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는 환상통을 겪는 모양이다. 몸의 이상은 없다. 엑스레이나 뼈를 망치로 두들기거나 청진기를 대보거나 혹은 침을 맞아보거나 하는 과학적이고 미신적인 진찰 같은 치료 과정을 모두 겪어도 여전히 다리에는 추위가 담겨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추위가 담겨 있는 듯 무릎과 무릎 아래는 시리고 아프며 떨리지 않으면 불안한 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 푸르게 썩어있지만 않을 뿐 동상에 걸린 것 같다.


나는 다리를 긁었다. 간지럽지는 않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동상 환자는 항상 상처 부위가 항상 가렵다고들 하지 않은가. 다리는 부스럭거렸다. 무릎에서 각질이 떨어져 나갔다. 무릎에 생긴 각질은 오래된 것이었다. 공사판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다니다 보면 누구든 이런 각질이 생긴다. 나는 공사판 말고도 평소에 무릎을 자주 꿇고 다녀서 이런 것이 남들보다 많았다. 나는 비참하고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 남들에게 나는 내가 가치 없는 삶을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자살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냉소적인 천재이거나 정신병에 걸려 있다. 나는 냉소적이긴 하지만 똑똑하지는 않다. 그래 나는 정신병 환자다. 나는 4년 전부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의사는 날 보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입원을 권했고 나는 내 양팔이 묶인 채 쿠션 가득한 방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 나는 내 방에서 편안하게 다리를 긁고 있다. 그래도 약은 받았다. 자살할 만큼 인간답게 죽을 용기도 없는 난 삶을 택했다. 


하지만 오늘도 그런 용기는 끝이고 약을 먹어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 너머보다는 창문 너머의 세상이 날 부르고 있었고, 그곳에는 희망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자비와 존엄이 있었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내 삶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칠층 높이의 탑에 가치가 생길만한 통로가 보였다.


난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죽지 않았다. 난 살아있다. 난 도로에 있었다. 눈이 감기지 않았고 몸은 몽롱했다. 부러진 뼈와 찢어진 가죽과 터져 나온 내장이나 근육 조직이 느껴졌다. 하지만 몽롱한 몸에 고통은 없었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난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어났을 때 간호사의 얼굴과 함께 고통이 느껴졌고 시야가 깜깜했다. 약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진한 알코올 냄새였다. 오른손에 바늘이 박혀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부위들은 철이나 붕대 같은 것으로 감아두고 억지로 고정해 놓았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난 억지로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표정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잠에 빠졌다. 그 직전에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날 길가의 터져버린 쓰레기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더니 시선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꿈이 없는 밤은 조용하게 끝났다. 다른 간호사가 들어와서 비닐 팩에 가득 찬 소변을 가려주었다. 내 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책에서 본 미라 같은 꼴이었다. 난 극단적인 무력함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잠에 들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라자로." 기묘한 우연이라고 코웃음 치는 소리에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그가 날 내려다보더니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자리를 옮겼다. 간호사와 함께였다. 그는 의사였다. 나는 돌 같이 뻣뻣한 내 몸을 보면서 정말 기묘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나자로처럼 죽었는데 죽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돌과 비슷한 것으로 몸을 막고 있다. 나와 그의 차이점은 나는 마리아가 없고 그는 있다는 것이며 예수도 없지만, 그는 있다는 점이다. 향유를 살 돈도 없긴 하다. 향유는 값진 물건이라고 들었다. 애초에 향유가 뭐였는지도 까먹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비싸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라자로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아마도 지금 삼일이 지난 게 분명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료함과 허무함에 짓눌린 채로 붕대 속에 잠들어 있었다. 다음도 또 다음 날도 나는 이런 식으로 죽음을 반복하고 또 짓눌릴 게 분명하다. 매일 무료하고 지루한 삶이 반복되는 인생이다. 내 삶은 비참함과 그것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서 나라는 인간이 그곳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바뀌지 않고 계속 맴도는 림보 같은 상황이다. 


