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고독(蠱毒)을 만드는 방법을 아시는가?


박수가 빛이 전혀 통하지 않는 도가니 안에 지네며 거미, 뱀과 두꺼비같은 독충과 독물들을 넣고 봉해 놓으면 그놈들이 서로 잡아먹은 끝에 끝내는 저주가 된다지. 헌데 사실 난 이 저주를 처음 고서로 접했을 때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네.


그 의문이란, 단순히 독충을 모아서 봉해 놓는 것으로 간단히 무고(巫蠱)를 만들수 있다면 반드시 박수나 무당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째서 보통 사람은 만들지 못하는 것인지였소.


아닌 말로 본능대로 움직이는 버러지들이 서로를 먹어치운다고 한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놈이 살아남는다고 한들 결국 사리분별도 못하는 한낱 미물이 아니겠소? 어쩌면 오히려 더욱 쇠약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지. 


항간에 유행하는 귀뚜라미 싸움만 봐도, 연전을 거듭하면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배를 깔딱거리며 반쯤 죽어가고 실제로 열에 일고여덟은 그 자리서 목숨을 다하네. 그런데 어떻게 미물이 서로를 뜯어먹는 것만으로 저주로 화(化)할 수 있겠나?


내 이 한양 바닥의 박수라는 박수, 무당이라는 무당들은 모조리 찾아다니며 물어봤네만, 아무래도 물건이 물건인지라 여러번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소. 심지어 어떤 용하다는 만신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뚜막에서 소금을 한 움큼 쥐어 얼굴에 냅다 후려갈깁디다.


뭐 그래도 이제는 관직도 없는 나 같은 한량이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말일세. 시간이 날 때마다 백방으로 알아보던 와중 얼마 전에 드디어 한 곳에서 연통이 왔소. 도성 바깥 외진 곳에 위치한 당집인데 사례만 두둑히 준다면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다 하더군. 그 소식을 듣고 두말할 것 없이 그리로 향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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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평소처럼 바깥에서 용무를 알리고 당집 안에 들어서는데, 그날은 뭔가 달랐소. 보통 당집 같으면 탱화에 신장대에 장군신이며 용왕님 동자님 같은, 번듯한 신들을 모셔두고 칼과 방울로 치성을 드리네 무꾸리를 하네 시끄럽게 성화란 말이지. 


허나 그 집의 분위기는 뭐랄까, 한산한 느낌이 감돌더라 이 말이오. 아니, 사람 얘기가 아니오. 무당 주제에 신령님을 모신 탱화나 신장대는 본체만체하고 문 쪽을 향해 앉아 있다 대뜸 복채는 얼마나 내줄 수 있냐고 돈 얘기부터 꺼내더군.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불경한 태도에 믿음이 가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난 오히려 그 장사치같은 말을 듣고 이 여자야말로 주고(呪蠱)를 쓰는 무당이구나 직감했지. 정성으로 신령을 뫼시지도 않고 점복도 않는 주제에, 이런 외진 곳에서 무당 일로 벌어먹고 사는 자라 하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바였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들고 간 선금을 넉넉히 쥐여준 뒤 얘기 내용에 따라 두세 궤짝을 더 주마 하니 단박에 표정이 풀려서는 허리까지 굽실굽실하면서 흔쾌히 꺼내온 것이 바로 이 작은 둥지였네.


겉으로 보면 시장바닥에서 파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그녀가 말하길 이것의 유무는 그 결과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고, 시중에 나도는 놈들은 이것으로 만든 물건에 비하면 반의 반도 모자른 칠삭둥이요 하고 게거품을 물지 뭔가.


아, 이 작은 둥지 속에 처음부터 모든 독물들을 넣는 게 아닐세. 이건 어디까지나 완성된 한 마리가 들어가는 둥지일 뿐이라네. 웃돈을 좀 더 얹어주긴 했네만, 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는 길이네.


여기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이네만, 그녀가 말하길 이 둥지 자체가 특별한 것도 있지만 오히려 색다른 점은 그 만드는 방법에 있다고 하더군.


내 보건대 전체적인 방법은 고서에 기록된 것과 같으나 단 하나 다른 점은, 그 무당이 항아리를 봉하기에 앞서 이 안락해 보이는 둥지를 열어 거꾸로 뒤집었다는 것이었네.


그녀는 항아리 주둥이 위의 적당한 위치, 하지만 미물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결코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높이로 들고 항아리 안의 독충들과 독물들에게 잠시동안 똑똑히 그 안을 보여주었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항아리 입구를 봉했지.


