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 응?

-틋붕이 너, 오늘 길드에서 대화했던 마법사 여자 누구야?


미친 ㄴ.

시아, 이 미친 ㄴ.

시아가 또 시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그, 그냥 마법 관련해서 뭘 좀 물어본 거 뿐이야.

-누가 질문을 그렇게 오래 해? 사심 있었던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할 때면 언제나 시아의 눈은 핏빛 붉은 눈이었다.

녀석은 내가 다른 여자와 대화 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의심이 극에 달하면 물리적으로 상대를 해코지를 하기도 했다.

찌르고 베고 두들겨패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했다.


얀데레라고 했던가?

녀석은 그런 족속이었다.


-진짜야. 이상한 일은 하나도 없었어...

-아무래도 못 믿겠어. 직접 그 여자한테 물어보고 올게.


별로 달갑지 않은 기억이다.

남자였을 적의, 전생의 나는 그런 삶을 살았지.

어디로 도망쳐도 미친 듯이 따라오는 그 여자는 어느샌가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끝! 안녕!

지금의 나는 전생 마법으로 여자로 다시 태어난 몸!

그냥 여자도 아니고 수녀원에 소속된 몸!


시아에게 내가 연구하던 마법의 정체를 들켰을 땐 등골이 오싹했지만

수녀원이라는 단체를 방패 삼아 시아와 더는 만날 일이 없다 이거야!

하하 아듀! 얀데레!


... 라고

생각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얼마 전에 들어온 수녀, 시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썩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은

바로 방금 부숴져 버렸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



*



"추워 돌아가시겠네."


한마디 불평을 하자마자 곁에 있던 동기의 핀잔이 들어왔다.


"그만 투덜대. 힘 빠져."

"추워어어! 힘들어어어!"

"그럼 빨래 말고 다른 일 하지 그랬어."

"요리 같은 거?"


수녀도 하는 일이 다양하다.

요리나 빨래처럼 수녀원 안의 살림을 관장하는 일도 있고

외부 봉사활동을 하며 교단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도 있다.


"내 손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요리하다 쫓겨났잖아."

"자원 봉사활동은?"

"하고 싶은데 항상 자리가 차서."

"복음 전파 같은 것도 있잖아."

"그거 경전 바삭하게 외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나 같은 어린 아이한테 그걸 시킬 리가 없잖아."


난 응애 12살 수녀라고.

동기는 빨랫감에 물을 묻히며 말을 이었다.


"아님 모험가 파티에 들어가거나."


대다수의 수녀들이 선호하는 것은

적당한 모험자 파티의 동료로 편입되어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수녀원의 답답한 생활과도 안녕이고, 남자 좋아하는 애들도 미쳐날뛰곤 하기에.


"여행하는 건 조금 그랬어."


하지만 혹여나 여행 도중에 시아, 그 크레이지 싸이코 얀데레를 다시 만날까 무서웠던 나에게는

제일 기피하고 싶었던 행위였다.


"그럼 네가 선택한 빨래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고?"

"어."


거꾸로 대부분이 싫어하는 작업은 빨래였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달달 떨며 냇물에 손을 담가야 한다니.

외부 활동이랑은 다르게 재미 있을 요소도 없고, 진흙이며 뭐며 더러운 것도 왕왕 묻고.

썩 재미 없는 작업이었기에 빨래는 다들 기피했다.


게다가 일개가정이 아니라서 양도 어마무시하다고.

그 양을 다 손으로 두들겨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 ㅋㅋㅋ

어차피 식량배분은 똑같이 하는데

어느 바보가 자원을 해서 이런 지루한 일을 하겠어 ㅋㅋㅋㅋ.


"내가 미쳤다고 빨래로 지원을 했지 하."


... 인정한다.

난 바보였다.

나 틋붕은 바보가 맞았다.

사서 고생을 한 어리석은 행동을 상기하자니 눈물이 다 났다.


"얼라 전생하더니 지능도 얼라가 되버린 거냐고..."

"그만 중얼거리고 야무지게 해봐! 어느 세월에 때 빼려고 그러니?"

"아으 잔소리."

"뭐가 잔소리야 잔소리는! 네 후배들을 보고 좀 본받아라 얼마나 착실하냐!"

"그건 그렇고 그 얘기 들었소?"


다른 동기가 근처로 다가왔다.

말투가 개성적이긴 하지만 이 녀석도 엄연한 수녀다.

밤마다 무협지를 탐독하더니 이렇게 된 거 뿐이다.


"몇주 전에 새로운 수녀님이 들어오셨다고 하오."

"진짜?"

"이름은?"

"'시아' 라고 하셨소."

"시아라고?!"

"아는 사람이오?"


시아?

전생에 날 그렇게 괴롭히던 그 얀데레?


그 여자가 왜 이곳에...

동명이인인가?

아니, 흔한 이름이 아니잖아. 그럴 리가 없어.

