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20XX년 12월 27일자로 실종 신고 처리된, 12세 남아 앨런 샌더스의 방에서 발견된 편지의 내용입니다. 앨런은 5년 동안 실종 상태로 있었으며 그 후 자동으로 사망 처리되었습니다.


***


엄마, 그리고 아빠. 이 편지를 본다면, 내가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뜻이겠지. 미안해.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글로 남기게 됐어.


부모님이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알아. 날 걱정할 것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지를 쓰는 이유는, 두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줬으면 해서야.


시간이 없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지. 내가 편지를 썼던 이유는 3년 전에 일어났던 일 때문이야. 엄마도 기억할 거야. 옆집의 아이가 실종되었던 사건. 


그걸 지역 뉴스로 함께 보면서, 나한테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애정 어린 충고와 함께 꼭 안아 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기 전에 엄마랑 마지막으로 포옹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터무니없는 소원이라는 건 잘 알아.


사실 그때 말 못 했던 게 있어. 그 애는 실종되었던 게 아니야. 그리고 그 애의 마지막에 내가 함께 있었어. 


멀리서 사슴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글을 쓰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야겠다.




3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때 나는 깨어 있었어. 그때 초등학교 친구가 산타가 없다고 해서 한바탕 싸웠거든. 


그 친구가 말하기를, 오늘 밤에 잠들지 말고 깨어서 기다리면 산타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했어. 물론 엄마랑 아빠가 분장한 가짜 수염을 붙이고 빼빼마른 산타 말고, 커다란 루돌프랑 선물 주머니가 달려 있는 큰 썰매가 있는 ‘진짜 산타’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친구랑 내기를 하나 했지. 내가 진짜 산타랑 만나서 그걸 증명할 만한 물건을 하나 가져오면, 그 친구가 애지중지하던 모형 자동차 장난감을 주기로. 


엄마도 알다시피, 나 그거 꼭 갖고 싶어 했잖아. ‘산타한테 보낼 선물 리스트’ 1위, 2위, 3위에 그것만 적어서 엄마한테 보여 줬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 정도의 선물이라면 밤을 꼬박 새서 계단참에서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지. 그래서 나는 그날 밤에 방에서 몰래 빠져나와서 계단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어. 


미리 옷방에서 커다란 담요를 하나 꺼내 와서 그걸 덮어쓰고, 1층의 부엌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끓여서 홀짝이면서 있으니까 나름 아늑하더라. 내가 빠져나왔을 때가 10시를 살짝 넘겼을 테니까, 3시간 정도를 그 층계참에서 보냈을 거야. 


엄마가 깨지 않게 조용히 캐럴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아빠가 보던 신문으로 종이접기도 하고, 그렇게 나름 재밌게 시간을 보냈지. 그러다가 시계가 1시를 알릴 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어. 


알잖아. 우리 나이대 애들은 비밀 기지에 환장하는 거. 그래서 내친김에 막대기들을 가져와서 텐트 분위기를 내자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지. 겸사겸사 자꾸 감기는 내 눈꺼풀도 좀 올리고 말이야. 계속 앉아 있으니까 잠이 쏟아졌거든.


그래서 나는 층계참에서 일어서서, 코코아를 깔끔하게 비운 머그잔을 싱크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담요를 몸에 둘둘 두른 채로 용감하게 1층으로 내려가서 적당한 막대기를 찾아보았지. 골프채나, 셀카봉이나, 이런 것들. 


근데 하필이면 손전등을 안 가지고 온 바람에, 온 집이 어두워서 막대기들을 찾을 수가 없었어. 덤으로 계속 책장 모퉁이나 벽에 부딪혀서 아프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엄마랑 아빠가 잠든 사이에, 들키지 않도록 아주 잠깐만 거실의 불을 켜기로 했지. 적당한 막대기를 찾을 동안만. 


불을 켜자 잠깐 동안은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안 보였어. 눈을 감고 기다리자 곧 거실의 물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지. 나는 벽난로 옆에 쓰러져 있는 골프채 꾸러미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골프채를 하나 챙겼어. 


이 정도면 내 비밀 텐트의 기둥 역할을 해 주기 충분했지. 나는 만족한 얼굴로 불을 다시 끄기 위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어. 


