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꿈을 꾸었다.

사실 꿈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구린 글을 쓰고 돈을 버는 자신의 일상이 영화처럼  앞에 좌르륵 지나갔다.

남자는 꿈에서 깨자마자 본인이 흘린 식은 땀을 닦아내야 했다.

축축해진 이부자리가 그의 기분을 한껏 박살내 주었다.


 호리병에 아무리 고성을 질러대도  목소리는 담길  없다.

남자는  사실을 너무나 늦게 깨달아버렸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예술의 영역이었고,그는 (본인이 집필한 글들을 보며 충분히 예술가라 생각했었지만)예술가가 아니었다.

탈의한 남자가 거울 앞에 서자,안에는 이른 나이에 철없이 서울로 상경한  지칠대로 지쳐버린  청년이 서있었다.

그는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며 본인의 삶이 잘 못 되어감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러나 남자는 삶이 망가졌다는 사실 자체 또한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화장실  사이에 생겨난 곰팡이가 남자의 눈에 띄었다.

남자는 화장실의 누런 조명을 받고 있는 곰팡이가 자신의 꼴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자는 그것으로 기분이 나빠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마땅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정당한 조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욕실에서 나온 남자는 몸을 말린 직후 곧바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공모전의 결과를 알리는 이메일을 열기 직전까지 그는 긴장을 하지도,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예선 탈락'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그는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고 싶은 충동이 샘솟았지만 그럴  없다.

집주인과 옆집 여자에게  불만섞인 한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노트북을 올려놓은 책상 아래 서랍을 열어    사둔 밧줄을 피곤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반쯤 감긴  눈은 이내 완전히 감기고,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밧줄을 들어올렸다.


남자는 헉헉대며 해가 저물어가는 동네 뒷산을 올랐다.

집주인의 집값을 걱정해서 뒷산으로 가주는 그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세입자   명일 것이다.

그는 혹여나 누가 볼까 길다란 베이지색 코트 속에 밧줄을 숨기려 애썼으나 계속해서 소매 바깥쪽으로 밧줄이 튀어나왔다.

겨우겨우 길다란 밧줄을 코트 안쪽에 넣는  성공한 그는 이동하면서 본인이 약간 상기되어 있음을 느꼈다.

또한 본인에게서 극도의 한심함을 느꼈다.

 한심함은 본인의 요절이 세상의 티끌 하나가 지워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 오는 것이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은 그에 걸맞게 고요했고,남자는 거기에서 일종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곳은 커다란 물웅덩이에서 물만 전부 빠진 듯이 아래로  꺼져있는 형태였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얼핏 본다면 그의 시체 대신 죽은 나무 기둥들만 보이게  정도로 깊었기에,남자는 더더욱 안심했다.

손에 자국을 내가면서까지 남자는 죽은 나무 기둥 위에 밧줄을 묶는  성공했다.

나무 부스러기가 묻어나온 손에서는 나무 썩는 내음이  돌았다.

그는 아래의 나무 그루터기를 밟고 올라섰다.

돌이킬  없는 강을 건넌다는 생각에,그는 두려움과   없는 흥분감으로 점점 고조되어 갔다.


죽음은 쓰라린 고통이지만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한 죽음만큼 힘든  없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이다.

지금 썩어서 부러져버린 나무 기둥 아래에서 밧줄을 감싸안으며 울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들려준다면,틀림없이 이렇게 이야기  것이다.

좆까.”