그래도 약간의 변화는 있다. 매번 이렇게 자살을 한 건 아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몸이 그나마 멀쩡했다. 어쩌면 죽고 싶지 않으려는 본능의 저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을 완전히 넘었고 본능도 침묵을 지킨다. 또한, 몸의 신경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이 느껴진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난 내 정신을 버리고 정말 죽어버릴 것이다.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일단은 침묵이다. 그러나 그러면 너무 심심하다. 난 과거라도 회상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머리로 쓰는 회고록이라고 할까.


나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살아가는 것이란 꽤 힘든 일이다. 심지어 타살이나 병사도 아닌, 자살이라는 죽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난 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데 익숙했고 이런 것들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일종의 재능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렇을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나 자신도 그렇다. 이러한 두서없는 생각이 반복되고 때로는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날 누가 이해하겠는가? 이렇듯 나는 림보에 빠져 있다. 하지만 회고록을 쓰기 직전에 이러한 글을 상상하는 이유가 뭘까 마치 누군가 이 글을 읽어 주리라 믿는 모양이다. 실상은 나 자신도 보지 않을 상상 낭비의 결정채의 물건인데 말이다. 다시 진정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난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있다. 할아버지는 있었다. 그분은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고 그전에는 하모니카 부는 법을 알려주신 분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 민폐를 끼친 적이 많으신 분이라는데, 그래도 남들에게 친절했다고 하신다. 심지어 난 친구도 있었다. 숫자도 많았고 절친한 네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가족과 감정을 나눈 친구 중에서 내 감정을 전할 인간은 한 명도 없었다. 난 사랑을 가져본 적은 없다. 있었다고 해도 감정을 나누진 않았을 것이다. 이 고통을 나 혼자 인내하겠다는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 모두 가식으로 날 대화며 속으로는 이렇게 하면서 우월감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개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내 망상이라고 해도 나는 두 가지 모두를 믿을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내가 정한 두 가지 부류에 모두 속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난 그들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다.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인간 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들을 시기하고 욕하는 인물들 때문이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인간인데 남들을 욕하고 놀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부류라 일종의 기생충에 가깝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아마도 나 때문에 손해를 입은 사람도 정말 많을 것이며 개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 점이 나에게 양심의 가책이라던가 어떠한 형태의 처벌로서 돌아온 일은 없었다. 단지 나는 남들이 날 욕한 것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것이며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이점을 상담사에게 말하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호하게 답변할 뿐이었다. 나도 별생각은 없다. 대부분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어떻나 가책도 없었다. 


여하튼 내 가족은 정말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분들이며 나에게 있어서는 이상적이고 과분한 분들이다. 어머니는 매일 밖으로 나가 일을 하셨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는데, 자연스럽게 난 할머니의 품에서 성장했으며 어머니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다. 이렇게 망가져 버린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불충일 것이다. 심지어 그분들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팔팔하시다. 


내가 그들 곁을 떠난 이유는 단지 이 세상 사람들이 혐오스러워졌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작은 주택을 하나 구해서 그곳으로 도망쳤다. 물론 내 돈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기생충은 기술의 발달로 언제나 사람의 지갑 속에 기생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기억에만 붙들려서 가끔 전해지는 편지의 목돈을 받는다면 요즈음은 전자식으로 언제든 원하는 그때마다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들에게 참 안된 일이고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난 혐오스러운 나 자신을 볼 때마다 거울을 깨부수고 싶은 충동만 견디면 됐다.


