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7화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지만, 그래도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 방과 후에는 어제의 강가로 가보고, 악마와 마법사들과 대면해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죄는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덕분일 뿐, 진짜 '원수'를 만난다면 다를 지도 모르지. 


'뭐, 상관없나. 당분간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나에게는 새로운 목표들이 생겼다. 먼저 강해지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벌써 속도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어서 원래 속도로 돌아가지 못해?"

"벌써라니, 열한바퀴 째라고!"


나는 지금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 내 뒤를 레이나, 아니 예린 선배가 바싹 쫓고 있고. 그것도 대검을 빙빙 휘두르면서 말이다. 


'이게 뭐냐고 진짜!'




"------고작 스무바퀴에 나가떨어지다니, 어지간히도 약골이네."

"이 정도면 약골 아니거든! 그리고 몸 강화해서 달리는 네가 할말이냐...?"

"존댓말."


머리를 맞았다. 암만 그대로 이건 너무 불합리하지 않나? 


"나는 검을 들었으니 당연해."


사람을 때려놓고, 매우 당당하게 말한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다 이 선배는. 그래도 나는 화를 다스리며 냉정하게 말했다. 예린씨에게도, 저 멀리서 재미있다는 듯이 우리를 보고있는 지은 선배에게도.

 


===== ===== ===== =====



"다시 말하는데, 저는 아직 악마퇴치에 협력한다고 한 적 없어요."

"알아. 나도 당장 너를 그런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럼 어째서..."

"일단 첫번째 이유는 너의 희귀한 능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연구하고 싶기 때문이고."


아, 그러신가요. 그런 실험체라면 돈이라도 받으면서 할래.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의 아는대로라면 너의 특성은 네 자신의 신체 스펙이 가장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야. 기억하고 있지?"

"네에... 뭐..."




회장이 말해준 나의 재능에 대해, 아직은 뜬구름 잡는 감각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오감인지 육감인지 모를 감각으로 세상의 기운을 느끼는 정도일 뿐이다. 


"------너에게는 마법도, 요술도, 성법에도 재능이 있지만 지금부터 배워봤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야."

"저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데요."

"아아, 실례. 잘못말했어. 몇년정도 배우면 나름대로 성과는 있겠지만, 너의 전투력에 주는 도움은 미미할거야."


선배는 그렇게 단언했었다. 그 말에는 확신이 어려있었다. 


"처음 마력과 접했음에도 마법에 강력하게 저항했고, 또 수많은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이건 그 어떤 마법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재능이야."

"그런가요."

"하아..."


나는 적당히 대꾸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대답을 들은 예린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의 몸은 고대 영웅들이랑 똑같다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어차피 지금은 별 차이 없다면서?"

"너는 정말...!"


나와 예린 선배가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지은 선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보고 있다가 말했다.


"레이나. 세열이의 기초 체력 단련을 도와주렴."

"네에...?"//"예?"


내 체력단련을... 이 사람이?




"세열이가 말했듯, 이 아이는 영웅의 현신. 마나 과적응 체질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나에게 몇가지 물어보고, 마법으로 좀 조사를 한 뒤부터 내 체질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중에 마나 과적응 체질에 대해 물어봐야지.


"수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희귀한 체질이라서 나도 책을 통해 알아봤어. 마나 과적응자들은 기본적으로 마나, 아니 다양한 에너지들과 접할 수록 강해진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 성장률은 엄청나지. 하지만 그건 마나와 많이 접한 이후에 해당돼. 즉, 네가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시점에서는 이미 늦다는 거야."

"..."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바닥을 다져놔야겠지?"


거기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선배의 말을 경청하고, 인정했다.



===== ===== ===== =====



일단 그렇게 설득해서 넘어가긴 했지만...


"검이 가볍잖아!"

"야, 야...!"


위에서 내려오는 검을 맞받아치고 그 기세로 뒤로 몸을 뺏다. 하지만 상대는 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그대로 품 속으로 치고들어와서 찌를려고 했다. 


