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근데 낭자."

"응?"


발가벗은 남자가 마찬가지로 발가벗은 상태의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낭자 괜찮은 게요?"

"뭐가."

"모르는 소리 마시오. 그래도 꼴에 서큐버스가 아니오."

"갑자기 웬 일이래? 이제껏 그런 말 안 했으면서."

"그렇긴 하지만..."


색마, 몽마.

서큐버스.

그게 나다.


몇 년 전까지 인간 남성으로 살던 나는

다소 어이없는 방식으로 죽어서

이 세계에 서큐버스로서 전생한 것이었다.


처음에야 당황했다.

나도 남자였는데 남자 상대로 몸을 팔라니.

그냥 창녀도 싫은데 이건 뭐 거부감이 안 들 수가 없지.


한데 뭐 어떻게 해.

난 일개 서큐버스고

상관인 서큐버스 퀸이 하라는데.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안 하면 식량 배급 때 내것만 빼고 주겠다는데.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 얌전히 하란 대로 해야지."


어째 말이 회사 다닐 때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이세계나 이 세계나 그게 그거란 걸까.

쓰게 웃는 걸 보고 단골인 손님이 손을 내저었다.

손님이라기엔 이젠 거의 친구 비슷한 관계이지만.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나 같은 그, 수인하고 하는 것 말이오."


머리를 긁으며 녀석이 물었다.

말투만 들어선 수인이 아니라 무인이지만.


"서큐버스 입장에선 치욕이라고 들었소. 왜 굳이 털박이 짓을 자행하냐면서."

"인간하고 하는 게 보통 선호되긴 하지."

"듣기론 형벌로 치뤄질 정도로 불호가 세다고 들었소이다만."


어디서 골치 아픈 거 배워왔네.

그건 그렇고 속옷은 어디다 벗어둔 거지?

속옷에도 묻었으면 귀찮아지는데.

땀과 애액에 젖은 몸을 옷으로 덮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잘 아네."

"저기 그러면..."


손님이 시무룩해졌다.

나에 대한 미안함의 감정일까.

그럴 필요 없는데.


"나도 비슷한 거거든."

"?"

"일하기 싫다고 농땡이 친 결과였어."

"? 아니 서큐버스가 할 일이란 게..."

"좀 복잡해. 자세히 듣고 싶으면 내일도 불러주든가. 일단 오늘은 시간 다 됐어."


끼익 소리를 내는 낡은 문을 열었다.

손 끝으로 기분 나쁜 촉감이 느껴졌다.

이것도 슬슬 썩은 거 아닐까.

나무문의 내구성이 의심됐다.


"단순히 몇번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이젠 오히려 내가 더 즐기는 것도 있고.
나 간다. 내일도 불러줄 거면 내일은 좀 싸게 해줄게."

"아 낭자, 낭자!"

'탕'


하고

헤어진 게 일주일 전인데




"뭐야 사람 기대하게 해 놓고."


안다.

창녀의 뒷 사정 따윌 듣고 싶어하는 남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그래도 좀 기대했단 말이다.


친구 하나 없는 오지에서

이제야 마음 좀 통하는 사람 사귄 거 같아서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데.


외톨이 같이 살다가

이제야 마음을 놓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얼마나 기뻐했는데...


"... 칫."


내일 부르라니까 1주나 무시하다니.

그것도 하루에 한번씩 부르던 단골이.

들을 마음 없단 거겠지.

그렇게 진지한 관계는 부담스럽다거나.


거 어른의 거절법 오랜만에 보네.

별로 보고 싶진 않았다만.


딱히 서운하다거나 한 건 아니다.

손님하고 창녀 사이에 뭔 진지한 관계를.

기대한 내가 바보라는 걸 알기에 섭섭하거나 하진 않다.

그냥 조금... 가슴이 먹먹할 뿐이지.


"안녕. ///간만에 보네?"


그래도 어떡하나.

나 불러주는 애는 쟤 뿐인데.

영업미소 영업미소.


"왔소?"


평소와 달리 침착한 분위기다.

손님이 침대를 두들기며 여기로 와 앉으라는 티를 냈다.


"풉."

"왜 웃으시오?"

"아무 것도 아니야."


너부데데한 지느러미로 침대를 두들기니, 두들기는 소리 만으로 난타를 방불케 했다.

수인이라 어쩔 수 없는 걸 테고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테니 함부로 말은 못했지만.

전에 장난 한번 쳤더니 뻐킹 레이시스트라고 화냈거든.


"바로 시작할까?"

"좋소."


후드를 벗어 재꼈다.

후드를 벗자마자 서큐버스 특유의 과장된 몸매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손님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아, 아니 뭐하는 게요!"

"뭐하긴."

"그게 아니라 오늘은 얘기만 한다 안 하였소!"


얘기?

다소 황당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얘기라...

저번에 그거?


"... 안 듣는다는 거 아니었어?"

"내 언제 그런 말을 했소?!"

"굳이 며칠 씩이나 조용히 있길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한동안 바빠서 그랬던 게니, 어서 옷 좀 입으시오!"

"바빴다고?"

"저번 주 내내 던전을 돌았소."