정말로 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생물이며 바퀴벌레나 딱정벌레 수준보다 못하다. 적어도 벌레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투쟁하지만, 난 그런 것도 없다. 나이는 젊고 정신 빼고는 몸도 괜찮은데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몸인데다 천재의 자식치고는 범재에 가까워서 자살 말고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죽지 못하고 그들의 돈과 걱정을 계속 소모하는 몸이다. 태생부터 기생충인 셈이다. 그 점을 난 일찍 알아차렸고 어릴 적부터 위에서 말했듯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이유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멍청한 인간에게 걸맞은 멍청한 삶이라 나에 대한 욕은 쉴 새 없이 하면서도 조소를 멈추지 않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날 욕한 인물 중에 가장 강한 욕설과 일침을 가하고 많은 양의 욕설을 퍼부은 인간을 꼽으라면 오만하고 교만한 생각이지만, 아마 나 자신을 뽑을 것이다. 여하간 이런 멍청한 단어를 쓸 만큼 나는 멍청하고 멍청한 삶을 산다. 계속 반복되는 구절을 반복하기까지 하며 이렇게 이유 없이 생각을 낭비하고 있기 까지 하다. 누가 이런 망상을 읽어나 줄까? 신?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이 있다면 날 태어나지 않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신이 있다고도 믿기는 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난 강렬하게 지옥에 가고 싶다. 신이 있어야 지옥이 있지 않은가? 나 같은 머저리는 지옥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죽음 끝에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 방치되어야 한다. 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면 지옥보다 끔찍할 것 같다 그런 것들은 상상할 수록 무서운데, 미지의 공포라는 걸 느끼는 모양이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죽으면 아무것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고 이 의식도 어디론 가로 사라지거나 혹은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런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난 범재라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며 하기도 싫다.


이때쯤에 의사가 다시 들어와서 내 상태를 살폈다. 개인실이라 이곳엔 의사와 나뿐이었다. 그는 안경을 쓰고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전형적인 의사라 묘사할 것도 없었다. 현재 죽어가는 몸을 살려내고 있는 저주받을 그는 나에게 자비를 주지 않고 내 몸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나는 그가 나를 죽여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면 정말 고마울 텐데 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어가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는 건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의도적이지 않은 내 오른쪽 눈과 오른쪽 손가락뿐이었다. 설득을 위한 행동도 할 수 없는 몸에 숨도 내가 직접 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쉬어지고 있는 건지 몰랐다. 마치 죽어가는 벌레 같은 모습이라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멀리서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얼마나 작을지, 얼마나 한심할지 상상하면서. 의사는 내 상태를 보면서 여러 번 내 머리맡의 기계를 살펴보고 내 몸을 살피더니 다시 가버렸다. 그리고 간호사 다시 들어왔고 아까와는 다른 그녀는 내가 채운 소변을 살피더니 아직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가버렸다.


아무도 없는 병실은 고요하고 창문은 막혀서 그림자가 짙게 고였다. 약 냄새가 감돌았고 잠이 찾아왔다. 몸은 시체처럼 차가웠고 커튼으로 가릴 수 없는 은은한 달빛이 내 발치에 쏟아졌다. 음료라도 한잔하고 싶은 밤이었다. 웃기고 부끄러운 생각이라 나는 곧장 머리에서 그 생각을 지웠다. 하지만 그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또 알아차리고 말았다. 난 창문을 바라보고 또 죽음을 갈망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인간으로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을 살려두는 이유가 뭘까? 이제는 음료를 마실 수도 없고 자살할 수도 없는 인간을 살려둘 가치가 있을까? 난 존재 자체로 가치를 뽑아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지금쯤 내 부모가 병원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난 눈을 감았다. 회고록은 다음에 쓰기로 했다. 아마도 저승에서, 나는 그러기 위해 몸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움직였다. 손에 박힌 바늘이 안쪽으로 더 들어 갔고 단단한 붕대가 꿈틀거렸다 결국,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고 또 비틀어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링거와 내 소변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액이 담긴 비닐 팩이 옷걸이를 닮은 영문모를 알류미늠 기둥에서 떨어져서 내 몸을 적셨다. 다리가 시리다가 고통이 사라졌고, 약 냄새 사이에 비릿한 냄새가 뒤섞였다. 어디선가 기계가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