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그녀는 오늘도 산 정상에 올라갑니다.


멀리 떠나보낸, 그녀의 남편을 볼 수 있을까하면서 말입니다.


11월의 쓸쓸한 겨울, 흰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첫눈이었습니다. 아름답게 내려 땅에 소복하게 쌓여있었죠.


그녀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달과 별이 찬란하게 빛나고, 은하수는 하늘이 바다인듯 광할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그녀는 외쳤습니다.


자신의 남편을 돌려달라고.


그 소리는 메아리치며,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죠.


이 세상엔 전설이 있었습니다. 


첫 눈이 내리는 날, 산 정상에서 소원을 말하면, 신은 그걸 들어줄 거라고.


그렇게 애타게 그를 부른지 10년이 되었습니다.


0도 아래의 추위에 그녀의 입에는 거친 입김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방한복을 입지 않아선지 몸도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설은 허구라는 걸.


아니면 이 정상에 혼자만 있을리가 없겠죠.


그 사이, 눈은 함박눈을 넘어 눈보라가 되었습니다.


눈 사이로 또다른 눈이 들어가, 체온에 녹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면 그냥 눈물일지도 모르죠.


그녀는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집어봤습니다.


여행에서의 첫 만남.


꽃밭에서의 프로포즈.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를 부르던 그.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기억의 앨범은 10분만에 어느새 끝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최소 10년이 지난 일지라도 말이죠.


그녀는 발걸음을 절벽 끝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외쳤습니다.


다시 돌아와달라고, 만나고 싶다고.


그러자, 기적같이 그녀에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바람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정상 위, 한 여인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꿈일까요, 정말로 그녀의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가 정말로 사랑했던 남편이 맞았습니다.


생전 마지막 모습 그대로,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슬픔의 눈물은 어느새 기쁨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제,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자!" 그녀가 훌쩍이며 말했습니다.


남자는 말없이 씩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그가 같이 가자는 듯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곳에서 한 걸음을 더 옮겼습니다.


이번엔 모든 기억들이 다 스쳐지나갔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 순간까지 말입니다.


드디어 그를 만났으니, 기억력도 다시 되살아난걸까요.


그녀의 귀에서 눈보라 소리는 점점 옅어져갔습니다.


.

.

.

.


눈보라치는 산 정상 위,


이제는 아무도 없이 바람소리만 들려오고 있습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채로,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