그리고 그때 그것을 보았지.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지. 평소에는 자정에도 가로등이 거리마다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말이야. 그날만큼은 거리가 어둠에 잠겨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어. 


나는 창문에 머리를 바싹 붙이고 저 너머 거리에 있는 그것을 바라보았지. 눈에 힘을 주고 보자, 그것이 커다란 덩치에 등이 약간 굽은 노인과 비슷한 것이라는 걸 알아냈어. 그건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등에 커다란 주머니를 쥔 채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지. 


나는 처음에는 그게 뭔지 짐작하지 못했어. 그냥 노숙자 중 하나가 배가 고파서 동냥하러 나온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서 나는 관심을 끄고 그냥 골프채를 챙겨서, 다시 계단참으로 올라가려고 발걸음을 돌렸어.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더라.


저게 산타일지도 몰라.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어스름한 불빛과 기묘한 형상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환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어. 나는 즉시 창문에 다시 붙어서 그것을 자세히 보았지. 


이번에는 그것도 고개를 돌려서 우리 집의 창문을,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더라. 나는 전율했어. 먼 거리에서나마 그것의 얼굴을 보자 내가 품고 있던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지. 저건 산타 할아버지라고, 네가 그 산타를 보고 있는 거라고 온몸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을 덜컥 열었어. 겨울밤의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할퀴고 지나가며 거실을 휘저었지. 시원한 공기를 폐로 들이마시면서, 나는 창문 밖으로 몸을 기울이고 손을 힘껏 흔들었어. 그것을 향해서.


“여기에요!” 내가 속삭이듯이 말했어. 혹여나 산타 할아버지가 놓칠세라 급박한 몸짓이었지.


물론 그것은 내 손짓을 놓치지 않았어. 그건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창문틀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어. 내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그의 다리를 비추며 긴 그림자를 늘어뜨렸지. 


나는 흘러넘치는 기쁨의 웃음을 막으려고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다가, 불현듯 깨달았지. 맙소사, 거실 등을 꺼야 하는데.


엄마도 알겠지만, 거실과 안방은 통로를 두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불빛이 보이면 내가 깨어 있다는 걸 들키는 거였어. 그래서 원래라면 골프채를 찾고 난 뒤에 바로 껐어야 하는데, 산타를 본 충격에 잠깐 동안 완전히 까먹어 버리고 만 거지. 


나는 황급히 창문에서 물러서서, 거실 반대편에 있는 스위치를 달칵 눌렀어. 순식간에 집이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어. 나는 어둠에 시야를 적응하려 한 손으로 눈꺼풀을 비볐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거실의 사물들을 조금씩 분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이 창문틀을 넘어서 우리 집의 거실로 들어왔어.


나는 경외심을 담아서 그것을 올려다보았지.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바로 앞에서 본 그 생명체는 정말 컸어. 


어둠 속에 잠겨서 자세한 생김새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키는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였고, 어깨에 맨 가죽 보따리는 내 침대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지. 온몸에는 두꺼운 털옷을 두르고 있었고. 


나는 입을 딱 벌리고 그것을 쳐다보았어. 그것은 나보다 두 배 정도 큰 두툼한 손을 들어서 창문을 조심스럽게 다시 닫았어. 끊임없이 울어대던 사나운 겨울 바람이 차단되고 나자, 거실 안에 침묵이 찾아들었지. 


“산타 할아버지?”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물었어. 내 두 눈은 기대감을 담아 반짝거렸지.


“그래, 맞단다.” 그것은 호쾌한 목소리로 대답했지. 중저음의 목소리가 약한 메아리를 남기며 거실 너머로 퍼졌어.


“우와, 우와, 미쳤다, 저, 잠깐만요, 혹시 거기에 제 선물도 있어요?” 나는 호흡곤란이 오려고 하는 걸 애써 막으며 물었어. 진짜 산타라니, 세상에!


“물론!” 그것은 키득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칭찬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어조였지만, 그 당시엔 그걸 깨닫지 못했어. 기쁨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산타는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어깨에 맨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어.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던 그 꾸러미는 의외로 부드러운 움직임과 함께 소리 없이 거실에 안착했어. 나는 헐레벌떡 그 꾸러미 앞으로 고개를 숙이고 달려갔지만, 그것은 한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지.


