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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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향해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지원은 다시 조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는 다 끝났어, 어떤 일을 맡기고 싶은 거야?”


“…여기서 말하기는 힘들어. 오늘 20시 정각까지 내가 보내준 장소로 와.”


그가 보내준 주소가 시각 스크린에 뜨자 지원은 의문을 표했다.


“홍대? 술이라도 마시자는 거야?”


하지만 연락은 이미 끊겨 있었다. 지원은 하는 수 없이 차를 몰고 집으로 움직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지원은 집 앞에 21세기 초에나 쓰던 종이 편지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심스럽게 펼쳐본 편지는 붉은 글씨로 써져 있었다.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마라. 잊어라, 네 남편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일에서 손 때라. 그러면 더 이상 두 사람에게 개입하지 않겠다.


누가 보냈는지는 당연히 적혀 있지 않았다. 지원은 그 편지를 쫙쫙 찢어 변기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시간을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까지… 

저녁 7시 40분, 지원은 홍대거리에 도착했다. 21세기 초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번화가 중 하나였던 홍대는 지금도 여전히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이버웨어를 화려하게 장식한 젊은이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중년의 부부, 비틀비틀 다음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취객과 한쪽 구석에서 동냥을 하는 참전용사 출신의 노숙자…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에서 비키니만 입은 예쁜 여자와 수영복만 입은 잘생긴 남자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호객을 하고 있었다. 지원은 조 씨가 알려준 곳이 저 골목 안쪽이라는 것을 알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매춘부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언니, 화끈한 밤 보내고 싶지 않아?”


“필요 없어.”


호스트도 근육을 뽐내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 하룻밤 보낼 멋진 남자…”


“꺼져.”


골목과 이젠 시대에 뒤쳐진 낡은 매음굴을 지난 끝에, 지원은 조 씨가 보내준 주소의 위치에 도달했다. 바깥의 LED 조명과 정 반대의 초록색 네온사인 간판이 번쩍이며 이곳의 이름이 ‘라이프 애프터 데스(Life After Death)’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약간 어두운 계단을 내려와 다시금 네온사인 조명이 켜진 복도를 조금 걷자 문 너머에서도 귀청이 울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지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그때, 양복을 입은 덩치가 문을 막아섰다.


“여긴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일반 술집은 더더욱 아니고.”


“조 씨의 소개로 왔어.”


“조 씨? 잠시만.”


덩치는 오른쪽 귀를 건드리더니 조용히 무어라 이야기를 하다 이내 아까의 고압적이고 사무적인 태도는 어디로 가고 공손하게 허리까지 굽혔다.


“실례했습니다. LAD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조 씨는 오른쪽 구석에 있습니다.”


여닫이 문을 열기가 무섭게 지원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청각 모듈을 조정했다. 예나 지금이나 홍대의 밤거리를 달구는 인디 록 밴드들의 음악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가 찢어질 것처럼 크게 울리고 있었다. 붉은 빛 네온사인 조명이 가득한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거나, 카운터 위에 설치된 TV를 보고 있었고 벽에 붙은 방에는 딱 봐도 이 바닥의 거물들이 여자나 남자들을 끼고 술을 퍼 마시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쪽 구석이었다. 방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는 피부 관자놀이에서 미간까지 사이버웨어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왼팔에 장착된 의수는 아예 크롬으로 도금을 하여 네온사인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조 씨?”


조 씨는 대체 실내에서 왜 쓰고 있는지 궁금한 선글라스를 살짝 들춰 지원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 이지원이야?”


지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


지원이 방에 들어와 그의 맞은편에 앉자 조 씨는 자기 옆에 선 양복쟁이 남자에게 명령했다.


“문 닫아.”


문이 닫히자 방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바깥의 음악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조 씨는 담배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냈다.


“혹시 담배 싫어하나?”


“그래.”


지원의 대답에 조 씨는 멋쩍은 듯 다시 담배를 집어 넣었다.


“술은 좋아하나?”


“요즘에는 별로.”


“재미없는 여자군. 미스터 최랑 어떻게 결혼했는지 조금 의문이 들 정도로.”


그가 미스터 최라고 이야기 했지만 지원은 그 미스터 최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았다. 지원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조 씨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내가 여기에 부른 이유는 이미 이야기했었지? 전직 경찰 나으리.”


“당신이 자기랑 일 한번 해보자며?”


“그래, 그 전에 뭘 좀 더 물어봐야겠지만 말이야. 혹시… 최명훈이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그 말을 듣자마자 지원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용병들로 가득한 곳이라 경찰시절처럼 강하게 나가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 때문이야. 내가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트레일러 타운에 가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조 씨는 경호원을 시켜 손수건을 건냈다.


“여기까지 들으면 된 것 같군. 자네 남편은 대단한 용병이었어. 내가 무는 의뢰 중에 가장 어려운 것만 골라서 하고, 그걸 모조리 성공시켰지. 조금만 더 했다면 나 같은 중계인 자리까지도 올라갈 인재였어.”


“그만 해.”


지원은 더 이상 남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꾸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진정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능한 녀석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야. 그녀석이 죽는다면 이곳에도 영원히 이름을 남기겠지.”


“거기까지 하라고.”


갑자기 남편이 죽니 사니하는 이야기로 흘러가자 지원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 씨는 아직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LAD바의 뒤편에는 유명한 용병들이 죽을 때마다 이름을 새겨. 그들을 전설이라 부르지, 미스터 최도 죽으면 거기에 이름이 영원히…”


“그만하라고 했잖아!”


탁자 위의 술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순간, 지원은 숨까지 헐떡이며 탁자 위에 올라 조 씨의 머리에 권총 두 자루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조 씨는 분노하거나 공포에 떨지 않았다. 오히려 그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유지하며 천천히 손을 올렸다. 직후, 바깥에서 술집의 경호원들이 문을 두드렸다.


