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정통 수녀가 아니야!"

"맞다 하지 않았느냐."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가야 할 곳이 있는데

또 수녀원의 잔잔한 평화가 깨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8살 남짓 되어보이는 여자아이.

소녀는 악에 받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린 여자 아이 특유의 높게 찢어지는 음이었다.


"못 해 먹겠다고요 이딴 거!"

"그런 소리 말거라. 네가 아니면 안된다 하지 않았느냐, 틋순아."

"무슨 부탁이 끝이 없으니까 그렇죠!"

"틋순 자매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틋순의 난리통에 잠이 달아난 것일까.

이 달밤에 수녀 한 명이 멀리서 틋순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매님."

"허공을 향해 화를 내시길래요. 아, 혹시 주님과 독대 중이셨나요."

"예. 잠시 이 양심 없는 양반과."

"역시 대단하시군요. 저희에겐 잘 보이지도 않는 분이신데 그렇게 길게 대화를..."

"헤헤 대단하긴요. 이정도는 별 대단한 것도... 아니 잠깐만, 누가 자매에요!"


부끄러운 홍조를 띄던 틋순이 돌연 떽떽거렸다.

칫 걸렸나 하는 감정이 잠깐 여성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틋순은 그 앙증맞은 목소리로 씩씩거렸다.


"예하라고 부르시던가 아니면 적어도 형제님이라고 부르란 말이에요!"



*



"큰일이다 큰일이야."

"무엇이 그리 고민이십니까 주님."


신과 가장 가까운 자식.

신의 종들의 종.

교황.


여러가지 있겠지만

교황이란 존재의 특이점 중 제일 가는 것은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에게서 일방적으로 몇마디 계시를 들을 뿐이거나

혹은 짧은 대화 밖에 하지 못하는 다른 성직자와 달리,

교황은 신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상호 간섭마저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다만

교황이 유일하게 라고 쓰면 멋져 보이지만

거꾸로 쓰면 교황 외에는 신과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고


그런 연유로

신입 교황인 틋순의 일과는 신의 푸념을 듣는게 주를 이루곤 했다.


"너는 인석아, 나의 제일 가까운 자식이라는 녀석이 그것도 모르느냐."

"주님 아버지의 깊은 뜻을 제 어찌 알겠습니까."

"어제도 말했고 그제도 말했거늘 뭘 '어찌 알겠습니까' 이냐. 어쭈, 표정 안 푸냐?"


그야 알고 있다고 말하면 해결책을 내놓으라 할 게 뻔하니 그렇지요.

... 라는 걸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난리를 칠 게 분명하니

틋순은 그 자신의 굵은 목구멍 뒤로 말을 삼켰다.


"벌써 반년째가 아니냐."

"제 점심 뺏어드신 게 말입니까."

"아니, '그 문제' 가 생긴 게 말이다. 반년째 해결이 안 되는 실정이잖냐. 이거 위험하지 않냐?"

"아, 예."

"당최 뭐가 문제여서 우리 교단은 신도가 안 느는 거냐. 이 옆에 창조의 교단이며 어둠의 교단 같은데는 쭉쭉 늘고 있는데!"


대 포교 시대.

무엇이 원인이 된 것인지

이 세계에는 일찍이 없던 대 포교의 시대가 도래하여

각 교단은 하나같이 세력을 키워나가기 바빴다.


"성직자들만 입단하던 시기는 끝났다.

이제 전사면 마법사며, 심지어는 도적들까지 입단을 하는 시기이거늘!

교단을 키울 거면 지금이 딱이거늘!"


틋순이 속한 교단과 같은

극소수의 교단만 빼면 말이다.


"광란의 교단조차도 그 신도수를 늘리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 우리만 줄고 있다고! 신도들 수 좀 늘려야 한단 말이다. 뭐 좋은 생각 없느냐?"

"미천한 종의 어리석은 머리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교단 자체에 대한 애정은 틋순도 남 못치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고아였던 틋순을 길러다 준 교단이 아니던가.

애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여러가지 했지만 오히려 악효과만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차라리 예전에 하던 대로 자선사업 위주의 포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으련지요."

"아 거 자선사업 좋지. 나도 좋아하고 너희도 좋아하고! 한데 그러기엔 돈이 모자라지 않느냐!"

"으음..."


문제는 정말로 방도가 없다는 것.

당장 신도들 밥 한끼 먹이기도 힘들 정도로 교단에 돈이 부족한데

쓸 만한 포교 활동이란 게 있기가 힘들었다.


"저어... 조금 불건전하긴 합니다만은."

"뭔데? 말해봐."

"여자를 써보는 것은..."

"여자?"

"지금 문제의 원인은 저희 교파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크긴 하지."

"마을 식당들이 호객할 때 처녀를 세우듯이 저희도 마케팅을 해보는 것이 어떨지요."

"간판무스메처럼?"

"얼굴마담이라고 하셔야죠 주님..."


눈을 질끈 감은 틋순을 앞에 두고 신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괜찮을 것도 같긴 한데.

그래도 그러면 순결의 신 체면이..."


순결의 신.

틋순이 속해 있는 교단은

영혼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순결의 신' 휘하의

'순결의 교단' 이다.


그런 교단이 얼굴마담을 이용해서 선교 활동을 한다?

궁여지책이라곤 해도 퍽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

"뭔가 방법을 떠올리셨는지요."

"네가 총대 매라 야."


자신의 우락부락한 어깨에 올려진 신의 두손에

틋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지금부터 우리 교단 대외적인 이미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다. 간판무스메. 오케이?"

"네? 전 남자인데요?"