그리고 말하길, 둥지 안쪽에는 미물들을 매혹하는 간단한 주(呪)가 걸려 있는데, 항아리 안의 독물들에게는 그 좁은 둥지 안이 마치 온 세상의 복락이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하더군. 


이제 자네도 조금 이해가 됐는가 보구만. 그래, 말하자면 무당이 말해준 비결이란 바로 의식에 앞서 미물들에게 어떤 목표를 제시해 준다는 것이었네. 


벌레들이 사람이고 항아리가 세상이었다면 그 이름은 선(善)이나 희망, 무릉도원, 극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겠지. 어쨌든 습하고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굶주린 벌레들은 그 좁고 편안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를 노릇이었을 걸세.


그 후에 항아리를 봉하면 말이네. 재미있게도 이전 같으면 그 안에서 그저 허기가 져서 서로를 물고 뜯을 뿐이었겠지만, 이미 둥지 안을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린 벌레들의 행동은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그녀는 말했네.


극락을 목도해 버렸지만 성현(聖賢)들의 법도 따위는 알지도 닿지도 않는 곳에서, 독충 사갈들은 한시라도 빨리 둥지 안으로 들어가려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서로의 몸에 온갖 원념와 함께 독니를 박아넣네. 내장을 씹고 담즙을 마셔가며 아귀다툼을 벌인 끝에 끝내는 원래의 형태마저 잊어버린다고 하더군. 


명이 밝으면 밝을수록 암도 깊어지는 법.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거미줄이 끊어져 극락 직전에서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진 죄인들은 아마 원통한 나머지 더더욱 서로를 헐뜯으며 할퀴어댔을 테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사리에 맞는 구조가 아닌가?


그리고 그 지옥 끝에 끝내 살아남은 마지막 한 마리가 바로 저주의 왕이라는 고독이 된다고 하는데, 마침내 태어난 완성품은 우습게도 자기가 그토록 선망하던 천국과는 정 반대로 이 세상의 원념이란 원념은 모조리 빨아들인 것만 같은 흉악한 저주 그 자체가 된다더군. 개중에는 다리가 아홉 개에 눈이 다섯 달린 녀석도 있었다고 하던가. 


그 다음엔 지극히 쉬운 일이네. 마침내 항아리 밑바닥에 시커멓게 졸아붙은 원념 덩어리에게 열린 둥지 입구를 들이밀면- 그것이 안으로 기어들어간 뒤에는 먹이조차 자주 줄 필요가 없다고 했네. 완성된 놈은 이미 생물의 법도에서 일탈해 있으며, 그토록 원하던 둥지 안에서 어리석게도 완전히 충족되어 있기 때문이라는군.


이렇게 완성된 고독은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둥지 뚜껑이 열리자마자 앞에 있는 것을 자신을 천국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악(惡)으로 간주하여 그 심장에 저주를 박아넣을 때까지 결코 멈추는 일이 없다고 하였네. 그러므로 주인은 둥지를 잘 간수하고 단지 그 뚜껑의 방향만 잘 조절하면 되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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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그래서 자네는 지금 이 둥지 안의 이걸 어떻게 쓰면 좋을 것 같은가?


...하하하, 아니 이보게. 그렇게 꺼려할 게 뭐가 있겠는가? 


잘 생각해 보게. 제가 믿는 것을 위해서 거리낌없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건 사람도 하등 다를 바가 없어.


심지어 왕권을 다지겠다고 살겁을 일으켜 큰어르신을 죽이고, 우리네 피붙이들을 모조리 노비로 떨어뜨린 지금의 주상도 마찬가지지. 


다만 인간의 법도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만이 다를 뿐. 아무리 서슬 퍼런 의금부라도 벌레에게 오라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일세. 


날 매도해도 상관없네. 그 날 이렇게 생지옥에 처넣어진 이래로 나는, 나는 결코 단 한 순간도 복수를 잊은 적이 없네. 맹세해도 좋아.


옳거니, 저주든 뭐든 기꺼이 써 주고말고. 그 죄로 축생도에 떨어져 벌레로 태어나, 끝내는 고독으로 굴러떨어지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야. 


자네는 어떠한가? 


...그래, 겁이 난다면 옆에서 그냥 잠자코 보고만 있게나. 이놈, 네 아무리 구중궁궐 속에 있다 해도 언젠가는 한 번의 기회가 온다. 오고야 말 것이야.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내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이 품 안의, 고독의 뚜껑을 활짝 열어젖혀 주마. 기다리고 있거라. 



조선조 태종 때의 저주 기록이 모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