“꼬마야, 네 선물은 그쪽이 아니란다.” 내가 고개를 들자, 그것의 환한 미소가 보였어. 거실에 빛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그것의 모습은 어스름한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 하얀 치아들만은 똑똑히 보였지. 


그리고 그때의 나는 드디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것의 입이 양옆으로 찢어져서, 그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뾰족한 송곳니만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봤으니까.


내가 그 송곳니들에 대해 무언가 질문을 하기 전에, 그것이 먼저 선수를 쳤어.


“자, 시간이 되었단다. 내 손을 잡고 썰매로 가자꾸나.”


“어디로요?” 내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질문했어.


“어디기는, 산타의 오두막이지.” 그것은 마치 저녁 식사나 함께 하자는 듯한 가벼운 어투로 이야기했고, 내가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어.


나는 펄쩍 뛰어오르다가 찬장에 머리를 부딪혔어. 한 손으로 정수리를 부여잡은 상태로, 나는 극도로 흥분해서 말했어. 엄마나 아빠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걱정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 


물론 그것의 뾰족한 송곳니들에 대한 의문도 머리 너머로 사라졌고. 세상에, 산타가 직접 자기 공장에 데려다 준다잖아, 이빨이 뾰족하든 말든 내가 알 게 뭐야? 핀란드 사람들은 다 저렇게 생긴 치아를 갖고 있나 보지.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어. 내가 얼마나 산타를 만나고 싶었으며, 오늘 깨어 있었던 이유가 친구와의 내기로 인해 산타를 보기 위해서였고, 산타가 나를 직접 데려가 준다니 정말 영광이다 등등. 그것은 그저 허허 웃으며 가만히 내 얘기를 듣고 있다가, 한 부분에서 얼굴을 굳혔어. 그것이 말했지.


“잠깐, 뭐라고?”


“제 ‘산타한테 보낼 선물 리스트’ 1위가 모형 장난감 자동차였어요.” 나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했지. “물론 2, 3위도 똑같은 거였죠. 엄마는 여러 개를 써야 산타가 좋아한다고 하셨지만-”


“흠.” 그것이 자기의 수염을 쓰다듬더니, 주머니에서 네모난 무언가를 꺼냈어.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나자 나는 그제서야 그것이 수첩이라는 걸 알았지. 그것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서 꼼꼼히 읽더니, 이내 수첩을 탁 닫고 한숨을 쉬었어.


“이런, 꼬마야. 미안하구나. ‘산타의 오두막에 데려가 달라’는 소원은 네가 아니라 옆집 아이가 빈 거였어.”


나는 입을 벌리고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았어. 이번에도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 내 손에 들려 있던 골프채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어.


“아.” 내가 멍하니 말했어. “아, 음. 그렇군요.” 나는 찬장에 부딪힌 후유증으로 욱신거리는 정수리를 조심스럽게 문질렀지. 그것의 말이 맞았어. 내가 산타에게 빈 소원은 모형 장난감 자동차였지, 오두막에 데려다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그것은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비록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어. 푹신한 털의 감촉이 나를 위로해 부었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것의 옷자락을 잡았어. 그리고 말했지.


“부탁이 있어요.”


“널 오두막에 데려다 줄 순 없-” 그것은 딱 잘라 말했지만, 내가 끼어들어서 말했어.


“1년 뒤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제 집으로 와 주세요. 제가 산타 할아버지를 마중 나올게요. 그러면, 저를 그때 산타의 오두막에 데려다 주세요.”


“진심이니?” 그것은 놀란 듯 물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쁜 듯이 말했어. 그것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송곳니들이 희미한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것이 보였으니까.


“네.” 나는 당찬 목소리로 말했어. 그러자 그것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껄 웃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 주었어. 


“이건 약속의 반지란다.” 그것이 말했어. “우리 둘의 약속을 상징하는 물건이지. 그러니, 꼬마야, 이 반지에 대고 나는 1년 뒤에 여기로 돌아오겠다고 맹세하마. 너 역시 그때 나를 마중 나올 거라고 맹세하렴.”


나는 반지를 살펴보았어. 붉게 칠해진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고리가 작아서, 내 새끼손가락에 꼭 들어맞았지. 나는 왼손에 그 반지를 끼고 한 번 바라보았어. 두말할 필요 없이 멋졌지.


