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던지 '성선설'을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이다- 단언컨데, 그 새끼는 전장에 발을 들여본 적도 없는 놈일 거다.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차라리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라 한 그가 현자일 것이다. 총탄, 포탄 파편, 심지어는 총검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종에 상관하지 않고 평등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똑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리라. 한 놈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가기 위해 동물적으로 손을 뻗어대는 인간을 보고 있자면 그리도 '이성'을 빨아대던 놈들에게 이걸 눈 뜨고 보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물론 이런 생각도 내가 장교이기에 할 수 있는 사치일 뿐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집에서 뭐 먹을지를 고민하던 내가 이런 본질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까닭은,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전장이기 때문이다. 

뭐, 흔한 이야기이다.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다른 세상이었어요. 뻔하디 뻔한 클리셰 아닌가. 내가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을 읽기시작했더라면, '또 재미없는 이고깽 양판소냐'라 생각하며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었다. 명예와 미녀, 환상적인 모험이 있는 그곳과는 달랐다.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인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기병 장교였다. 식민지 아메리카 출신의 기병 장교. 1800년이 넘었는데도 어째서 '식민지' 아메리카냐- 답은 간단하다. 아메리카는 독립하지 못했다. 감히 반란을 일으킨 식민지 인들은, 본토의 레드코트에게 요크타운에서 유린당했다. 반란군의 수괴 워싱턴은 처형당해 런던탑 앞에 목이 걸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식민지인들이 패배한 이유는 어쩌면 당연했다. 원 역사에서 미국을 도와 요크타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프랑스가 불어나는 전비에 부담을 느끼고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그게 프랑스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제국은 무사했다. 달리 말하면, 아직도 부르봉 왕실이 건재했다는 말이었다. 식민지를 굴복시킨 대영제국은 부르봉에 이를 갈았고, 다시 한 번 프로이센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양쪽에서 적을 감당하게 된 프랑스는 합스부르크를끌어들였다. 화약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칸이었다. 발칸에서 오스만에 대항해 일어나는 여러 민족들을 영국이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에 반발한 오스만과 당장 앞마당이 위협받게 된 합스부르크는 훗날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극도로 소모적으로 전개된다. 유럽 모든 국가가 참가한 전쟁이었다. 더구나 영국은부족한 병사를 그 거대한 식민지에서 끌어들인다. 이게 내가 여기, 이곳에 서있는 이유이다. 

가장 손실률이 큰 병과인 기병-1차 대전 이전까지 포병과 함께 전장을 지배하던 기병이 급했던 영국이 당장 말을 탈 수 있는 식민지인들에게 계급을 부여하고 전장에 투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취급은 개떡같았다. 나름 고급 병과인 기병이었지만 반란자라는 낙인 때문인지, 혹은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라 벌레새끼들! 처 일어나서 군장 싸!"

아침부터 떽떽거리는 개새끼는 내 직속 상관이다. 흔하디 흔한 영국 귀족출신 기병 지휘관. 다시 말하면, 좇도 능력 없는 새끼가 돈 주고 계급을 샀다는 말이다. 

"젠장, 저 돼지새끼는 아침부터 꿀꿀거리는거요? 돈만 많은 새끼가 가오는, 쯧"

고향에서부터 날 따라온 스미스가 물었다. 뒤끝없는 멋진 성격의 남자였으나, 그 역시도 말은 타지도 못하는 돼지가 지랄하는것은 참기 힘들었으리라.

"스미스 소령, 상관에게 그게 무슨 말툰가? 적어도 뒷담은 상관이 없는 곳에서 하게나. 그것까지는 뭐라하지 않을 테니."

그래도 나름 상관은 상관이었기에, 나는 스미스를 나무랐다.

"일없소. 그래서 형님, 오늘은 뭘 해야 하오? 또 칼 들고 가서 썰면 되는거요?"

"뭐, 우리가 늘 하는 일이 그런거 아니었냐. 짐 싸자. 나가자고."

"대령님! 지휘관 막사로 오라는 명이십니다!"

"음, 곧 가도록 하겠네."

한 병사가 와서 말했다. 그래도 나름 지휘관은 지휘관이라고 회의에는 불러주는 모양이다. 

"모두 모였나?"

