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탁, 타닥. 시뻘건 모닥불이 그 작은 입으로 밤을 삼키려 일렁인다. 아래 깔린 장작들은 갈라지는 비명을 지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야살스런 미소를 짓게 했다. ‘두꺼운 판금 갑옷도, 드래곤의 비늘도, 심지어 악마의 눈동자조차도 작은 모닥붚 앞에 속절없이 경계를 누그러뜨렸으니, 어찌 불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재담꾼의 헛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어 그저 몸에서 빠져나간 온기를, 인간으로서의 따스함을 마냥 갈구할 뿐이었다

 

“......”

 

조용했다땅거미가 내려앉은 골짜기의 날카로운 바람조차도 이곳에서는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감히 불길을 흔들어놓지 못했다맞은편에 앉은 엘프는 고개를 푹 숙인 채고개를 꾸벅이는 일 없이 곤히 잠들었다엘프의 긍지이자 자랑인 귀조차도쏟아지는 화살은 피하지 못한 듯곳곳이 뜯어져 말라붙은 피로 온통 거무튀튀했다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나박나무 활은 이미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며거매부리의 깃털로 만든 화살들을 담아두던 멋들어진 활통은 곳곳이 갈라진 채 죽은 적들이 쓰던 싸구려 화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

 

양옆에 누운 난쟁이들은 또 어떠한가한 명은 동쪽 개울 아랫마을의 칼슨다른 한 명은 개울 윗마을의 칼빈이다배다른 형제지만불가에 엎드려 자는 꼴이 퍽 유사한 것이이것이 형제의 유대인가 싶었다둘 다 허리춤에는 각자의 인장을 돋을새김한 대장간 망치를 차고 있었는데형인 칼슨은 동쪽을 바라보는 말딱새의 둥지를 위로동생인 칼빈은 남서쪽을 바라보는 말딱새의 둥지를 아래로 새겨넣어미묘하게 다른 부분을 찾는 게 소소한 즐길 거리 중 하나였다

 

흐아아암..”

 

글자로 쓴 듯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선명한 재담꾼의 하품 소리본인은 으레 문자 그대로.’라고 하지만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다우스꽝스러운 초록색 색동옷으로 눈물 맺힌 제 눈가 닦는 꼴 하며구부러진 구두코에 달린 붉은 구슬하며짤랑이는 방울 달린 모자까지전쟁터 한복판에 나와 있는 녀석이라고는 도무지 생각이 들지 않는다명색이 재담꾼이라는 녀석이등에 멘 작은 하프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줄이나 끊어먹는 꼴이라니이제 칠 수도 없는 그건 버리고 오라는 말에도쓸모없어져 버려지는 게 꼭 우리네들 같다며 소중하게 가지고 다니는 것이 퍽 아니꼬웠다.

 

“........”

 

흰 자작나무가 검게 타버렸다 다시 하얗게 될 즈음에야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누워 있는 난쟁이 형제를 대충 발로 건드려 깨운 뒤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머리에 뒤집어썼다눈앞이 캄캄해짐과 동시에말라붙은 핏자국에서 배어 나오는 비릿한 철 냄새가 투구 속에서 메아리쳐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이미 지칠 대로 지친 제 몸뚱이는 이대로 잠드는 것을 선택해버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