“1년 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를 마중 나올게요.”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즉답했어. 그것은 고개를 연신 끄덕히며 실실 웃고는, 몸을 뒤로 뺐어.


“자, 이만하면 이곳에서의 대화는 다 한 것 같구나.” 그것이 미소지었어.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서, 훌쩍 창문틀을 넘었지. 나는 그 뒤를 바싹 따랐고. 그것은 집 밖에서 나를 돌아보며 웃었어. 


“기다리고 있겠다, 꼬마야.”


“저도요.” 나 역시 웃으며 말했어.


그 말에 그것은 더더욱 크게 웃었어. 아예 몸을 뒤흔들면서, 배를 부여잡고 낄낄거렸지. 내가 살짝 불쾌해질 정도로 말이야. 


“꼬마야, 꼬마야.” 마침내 그것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지. “내 모습이 궁금하지 않니?”


“그야, 산타 할아버지 아니에요?” 나는 순진하게 답했어. 어둠 속이라고 한들, 그것의 붉은 털옷과 어깨의 망태기는 똑똑히 보였으니까.


그것은 더 말하지 않고, 다만 왼손을 들어 두 손가락을 튕겼어. 그 순간 반대편에 있던 거실의 스위치가 켜지며, 거리에 다시 환한 빛이 돌아왔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굳었어.


그것의 머리에는 길다랗고 굽은 두 뿔이 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굵은 털들이 가득 자라 있었어. 입은 칼로 째진 것처럼 양옆으로 진한 흉터가 있었고,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가득했지. 


내가 붉은 털옷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옷이 아니라 그것의 온몸에 자라난 검은 털들이었어. 단지 그 털들에 피가 가득 묻어서 붉게 보였을 뿐.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다가 주저앉았어. 그것은 나를 보며 씩 웃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어.


“기다리고 있겠다.” 그러고는 그것은 정원을 가로질러 네 발로 옆집을 향해 달려갔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들고 다시 일어섰어. 그러고는 벌벌 떨면서 창문으로 향했지.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가득한 상태로, 나는 창문 너머로 몸을 죽 빼고 옆집에서 일어날 일을 지켜보았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 곧 희미한 비명 소리가 어둠을 가르면서 울려 퍼졌으니까. 그 뒤로 2층의 불이 잠시 켜졌다가 꺼지고 난 다음, 창문 너머로 무언가가 뛰어내려서 옆집의 뒷마당으로 내려앉았어. 


그것이었지. 안에서 누군가가 몸부림치는 보자기를 어깨 너머로 걸친 채로, 그것은 네 발로 달려서 빠르게 거리를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그리고 끝이야, 엄마. 그 다음 날 내가 펑펑 울면서 옆집 아이가 사라졌다고 말했고, 그 뒤로는 엄마가 기억하는 그대로 일이 일어났어.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옆집으로 찾아갔고, 곧 전단지가 곳곳에 붙었지. 


옆집은 더 이상 떠들썩한 곳이 아니라 숨막힐 정도로 고요한 공간이 되어 버렸고. 몇 달 동안 학교에서 수상한 어른들이 접근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어. 실종 사건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반지는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에 쓰레기통에 버렸어. 혹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돌아올까 봐 몇 번이나 악몽을 꿨지만, 반지는 1년 동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그 사실이 약간의 위안이 되어 주었지. 


1년 후 크리스마스 이브 때, 그러니까 2년 전에, 나는 엄마에게 선물 리스트를 쓰지 않겠다고 악을 쓰며 버텼어. 그러고는 가족들이 파티를 하도록 놔둔 채 저녁 10시에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눈을 감고, 제발 빨리 잠에 들기를 빌면서 벌벌 떨었지. 


이럴 것 같아서 전날에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잠은 금방 들게 되더군. 꿈자리가 매우 사나웠다는 건 별개로 말이야.


하지만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것들이 아니야, 엄마. 그때 크리스마스 날 아침, 내가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내 방 창문 옆에 편지가 있었거든.


