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까지 트럭을 몰고 있던 정동병이 천계로 이동한 것은 통신을 건 바로 직후였다. 정동병은 통신을 통해 따지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천계로 순간이동한 것이었다.
정동병이 도달한 곳은 천계 인생지원부의 한 사무실이었다. 그는 오자마자 1주일동안 묵혀놓았던 불만들을 한꺼번에 쏟아내었다.
"이렇게 트럭으로 치기만 하다가는 결국 마지막까지 환생시키지 못할 거야. 자꾸 피해다니다가 환생 가능 시간 20일을 넘겨버릴 거라고! 그러니까 방법을 좀 바꿔야 돼. 이대로 가다가는 이 프로젝트는 실패할 거라고."
"그러면, 만약에 방법을 바꾼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한쪽 책상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반문했다. 그는 그의 목에 걸린 로켓을 보며 하계에서의 따스한 추억을 회상하다가 정동병이 갑자기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집어넣은 참이었다.
"차라리 설득하는 건 어때? 아니면 환생이라는 것을 아예 알려주자고. 그러면 어떻게든 자발적으로 가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하던가. 대신에 이 프로젝트는 꼭 완성시켜야 해. 그러니까 기밀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고."
"그럼 난 이만."
정동병이 승락을 받고 만족하며 바로 뒤를 돌아 하계로 내려갔다.
정동병이 떠나자 남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여자가 그에게 말했다. 그 여자도 이 프로젝트의 주요 인물이었다.
"결과가 부정적인데 괜찮으려나?"
여자가 자신의 특수능력으로 선택에 따른 결과를 보고 말했다.
"마법이 그렇게 말한다면 당연히 실패하겠지. 마법에 따르면 최종적으로는 트럭에 치여서 환생한다고 했으니."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며 정동병이 없는 사이 그의 방법에 회의감을 보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쟤는 쟤 방식으로 하게 놔두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란 말이지."

한편 하계에서 소년은 트럭에 치여 죽을 뻔했다는 것에 대한 충격과 공포감이 아직 사라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어제도 그렇고 그저께도 그렇고 그 트럭은 잡히지도 않는지 계속 과속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마음을 추스리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는 매일같이 걸어온 낙상대학병원의 복도를 걸어 그가 나날이 방문하는 2인실 병실로 들어섰다.
소년이 방으로 들어가자 그가 매일 찾아가는 소녀가 보였다. 딱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가진 그 소녀는 병상 위에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저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름아닌 식물인간이었다.
소년은 그녀를 보며 마음이 절로 편안해졌다. 아까까지 그에게 있었던 불안한 마음은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어도, 한때 그의 삶에 있어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소년은 조용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그녀가 쓸쓸하지 않도록 뭐라도 해주는 것이 그 소년의 일상이었다.
그러려던 찰나, 그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였을까. 옆 병상에 누운 아저씨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었고, 지금 병실에 있는, 아저씨를 자주 찾아오는 그의 딸이라기에는 손이 너무 컸다.
"그래봤자 소용 없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소년의 어깨 뒤였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창빈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도 아니었고 옆 병상에 누워있는 아저씨도 아니었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확실히 묻어남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성가신 일이 있었던 듯 짜증이 내재되어 있었다.
"누구세요?"
소년이 그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남자의 키는 소년보다 컸고 얼굴은 햇빛을 많이 받아 어느 정도 타있었다.
"정동병이다.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
확실히 소년이 아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하도 환생트럭에 안 치여서 설득하러 왔다, 이 새끼야."
정동병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소년은 신종 사이비 종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칠 뻔했던 트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그때마다 그가 언제부터인가 사용 가능했던 소환 마법으로 막았는데도 그 트럭은 새것처럼 고쳐져서 매일같이 다시 달려들었다는 것에 이미 의문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저를 환생시킨다고요? 왜요?"
소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사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고? 내가 천계 인생지원부에서 환생 프로젝트를 맡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말로 다시 말하자면, 백창빈, 네 인생을 구원해주려고 하고 있다."
"제가 구원받아야 한다고요? 음, 사이비 종교네."
창빈이가 어이없어하며 토를 달았다.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름까지 추적하고 들어온 생판 미친 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천계 사람이 저한테 굳이 왜 왔는지 증명해보시던가요."
정동병은 귀찮지만 설득을 시켜야 일이 끝나기 때문에 자신이 왜 왔는지 일러주었다. 옆에 있던 아저씨의 딸은 전화를 받고는 밖으로 나갔다.
"2년 전 3월 1일, 그러니까 고등학교 입학식 바로 전날에 너의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이었던 서채빈이 너랑 같이 교복을 사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너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동안 병원 간병인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친구는 식물인간이 되어 회복의 기미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 결과 너는 매우 우울해졌고 학교에 돌아가서도 '나한테 접근하면 죽여버린다.'라고 외치는 듯한 아우라를 풍겨 인간관계는 고등학교 시작부터 파토가 났다. 성적도 연쇄적으로 곤두박칠쳤다.
그래서 우리들은 너한테 마법을 부여한 다음에 환생트럭으로 치어서 환생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네가 자꾸 소환마법으로 트럭을 막아버리니까 환생이 자꾸 안 됐다. 자, 이제 내가 왜 왔는지 알겠냐?"
창빈이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겪은 일들부터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를 꿰뚫어보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었다. 창빈이는 확인을 위해 정동병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 물어볼게요. 채빈이가 왜 저의 유일한 버팀목인지 설명해보시죠. 그러면 당신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볼게요."
창빈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동병이 맞받아쳤다.
"고아였던 너는 자기소개 시간에 고아라고 무심코 말했다가 초등학교때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중학교 때도 초등학교 동창들에 의해 지속되었다가 네가 만난 사람이 바로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던 서채빈이었다.
그래서 너랑 서채빈은 동질감에 서로 친해졌고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둘은 달리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 서로 같이 다녔다. 그렇게 고등학교도 같은 곳에 들어갔다. 사고가 난 그날도 같이 교복을 사다 오는 길이었다. 이러면 됐냐?"
창빈이가 정동병에게 다시 한 번 새삼 놀랐다.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창빈이는 그를 천계 사람으로 인정할 뻔 했다. 그러나 개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다음 접근하는 정신나간 사기꾼이나 사이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께서 말씀은 모두 사실이 맞네요.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하죠. 저한테 금전이나 신앙을 요구하실 거면 거부합니다. 아저씨께서 천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시지 않으시면 안 믿을 거에요."

