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싫었다.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주제긴 하다마는, 나는 되레 계절의 변화를 쉽게 알아챘다. 만국공통으로 번번히 틀리는 기상예보 보다는 나은 정도였으니 할 말은 다했다.

 어딘가에 오래 머무르면 때때로 많은 것들을 알게 될 때가 있었다. 집도 그랬고, 딱히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마찬가지가 아닌 적이 없었다.

 적어도 습기와 건조함과 더위와 추위는 끝내주게 알았다.

 약간이라고도 하고 적당하다고도 하고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정도를 나는 좋아했다.


 적당의 기준은 넘어선 때,

 열기가 퍼뜩 고개를 드는 계절.

 역시나 여름은 싫었다.


 죽을 때가 다 되서도 그런 여유는 있었다.


-


 여름이 이틀하고도 한나절이 남았을 무렵.

 당연히 그보다는 적겠지만 내게 남은 여름과 시간은 그정도였다.


 나는 툭 트인 발코니에 몸을 기댔다.

 이대로 떨어져서 '사형' 집행 전에 죽여버리는 식으로 규칙을 깨는 것도 좋겠지만, '사형' 의 의의는, 단순히 처단에 있었다.


 먼 곳에서 무언가가 어슴푸레 들려왔고, 나는 발을 까딱까딱거렸다.

 무엇인지는 습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때 쯤에 들려올 것은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소설의 문장을 흉내내서 묘사해 본다면, 터져나오는 비명과 비탄과 절망.

 '사형' 대상자의 것인 동시에 그 가족의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가 아닌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자아비판을 하기 싫은 탓에 말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보자면 나는 '사형' 대상자가 맞았고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 데!"


 나는 턱을 괸 채 손에 쥔 편지 속지를 흔들거렸다.

 두 층인지 한 층인지 어찌 됐든 아래층에 살았던 직장인.

 그도 편지를 받았다.


 정오로부터 2시간이 지난 오후의 두 시.

 편지는 정오에 왔다.


-


 세금 청구서 등을 제외하고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가 '사형' 집행 안내서가 될 줄을 나는 몰랐다.

 편지가 올만한 구석도 없고 이벤트에 참여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하다마는, 그래도 일생에 죽기 전까지 편지 한 번 쯤은 받아볼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대주 광역시 정오동 범인아파트 203동 804호 주거자 이하린. 귀하는 '사형' 대상자이며 집행 까지 남은 시간은 이 편지가 발행된 지 60시간입니다. 허위 정보 등 기타로 인하여 모쪼록 불편함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형' 집행 부서. 발행일은 우주력 A.F. 1034년 행성 111호, 그러니까 지구 7월 1일 12시 00분 입니다."


 나는 편지를 다시 읽었다.

 받는 사람, 내용, 보내는 사람.

 편지의 구색은 갖출 대로 갖춘 편지였다.


 쇄애액!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향은 위쪽.

 짐작되는 것이 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떨어지는 옷과 그 옷에 쌓인 사람의 형체.

 바람이 일면서 긴 머리카락이 내 시야를 가렸다.

 옷의 색이 흐릿하게 드문드문 보였다.

 사람의 형체가 사라진 것은 몇 초 뒤의 일이었다.

 떨어지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퍼어억!

 떨어진 물체가 뭉개지는 소리를 토해냈다.


 한 달의 처음을 여는 날의 익숙한 정경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멸망의 날' 이래로.


 오늘은 그냥 자고 싶었다.


-


 '멸망의 날', '멸망', '사형'.

 사전에 정리되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면도 있는 동시에 닮은 면도 있는 고유명사였다.

 나는 좀비가 나오는 책을 읽다가 손에 들었다. 별 볼일이야 당연히 없는 인생이 시간이 48시간보다 적게 남은 것 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잘 섞여 들어간 적도 없으니 대충 넘겼다.

 정말로 소설 속 내용 같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현실이었지만.


 아포칼립스 물은 원래 시원한 고어의 맛이 있는 장르였다.

 물론 복잡한 인간관계의 갈등도 나오지만 재미를 반감하지는 않았다.

 아포칼립스 물의 최악의 단점이 뭐냐면 최고로 재미있지만 그게 내 일이 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아포칼립스 물의 등장인물들은 가끔씩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었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물 혹은 피에 젖은 곤봉이 휘둘러졌다.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았을 무렵.

 흐릿한 형체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포칼립스 물의 요소 중 하나. 인간관계의 갈등이었다.

 매달 '사형' 집행이 일어나는 도시는 무기력함에 찌들어 있지 않았다.

 폭력과 야만에 찌들어 무기력함에 취할 시간은 없었으니.

 '사형' 대상자는 기준이 없었다.

