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무지개색으로 녹아내린 실크가 내 눈을 덮은 채로 흘러내렸다. 파스텔로 칠한 듯한 분홍색 배경을 나는 손으로 뜯어내어 구멍을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은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밝게 빛나고 있었고 빛과 어둠이 차지하는 자리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나는 계속 떨어지다가 이렇게 오래, 빠르게 떨어지는데도 바닥에 도달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이윽고 나는 내가 둥실거리면서 구멍의 중간에 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다리가 균형을 잡으려고 버둥거렸지만 어디에도 떨어질 리는 없다는 듯이 몸은 안정된 자세를 유지했다. 그때 강한 빛이 내 눈꺼풀을 찔렀고 나는 천천히 꿈의 여운을 즐기면서 눈을 떴다. 나른한 오후의 카페였다. 에어컨이 저 구석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창문 바로 옆이었기에 심호흡을 하듯이 천천히 내리쬐는 열기가 내 몸을 데워주었다. 


 나는 민석이라는 초등학교 동창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나와 꼭 붙어다니던 사이였지만 학교가 갈리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특별한 계기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우리는 중학교 이후로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웃에 사는 서글서글한 입가의 주름이 잘 어울리는 여자의 남편이 그였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놀랐다. 나는 여자를 통해서 그와 약속을 잡았다. 십 년을 넘게 만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나는 카페 안을 눈동자를 굴리면서 둘러보았다. 두 자리 너머에 있는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피고 우아한 자세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그녀가 아이가 있는 무역회사의 직원이리라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잘 보니 그렇다기에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앳됐다. 내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듯이 그녀가 앉은 테이블에 회갈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시계가 인상적인 체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와서 그녀의 곁에 둘러 앉았다. 그녀는 과제를 준비하는 대학생이었다.


 그때 내 전화에서 수신음이 울렸다. 민석의 문자였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사과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답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햇살이 내 처진 피부 위로 부서지는 게 느껴졌다. 한여름의 열기는 역설적으로 이 안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밖으로 나가면 이 열기는 곧 부패할 것이고 나는 아직은 별로 썩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저 살짝 치켜뜬 눈꺼풀 사이로 아지랑이가 아스팔트를 녹이는 모습을 보았다.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철쭉이 가끔 흔들거리면서 아스팔트를 가려 주었다. 천천히 살랑거리는 철쭉을 내 눈동자가 따라갔다. 나른한 오후였다. 나는 이미 꿈을 꾸고 있었다.

 

 

민석이 온 것은 정각이 다 돼서였다. 카페 안은 기분 좋은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고 있었지만 그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후드티를 잡고 흔들어 막 경기를 마친 말처럼 열기를 식혀댔다. 내가 손을 들어서 자리를 표시하자 민석이 날 가만히 보더니 그제야 알아챘다는 듯 녹색 캡모자를 다시 쓰면서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라고 그가 말했고 나는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말할 뻔했다가 겨우 “오랜만입니다.” 라고 말했다. 약속한 듯이 우리는 둘 다 존댓말로 말했다.

 나는 민석을 기다리면서 만나서 얘기할 몇 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내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수많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나는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서 민석이 빠르고 경쾌하게 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민석의 말들에는 묘한 리듬이 있었고 이곳의 분위기와 그 리듬은 어딘가 어긋나면서도 잘 맞아떨어졌다. 십여분에 걸친 잡담 섞인 안부 인사가 끝나자 그는 그제야 자기 근황을 소개했다. 그는 이 근처의 체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잠깐, 체대라구요?” 

 나는 턱을 괸 손을 떼고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아까 본 대학생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실례지만 우리가 지금 사람을 착각한 모양인데요.”

내가 말했다. 자기를 민석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창 쪽을 바라봤다. 햇빛이 그를 환하게 비춰준 탓에 그의 앳된 얼굴이 잘 보였다.

“제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제 초등학교 동창인 이재범 아닌가요?”

“제 이름은 이재범이 맞지만 저흰 나이가 다릅니다. 전 지금 40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제야 민석은 내 나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민석은 내 처진 볼과 눈가의 주름, 듬성듬성 난 수염 한 가닥까지도 찬찬히 뜯어보듯이 내 얼굴을 처다봤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의 얼굴과 똑 닯았는걸요.”

민석은 검지와 중지로 집게를 만들어 입에 끼고 다시 창 쪽을 바라봤다. 순간 햇빛이 그의 눈으로 튀어 그는 눈을 찡그렸다.

