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을 통해 뇌 조작이 가능해지고, 그것으로 인해 글을 읽는 속도가 매우 향상됐다. 과거와 비교하자면 거의 '신의 속도'라 불리울만하다.


우리 독서 모임은, 소설, 수필, 희곡 시 중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서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토론을 한다. 그런데 향상된 속도로 책을 읽으니 이제 읽을거리가 거의 떨어져간다. 글을 쓰는 사람 집에 가정 방문을 해서 글 빨리 쓰라고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하다.


그러다가 나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우리, 작품 하나를 만드는 건 어떨까?"


민석이가 대답했다.

"내가 글을 써 봤는데, 쉽지가 않더라. 글을 많이 읽었고,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많이 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을 뇌 밖으로 꺼내서 손 끝으로 보내어 글을 적는 것을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어."


보현이가 말을 이었다.

"맞아맞아. 내가 보기에도 간단한 글 정도는 쉽게 지을 지 몰라도, 꽤 길고 좋은 소설 한 편을 지을려면, 어우, 상상만 해도 힘들어."


난 가소롭단 표정을 지었다.

"누가 직접 쓴다고 했더냐."


"그럼 인공지능을 쓰잔 거니?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했다지만 아직 인간을 따라가려면 멀었어. 속도는 빨라도 글의 완성력과 깊이가 사람보다 딸리고, 결정적으로 글에서 사람다운 맛이 느껴지지 않거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내가 생각한 건 그게 아니야."


둘을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눈썹과 어께를 으쓱거렸다. 조금 있다 말을 다시 시작했다.

"이 세상 글들의 좋은 문장, 표현 등을 모두 모아서 엄청난 글 하나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보현이가 못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모두 모으면 좋은 글이 만들어 지겠지. 근데,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


"인터넷에 쳐 보면 다 나와. 그리고 프로그래밍 관련해서는 아는 형들이 몇 명 있어. 내 얘길 들으면 재밌어 할 거고, 그래도 안 도와준다고 하면 돈이라도 주지 뭐."


민석이는 나를 미심쩍단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러면서 그 많은 글들을 모으는 것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나는 지금이 무슨 2020년대냐면서 따졌다. 그리고 보현이가 질문을 했다. 잠깐 고민 후에 대답을 하자 민석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러쿵저러쿵 질답과 논쟁이 오가고 대충 계획을 세웠다.


*


"이쪽이 프로그래밍을 맡을 형님들이야. 너네들도 인사 해."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보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나는 형들에게 앞으로 수고하라고 했다. 그리고  커피를 대접하려고 포트에 물을 받으러 갔다. 커피를 끓여 인원 수만큼 쟁반에 얹고 돌아오니 장비는 다 설치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떤 글의 어떤 부분을 담을 것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이런 것들을 차용했다. 먼저 순문학의 문학성과 시의 운율, 비유 등을 활용하여 문학적 아름다움을 충족했다. 그 다음엔 장르문학의 오락성과 서사성을 통해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글에 재미를 불어넣었고, 극의 특성을 이용하여 더욱더 실감나는 느낌과 몰입도를 선사했다. 그 외에도 기사의 현장감을 넣고, 야한 이야기처럼 흥분되는 포인트를 넣어 위 아래 둘 다 즐길 수도 있게 하였다. 


세상이란 퍼즐을 이루는 이야기란 조각들을 합쳐 세상을 다시 완성했으니, 이 이야기는 세상의 진리를 담았다고 할 수 있고 그것 자체로도 신을 향한 도전이었다.


*


그렇게 한 달을 작업하고, 소설이 완성되었다. 프로젝트 주체자로서, 나는 철야로 작업한 한 형에게 제일 처음으로(우리 모두 소설이 완성되기 전까지 안에 내용을 보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소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책상 모서리에 놓여 있는 소설 원고를 형에게 줬다.


"여기 소설을 준비했어요. 조심히 받으세요."


형이 글을 받았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긴장되었던 걸까?


떨리는 마음을 붇잡고 형은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시 얼어붙었다.


"형, 책에 뭐가 있어?"




"신."


형이 그런 반응을 하자, 민석이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종이 뭉치를 낚아챘다. 내용을 펼치더니 똑같이 얼이 나갔다.


민석이까지 그러니, 나도 원고를 너무 보고 싶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다들 왜 그러냐니까?"


이번엔 내가 민석이 손에 있던 원고를 뺏었다. 그 속에 글을 읽고 나도 선 채로 굳어버렸다. 왜냐하면...













신은 소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말 한 마디 하니 원고 속 내용이 지워졌다.


신은 신에 대한 도전을 막기 위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넘게 고민하다가 고작 이거 하나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