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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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역병의 기사


‘플라가’는 잔 일행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말했다.


“네놈들이 열심히 우리 동족들을 처리한 까닭에 ‘토트’님의 계획이 일그러져 버렸다. 하지만 내 계획에는 변함이 없지. 죽어라!”


‘플라가’가 입을 쩍 벌리자 그 안에서 한 눈에 보아도 위험해 보이는 녹색 연기가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잔 일행에게 다가왔다. 마누엘이 말했다.


“빨리 피하세나!”


하지만, 잔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은 채 손을 뻗었다. 녹색 연기들은 순식간에 잔의 손아귀에 붙잡힌 것처럼 한 곳에 모이더니 이내 큐브 모양으로 뭉쳐 점점 작아지며 이내 잔의 손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잔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무 약해. 게다가 역병이라는 게 3살 아기가 봐도 알 정도로 티가 팍팍 나는 공격이야.”


그때, 갑자기 ‘플라가’가 묘한 미소를 짓자 잔은 그것조차 간파한 듯 자세를 잡았다.


“나는 너 같은 놈들을 여럿 만나봤어. 이 ‘역병’에 무언가 있는 모양인데, 그럼 네가 가져가지 그래?”


잔은 역병이 모인 큐브를 ‘플라가’에게 집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역병이 모인 큐브가 폭발하며 ‘플라가’의 주위로 역병이 퍼졌다. ‘플라가’가 말했다.


“그래, 정확하군 마법사. 이것은 ‘역병’, 그것도 필멸자들은 치료는커녕 분석조차 할 수 없는 역병이다. 생물은 순식간에 생명을 잃고, 물질은 스스로 바스라지며, 마법조차 오래 버티지 못하는 고대의 역병이지.”


“그래?”


잔이 또다시 손을 뻗자 그 역병들이 다시 ‘플라가’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플라가’는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기는! 이 ‘역병’은 내가 만들어 냈다! 자식이 아비를 죽일 수 있겠는가? 피조물이 창조자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까짓 마법쯤!”


‘플라가’의 입에서 다시 역병이 쏟아져 나오자 잔의 구속은 쉽게 풀려버렸다.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하늘을 갈랐다. 마누엘의 총구가 연기를 토해내자 총구가 향한 방향 끝에 있던 ‘플라가’의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마누엘이 다시 총에 총알을 넣으며 물었다.


“과연 자네가 장담한 대로 될까?”


“도박이죠. 며칠이 걸리더라도 놈을 쓰러뜨려야 하니까요. 마리!”


마리가 지팡이를 들자 지팡이의 끝에서 황금빛의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빠르게 ‘플라가’의 총상을 감싸 상처를 아물게 만들었다. 의아해진 ‘플라가’가 물었다.


“뭐냐? 네놈들,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긴? 이런 짓이지!”


잔이 양 팔을 높이 들자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나타났다. 곧이어 잔이 팔을 살짝 벌리자 그것들이 수십 수백개의 얼음 화살로 변해 그녀의 손짓에 따라 ‘플라가’에게 날아들었다. 화살들은 ‘플라가’가 가소롭다는 듯이 뱉어낸 녹색 역병에 닿자 마자 증발해버렸지만, 화살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깨달은 ‘플라가’는 금방 역병을 쏘는 것을 멈추고 커다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것을 택했다.


“네놈들의 행태에 질렸다! 나는 이 황금빛 반도의 아주 일부만 역병으로 물들이면 그만! 네놈들이 무엇을 하든 내 목적만 달성하면 승리다!”


잔이 조용히 무어라 중얼거리자 그녀의 몸이 약간 공중으로 떠올랐다.


“혹시나 밭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대피시켜줘. 난 놈을 최대한 막을게!”


그 말을 남기고 잔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플라가’를 쫓아갔다. 잔은 ‘플라가’가 밭에 역병을 갈길 때마다 온 힘을 다해 그 역병이 한 줌이라도 밭의 농작물에 닿지 않게 방어하며 ‘플라가’가 더욱 빠르게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그러길 반나절, 그동안 드넓은 밭을 오염시키기는커녕 잔과 술래잡기만 하고 있었던 ‘플라가’의 인내심이 모두 바닥났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군! 됐다! ‘토트’ 님도 오지 않으시니 여기서 끝내주마!”


그 말과 함께 ‘플라가’는 주변의 모든 공기를 빨아 마실 듯 숨을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은 상대를 깔보고 있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누굴 끝내니 마니 하기 전에 자기부터 살펴보지 그래? 아마 지금쯤이면 몸이 잘 안 움직일텐데?”


그제야 ‘플라가’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알아차렸다. 한참 전에 총에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플라가’의 표정을 본 잔은 미소를 지었다.


“너도 예측하고 있겠지. 아까 전에 네가 맞은 총알… 그리고 우리가 아물게 한 상처. 그 총알엔 근육을 마비시키는 독약을 발라놨지. 내가 물약 제조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서 걱정 했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는 모양이야.”


‘플라가’의 근육이 점점 굳어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날갯짓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약효가 심장과 목에 닿으면 더 이상 숨도 쉴 수 없게 되지. 그리고 죽음에 이른다. 그동안 네가 저질렀던, 그리고 저지르려 했던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해라.”


“이 자식, 허튼 소리는 집어 치워라! 나는 위대한 생명체다! 그까짓 독 따위에 죽을 정도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아니, 너 역시도 신의 피조물일 뿐이다. 피조물이 창조자를 죽일 수 있냐고? 당연히 없지! 하지만 너와 나는 똑 같은 피조물이다. 흙으로 돌아가라.”


“우오오오오오오!! 내가… 이 ‘플라가’가…! 순순히 홀로 죽을 것 같으냐!!”


“그래, 순순히 홀로 죽어야지. 그것이 이승에서 네놈이 받을 죗값이다.”


‘플라가’가 달려드는 순간, 잔이 손을 뻗자 투명한 벽이 나타나 ‘플라가’를 가둬 버렸다. 잔이 천천히 펼친 손을 오므리자 공간이 점점 작아지며 ‘플라가’를 압박했다. ‘플라가’는 비명이든 변명이든 지르고 싶었으나, 이미 목이 마비되어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 마침내, 잔이 다른 손을 뻗자 ‘플라가’의 몸이 통째로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자신을 가둔 공간과 함께 폭발하고 말았다. ‘플라가’가 형체도 없이 폭발해 사라지자 곧이어 마리와 마누엘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잔! 놈은… 그 놈은 해치운거야?”


잔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래… 아슬아슬하게 말이야.”


마누엘이 말했다.


“힘든 건 알겠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빨리 아인에게 가야지 않겠나!”


그 말에 잔은 다시 일어나 심호흡을 하더니 지팡이를 땅에 내려 쳐 차원문을 만들었다. 차원문 너머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자 다른 둘도 그 너머가 아인이 있는 감시의 요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자!”


셋은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며 동시에 전투 태세를 갖췄다. 마리가 소리쳤다.


“네놈이 졌어, ‘패이머스’! 네가 계획한 야망은 이미 끝이니까!”


그러나,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후, 누군가 말했다.


“왔구나, 다행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


목소리의 주인은 아인이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패이머스’를 두고 말이다. 깜짝 놀란 마누엘이 물었다.


“아인! 다행히 살아 있었군. 놈은… ‘패이머스’는 죽은 건가?!”


“네, 조금 전에 쓰러뜨렸습니다.”


방금 전의 위엄 넘치기만 했던 말에 홀로 쑥스러워 했던 마리가 물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놈은 어떻게 잡았고?”


“말하자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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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라는 것들이 허접하기 그지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