어보세요.”

“그럴게”

세경이 상자를 주머니 속에 넣으며 답했다.

 

 

 

1시간 뒤

무이와 세진, 세경은 배의 요란한 경적소리가 울려대는 도쿄항구에 도착해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열어 보셔도 돼요”

그 말에 세경이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

세경이 상자의 뚜껑을 열자 흑색 지지대 위에 금색으로 테가 강조된 하얀 벚꽃이 올려진 은색 반지가 들어있었다. 그의 카타나와 마찬가지로 월석으로 이루어진 그 반지는 은은하게 푸른 빛이 일렁였다.

“모든 상황이 끝나면 혼례를 치르는게 맞는 것 같네요”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왜 그래..?”

반지를 보고는 고개를 숙인 세경이 물었다.

“왜 다신 못 볼 사람처럼 그래?”

그녀의 눈에서 떨어진 투명한 눈물이 조금씩 항구의 바닥을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왜 죽을 사람 같이 구는 거야?”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카이오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안아 주었다. 구슬픈 울음소리에 그의 마음도 덩달아 슬퍼지기 시작했다.

“다시 만날 거예요, 반드시”

그가 세경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지막히 말했다.

“이제 가볼게”

세진이 세경의 어깨를 감싸며 나카이오를 향해 말했다. 선박을 향한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그는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잘 가요”

경적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출발하는 배의 뒤편에 서있는 세진과 세경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그는 중얼거렸다. 

손을 한번 흔들 때 마다 미련을 떨쳐버리려던 그의 눈에 이상한 게 하나 눈에 띄었다. 선박의 꼭대기에 서있는 후드를 쓴 여인과 낮에 하늘을 떠다니던 사제, 얼굴 없는 검사들이 항구에 있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 있었지만 여인은 미심쩍은 미소와 함께 먼지가 되어 순식간에 사라지고 사제는 뒤를 돌아 검사들과 함께 인파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이런 젠장!”

나카이오는 월륜도를 급하게 빼어 들고 선박을 향해 플랫폼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세진과 세경은 나카이오가 달리는 쪽을 향해 자리를 옮겼다. 선박이 거의 플렛폼을 떠날 즈음, 그는 배를 향해 뛰어올랐다. 

거리가 부족한 것일까, 그는 난간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망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착!

-푸른색이 일렁이는 하얀 벚꽃의 손길이, 푸른 바다 위에서 그의 손을 붙잡아 올렸다. 

 

그리고 그 때, 신사의 오래된 벚나무는 카미자와 시노부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환이 반사하는 달빛을 받으며 밝고 찬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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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저찌 2편을 쓰긴 했네요... 으아 러브라인을 곁들이려니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어렵네요. 모바일 버젼 나중에 확인해보고 불편한게 있으면 수정하겠습니다! 모자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