뭘 당황하고 그런담.

알몸은 매일같이 봐놓고.

난리는.


"그래그래. 무슨 얘기 해준다 그랬지? 내가 왜 수인 상대하는지?"

"그렇소."

"별 건 아닌데. 내가 남자 정기를 잘못 빼왔거든."


아니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구나.

나 자신이 어쩐지 비겁하게 느껴져서 정정했다.


"사고를 크게 친 적이 있거든."

"사고라 함은?"

"사람을... 죽였어."


잠깐 아찔한 기억이 들었다.

시체에서 느껴졌던 냉기며 나뭇바닥에 스며들던 붉은 색 액체.


"허어, 어쩌다 말이오?"

"믿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전생에 남자였단 말이지."

■■□"남자?"

"죽고 이세계로 넘어왔더니 어째선지 서큐버스가 되어있었단 말이야."

"낭자 다른 세계 사람이었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침대에서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났다.

꼭 그때 들었던 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근데 남자 입장에서 남자랑 관계를 한다는 건 거부감이 들지 않겠냐?"

"그럴 수도 있겠구려."

"결국 할당량 분의 정기를 못 가져오다보니 여왕님 눈에 아니꼽게 보였던 거고, 쫓겨가며 일을 한 적이 있어."

"그때 만난 게 그 남자였단 말이오?"

"사실 얼굴도 기억 안 나고 하지만... 묘하게 널 닮았던 것도 같고?"

"허허, 날 닮았으면 범고래 수인이었나 보오?"


내 앞의 남자는 지느러미를 흔들어 보였다.

큼직한 지느러미가 살랑거리는 것이 퍽 귀여워보였다.


"응. 고래였어."

"거 참 기이하구려."

"너처럼 착하기도 했고. 한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금속 덩어리.

징벌로써 여왕이 친히 자른 두 팔을 대신하는 물건.


"말해보시오. 한데?"

"그냥... 힘 조절을 잘못했어."

"그뿐이오?"

"몸은 닿지 않고도 정기를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렵거든 그게."

"그걸 하다가 실수했단 게요?"

"너무 많이 빼낸 거야. 남자랑은 죽어도 하기 싫단 생각 만으로 사람 하나 죽인 거지."


손님이라곤 해도 내게 잘 대해줬는데.

아니, 내게 잘 대해준 사람은 그 사람 뿐이었는데.

서큐버스 동족들한테도 이상한 취급 받고 손님은 꼬일 리가 없던 상황에

유일하게 같이... 있어준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떠올리니 입맛이 썼다.

가슴이 답답했다.

고래 수인의 시체는 피에도 기름이 있다는 사실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머리 위 숨구멍에서도 피가 나온다는 사실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뭐 옛날 얘기니까."


목이 답답하다.

말을 너무 많이 한 걸까.

이 일은 어째 생각할 때마다 이렇네.

손님은, 범고래수인은 답답한 듯 날 쳐다보았다.


.--. .- ..- ... .

-- .- .. -. / .--. .-. --- --. .-. .- --

... - .- .-. -


"저기, 낭자."

"응?"

'끼이익'


침대를 기울여 범고래수인은 배꼽을 맞췄다.

x자형으로 몸이 포개어졌다.

고래의 짝짓기 방식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움직이지 않고

그는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낭자는 옛날 얘기만 하면 아주 눈시울이 촉촉했소."

"그랬나?"

"연모하던 이였소?"

"글쎄."


그랬겠지.

그랬으리란 걸 안다.

나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난 좋아하던 사람을...

범고래의 작은 눈이 내 눈가를 훔쳐봤다.


"마음에 안 든단 말이오."

"에?"


너무나 예상 밖의 단어 조합이라

그만 만화 속 여자 캐릭터 같은 반응을 해버리고 말았다.


"낭자. 이 일을 하는 건 생계를 위해서라고 했소?"

"어, 어. 남자의 정기를 먹어야..."

"어차피 나 말곤 손님도 없지 않소?"

"그렇, 긴 한데..."

"그럼 그냥 일 때려치고 내 담당 서큐버스로 붙어주면 안되겠소?"

"에엣?"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번 주에 던전 돌았다는 이유가 이거요. 얻느라 고생 좀 했지."

"이건... 용의 비늘? 그럼 바빴다는 게..."

"낭자."


그가 내게 비늘을 내밀었다.

이 세계에선 장신구로 인기가 많다던 그 물건을.

그리고 연인을 사귀는 데에 무기로 자주 쓰인다던 그 물건을.


"여러가지 생각해봤소."

"마, 마음은 고맙지만 난 그냥 고객으로써..."

"세상 어느 창녀가 고객하고 밥을 같이 먹소. 따로 부른 시간도 아닌데."


울면서 이 남자를 찾아온 날이 생각났다.

이 세계의 음식점 알바를 하다가 짤린 때였던가.

알바 선배한테 쪼인 때 였던가.

아니면 두번 전부였던가.


고객이라는 사람한테 술을 얻어먹었더라지.

고객도 아닌 시간이었는데.

범고래 전통주라고 했던가.

달진 않았지만 묘하게 끌리던 맛이었다.