“역시 제가 아는 이재범이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닮을 리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나와 민석이 나왔던 초등학교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내가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떨떠름해하자 그는 급기야 민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정말이군요. 하지만 어떻게 된 거죠?”

“글쎄요. 가능성이라면 여럿 있겠지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왜죠?”

이번엔 그가 턱을 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문득 그의 미소가 비릿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이 즐겁거든요. 이런 특별한 사건이 제 인생에서 또 언제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금을 즐기고 싶어지네요.”

그는 자기 말을 몸소 보여주듯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폈다. 미간에 좁고 깊은 주름이 잡히면서 눈이 가늘어졌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책상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던 대화의 리듬과 같은 빠르기였다. 왠지 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서른아홉을 먹었죠.”

“지금 삶에 만족하세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닙니다. 요새 저는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쩌면 모든 곳에서 말이에요. 저는 제 능력을 잘 알거든요. 실패할 걸 알면서도 항상 부딪쳐야만 합니다.”

“저랑은 다르군요.”

“당신은 지금 삶에 만족하나요?”

“만족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에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 지금까지의 대화의 리듬이 깨지는 감각에 나는 잠깐 당황하다가 솔직하게 부럽다고 말했다. 

 잠시 정적이 유지되었다. 갑자기 카페 안에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은 듯이 낡게 보였다. 빛이 들지 않는 구석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있을 것 같았고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도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등학교 때 추억이 있나요?”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 추억을 공유한 사이이지 않습니까. 아마 당신과 비슷한 양의 추억이 있을 겁니다.”

내가 일부러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그도 입가에서 웃음을 흘렸다. 작은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녹아내렸다.

“그랬죠. 참. 그걸 잊고 있었네요.”

그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다가 말했다.

“그럼 지금은 뭘 하시나요?”

“저는.. 지금은..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요.”

갑작스럽게 민감한 곳을 찌르는 그의 질문에 어버버대다가 나름대로 마음을 굳히고 한 고백이었건만, 그는 짧은 한 마디를 끝으로 다시 입을 닫았다. 내 고백에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왠지 변명이라도 해야 할 분위기가 됐지만 괜히 말을 떠벌댔다가는 지금의 정적이 어색해질까봐 나도 입을 닫았다. 

 

 

 우리는 희미하게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나는 쿠션에 그저 앉아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정적이었고 아마 우리 둘 다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민석의 얼굴을 처다봤다. 캡 모자를 쓰고 이제 땀이 다 마른 그는 왼손으로 계속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더운가 싶어서 내가 자리를 옯길까 물어봤지만 그는 괜찮다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덥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다시 한번 그렇게 덥지 않다고 말했다. 왜 덥지도 않는데 손부채질을 한 건지 잠깐 생각하면서 나는 카페 안을 쓱 훝어봤다. 아까 본 대학생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체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엎어놓은 노트북을 두고 가길래 여자가 급하게 노트북을 들고 뒤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제 지갑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로 따라가버렸고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지갑을 가져다주러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상황이 꽤 우습다고 생각해서 소리없이 웃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맞은편에 앉은 민석의 눈치를 봤는데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편안하게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그가 한 손부채질이 일종의 주술 내지 습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부터 되찾은 리듬이 계속해서 똑딱거리고 있었고 그와 나는 지금의 취향이 우리가 기억하는 어렸을 적의 서로의 취향과 같은지를 확인했다. 나는 사실 그의 취향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는 내 취향을 거의 다 알고 있어서 조금 머쓱해졌다. 무안한 마음에 내가 기억하는 그의 취향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개를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좋아한다고 답했다.

“개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의아해서 내가 묻자 그는 조금 길고, 또 이상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괜찮다는 나의 대답을 확인한 뒤 그가 질문을 해왔다. 초등학교 때에 정문 앞에 있었던 큰 개를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아십니까? 그 한쪽 다리를 절던 황토색 개 말입니다. 하교길 후문에 늘 그 개가 있어서 저는 늘 집에서 먼 정문 쪽으로 나갔었거든요.”

어렴풋이 그 개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서 굴렀는지 털은 늘 축축하게 늘어뜨리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서 만질라 치면 항상 배를 뒤집어까면서 몸을 부비던 순한 개였다.