‘약속을 지키지 않았더구나’ 라는, 아주 짧은 편지였어. 그 옆에는 작은 반지가 하나 있었고. 나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면서 편지를 갈갈이 찢어 버렸어. 그런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반지 역시 창문 너머로 던져 버리려고 하는 차에, 그게 뭔지 알게 되었지. 그 반지는 내가 처음에 받았던 금속제의 반지가 아니었어. 인대와 핏줄, 그러니까 사람의 몸에서 뽑아내서 만든 반지였어. 그게 누구 몸에서 나온 건지는 뻔했어. 1년 전 납치된 옆집 아이.


그날 크리스마스에 나는 하루 종일 울었지. 엄마는 날 달래 주려 애썼지만,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나를 방에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어. 나는 그 반지를 품에 계속 안고 있다가, 핏줄이 부패해서 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간신히 그걸 버릴 수 있었어. 


그러고는 또다시 1년이 흘렀지. 이제 나는 말수가 없는, 존재감 없는 우울한 아이가 되기 시작했고, 엄마와도 자주 싸웠어. 엄마는 내가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변해 버린 걸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어차피 엄마에게 모든 일들을 털어놓아 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는 냉전에 돌입했고, 가족 나들이나 단체 여행은 이제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어. 그렇게 우울한 1년이 지나고,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어. 


이번에도 나는 이브에 10시에 잠에 들었어. 이제는 더 이상 가족들이 파티를 하지 않더라. 다만 싸늘한 목소리만이 1층을 맴돌고 있었어.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면서 잠에서 깨 보니, 편지 하나와 반지 하나가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어. 편지에는 똑같은 말이 적혀 있었고, 반지는... 눈알 하나를 통째로 실에 묶어서 만들어진 물건이었어.


그날 나는 마침내 완전히 돌아 버렸어. 1층으로 내려가서, 그 눈알 반지를 엄마에게 보여줬지. 엄마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으며 날 안아 주려다, 그걸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날 밀쳤지. 


한바탕 소동 끝에 우리 집에 또 한 번 경찰이 찾아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격렬한 취조가 시작되었지. 눈알의 출처는 역시나 옆집 아이의 DNA로 밝혀졌어. 곧 옆집의 부모님들이 머리끝까지 격노한 채로 우리 집에 들이닥쳤고, 지옥 같은 소송이 시작되었어. 


아빠는 직장도 그만둔 채로 소송에만 몰두해야 했고, 엄마는 하루 종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 우리가 옆집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물증은 없었지만, 법정의 모두가 나를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여기더라.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엄마는 마침내 폭발했지. 내게 제발 한 번이라도 진실을 말해 달라며 사정하다가, 그걸 말리는 아빠와도 엄청나게 싸웠어. 


서로 고성이 오가고, 아빠가 준비했던 결혼기념식 케이크가 주방 바닥으로 떨어져 뭉개졌지. 엄마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집을 나갔어.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지.


그리고 마지막 6개월이 지나서, 마침내 지금이야, 엄마. 아빠는 지금 옆집에서 걸려온 형사 소송과 함께 이혼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내가 사라지면 아빠가 더욱 상처받을 것 같아서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이대로 남아 있을수록, 엄마와 아빠 사이는 더더욱 나 때문에 멀어질 테니까.


이번 1년 동안은 엄마를 많이 생각했어. 내가 2년 동안 겁에 질려서 방 안에 틀어박히며,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에 대해서. 내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를 꼭 안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엄마는 내게 정이 다 떨어진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보고 싶더라.


이제 시계가 막 1시를 가리키고 있어, 엄마. 이번에는 난 깨어 있어. 저 너머로, 불길한 무언가가 우리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말이야. 그것이 씩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여.


갑자기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고 싶네. 그럴 시간은 없겠지만. 


이제 마지막 줄이야, 엄마. 부탁이 한 가지 있어. 내가 떠나고 나면, 아빠를 만나서 꼭 안아 줘. 마치 어릴 적의 내게 했던 것처럼. 그 푸근한 미소와 함께, 아빠를 한 번이라도 꼭 안아 줘. 내가 떠나고 나면 우리 가족은 둘밖에 안 남잖아.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 이만 펜을 놓아야겠지. 그러니, 엄마, 나를 위해 기도해 줘.


산타가 나를 데리러 오고 있으니까.




   -보고서 마침. 사족으로, 이후 앨런의 부모 주디 샌더스와 존 샌더스는 이혼 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