나는 당황하면서 손으로 잡으려고 하다가 퍼뜩 정신차리고 손잡이로 막았다. 살짝 늦게 막아서 생긴 충격이 손에 저릿하게 느껴진다. 

 



학교 지하에, 우리 학교 학생의 99%는 모르는 의문의 공간. 여기서 지금 나랑 예린 선배는 죽도를 들고 대련중이다.


검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호구도 착용하고 있지 않고, 검도 좋을대로 잡고 있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대련도 아니다.


"너, 검도를 한 적은?"

"예전에 몇달정도 했죠."


어디 학원 다닌 건 아니고, 쓸만한 형을 구하기 위해 동작을 따라한 것 뿐이었지. 덕분에 무거운 검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예린 선배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몇달 배운 걸로 이정도라고...?"

"예전부터 동체시력이 좀 좋았거든요...!"


검을 중단으로 세우고 발을 한걸음 앞으로 뻗으면서 찔러보았다. 하지만 선배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으며 내 죽도를 밖으로 빼내고 배에 주먹을 날렸다. 기세타고 날렸는데 너무하네. 


"으엑..."

"휴우..."


또 몸을 뒤로 빼니 내 뒤에는 거의 공간이 없었다. 다행히 거기서 선배는 공세를 멈추었다. 




"공격은 안하나?"

"피하는데 급급한데요... 그리고 몸도 무거워서..."

"고작 하루 밤샌거 가지고."


나는 이 선배하고 너무 안맞아... 아니, 그냥 이사람 잘못이야. 이야기가 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첫날부터 검을 들고 후려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어?


나는 어떻게 좀 해달라는 표정으로 지은 선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은 선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살짝 놀라는 표정이기는 한데, 그건 예린 선배의 학대행위 때문이 아니라,


"꽤나 잘하는구나 너..."

"저 지금 죽겠거든요."

"미안해. 그리고 수고했어. 샤워실은 저쪽."




나는 더 고생하기 전에 주저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 세시간 뒤면 등교시간이다. 잠 다잤네... 설마 매일 이러는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상한데... 내가 그런 체질이라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수백년만에 나타난 영웅이라던가 그런 취급같다, 내 몸은. 이건 선배가 만든건가...? 내가 필요 이상으로 알려져도 되나? 


------그렇게 되면, 성물 파괴는 어떻게 되는거지?



===== ===== ===== =====



세열이 샤워장 문을 닫자, 에인은 수아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에인은 땅에 꽂혀있던 작은 나뭇가지를 발로 부러트렸다. 그 순간, 방 안에 엷게 펼쳐진 마나장이 사라졌다. 


기껏해야 비눗방울 한겹정도의 엷은 마나장을 유지하는 결계를 펼치는 건 고도의 기술력과 섬세함을 요구하지만, 수아에게는 간단했다. 


"어때?"

"결계 내에 아주 미약한 흔들림만이 있었어요. 아마도, 마나 공명 현상이에요."

"미약하다면... 역시 그는 마법세계하고는 단절된 채로 살아온게 맞을 거야."

"하지만 그 몸놀림은..."


레이나는 말을 삼켰다. 세열이 그저 반응속도로만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고, 피했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어설프긴 해도, 그는 빠른 몸놀림으로 그녀의 공세를 맞받아쳤다. 세열의 인상과 체격은 미소녀라고 느낄 정도로 호리호리했지만, 자신 역시 평범한 소녀다. 즉, 마법을 일체 쓰지 않았다고는 해도, 십년을 넘게 검술에 매진한 그녀의 검술을, 자신의 기예만으로 받아냈다------




"뭐, 악마의 스파이일 가능성은 없을 거야. 나는 그를 믿어."

"아니, 저도 그런뜻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일은 사과하지 그러니? 적아를 확인하려 했다고 해도, 너무 괴롭혔지?"

"..."


그쪽 역시 할말 없었다. 말이 뒤로 물러난거지 당황해하면서 나가떨어지는 세열의 모습은 불쌍하다를 넘어서 귀엽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의 물빛 머리를 떠올리자 레이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곧바로 떨쳐내고 그가 들어갔던 샤워장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