 순전한 무작위.

 대상은 길거리의 노숙자도 될 수 있었고 도시에 솟은 기업의 회장도 될 수 있었다.

 소설의 뻔한 문장과 닮았으니 한 문장 더 붙여본다면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상자였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발악하는 습관이 있었다.


 '약탈자'.

 이유는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부르는 '약탈자' 집단이 있었다.

 아니다. 있었다 보다는 있다가 맞았다.

 내 눈 앞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이니까.

 아마도 '사형' 대상자와 아닌 자가 섞여 있을 집단.

 사람이 죽으면 이름보다는 재산이 남는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는 데 호랑이 가죽은 재산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속담에 사람이 죽으면 재산이 남는다는 말을 써 놓지 않은 까닭은 당당하게 말하기는 뻘쭘한 말이었던 탓이 한 몫을 할 터였다.

 사람이 죽으면 남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재산을 가지는 자들이다.

 상속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상속자에게서 재산을 고전적이거나 참신하게 가져가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에는 기업의 사장이 죽은 적이 있었다.

 상속자가 없어서 있지도 않은 고인의 가족들은 피를 보지 않았다.

 볼 피도 없었지만 대신에 피는 다른 사람들이 봤다.

 돈에 홀려서 재산을 가져가려는 사람들.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할 돈이 없어서 돈을 가져가려는 사람들과 최대한 돈을 모아보려는 사람들의 판타지한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물론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은 내용은 이것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환상이나 환장이나 같으면 같았지 다르지는 않았다.

 모국어 단어로 보자면 받침 하나 차이였으니까.

 한국어 외의 것들은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은 그 때 써먹는 법이었다.


 나는 책을 읽었다.

 역시나 좀비들이 나오는 도시보다는 평안했다.


-


 바닥에 뿌려진 피 냄새가 벽을 타고 번졌다.

 희미하게 나는 피 냄새는 이제 익숙해졌다.

 다른 도시의 주민보다는 익숙할 수도 있었고 어리숙 할 수도 있었지만 거부감은 확실히 옅어졌다.

 나는 부채를 들고 부채질을 했다.

 여름의 오전, 핏자국과 부는 후덥지근한 바람.

 홍보물로 받은 부채래도 쓸만했다.

 

 오성전자 본점이 있는 도시에서는 TS 빔이 날뛴다고 했다.

 북유럽과 지리적 서유럽의 고대에 번성했던 소재가 수 천년이 지난 현재에 다시 번성했다.

 북유럽의 전승과 같이 임신하고 출산까지 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았지만 그리스와 같이 동성이었던 성별과 잔 사람은 있다는 소문은 있었다.

 '멸망의 날' 은 여섯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출산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칠삭둥이는 들어봤어도 육삭둥이는 들어본 적이 없지 않던가.

 아무래도 TS빔만이 '멸망' 의 산물이 아니라 상식개변도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에서는 먼 도시.

 그곳에서는 상식개변의 형태로 '멸망' 이 왔다고 했다.

 남자 마법소녀가 당당한 직업군인 것은 물론이고 동물을 그리도 사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보통 사랑하는 게 아니라서 물고 빨고 대환장이 났다고 했다.

 개판도 벌어졌다는 데 문장 그대로 개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개들을 풀어 놓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포자가 멀리 퍼진 곳도 있었다.

 성경 구절을 사용해보자면 곰팡이의 자식들이 판을 쳤다. 인용한 것은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문구였고 앞 뒤 다 잘라 먹어도 성경 내용은 맞았다.

 감염자는 다름 감염자들과 모든 감각이 연결된다고 들었다.

 그로테스크하기로는 정점을 찍는 것 같았다.


 좀비.

 왜 나오지 않나 싶은 '멸망' 도 있었다.

 가장 늦게 알려진 이유는 탈출하기가 끔찍할 정도로 어려웠던 탓이었다.

 로또 1등 맞는 것 보다도 힘든 확률이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명도 간신히 탈출하는 확률이었다.


 '멸망의 날' 로부터 여섯 달이 지난 때.

 '멸망' 이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상식개변 정도는 기본으로 '멸망' 에 포함되어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장도리와 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돈은 가치가 떨어졌대도 여전히 필요했다.


-


 남은 시간이 36시간보다 적게 남았을 때.

 나는 오랜만에 밖에 나와있었다.

 죽기 전에 한 번쯤 집 밖에 나오는 것은 '멸망의 날' 전에는 바람직하다 못해 장려될 일이었고 '멸망의 날' 이후로는 멍청한 일의 최상층에 안착되어 있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쉬운 방법들 중 하나에 속하는 일이었다.

 '멸망' 이 이렇게나 무섭다.