우리의 '꼬마 부사관'-나폴레옹이 말했다. 왜 나폴레옹이 여기 있는지는 묻지 마라. 나도 모르겠으니까. 다만 듣기로는 프랑스에 어떤 원한이 있다는 것 같았다. 확실한 것은, 그가 있어 이 전선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디어 저 저주스러운 프랑스를 부술 수 있는 기회가 왔네. 저 멍청한 연합군 놈들은 내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네. 이미 설명했네만, 다시 한 번 설명하겠네. 저 고지를 내어준 것은 의도적인 기만이었네. 우리에게 작은 승리를 거둔 놈들은 거지새끼처럼 우리 우익으로 달려들겠지. 그러면 그때 적 중앙군을 파고들어 허리를 끊어놓고 포위섬멸한다. 간단하지 않은가? 이를 위해선-"

원수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장에서 구를대로 구른 61세의 원수는, 여전히 그 위엄과 총명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기병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네. 대령, 믿어도 되겠는가?"

나폴레옹이 말하는데,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단 나는 아니었다. 

"예! 각하! 최선을 다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경기병대 비극의 시작이었다. 

"각하가 네놈에게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해도, 네가 대단한 인물이 된 것 마냥 착각하지 마라! 하여튼 요즘 식민지 벌레들은 끝을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쯧."

막사에서 나오자 마자  돼지가 짖었다. 아무래도 나폴레옹이 자신이 아닌 내게 직접 말한게 자존심이 상했나보지. 그래봤자 상관은 없다. 어차피 선봉에 서서 경기병대를 이끄는 것은 나였으니까. 적당히 대꾸해주며 나온 나는, 곧장 부대를 집합시켰다. 

"사랑하는 제군들! 우리는 오늘도 바게트와 소시지를 썰러간다! 언제나 그랬지만, 살아서 보자 새끼들아!"

프-오-러 연합군의 선제포격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가 살지 아니면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이 아우스터리츠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세상이라고 해도 그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똑같은 장소, 그리고 똑같은 배치로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데 설마 결과가 달라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꼬마 부사관'조차 기관총의 존재는-그리고 그 위력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분명 우리의 우익과 연합군은 충돌하고 있었고, 적의 중앙군의 두께는 전보다 얇았지만 그것이 원수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이 중앙군의 규모를 줄이고 우익으로 달려갔던 것은 적들이 원수의 의도대로 움직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도로도 우리의 돌격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무기질적인 소리와 함께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전쟁은 인간을 한계까지 끌어낸다고 누가 그랬던가. 20년은 더 앞서 출현한 미트라예즈는 총알을 뱉어내며 말과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고기로 만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후퇴를 외쳤다. 명령불복종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차피 선봉에 선 우리가 갈리면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없다. 

"후퇴! 후퇴하라! 이대로 후퇴해서 전열을 재정비한다. 후퇴!"

팔이 떨어져나갔다. 머리가 터져나가 뇌수가 튀었다. 가슴팍에 구멍이 뚤려 그대로 고꾸라졌다. 목에 구멍이 난 말이 피를 흘리며 뛰어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관총앞에 돌격한 멍청이들의 최후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계속해서 후퇴를 외치며 전속으로 말을 몰았다. 

퍽-

뭔가가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내 팔이었다.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곧 깨달았다. 멀어져가는 스미스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천천히 암전되었다. 씨발, 여기 아우스터리츠가 아니라 발라클라바였잖아. 아니, 서유럽쪽이니까 솜인가. ㅡ그 생각과 함께, 나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각하! 식민지 기병연대가 전멸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한가? 작전대로 진행하게.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사소한 작전 진행 상황은 보고하지 않아도 상관 없네."

"옛!"






....식민지 기병연대는 적의 중앙으로 파고들어 포위하려 시도했으나, 미트라예즈의 저지에 의해 실패했다. 여기서 기병연대는 지휘관을 포함해 90%가 전사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생존자는 불과 194명에 불과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식민지 기병여단을 제외한 타 기병대가 함께 돌격하지 않았냐는 점이다. 나폴레옹 원수가 그러한 작전을 지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대 식민지에서 차출된 병력에 대한 취급은 매우 좋지 않았으며, 신무기의 존재는 파악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정예 중기병대를  투입하는 것에 나폴레옹이 부담을 느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