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쎄다 쎄."



용사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때를 놓칠 세라 신관은 힐을 후다닥 걸어주었다.


"이번 녀석은 좀 강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마왕군 간부씩이나 되니 강할 수 밖에 없겠지요."


신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용사는 놀라 반문했다.


"간부라고? 그럼 우리가 드디어..."

"예. 비록 간부 중 최약체지만요."

"드디어 간부급을 이길 정도가 되었다는 거지."

"크으..."


용사가 감격에 차서 부들부들 떨었다.

마왕까지는 앞으로도 한참 더 남았지만 그래도 성취감을 느낄 법했다.

간부급이라면 한마을을 궤멸시킬 정도의 전력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용사가 환희에 차서 동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마워 신관. 너의 회복술이 없었다면 이미 진즉에 우리는 죽었을 지도 몰라."

"별 말씀을요. 전부 용사님이 분투하신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악마조차 마음이 풀릴 상냥한 웃음으로 신관이 응답해주었다.

언제나 동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신관은 파티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궁수도 고마워. 항상 예리한 너의 눈은 마물의 약점만 골라 공격했지. 네가 없었더라면 전투가 훨씬 어려웠을 거야."

"그, 그냥 내 좋을  대로 쏜 거거든? 고맙네 어쩌네 할 필요 없어!"


말을 툴툴거리면서도 귀는 붉었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의 엘프는 그러나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이제는 함께한 세월이 오래라, 다들 엘프의 친절한 속내를 알고 있었다.


"도적도 고마워. 네 합류 이후로 우린 단 한번도 함정에 걸려 곤욕을 치른 적이 없어. 네 덕분이야."

"후후, 빈민가를 전전하던 가난뱅이를 도와줬으면 그 정돈 해줘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용사에게 입었던 호의를 회상하며 도적은 씨익 웃어보였다.

도적이란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은근히 남들을 잘 챙겨주는 아이러니한 남자, 그것이 그였다.

도적과 특유의 주먹인사를 짧게 나눈 용사는 이내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법사. 지금까지 네 도움도 많이 받아 왔... 어라?"


'받아 왔지.' 라며 감사를 표하려던 용사가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런 말 하면 실례지만 말이야."

"응? 뭔데. 말해 봐."

"마법사가 무언가를 한 적이 있었나?"


그 한마디에 파티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원 마법을 했던가?"

"아니네. 그런 걸 본 적은 없네."

"그, 그럼 공격 마법을 썼나보죠."

"그것도 본 적이 없는데."

"회복마법은..."

"그건 제가 담당했잖아요."

"...?"


얼라리?

결단코 그들이 서로를 헐뜯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들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파티에서 한 역할이란 것은 실제로 그들이 떠올릴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였기 때문이었다.


"에헤이 이 친구들 섭섭하게 구네."


보다못한 마법사가 끼어들며 말했다.


"내가 한 게 없다니. 나 아니었으면 느이들 먼 옛적에 다 죽었어!"

"그, 그렇죠? 죄송합니다. 저희가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내가 쓴 마법이라니까 헷갈려 하는 거 같은데, 너희 마법이 뭔지 아니?"

"무슨 말이야?"

"아 답답하구만. 마법이란 것은, 삶의 답답하고 힘든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있는 거야."

"예를 들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였을까.
마법사가 과장된 몸짓으로 설명을 거들었다.


"램프 기름이 다 떨어졌네? 불 마법!
씻고 싶은데 물이 없네? 물 마법!
날씨가 너무 덥네? 얼음 마법!"

"뭔 얘긴지 알 것 같네. 생활의 불편한 부분 같은 거 말하는 거지?"

"바로 그거야!"

"어라? 근데 이상한 걸. 입때껏 모닥불은 용사가 부싯돌 주워서 피웠는데."

"그야 난 불마법사가 아니니까."

"그럼 뭘 했단 거야?"


마법사가 손을 치켜들었다.

손가락 두 개를 편 상태로.


"선택."

"?"


용사 파티 전원이 어리둥절해져서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선택? 무슨 선택?

B와 D사이의 C?

아니, 그전에
선택을 어떻게 마법으로 돕는다는 거지?

망상이 폭주하는 동료들에게, 마법사는 천천히 그 진실을 고했다.


"어떠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마법이 있으면 너흰 속전속결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

"쓰는 걸 못 봤는데?"

"그야 걸린 사람도 눈치 못 채는 종류의 마법이니까."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럼! 이번에 마을을 지킬지 간부를 잡을지 중에 결정할 때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 되는 사안이었잖아.
중요한 사안 처리할 땐 시간이 생명이라고."

"그런가?"

"그것도 짧게 걸리지는 않았잖나."

"그땐 안 썼으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때에 썼지 당연히."

"그걸 어느 중요한 때에 썼는데?"

"그야...



















우리 저녁 메뉴 고를 때지."

"나가."


마법사는 그렇게 파티에서 추방 당했다.

일주일 후 용사파티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상태로 구조되었단 것은 또다른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