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하고 있지만 말을 하고 있진 않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입은 움직일 수가 없다. 입술이 무겁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난 걷고 있는 중이었다. 걷고 있었다는 것만 알겠지 그것 말고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옷 주머니 속에 핸드폰도 없다. 내 옆에는 강물이 흐른다. 맑다. 여행 광고에 나오는 에메랄드 빛 바다같은 빛깔이다. 투명해서 얕은 곳까진 물 속이 훤히 보였다. 반면 강 반대편은 안개가 낀건지 영 흐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맑은 물이라면 가재나 송사리가 살까 하고 수면을 내려다봤다.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쩌면 사해처럼, 소금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있다. 아니면 강산성이거나 강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목이 마르진 않으니. 마냥 모험을 할 생각은 없다. 


사실 난 수영도 못한다. 친구들과 계곡에 놀러가 물장난치다가 유속이 빠른 곳으로 몸이 가버렸고, 그렇게 몇십 미터를 떠내려갔다. 개울가에 그물 치고 낚시하는 어른들이 없었으면 이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물에 들어갈 생각, 이유, 그리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정신을 놓고 계속 걷다보니 다리가 아파온다. 잠깐 쉴까 하고 혹시 앉을 자리가 있나 하고 주위를 보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바닥에 앉았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리를 두들긴다. 


왜 내가 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잘 생각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목적이 없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이 강 끝에 우리 집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을 왔다가 내가 도중에 길을 잃었고, 그들이 나를 걱정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확인해보아야겠다. 왜 내가 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지를.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걷는다. 이 생각들을 한데 모아 섞는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꼬인다. 매듭들이 마구잡이로 생겨난다. 그 꼬인 매듭을 풀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그러다가 마침내 매듭이 하나 남았다. 생전 처음 보는 매듭... 어부 매듭인가. 아니면 올가미 매듭일 수도 있다. 나를 옭가매는 올가미 매듭. 좌로 돌리고 우로 돌려서 살펴 보았지만 무슨 매듭인지 모르겠다. 그럴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고르디우스의 방법, 매듭을 칼로 잘라내는 것이다. 어떤 매듭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매듭을 칼로 잘라내는 순간 삐-익 하고 머릿속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순간 참을 수 없어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돌발성 난청, 그런건가. 어서 병원에 가야겠다. 이 강에서 벗어나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난다. 보폭을 늘려 더욱 성큼성큼 걷는다. 이 귓소리를 치료하려면 여길 벗어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의지할 사람도 나 뿐이다. 


귀에서 삐이익 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머리가 아파서 점점 걷기 힘들어진다. 머리를 감싸면서 걷는다. 그 순간 나를 괴롭히는 귓소리가 아닌 다른 굉음이 들린다. 이것도 내 머리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면 밖에서 나는 소리인가. 잠깐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한 바퀴를 돌다가 강 반대편에 시선이 고정된다.


하늘은 올라가고 땅은 내려가고 있다. 말 그대로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세상이 뻥 뚤리는, 즉 공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허는,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 공허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공허니까, 어쩌면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고, 어쩌면 죽음, 또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괜한 모험은 하지 않고 싶다. 


살기 위해 한참을 달렸건만, 엄습하는 공허와 강, 둘 다 끝나지 않는다. 이명은 너무 커졌고, 숨은 차고, 심장은 괴롭다. 더 이상 뛸 수도 달릴 수도 없다. 정신이 흐릿해진다. 이러면 안 된다면서 다시 정신을 붙잡으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그냥 끝났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 공허라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 괴물이 한 30m 이내까지 달라붙어 나의 숨을 옥죄어왔고 선택의 순간이 왔다.


공허 쪽으로 약간 다가갔다. 그리고 없어진 땅을 보았다. 아래에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서 있는 쪽도 꺼지기 시작하자 다시 강으로 뛰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을 건널 시도를 하면 살 수는, 아니,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공허 속으로 들어간다면, 세상 밖으로 떨어져버려 미아 보호소에도 갈 수 없는 우주 미아가 될 것이다. 강 건너다 죽는 게 호상으로 보인다.


오른쪽 발가락부터 담구어 본다. 아무 일도 없다. 오른발, 왼발 차례로 넣는다. 이정도는 괜찮다. 더 깊이 들어간다. 무릎, 허벅지... 내가 건너온 쪽을 본다. 공허가 거의 다가왔다. 다시 몸을 돌려 더 앞으로 간다. 배를 넘어 가슴 있는 데까지 물이 찾다. 갈까 말까 하고 고민하며 다시 뒤를 본다. 


이제 더 이상 돌아갈 땅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공허가 강을 침범하여 오지 않았다. 살았다, 나는 산 것이다. 삶과 죽음이 어느 쪽인지 모를 때 나는 결국 삶을 선택하였다. 강을 끝까지 건널 일만 남았다. 


다행히 물이 가슴 위까지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걸어서 강 건너편까지 갔다. 반대편에서 도착하니 안개가 걷혔고, 거기에는 마을이 있었다. 지도라도 있을까 하고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얼굴에 웃음이 스며든다.









삑 삑 소리가 아주 빠르게 들린다. 


"저, 저기 보이소... 민슥이, 우리 민슥이 입꼬리가... 입꼬리가 올라 갔쉽더."



"박민석 씨, 혹시 정신이 드시나요?"


삑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삐이이이이-


의사가 수화길 든다.


"여기 중환자실인데 3번 병상에 cpr 들고 빨리 와 주세요."








"제세동을 하였지만, 동공 반응과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0XX년 X월 X일 X시 X분, 박민석 환자 분 사망을 선고합니다."




"아이고 이 못난 자슥아. 이 애미보다 강을 먼저 건너 버리면 어쩌자는 기고..."





나름 열심히 썼는데, 생각보다 별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