정동병이 이번에도 그의 말을 듣고 바로 대답했다.
"천계 사람들의 능력에는 2종류가 있지. 하나는 특수능력이고 하나는 고유능력. 특수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트럭으로 치어서 환생시키기니까 여기서는 보여줄 수 없어. 그러면 고유능력을 보여주면 되겠지? 고유능력은 사고조작, 비행, 천계와의 통신, 순간이동, 치유.... 아, 치유는 아니고."
"그러면 보여주시죠. 당신이 천계에서 왔다는 증거를."
정동병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제발 빨리 끝나라고 빌면서 자신의 몸을 바닥에서 20cm정도 띄웠다. 창빈이가 주문이 없어도 마법이 가능한 것을 보자 매우 경탄하면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다시 한 번."
정동병이 한 번 더 말하더니 이번에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비행했다.
"그리고 마지막."
정동병이 마지막 말과 동시에 창빈이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창빈이는 이것을 보고서야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천계에서 왔다는 걸 믿겠냐?"
정동병이 바깥에서 병실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네."
창빈이가 겨우 입을 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환생하러 가자. 별로 아프지는 않을 거다."
"환생 거부합니다."
정동병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지만 창빈이는 단칼에 거절했다. 창빈이는 여전히 채빈이를 마음 한 켠으로 가족으로든 이성으로든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떠나면 더 이상 채빈이를 책임져줄 사람이 없기에 그는 결코 그녀와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강력한 다짐이 소년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어째서? 보통은 환생시켜준다 그러면 좋아하던데."
창빈이의 즉답에 정동병이 살짝 짜증내면서 반문했다. 그러나 창빈이의 대답은 여전히 완고했다.
"제가 환생한다면 채빈이는 누가 책임집니까?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라고요?"
"어차피 죽은 거나 다름없잖아."
정동병이 차갑게 대꾸했다. 창빈이는 그의 유일한 버팀목을 모욕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격노했다. 그렇게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죽은 사람이라뇨! 천계 사람들은 식물인간은 인간으로 보지 않나 봐요? 그리고 애초에 천계가 제대로 일했다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텐데요? 그리고, 저를 환생시키면 얘가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인데 천계는 그것도 모르나봐요?'"
"그건 상관 없어.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고 일단은 환생하라고."
"이야, 제가 사라져서 명줄이 끊어지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나보군요. 이렇게 죄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가니까 천계가 욕먹는 거에요."
"안중에도 없는 게 아니야.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어."
"강제환생을 강요하고는 기밀이라... 그리고 애초에 저를 환생시키려 했으면 처음부터 초능력을 주지 말던가. 아니면 고유마법에 사고조작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마법을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대부분의 능력은 리스트에 오른 사람에게는 작용되지 않아. 너는 환생예정자 리스트에 올라있고, 그래서 네가 쓸 수 있는 그 소환마법도 리스트에 올라 부여가 불가능해지기 1시간 전에 부여한거야."
"그래서 저를 환생시키려는 이유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애초에 저는 채빈이가 없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요. 오히려 이세계에서 채빈이 생각으로 고통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어차피 네 기억은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창빈이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해지면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정신을 다시 부여잡고 말했다.
"기억을 지운다고요?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제가 환생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애초에 기억을 지우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에는 행복해질 거다. 그리고 어차피 너는 환생하게 되어있어."
"두고 보세요. 제가 어디 환생을 하나 안 하나."
"너도 두고 봐라. 이제 다른 수를 써줄 테니까."
정동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천명했다. 그리고 병실을 나가면서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한 마디 던졌다.
"그리고 네가 환생이 가능한 기간은 20일이니까 이제 13일 남았다. 각오해라."
"안 가겠다는 저를 왜 자꾸 건드세요. 다시 말하지만, 환생 거부합니다."
정동병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 후 천계로 돌아갔다.

정동병이 천계에 도착하자 남자의 특수능력인 천리안으로 하계를 같이 보고있었던 여자가 말했다.
"설득 실패했고, 이제 창빈이의 인생을 조져서라도 강제로 환생시키려 하는군?"
"설득은 너무 완강해서 가망이 없더라고."
"뭐, 창빈이 인생을 조져버려도 결과는 부정적일 거지만. 그러니까 안 하는 게 좋을텐데."
"일단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다 해볼 거야. 아무리 그 결과가 부정적이라 해도."
정동병이 바로 하계로 내려갔다. 남자와 여자는 그걸 보고 창빈이를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