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만들어진 책은 구입처에서 교환해드립니다.


이 문장을 본 건 대형서점에서였다. 독자거나 독자였던 이들이 지나치는, 신간부스의 한 책이 위치한 곳에서. 새벽에 일어나 타자를 두드리듯 책을 집어드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내가 이 책의 작가여서 내용은 볼 필요가 없었다. 대신 출판사의 이름을 손으로 쓸고 맨 뒷장을 펼쳤다. 1판 1쇄. 지은이 나. 그리고 신춘문예를 응모했던 출판사. 이 장의 최하단에는 이 문장이 존재했었다.


내가 쓴, 몇 달이나 퇴고를 거쳐 겨우 제출한 단편을 보려고 서점에 온 것은 아니었다. 수상을 받고나서 어쩐지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기분전환용으로 왔었다. 내가 쓴 글은 저열하지. 알지도 못하는 퀴어랑 여성서사로 상을 타냈으니까. 응모한 단편은 알바를 전전하며 내 생각을 우려낸 것이 아닌, 신춘문예를 철저히 분석해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글이었다. 가식으로 가득찬 글자 속에는 내 의지가 들어있지않았다. 나는 문단을 지배하는 여성주의가 싫으며, 알맹이는 없이 서정적인 감정을 배출하기만하면 아는 소설들이 혐오스러웠지만 결국은 그들과 같게 된 운명이었다.


날개가 꺾여버렸구나.

나는 책을 덮고 피식 덮었다. 신춘문예 당선집의 일부는 폐기물이었다. 아니, 그 글이 포함된 사실만으로 전체가 불쏘시개행이었다. 문득 이상의 날개가 떠오른다. 박제가 되어버린 새를 아시오? 박제. 나는 빼도박도 못 할 여성서사작가로 기록될 것이다. 새야, 다시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 한때 무진기행과 토제같은 작품을 쓸 거라 다짐했던 글쟁이는 죽어버렸다. 교수에게 칭찬받았던 글솜씨로 모멸적인 글을 썼으며, 마디가 다섯개로 갈라진 말단으로 역한 텍스트를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 책을 노려보고 뒤돌아선다. 눈에 잘띄는 입구 근처에 위치했으니 좋든 싫든 저 장작들은 하나라도 팔릴 것이다. 만약 책 자체가 잘못 만들어졌다면? 파본이나 문법오류가 아닌, 내용자체가 허위라면? 그러면 출판사에 가서 이딴 건 작가도 아니라고 욕해야되나? 수상을 받고 문창과 동기들에게 연락이 왔다. 내게 전화를 해준 이들은 다들 입을 모아 똑같이 말했다. 글이 많이 달라졌다고. 철저히 남성중심의 날카로운 글에서, 성전환이라도 한 듯 냉철함이 사라져버렸다고. 화자를 여성으로 설정한 것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더이상 작가가 되지말자.

어린 시절부터 글을 써오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소나무와 갈매기의 날개는 꺾여버렸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