 모두가 아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은 그렇게 서술을 해서 그러면 무슨 생각이 드는 지가 궁금했다.

 별 생각은 안 들었다.

 쓸 데는 원래 없었던 궁금증 목록이 하나 지워졌다.


 장도리를 가볍게 돌리면서 나는 장바구니를 들었다.

 식료품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

 간만에 보는 음식은 흥얼거리기에 충분했다.

 돈은 줄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죽을 때가 다 됬는 데 신경 쓸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사용한 것은 돈 밖에 없었다.

 마트에서는 무기를 휘두르다가는 되레 몸이 휘둘러질 수 있었다.

 언제나 강인한 정육점 주인이 지키는 마트에서는 별의 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지금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가 곰도 때려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사실에 기반한다.

 두 달의 전. 허스키 혼혈 개 세마리가 동시에 달려든 적이 있었는 데 그는 맨손으로 쥐어 팬 개들을 차분히 잘근잘근 밟았다.

 늑대와 가까운 개들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그 녀석들은 한참을 굶어서 눈을 희번득하게 뜨면서 달려들었다. 개도 하나의 맹수라는 것을 실감한 것은 그때였다.

 몇 분 전에 나는 그의 옆에서 마트를 지키는 개들에게 개 껌을 하나 씩 물려줬다.

 교화된 사람 보다 나은 새 개가 돼서 정육점 주인을 충실히 따르는 중이었다.

 사람 피처럼 보이지만 돼지 피 묻은 중식도도 가끔씩 들고 다니는 그의 앞에서 난동을 피울 간 큰 사람도 없겠지마는.


 도시에서 이용 가능한 매장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장식품이 될 수 있었으니까.

 요즘은 피 묻은 두개골을 매달아 놓는 경우가 잦아졌다.

 일종의 트렌드 일지도 몰랐다.

 저번에는 말라 비틀어진 심장이 유행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세 개에 그쳤지만.


 인테리어를 심미안 따위 고려하지 않은 채로 해도 문제는 없었다.

 정확히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영향이 닫지 않게 된 것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하나 둘 씩 예측 불가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둘째 치고 군대 등이 들어오면 확정적으로 '사형' 집행 대상자가 되는 일이 잦았다.

 '멸망' 이후로는 모든 곳이 무법지대였다.


 그러나 돈은 제 몫을 했다.

 일반적인 무법지대와 다른 것은 비교적으로 눈 앞에서 피가 튀는 일이 적은 탓이 한 몫을 차지했다.

 교환할 물건들을 들고 다니는 것 만큼이나 멍청한 짓은 없었다.

 넓은 시야는 물론이고 행동범위에 공격력 감소까지 감당해야 하는 짓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규칙을 따르기 시작했다.


 얇디 얇은 섬유질 조각.

 종이 덩어리는 하나의 값어치를 충분히 해냈다.

 화폐가 아직도 유효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아포칼립스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지도 몰랐다.


 오늘 밤에는 옥상에 올라가고 싶었다.


-


 오후의 12시 정각.

 같은 말이라지만 P.M. 12시라고도 하는 시간.

 내게는 정확히 24시간이 남은 때였다.

 초 단위 차도 감안했냐고 물으면 답은 못하지만.


 여름의 중순.

 태양이 내린 밤이었다.

 하루가 지나면 볼 일도 없는.

 역시나 여름은 싫었다.

 두서 없는 말이래도 여름이 싫었다.

 그런데도 옥상 까지 올라와서 여름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로맨스 였는 지 호러 였는 지 모를 소설에서 나왔던 장면이라서 한 번 쯤 해보고도 싶었던 탓이다.

 이렇게 구석에 박아둔 버킷리스트의 항목 하나가 지워졌다.

 항목을 하루에 두 개나 지우다니, 죽을 때가 되면 이런 것도 가능해졌다.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은하수가 하늘 가운데를 지나고 백조가 그 위를 날았다.

 별자리가 무엇이 더 있는 지 나는 알았다.

 이 하늘은 여름만의 것이었다.

 내가 죽는 여름.


 더운 여름의 밤.

 열대야는 '멸망' 이 오고도 꾸준히 찾아왔다.

 그냥 그런 날이었다.

 내일 밤 눈을 감으면 그 다음 날에 눈을 뜰 수 없는 날.

 인생의 마지막 날은 이미 시작됐다.


 24시간 보다는 적게 남았을 무렵.

 남은 것은 내 여름과 시간.


 나는 옥상에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눈을 들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더 눈을 뜬다면 그 때는 20시간도 안 남은 시간을 색다르게 살아볼거다.

 어쩌면 여름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


 눈을 뜰 수 있을 지는 모르는 밤.

 확정된 죽음 까지는 24시간이 남았다.

 여름의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