그럼 왜?


"혹시 나이는...?"

"스물 중반 정도라고 들었소."

"키는?"

"수녀원장님보다 조금 더 크셨소."

"인상착의는?"

"빼빼 마른 적안에 긴 생머리였소만."


썩을. 내가 아는 그 시아잖아.

그 여자가 여기에 있단 말이야?


"어쩌다 들어왔대?"

"수녀원이니까 수도 생활을 하려고 들어온 거겠지."

"듣기론 사람을 찾..."

"박틋순 수녀님! 박틋순 수녀님!"


불길하게 동기의 말을 끊고 누군가의 호명이 내다꽂혔다.

가늘고 째진 독특한 목소리.

수녀원장님이셨다.


"박틋순 수녀님, 저번에 봉사 활동 하고 싶다고 하셨죠?"

"예. 그렇기는 한데..."


수녀원장님이 숨을 헐떡이셨다.

수녀원에서부터 달려오셨나.


"마침 자리가 비었거든요. 이참에 옮기실래요?"

"진짜요?"

"너, 빨래는 어쩌고?"

"그건 다른 누군가로 보충해주시겠지."


외부봉사라.

빵이나 나눠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세탁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내겐 희소식이었다.


"한데 사소한 문제가 있어서요."

"문제라니요?"

"그, 조금 부담이 갈 수도 있어서요."


무슨 말이지?

치마 씻기다가 개똥 만지는 것보다 부담갈 거 같진 않은데.

찬 물에 손 어는 거나.

빨래는 이미 물렸다고요.


"수도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분과 단둘이 작업하게 될 것 같거든요."

"에이, 어때요. [주님의 마음이 닿지 않는 곳에 나눔을 베풀면 그것이 행복] 일 텐데."

"그 구절은 [주님의 마음] 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 이야 틋붕아."

"헷갈릴 수도 있지."


째째하기는.

원장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괜찮으신 거죠? 그냥 그대로 넣어드릴게요?"

"네!"



*



"썩을."


왜 시아가 여기 있는 거냐고.

마음의 부담 어쩌고 하던 건 이 의미냐?

이 의미야?


"원장 수녀님이 나한테 앙심이 있나..."

"틋붕 수녀님!"

"에? 예? 저요?"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나만 보고 있었다.


"거 수녀님 수프 좀 주쇼."


배급을 기다리던 걸인이 재촉했다.

한손에는 빵을 든 채로.

맞다. 수프 나눠줘야지 참.


"잘 먹겠수."

"틋붕 수녀님 오늘 하루 종일 멍하니 계시던데 어디 편찮으세요?"


시아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색을 살피는 거란 건 알겠지만

나 너 무서워.

좀 치워.

심장에 안 좋다고.


"아, 아뇨. 어제 잠을 늦게 자서 그런가?"

"이외네요? 틋순 수녀님은 굉장히 성실하시다고 들었는데..."


시아가 의아한 눈을 지었다.

길에서 만난 여자를 보고 바람을 의심하던 때의 눈이었다.

나한테서 뭘 의심하려는 거야.


"하, 하루쯤 그럴 때도 있는 거죠. 에헤헤."


그럴 리가 없지만

정말로 그럴 리가 없지만

설마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시아는 내가

단순한 수녀인 '틋순' 이 아니라

고위마법사인 '틋붕' 이었단 걸 알고 있나?


아니겠지? 단순히 내가 예민한 거겠지?

제 아무리 시아라지만 설마.


"저기..."


소년.

그 불안 사이로 한 소년이 쭈뼛거리며 파고 들어왔다.

열넷? 열다섯 정도 될까?

소년은 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저기 그, 아침에 일하시는 걸 봐서..."

"?"


나와 시아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임?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임?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 이걸, 저기..."


시뻘개진 얼굴로 소년은 시아에게 리본을 내밀었다.

리본 모양 머리핀.

연분홍색이었다.


"저한테요?"


시아가 토끼눈이 되어 답했다.

여자 성인과 남자 아이라.

오네쇼타인가 뭣인가 하는 그거인가 싶었다.


가만, 이거 시아가 저 남자애랑 좋은 관계가 되면 나 같은 건 잊어주는 거 아니냐?

그럼 난 안전하고 행복한 수녀 생활을 구가할 수 있을 텐데?


좋아, 도덕적으로 위험해보이긴 하지만 눈 감아주마.

어디 오네쇼타 좀 열심히 찍어봐라!

깔깔깔!


"죄송하지만..."

"앗 아니요, 틋순수녀님이요."

"데뎃?"


응?

나?

나라고?


"틋순 수녀님 웃으시는 모습도 너무 귀여우시고..."


소년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

왜?

왜 내가 남자한테 받고 있는 거냐?


"받아주시면..."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첫사랑의 실연은 아프단 거 알지만 급히 거절해주었다.