“성환님, 문제 있으십니까?”


조 씨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네, 돌아가게.”


그들이 돌아가자 조 씨는 가만히 총과 지원을 바라보더니 대뜸 박수를 쳤다.


“대단해, 그리고 재미있어. 정정하지, 미스터 최는 정말 좋은 여자를 뒀군. 합격이야. 그나저나… 이제 총 내려놓지 그러나. 주위도 좀 둘러보고 말이야.”


지원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2평 남짓한 방에 무려 5명의 경비원들이 소총으로 그녀를 겨누고 있을 뿐더러 자세히 보니 창문 밖의 바에서도 수많은 용병들이 총을 들고 당장이라도 그녀가 나오면 쏴 버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지원은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지?”


“난 당신은 믿지 않아. 당신 남편을 믿을 뿐이야.”


그제야 지원은 총을 내렸다. 곧바로 방 안의 경비원들이 총을 내리자 조 씨는 창 밖으로 신호를 보내 바깥의 용병들이 다시 총을 내려놓게 했다. 지원도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조 씨가 물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나?”


“그래… 아니, 전혀.”


조 씨는 경비원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더니 방 밖으로 그를 보냈다.


“편안하게 앉아 있게. 방금 한 말은 내가 사과하지.”


조 씨는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방금… 당신이… 한 말은… 뭐야…? 죽은 이들을… 전설…이라 부른다고…?”


“그래, 전설. 기억에 남을 최후를 맞이한 최고의 용병에게 붙이는 칭호지.”


“…어처구니가… 없군… 죽어서… 그런 칭호가… 왜 필요한 거지…?”


그때, 경비원이 다시 돌아와 조 씨에게 무언가를 건냈다. 조 씨는 그것을 다시 지원에게 건냈다.


“받아, 신경안정제야.”


구세대의 천식 치료기와 비슷하게 생긴 그것을 받아든 지원은 끝 부분을 입에 물고 버튼을 눌렀다. 기묘한 맛이 나는 약이 뿜어져 나와 입과 목을 채우자 그제야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지원은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고마워, 이제 좀 낫네. 그래서, 이미 죽었는데 그런 칭호가 어디에 필요한 거라고?”


“전직 경찰 나으리는 모르겠지… 여기 있는 녀석들은 당신처럼 먹고 살기 쉬운 녀석들이 아니거든. 이 바닥 용병의 60%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 30%는 그것도 못 벌지. 하지만 나머지 10%는? 저기 삼성 왕국의 임원 양반들처럼 살 수 있어!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전설’이라고 부르지. 반대로 그 ‘전설’이 되기 위해 아둥바둥 매달려 살다가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죽은 녀석들… 그 녀석들도 우리는 ‘전설’이라고 불러. 이 바닥에선 두 가지뿐이야. 살아 있는 채로 전설이 되느냐, 죽어서 전설이 되느냐의 차이지.”


조 씨는 관자놀이에서 USB형태의 데이터 메모리를 뽑아 건넸다.


“받아, 네가 맡을 의뢰 정보야.”


지원이 그것을 받아 자기 관자놀이에 꽂자 그녀의 시야에 어느 골목길의 평면도가 보였다.


“요즘 들어 이 지역에 조폭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 ‘신 칠성파’라고, 20세기 부산 지역에서 유명했던 조폭들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놈들이야. 아마 여기 오면서 봤을 걸? 옛날 부산시 로고 문신한 놈들 말이야. 삼성이나 고려그룹이 풀어 놓은 무기로 무장하고 홍대나 마포구 쪽에서 크던 놈들인데 이권 챙기겠다고 은평구 쪽 매춘이나 BDV(Brain Drug Video)쪽에 손을 뻗고 있으니 원래 은평구에 있던 코주부파랑 하루가 멀다 하고 총격전이 벌어지지. 네가 있던 쪽은 어느정도 수습하는 것 같은데 이쪽은 경찰이 손을 반쯤 놨어. 마음 같아선 둘 다 박살을 내버리고 싶지만… 코주부파는 쉬운 녀석들이 아니야. 그러니 신 칠성파를 먼저 건드려야지. 주소는 곧 나올 거야. 동료 용병들도 둘 정도 붙을 거고. 들어가서 박살을 내버리고 간부는 무조건 죽여.”


지원은 메모리를 뽑은 다음 물었다.


“그런데 동료가 둘 붙는다고? 그건 이야기 안 했잖아.”


“하지만 지금 하고 있지. 원래 이 바닥은 혼자선 일 안해. 최소한 한 명은 붙어서 하지. 한 명은 ‘러너’야, 전자전으로도 왠만한 갱단의 프로토콜은 박살을 낼 수 있지. 다른 한 명은 저격수다. 네 남편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녀석이야. 아, 그리고 말이야. 그 두 사람한테 네가 경찰이었다는 소리는 하지 마. 네가 정의로웠던 어쨌든 이 바닥 사람들은 경찰을 별로 안 좋아해.”


“알았어. 그럼 일은 언제 시작하면 되지?”


“내일 15시, 여기로 오면 돼.”


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 씨는 손짓으로 경호원을 불러 문을 열게 했다. 문이 열리고, 다시 바깥의 시끄러운 음악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조 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남편 일은 유감이야.”


지원은 짧게 고개를 까딱이곤 그곳을 나와 밤공기를 들이 마셨다. 안에 있는 동안 또 비가 쏟아졌는지 눅눅한 공기가 폐 안을 가득 채우고, 실리콘 피부는 습기를 머금고 끈적끈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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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h, sicka than your ave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