“저는 그 전까지 개에게서 아무런 트라우마나 안좋은 기억 같은 건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개가 무서웠어요. 왜 학교에서 저 개를 치우지 않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한테는 저 개가, 언제라도 사람을 물 수 있을 법한 사나운 맹견으로 보였거든요. 그러다 한 번 정문이 폐쇄되서 후문으로 나가야만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그 개가 저를 물었어요.”

그리고 그는 슬랙스를 걷고 발목을 보여주었다. 그의 오른 종아리에 위로 죽 뻗는 깊은 흉터가 있었다.

“그 개가 낸 흉터인가요?”

“맞아요. 아주 지독하게 저를 물었지요. 제 다리를 물어뜯으면서 한참을 놔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니까 체육 선생님이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체육 선생님은 어렵지 않게 저와 개를 떼냈지만 이미 제 다리는 잔뜩 물어뜯긴 뒤였어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저는 그 이후로 사흘을 꼬박 앓았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병상에서 내려올 생각을 못했어요. 몸 안에 아직도 그 개의 침이 남아서 제 몸을 안에서 긁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흘째가 되자마자 그 개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어요. 저는 아주 멀쩡했고 애초에 개에게 물린 적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개가 무서웠나요?”

이상한 질문이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제 다리에 흉터를 낸 그 개를 빼면요. 다행히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그 개는 사라져 있더군요. 아마 저 때문이겠지요.”

“갑자기 개가 사라져버린 게 그 이유였군요.”

“개를 좋아하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네요.”

그리고 그와 나는 살짝 웃었다.

“그 이후로 개가 좋아진 건가요?”

“맞아요. 정확히는 갖고 있던 두려움이 사라지자, 애정이 들어갈 공간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제야 개들의 큰 귀, 살랑거리는 꼬리, 헥헥대는 혀를 볼 수 있었고, 또 그게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민석이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상하네요. 저는 그 개가 사람을 물기에는 너무 순해 보였거든요.”

나는 말하고 나서야 질문이 무례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다행히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해요. 그때 그 개를 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물기에는 너무 순하다고 말하거든요. 왜 저만이 그 개를 사나운 맹견으로 봤을까요? 왜 저에게만 사나운 맹견이 되었을까요?” 

그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이 말했다. 햇살이 그의 얼굴로 비춰왔지만 모자를 쓴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맹견이라고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굳게 믿는 게 이루어진다 같은 말은 아니지만, 분명 티가 났을 거에요. 맹견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면 말이에요. 예를 들어 눈이 흔들리고, 몸을 흠칫하고, 발걸음이 빨라지는, 그런 것들이요. 그 경계심을 개도 느꼈겠죠.”

나는 말을 이었다.

“개가 경계심을 느끼고 당황했을 수도 있고, 만만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개는 그냥 동네 개였잖아요. 훈련받은 적도 없고, 당연히 사람을 물면 안된다는 것도 모르겠죠.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예상 밖의 상황이 되니까 충동적으로 물어버린 게 아닐까요?”

그는 여전히 말없이 내 말을 듣다가 웃으면서 재미있는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그렇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얘기를 계속하다가 카페 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이윽고 조명이 추가로 켜지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페가 통째로 기우뚱거려서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그것이 단순한 어지러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괜찮냐는 듯이 보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민석은 가끔 이 세상이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이 꿈에서 그저 단역일 뿐이고, 단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중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게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진 이유가 단지 부속품일 뿐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그 사실이 허무하느냐고 묻자 그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 세상이 꿈이든 아니든 자신에게는 진짜 현실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런 사소한 이유로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롭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만약에 그 말이 사실이라면 꿈의 주인공이 눈을 뜰 때 우리는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모자를 고쳐 쓰면서 말했다.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우리가 사라지는 줄도 모른 채 사라질 텐데.”

나는 그의 말이 어딘가 섬뜩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기가 꿈의 주민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꿈꾸는 사람이 자기가 꿈을 꾸는지 모른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꿈속에서 우리는 단역이지만,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니까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정말 우리가 꿈 속에서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긍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단지 단역으로 남기에는 너무 생동감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럼 만약에 꿈의 주인공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무심코 내가 말했다.

“제가 그 사람이 꿈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안다고 하면요?”

“모르더라도요.”

“그럼, 음, 인사나 하지 않을까요?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피곤해져서 나는 눈을 비비적댔다. 내 눈앞에 있는 거리와 그가 흐릿하게 바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