"세상 어느 창녀가 연극 보러 가자고 꼬시겠소 고객을."


봤었지. 그냥 문득 생각나서 꼬드긴 적 한 번 있었다.

영화만큼 재밌진 않았고 진부한 스토리에 식상한 연출에 아주 꽝이었지만

어쩐지 그날의 연극은 기억에 남았다.

선명하게.


"세상 어느 창녀가 고객을 그렇게 허물 없이 대하겠소."


처음엔 깍듯이 대했다.

그러나 존댓말이 주는 거리감이 묘하게 싫었다.

가까이에서 말하고 싶었다.

더 가까이에서.

조금 더.


"세상 어느 창녀가... 그런 얼굴을 짓는단 말이오."


그런 얼굴.

어떤 얼굴이던가.

모른다.

보이고 싶지 않다.

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말재주가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소. 받아주시오. 거절하지 마시오."


범고래의 숨이 닿았다.

따뜻한 숨이었다.

범고래의 얼굴이 보였다.

듬직한 얼굴이었다.

그런가.

난...

.. / .--. . .-. ... --- -. .- .-.. .-.. -.--

.--. .- ..- ... .


*



"이게 맞아?"

"뭐가."

"너무 러프한 느낌이 있던데."


흰 가운을 입은 두명의 인간이,

꼬리니 지느러미니 하는 것은 일절 없는, 두명의 순혈인간이 마정석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정석은 얇은 줄로 한 대의 로봇과 연결되어 있었다.

벌거벗은 여성형 로봇이었다.


"패트릭, 네가 하잔 대로 했잖아."


앉아있었던 사내가 마정석을 돌리며 답했다.

로봇은 열기를 빼내며 스스로를 냉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긴 한데 시운전해보니까 좀 조잡한 느낌이 있더라고 노아."


패트릭이라 불린 사내가 옷을 주워입었다.

방금까지 뭘 했는지 사내의 전신은 땀 범벅이었다.


'노아' 가 그 말에 성을 내었다.


"그러니까 내가 스토리에 좀 더 치중하자고 했지! 예쁘다고 다 꼴리는 게 아니라니까!"

"아, 알았어 알았어. 난 기왕이면 생전 일화를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가고 싶었지."

"우리 고객은 로봇의 생전 연애 이야기 같은 거 관심 없다니까!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패트릭!"

"거 성내기는. 그래도 이야기 자첸 쓸만했잖아."

"각색도 안된 이야기가 이야기인가. 설정이지."


노아가 툴툴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노아 너, 근데 어디서 저렇게 귀한 영혼을 얻어온 거냐?"

"소프트웨어의 정밀도를 올리기 위해선 영혼이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난 설마 네가 전직 서큐버스의 영혼을 가져올 줄은 몰랐지. 어떻게 구해온 거야?"

"뭘 어떻게 구해. 자기가 자원했는데."


어깨를 으쓱이는 노아의 말에 패트릭은 크게 놀랐다.


"자원을? 영혼 뽑힌 다음에 어떻게 되는 지도 말한 거야?"

"자긴 살인자니까 죽든 살든 이제 상관없다던데."

"자기 연인을 죽인 여자라고 했었나?"

"자기 연인을 죽인 창녀지. 듣기론 연인이 고객 출신이였다던데. 범고래수인."

"... 노아 네 말마따나, 듣고 보니 스토리에 너무 그대로 들어가긴 했네."

"그렇다니까."


패트릭이 뒷통수를 긁으며 연구실을 나섰다.

잠시 커피라도 타올 심산이었다.


"그래도 죽은 사람하고 지금 사귀는 사람을 분리한 건 잘한 거 같긴 해."

"둘이 동일인물이었어서 그런지 나눈 게 어색한 느낌도 드는데. 차라리 다른 수인으로 한명쯤 바꾸는 게 나았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쩔 수 없잖아. 기억의 재구성이란 것도 쉽기만 한 건 아니고."

"음... 범고래에서 혹등고래로 바꾸는 거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건 좀 이따가 보도록 하고, 오히려 문제는 그거였어."


패트릭이 시운전 당시를 회상했다.

방금까지 범고래수인의 대역으로서 로봇을 범하던 패트릭이었다.

제일 문제였던 것은...


"그 로봇, 너무 조여. 중간중간에 말소리도 깨지고. 버그도 몇번 나던데."

"... 계산 다시해야겠군."

"세미클론 또 빼먹은 거 아닌지 확인해 봐."


노아의 한숨과 함께

연구실의 작은 문이 닫혔다.


희고 작은 문.

페인트가 잘 발라져 있어서 어루만지면 기분 좋은 쇠 문이었다.

문에는 전단지 한장이 붙어있었다.


[최신식 러브돌, 로봇형 러브돌의 소프트웨어 연구 실험]

[소프트웨어를 실제 영혼으로 대체했을 경우, 어디까지 프로그래밍 가능한가]

[세뇌 마법 전문가 자문 구함]

[로봇의 시운전을 도울 건장한 남성 구함]



*



일단은 틋챈 참가작이지만 여기다도 업로드.
반응 괜찮으면 이걸로 떡 돌리는 거고 아님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