*



"뭘 그렇게 화내느냐.

네가 어린 수녀가 되어 귀엽고 순진한 외모로 교단의 얼굴이 된다.


이 계획대로면 잘 팔릴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이제는 여자아이가 되어버린 틋순에게는

신의 얼굴이 다소 뻔뻔하게 보였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존재이긴 했으나

자신의 성별과 지위와 나이를 한번에 바꿔버린 까닭에

다소 뻔뻔하게 보였다.


짹짹짹.

틋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창한 아침을 자랑하는 참새의 조소가 들렸다.


"존경하는 주님 아버지시여."

"왜 그러느냐."

"그 TS인가 뭐시깽이인가를 해서 제가 얼굴마담이 된다, 거기까진 저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만.

틋순은 이 두글자에 묘하게 힘을 실었다.

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다만?"

"요즘 들어 점점 요구가 많아지는 것 같은데요."

"그, 그야 다 교단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분명히 제가 처음에 교단과 관계 없는 요구는 무시하겠다 했는데..."


틋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는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쥐방울만한 손이.

치맛자락을 찢을 듯 움켜쥔 쥐방울만한 손이.


"이 원피스 같은 게 어딜 봐서 정통 수녀란 겁니까."

"내, 내가 수녀라는 데 정통 수녀 맞지 그럼!"

"이런 건 정통 수녀가 아니야!"

"너 그 얘기 어제 밤에도 했거든?"

"아니니까 그렇죠!"

"꼬우면 네가 신 하던가!"

"아 진짜!"


틋순은 성이 나선 발로 땅을 찼다.

가벼워진 몸무게 덕에 큰 소란이 나진 않지만

묘하게 화가 풀리는 듯한 제스쳐였다.


"전 이번 건은 안 할 겁니다. 다른 분 찾아보세요!"

"아 그러지 말고. 틋, 틋순아 틋순!"

"저 삐쳤으니까 한동안 제 얼굴 볼 생각 하지 마시고요!"


틋순은 방금까지 몸에서 내뿜던 신성력을 거둬들였다.

그와 동시에, 틋순에게서 신의 모습이 사라졌다.


"왜 자꾸 이런 걸 시키는 거야, 창피하다고 몇번을..."

"어? 틋순 자매님?"


약이 잔뜩 올라서

그 길로 곧장 교회로 돌아가려던 틋순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자매님 벌써 돌아가시려고요?"

"엑."


원장 수녀였다.


"그럼 안 되죠. 저희 성가대 대타로 뛰어주신다 안 하셨습니까."

"하, 하긴 했지만..."


조그맣게

틋순의 어깨가 조그맣게 움츠러 들었다.

히잉 하는 목소리에서는 한숨도 섞여 나왔다.


"설마 멋대로 돌아가시려던 건 아니시죠?"

"이런 옷까지 입고 한다고는 못 들었단 말이에요..."

유치원 재롱잔치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원피스.
가슴이 뜨끔했지만 원장 수녀는 모른 척 했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기시면 안되죠 자매님."

"죄송합니... 아 저 자매님 아니라니까요! 어제도 그렇고 다들 왜 그러시는 거에요!"


소녀의 불평은 들은 채 만 채 하며

원장 수녀는 주머니를 뒤졌다.

본디 주머니라는 것은 예상치 못한 물건을 찾아낼 수 있는 하나의 마굴과 같은 곳.

이런 때에 딱 맞는 물건도 있을 터였다.


원장 수녀는 계속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틋순 형제님 친구분 들은 다들 단에 올라갔잖아요."

"그렇, 긴 하죠..."

"친구 분들은 틋순 자매님이 언제 오시나만 기다리실 텐데요."

"그래도..."

"오늘 안 가면 친구 분들한테 미움 받으시지 않을까요?"

"으으..."


때마침 주머니 탐사를 끝낸 원장 수녀는

승기를 잡은 김에 그대로 틋순의 입에 사탕 한알을 집어넣었다.


"전국 노래 자랑 비슷한 거라고 했으니까, 조금만 부르면 될 거에요. 이거 드시고 화 푸세요."

"... 이버니 지인짜 마지막기죠?"


제 뺨만한 사탕을 굴리느라 뭉개진 발음으로 틋순은 물었다.

의심의 눈초리이긴 했으나 한결 풀어진 얼굴로.


원장 수녀는 특유의 인자한

그러나 한편으론 수상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요.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랍니다."

"진짜 지인짜죠?"

"그렇다니까요. 얼른 갔다오세요. 케이크를 만들어 드릴 테니."

"케이크요?"

"특별히 딸기케이크로 해드릴게요."


케이크.

그 한 마디는

사탕으로 누그러진 틋순의 마음에

결정타를 박았다.


틋순은 입이 귀에 걸려서는

폴짝폴짝 뛰며 성가대 쪽으로 돌아갔다.

묘한 콧노래와 함께.


"흐흥흥~케이크 케이크~."

"완전 어린애가 되셨네요..."

"아!"


원장 수녀의 혼잣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틋순이 발을 멈추고 원장 수녀 쪽을 돌아보았다.


들렸나 생각하던 그녀를 향해

틋순은 머리 위로 크게 두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원장 수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틋순을 따라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요 다녀오세요!"

"에헤헤 딸기케이크..."


원장 수녀의 인사를 받자마자

틋순은 다시 무대의 성가대 쪽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콧노래를 부르며.




*


틋챈 대회 출품작.
일단은 여기다가도 올려 놓음.

쓰는 김에 첨언하자면
5월 5일까지 중간 보상으로 치킨 하나씩 준다니까 빨리 참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