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8화



또다시 점심 시간. 오늘 메뉴는 각각 샌드위치와 수프&샐러드다. 3일 연속으로 선배를 만나는건 오랜만이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내 상황이 판타지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거지만.


"선배."

"응."

"저에게 숨기고 있는거 있나요?"

"응, 많아."


연희 선배는 한치 흔들림 없이 즉답했다. 아 잠깐, 이거 내 질문이 잘못됬네. 나는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말했다.


"선배, 마나 과적응 체질이라고 아시나요?"

"응."  

"...제가 그런 체질이라는 것도, 알고계신가요?"

"응."




...역시나. 내 몸을 '절반이나' 살려낸 이 사람이, 이 체질에 대해 모를리가 없다. 아니, 어쩌면 선배가 이 체질을 내게 부여했을 지도 모른다. 조금 설명을 들어보자. 


"설명좀 부탁해요."


언제나와같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선배는, 오늘의 점심인 콘스프의 스푼을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나 과적응 체질은, 마나를 포함한, 원초의 힘에, 대해, 몸이, 공명을 일으키는, 체질."

"그 공명으로 강해질 수 있다더군요."

"인간의 그릇이, 원초적 힘의 진폭과, 정확히 맞물릴, 경우에, 생겨."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 사이에 있던 과일 바구니에서 포도알 하나를 따서 숟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계속해서 두들긴다...




"...!"


아마도 선배는 포도알의 직경과 정확히 맞물리는 진동파를 안쪽으로 계속 쏘아보내는 모양. 덕분에 포도알이 점점 폭주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선배가 손가락을 오랫동안 멈추자 다시 알은 잦아들었다. 


침투경, 상대의 몸 안에 충격파를 쏘아서 내부를 흐트러트리거나, 파열시키는 고대 무술이다. 물론 그걸 기계처럼 일정 파동을 주기적으로 밀어넣는 행위는 무술의 영역을 뛰어넘었다. 지금처럼, 문외한의 눈으로 보면 그냥 마술같다 아니 그냥 마법이지 저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하지만 정작 선배는 포도알을 돌려놓고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다. 기예를 성공시킨것에 대해 놀람도 자랑도 없다. 그냥 과학 실험을 하고 '이런 원리로 강해지는 거야'라고 눈으로 말하는 것 같다. 


'흐음...'


원리를 들으니, 어째서 이런 체질이 극히 희귀한지에 대해 감이 잡혔다. 힘이 무한히 쌓이고, 거기에 그릇이 적응하고, 그만큼 더 쌓이고...라고 간단하게 이해하면 되겠지? 




"그럼 제가 성장하지 않는 것도 이 체질 때문인가요?"

"그건 그날, 성장 가능성을, 다 소모했기, 때문. 마나 과적응 체질로, 개조한 것과는, 별개."


단언했다...쩝. 난 앞으로도 쭉 이렇게냐. 살짝 실망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선배가 직접 개조했다는 대답을 통해, 다시 물었다.


"마나 과적응 체질이라면 눈에 띄는 거 아닌가요? 막 수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영웅이라던데."

"...무리?"




무리냐고요? ...아니요.


"그냥 뭐... 스텔스 플레이가 아니면 뒤로 갈수록 빡세질 테니까..."

"괜찮아. ------넌, 강해. 누구보다도."


아... 그건 참 다행이네요.



===== ===== ===== =====



휘말리고, 권유받고, 훈련받았던 그날 밤에서 다시 이틀이 지났고, 그 뒤로 나는 선배들을 만나지 못했다. '한번 뜨거운 맛을 보여준 이후에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준다', 이건 나름대로 내 의사를 크게 배려해준 거라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어떡하지...'


나는 답을 아직 내지 않았다. 악마 퇴치, 이건 정확히 말하면 이세계에서 넘어온 침략자들을 이 세계를 위해 살해하는 것이다. 아주 리스크가 높은 일인데, 심지어 제대로 된 리턴마저 없다.


'그런 일을, 간단히 Ok라고 하면 안되겠지... 아니, 오히려 No 이외의 선택지가 없지 않나?'




나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상에 발을 올린채로 의자에 누워있었다. 시간은 이미 방과 후로, 노을이 내리쬐는게 참 보기 좋은 시각.


...1시간씩이나 내자리에서 고민하고 있었네. 너무 멍 때렸나.


'일단 오늘도 패스하자. 내일이나 모레로.' 


1시간이나 고민한거 치고는 무계획적인 결론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숙제도 많고, 이만 가야지. ...응?




'...이상한 감각.'


나는 문쪽을 바라보았다. 복도쪽에서, 그렇게밖에 정의하지 못할 감각이 전해져왔다. 이제는 친숙한 그 감각...하고는 약간 다른가? 


굳이 표현하자면------ '두루뭉실한 안개가 뭉쳐있는 무언가'다. 그게 지금 복도를 걷고 있다. 


'순수한 영혼이 가지는 영기, 현세에 미련을 가진 귀신이 뿜는 귀기, 인간을 죽음으로 끌고가는 존재들의 사기...'


어러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되내이면서 복도 밖으로 나가보니... 어라. 




"너무 넓어요..."


자그마한 꼬마가 두리번거리면서 복도를 걷고 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인상적이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게 신기하다. 나도 양쪽이 물빛이지만 그건 내가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런거고... 


전체적으로 나보다 약간 어려보였다. 중학생 아니먼 초등학생 정도의 인상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어 '호신품'을 확인하며, 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다시 말한다. 


처음 보는, 이색의 어린 소녀 한명이, 알 수 없는 기운을 숨긴 채로, 우리 학교 복도를 걷고 있다...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