남자한테 사심이 듬뿍 담긴 선물을 받아먹는 취미는 없거든.

그리고 저 꼬마 입장에서도 고백할 거라면 순수한 여자가 더 나을 테고.


"교단의 규칙 같은 건가요?"

"교리 상으론 괜찮은데 남자 분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게 조금..."

"그래도..."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일부러 '만' 에 힘을 주었다.

선물은 받기 싫다는 뜻이었다.


"... 네, 안녕히 계세요."


몇차례 더 시도하다가 결국 소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터덜터덜 걷는 폼이 가엽긴 했지만 어쩌랴.

난 여자가 좋다고.

남자는 안돼.

절대.


"틋순 수녀님은 저런 장신구는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시아가 소년의 등을 보며 물었다.


"그런 것도 있고, 말했다시피 남자 분에게 선물을 받는 건 익숙치 않아서요."


알맹이는 남정네라고.

저런 말랑뽀짝한 걸 좋아할 리가 없잖아.

핑크빛? 리본?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어머나. 동기 분들 말씀이 사실이었군요."

"무슨 말이요?"

"틋순 수녀님은 원체 터프하시다고."


영 불안해지는 말이었다.

시아의 눈동자도 영 불안한 빛깔이었다.


"예?"

"예쁜 것에도 관심이 없고 뭇 남성분을 봐도 혹하지 않으신다면서. 전생에 남자가 아니었냐고 소문이 자자하시던데요."

"그, 그건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요?"

"그런가요? 전 또."


'전 또' 뭐.

'전 또' 뭔데!


찝찝하고 불안한 생략에

동기들과 간밤에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


-틋순 수녀는 그거 아시오?

-'그거' 라고만 하면 모르는데.

-전생 마법 말이오.

-그, 마법사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부활을 바라며 쓴다는 거?

-요즘 그걸 다들 말하던데.

-근데 그거 다 이론 상의 마법 아니야? 성공 사례가 없을텐데.

-몇년전에 성공했다 들었소만.

-... 그거 누가 말해준 거야?

-시아 수녀님이 일러주셨소. 지인이 한번 성공했다며.


애당초 시아가 수녀원에 올 만한 그릇은 아니었단 걸 잘 안다.

성격이 그다지 금욕적이지는 않았으니까.

제 성에 안 차면 사람을 찌르는 여자가 금욕은 개뿔.


'전생 마법이 성공했다'

라는 걸 시아는 알고 있다.

그걸 쓴 게 나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내가 묘하게 털털한 성격이란 건 수녀원에서도 자자한 이야기이다.

수녀원에 남자가 한명 숨어있다면 틀림없이 나일 거라고 다들 말한다.


어쩌면

어쩌면 시아는 내 정체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으며

수녀원도 그걸 위해 들어온 게 아닐...


아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그런 의심을 품고 있을 리가 없지.

시아와 관련 되면 과하게 민감해지는 것도 안 좋은 습관이다.

아무리 이 여자가 무섭다지만 공상과 현실은 구분을 해야지.


"그러고 보니 틋붕 수녀님은 제가 알던 분과 많이 닮아있네요."

"누, 누구요?"


공상과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뭘까. 뭐가 문제인 거지.


"제 옛 연인이랍니다."

"애인분이요?"

"'틋붕'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


-틋붕 수녀님!

-틋붕 수녀님 오늘 하루 종일 멍하니...

-틋붕 수녀님은 제가 알던 분과 많이...


이 여자.

날 전생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미 충분히 날 의심하고 있다.


"그분은 남자셨지만, 긴장하면 뒷목을 긁는 점이며 말투며 틋순 수녀님과 많은 점이 닮아..."

"오, 오빠! 오빠!! 그 리본 다시 받아도 될까요!!"


시아의 말을 끊고

꼬마에게 달려가 리본을 뺏다시피 낚아챘다.

넘겨 든 리본은 후다닥 머리에 꽂았다.

범에게 쫓기는 사슴의 속도였다.


선머슴 같다는 근거에서 날 유추해내고 있었다.

고작 그 조막만한 단서에서 내 정체를 캐고 있었다.

원래가 지레짐작이 심하던 성격인지라 빠르게 추리해내고 있다.


들키면 어찌 되는 것인가.

환생 이전의 그 수난과 고통을 다시 맛 보지 않을까.


"너무너무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한동안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할 거 같았다.


남자가 환생한 수녀 말고.

천상 여자아이인.

예쁜 거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그 나이 또래의.

태생 여자아이를.


"정말인가요? 다행이네요!"

"그럼요, 엄청 마음에 들어요!"


내용물은 스물 먹은 머스마가 머리에 리본 꽂고 방방 뛴다라.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썩을.



*


ts물채널 수녀대회 출품작. 7월 1일까지니까 심심한 사람들은 함 참가해보삼.

분명히... 분명히 소재로 쓸 땐 개쩔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